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78화 (79/310)

78화. 선택과목 (2)

“와, 운소령이다.”

“진짜 운소령이네. 여긴 왜 온 거야?”

“쟤 마법내성 배운 거 아니었어?”

한편 수업 내용을 정리한 학관생들이 웅성거렸다.

무투파로 유명한 3반. 그중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는 운소령이 마법학을 듣는다는 게 황당했던 것이다.

“근데 예쁘긴 예쁘다…….”

“그러게…….”

성적도 성적이지만, 운소령은 그 미모 때문에 2학년 전체에서 유명인이었다. 거기에 신비주의.

수업 외에는 교실 바깥으로 나오지도 않는 미녀가, 오늘 같이 수업을 듣고 있으니 신기한 것도 당연했다.

“근데 저 떨거지는 누구야?”

“운소령 따라온 것 같은데…….”

뒤이어 자연스럽게 천마에게로도 시선이 갔다.

취급은 운소령을 따라다니는 흔한 떨거지.

존재감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애초에 마법당에는 그가 먼저 왔고, 운소령이 뒤따라 왔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덕분에 남자애들은 뜨거운 열기를, 여자애들은 차가운 냉기를 마구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유명인이 납셨구나. 도무지 수업이 집중이 안 되네. 정말이지.”

이쯤 되니 마법학 조교 레빈도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정리를 하지 않으면 수업이 망쳐질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말 돌릴 것 없이 바로 이 소동의 장본인에게 물었다.

“3반의 운소령? 마법내성을 익힌 학관생이 이 수업에 왜 들어온 거니?”

“음.”

운소령이 찔끔했다.

마법내성을 익힌 전사, 무사는 마법을 익힐 수 없다. 당연히 마법 관련 수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도검들만 즐비하게 세워 놓은 곳에, 방패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셈인 것이다.

사실, 그녀도 천마만 아니라면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 들어왔으니 운소령은 적당히 말을 지어내야 했다.

“저는 분명 무예를 익히지만, 마법 또한 중요한 전략 전술의 하나. 참고하고 견문을 넓히고 싶어서 왔습니다.”

“혹시 더블 클래스를 노리는 거니?”

더블 클래스. 마검사 혹은 마권사로 불리는, 무예와 마법 모두에 통달한 특수 직군이다.

극성에 달하게 되면 마법을 쏘아 대며 자신에게 버프를 걸고 적군에게 돌격하는, 그야말로 1인 군단이 된다.

하지만 양쪽을 모두 익히기 위해서는, 두 배가 아닌 네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법.

“아닙니다. 제 한계는 제가 아니까요.”

더블 클래스는 어디서나 환영받지만, 일정 이상의 고레벨 던전에는 가지 못한다.

다양한 범용 공격 수단을 가지는 대신, 궁극의 일격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천재적인 자질과 기막힌 운이 따르지 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전력이 된다.

“학내 최고의 기재가 그리 말하니 재미있네.”

운소령은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만, 그 모습이 마법학 조교 레빈의 마음에는 쏙 들었다.

아무리 무예의 기재라도, 마법의 오의를 가볍게 보지 않는 겸손함으로 비친 것이다.

“그래. 좋아요. 여러분? 오늘은 진도를 잠시 멈추고 앞부분 복습으로 돌아가 볼까요?”

빗. 빗.

기분이 좋아진 마법학 조교 레빈. 그녀는 미소 지으며 허공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 *

처음 그려진 것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머리와 가슴과 아랫배가 깜박깜박, 마법의 빛으로 빛나는 사람의 형상.

빗. 빗. 빗.

다음으로는 빛나는 나무가 그려졌다.

특이한 건 나무의 방향이 거꾸로라는 것.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늘에 뿌리를 두고, 땅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었다.

-가지는 아래를 향하여 뻗어 있고 뿌리는 위쪽에 위치해 있으니 저 높은 곳에서 빛이 우리에게 내려오도다.

뒤이어 노래 같은, 뜻 모를 글귀를 구현해 낸 레빈이 물었다.

“이게 뭐라고 했지요? 음… 하백운?”

“네!”

바로 손을 들어 올린 2학년 4반 하백운. 그는 바로 힘차게 대답했다.

“불멸의 무화과나무. 우주목(宇宙木) 아스바타입니다.”

“좋아요. 그래서 이게 의미하는 바는?”

“영혼과 육신. 물리 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연결입니다. 지성과 지혜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 모든 생물은 작게나마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으며, 신성과 육신의 연결부가 바로 머리라는 뜻입니다. 드물게 심장이 뚫려도 얼마간 살아 있는 사람은 있지만, 머리가 부서지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연 마법반의 엘리트랄까.

말을 마치며 쓰윽, 하백운이 운소령 쪽을 보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딴에는 자기 능력을 보여 줘서 관심을 받으려 한 것이었을 터다.

다만.

‘잘난 척하고 싶어 하네.’

그게 하필 운소령에게는 역효과였다는 것.

워낙 외모가 특출났기에, 운소령은 천무학관에 입학한 이래로 항상 남자들이 치근거렸다.

괜히 부담스러운 과도한 친절. 밑도 끝도 없이 넌 내 거다, 라는 식의 안하무인의 태도. 혹은 지나치게 자신을 과시하는 고압적인 태도 등.

이 모든 게 운소령이 싫어하는 것이었다.

1학년 때는 남자들에게 시달리느라, 제갈세가 출신임에도 1년 내내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을 정도로.

‘서문영이랑 다를 게 없어.’

제발 좀 가만히 공부 좀 하게 내버려 뒀으면. 쓸데없는 관심 좀 가지지 말아 줬으면. 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다가 운소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응? 나 불렀어?”

이한의 반응에 운소령의 상념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은 그런 쓸데없는 관심이 없기는 했다.

다른 구석에서 짜증 나는 녀석일 뿐.

“…아냐.”

예의 없고, 엉뚱하며, 학생이고 선생이고 싸움을 거는 무례함을 가진 녀석.

분명히 1학년 때는 그저 조용하기만 했는데, 어쩌다가 저렇게 성격이 바뀌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역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문이 몰락한 충격이리라.

그리 생각하다가 다시 강의에 집중했다.

“…이처럼 마나와 내공은 성질은 유사하되 그 기초가 다릅니다. 내공을 익히는 데는 단전(丹田), 기해혈이라고 하죠? 무한한 기의 바다를 심상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사람의 몸 안에서 실제로 만들어 냅니다.”

스으윽. 빗. 빗.

레빈이 그린 인체도. 그 아랫배 부분에서 깜박깜박 빛이 일었다.

그 빛은 가슴을 타고 팔을 지나, 인체도의 손바닥 앞에서 화르륵, 불꽃의 형상으로 변했다.

“…….”

“그 기의 운용을 통해 화염의 힘, 삼매진화라고 하죠? 그런 속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냉기, 금강(金剛), 벽공장 등등. 기공, 호흡으로 저장한 고농도 에너지는 저장량과 가공 방법에 따라 강력하고 다양한 쓰임새를 보입니다.”

파르릇. 쫘악. 쒸익!

뒤이어 레빈의 손놀림에 따라, 인체도의 손바닥에서 얼음이, 혹은 예리한 칼날이, 강한 권풍이 튀어나왔다.

‘…이런 게 마법?’

운소령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애당초 목적이었던 이한의 움직임은 까맣게 잊은 채.

“하지만 결국, 인체에 저장된 기(氣)는 가공 방법에서 한계를 보이고 말죠. 반면 마법은 한정된 인체가 아닌, 무한한 자연에서 힘을 끌어 옵니다. 현상에 존재하지 않는 우주를 머리로 받아들이고, 몸 전체로 전달합니다.”

비잇. 비잇. 비잇.

인체도의 깜박임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아랫배가 아닌 머리에서, 그리고 그 위의 허공에서 사르륵, 아지랑이 같은 것이 모여들었다.

쫘아아악!

그리고 머리에서 목을 지나 몸과 사지로.

전신으로 번개가 치는 형상처럼, 열 개의 가지를 뻗쳤다.

“이걸 세피로트. 마법학에선 생명의 나무라고 부르지요. 보통 마법이라 하면 지수화풍. 네 가지 속성 마법이 전부인 줄 알지만 실은 달라요. 내공이 그렇듯이. 이걸 보세요.”

쫘아악!

그리고 그 열 개의 가지가 또 한 번 수많은 가지를 뻗쳐 나갔다.

인체에 뻗은 수많은 혈관처럼.

“발현하기가 쉽지 않을 뿐, 그 방향은 크게 열 가지. 그리고 그 응용 방법에 따라 자세한 쓰임새는 수백, 수천에 달합니다. 마법은 곧 우주며, 자연 그 자체니까.”

“…….”

“그러니 마법은 단순한 공격이나 기술로 이해하기보다는 우주를 몸에 담는 것으로 생각해야 해요. 기공의 고수들이 인체를 소우주라고 부르죠? 마법도 마찬가지입니다.”

“…….”

운소령은 잠시 멍하니 굳어 있었다. 무언가 작은 깨달음이라도 온 것처럼.

그에 반해 천마는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재미있네. 흠, 하긴. 내공도 기본적으로 기경팔맥이 있고, 전신 365개의 세혈이 있지.”

상승의 무예일수록 그런 가르침이 있다.

사람의 몸이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인체와 자연을 하나로 연결하는 깊은 고뇌와 철학이.

그리고 이런 고찰이 들어간 무예일수록, 수행자를 높은 경지로 이끈다.

소림의 백팔번뇌나, 무당의 태극. 공동파의 오행이 그러했다. 마법에도 그런 것이 있다니.

아마 천마 자신과는 다르지만 엄연히 세계의 법칙에 근접한 기예인 모양이다.

하기야 그쯤 되지 않고서야 손에서 불이 튀어 나가고, 얼음이 나가고 하는 기적이 펼쳐질 리 없을 터.

“너무 말만 한 것 같죠? 지금부터 천천히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다들, 감지의 눈을 열고 제 영창과 조정을 확인하세요. 케이스는 가장 많이 쓰이는 파이어볼입니다.”

레빈이 손바닥을 천장으로 펼쳐 보였다.

“술식은 크게 셋입니다. 제일 첫 번째로 점화(Ignition: 점화).”

후우욱!

멀쩡한 손바닥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마법당의 학관생들 모두가 집중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손 위에서 불꽃을 피우며, 이리저리 돌려 보이던 레빈이 입을 열었다.

“다음은 확산.”

쿠우욱. 화르륵!

뒤이어 불꽃이 화염이 되었다. 지독하게 강렬한 열기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와… 열기가 여기까지 와.”

“저게, 저렇게 하는 거였어?”

학관생들도 웅성거렸다.

분명 파이어볼 마법은 초급인데도, 지금 레빈의 손 위의 화염은 어마어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 알겠다. 저게 저런 식으로 움직이는구나?”

“그러게. 와, 이렇게 크게 보니까 보이네.”

“……?”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이는 초보 마법사들.

마법학을 익힌 학관생들을 보며 운소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보인다는 거지……? 아, 시범이라고…….’

레빈이 저렇게 커다란 화염을 만들어 낸 건, 단순히 자기 위력을 과시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무예에서 초보자를 가르칠 때는 일부러 느리게, 더 큰 동작으로 보여 주듯이, 레빈도 마법학 학생들이 볼 수 있게 일부러 큰 불을 만들어 낸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억제.”

휘르르르륵!

다음 순간, 이글대던 화염이 자그마한 불꽃의 공으로 줄어들었다. 열기도 잦아들고 공기가 미지근해졌다.

“와아…….”

“히야…….”

하지만 마법반 학생들은 일제히 감탄을 토해 냈다.

“음.”

운소령은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대체 뭐가 보이는 걸까. 마법이 아닌 무예만 익힌 그녀는, 저들이 보고 있는 광경을 결코 볼 수 없었으니까.

이 녀석도 마찬가지겠지, 하고 뒤를 돌아본 운소령은 얼굴이 굳었다.

“이게 마나로군. 꽤 놀라운 광경이야.”

“…이한?”

이한이 끄덕끄덕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행동이나 말하는 폼을 보니 그도 뭔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너는 저게 보이는 거야?”

“당연히. 아. 그래, 네 수준으로는 볼 수 있는 게 아니겠네.”

“뭐라고?”

운소령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노려봤다.

화가 단단히 난 그녀를 본 천마는 피식 웃어 보이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네. 그래, 보게 해 줄게.”

그리고는 스윽, 두 손을 내밀어 자신의 얼굴로 뻗었다.

이한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지만.

“지금 뭐 하는……!”

거부하기도 전에 너무도 가볍게 양쪽 태양혈을 점혈당했다.

“움직이지 마.”

한순간 당황한 운소령.

하지만 그 감정은 얼마 가지 않았다.

시신경을 자극하는 이질적인 진기. 눈가가 시큰하고 찌릿하게 눈물이 도는가 싶더니,

“…아?!”

운소령의 시야에 온통 미친 듯이 뻗은 빛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빠지직. 빠지직.

그건 마치 자디잔 번개처럼. 비 오는 날의 먹구름에서 뻗어 내린 수많은 번개가,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이게 무슨…….”

“마법의 흐름을 보여 주는 장면이지. 생명의 나무라는 것을 통해서.”

마법당의 둥근 천장에서 수없이 뻗어 내린 벼락 줄기들.

혹은 빛나는 나뭇가지들이 사방으로 가지를 뻗치며 천천히 움직이는 광경이었다.

둥. 둥. 둥.

그리고 그 생명의 에너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이 자리의 모든 학관생들에게.

휘이이이이.

“내게… 어떻게 한 거야.”

그녀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이한에게 되물었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흐름이 어떻게 눈에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쉬워.”

천마는 시선을 돌려 운소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 정확히는 미간을 가리켰다.

“상단전. 우주와 교류하는 인간의 혈을 자극하면 잠깐이나마 영적인 교류를 할 수 있거든.”

처음 듣는 말이다.

아니, 그보다 그렇다고 간단한 손동작만으로 개안을 시킬 수 있다는 것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넌…….”

그녀는 잠깐 동안 천마를 응시했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속으로 되물었다.

‘누구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