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야외 실습 (1)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공터.
천마는 한적한 수풀 속에 서서 머릿속으로 한없이 거대한, 거꾸로 자라는 나무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쓰-읏!
정수리의 백회혈에서, 흔히 미간-상단전이라 부르는 쪽으로 기가 움직였다.
‘지금이다.’
빠지직! 파아앗!
손을 뻗자, 폭발적으로 온몸의 열 곳으로 번개의 가지가 뻗어 나갔다.
그 벼락 줄기의 하나를 천마는 손으로 이끌어 움직였다.
“이그나이트((Ignite).”
치익. 화라라락!
일순. 아무 장치도 없는 돌멩이가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성공이었다.
내공으로 끌어낸 삼매진화가 아닌, 마나를 이용한 마법이었다.
“재밌긴 한데… 좀, 골치네.”
그런데 천마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마법.
무예와는 전혀 다른 뿌리에서 파생된 기예.
확실히 효과도 있고 잠재성도 무궁무진했다.
무엇보다 상단전을 주로 활용하는 무예인지라 언제고 탈마를 넘는 계기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발동 시간도 그렇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군. 자연의 힘에 맞추려다 보니…….”
지난 3주간. 마법 이론을 듣고 나서, 천마는 신나게 새로운 공부에 매달렸다.
재미도 있었고, 성과도 있었다.
애초에 그는 한때 천고의 기재였던 몸.
육신이 이한의 것이라 한들, 작정하고 수련하면 언제고 대마법사의 반열에도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의문점.
뭐 하러 그래야 하나?
천마는 애초에 극마를 넘어 탈마의 극까지 닿았던 몸. 그리고 그 위의 신마경을 향해 진전했었다.
마법에도 그런 경지가 있기는 할 테지만, 지금 몸으로 봐서는 요원하기만 했다.
내공을 사용하다 마나를 운용하려니 순서가 달랐고, 그 역시 익숙지가 않았다.
“그래, 이 정도로 하자.”
탁탁.
천마는 깔끔히 정리했다.
마법은 아무래도 자신과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직접 익히지는 못해도,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소득이 있었다.
마법이란 게 어떤 것인지. 어떤 공격과 어떤 효과가 있는지. 예전에는 아예 모르고 있다가 크게 깨졌다.
이제는 대충 개념을 잡았으니 그때처럼 허무하게 당할 일은 없어졌다.
그리고 강해지는 게 목적이라면, 무공이든 정령술이든 그가 정진해야 할 길은 많다 못해 넘쳤으니까.
탁탁.
책을 자리에 넣고, 다소 허무한 기분으로 천마는 학관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데.
“네가 이한이란 녀석이냐?”
갑자기 골목길에 서 있던 뚱뚱한 거구의 청년이 앞을 막았다.
스윽.
그 옆으로는 대여섯 명의 학관생이 줄지어 있었다.
“그런데?”
천마는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그들이 왜 천무학관의 복장을 하고 길을 막고 서 있는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들고 있는 독특한 병기에는 꽤나 관심이 갔다.
“정말 저놈 맞어? 괜히 엄한 놈 건드리는 거 아냐?”
“아무리 3반이라지만 굳이 이런 장비 템까지 들고 와야 해? 3반에서도 듣도 보지 못한 녀석이잖아?”
“어차피 혼쭐만 내면 돼. 누가 먼저 나설래?”
그들이 서로 투닥거릴 때에도 천마의 시선은 그들이 소지한 무기에 쏠려 있었다.
뚱보의 손에 있던 그물과 삼지창.
자신이 아는 강호인들의 무장과는 달랐다. 차려 입은 것이나, 들고 있는 무기나, 무인이라기보다 군병(軍兵) 같았다.
‘오, 저게 스피어(Spear)라는 거구만.’
천마는 날카롭게 끝이 치솟은 무기를 보고 병기술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떠올렸다.
격변의 날 이후, 중원에는 던전이 생겨나고 학관에서 보급한 수많은 병기와 병기술이 퍼져 나갔다.
그중에서 창은 검과 함께 가장 많이 재조명받은 병기였다.
일단 길고, 숙달이 쉽다.
중원에도 백일창, 천일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예의 기본도 모르는 장정이, 석 달만 연습하면 제법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병기였다.
‘일단 저건 트라이던트(삼지창)이고, 워 픽도 있네?’
특히 창은 앞에 다는 창촉에 따라 운용법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진다.
창대에 언월도를 결합한 글레이브, 큰 낫을 결합한 워 사이드는 주로 전장에서 큰 효용을 발휘하는 병기.
특히나 워 픽(War Pick)은 상대가 판금 갑옷을 입었을 때, 그걸 단방에 뚫고 치명상을 입히는 악명 높은 장병이다.
‘호두구?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 저걸 쓰는 놈도 있었나?’
천마는 그중 한 명이 든 장비를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호두구는 곤봉처럼 생긴 기다란 철봉에 끝이 낫처럼 구부러진 기형 병기. 목이나, 다리에 걸면 그대로 슥삭 해 버릴 수 있는, 낫과 철봉의 중간쯤 되는 무기다.
원래 중원의 무사들에게서도 꾸준히 사랑받았던 병기로, 그 특징은 검을 상대로 극상성이라는 것이다.
주로 장강 이남에서 잘 쓰인 호두구는, 어지간히 숙달된 검사도 검을 막은 다음 휘감아 내던져 버릴 수가 있다.
“너희들, 1반이지?”
3학년 같지는 않았다.
대충 행색과 눈빛을 보아하니 그다지 실력은 있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2학년. 천무학관 2학년은 총 12반이다.
그중에서 1반은 각종 장병과 기병에 능하다고 들었다.
문제는 왜 저잣거리에서 시비를 거나 하는 거였는데.
“그건 알 거 없고. 너, 비검대에서 오만방자한 일을 했다고 들었다.”
물었더니 뚱뚱한 녀석이 한 발 나선다. 아마도 이들 중 대장질을 하는 녀석 같았다.
“비검대?”
“모르는 척할 필요 없다. 이미 2학년 내에 소문이 쫙 퍼졌으니까.”
“…무슨?”
“네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면, 중간고사 족보를 건네주신다고 하셨거든.”
족보.
중간고사 필기시험에 꼭 들어가는 것들.
천무학관은 기본적으로 무인을 양성하는 곳이지만, 마냥 힘만 세고 머리는 빈 싸움꾼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추구하는 방향은 문무겸비(文武兼備).
때문에 필기시험도 난이도가 악명이 높았다.
그러니 3학년의 시험 예상 문제-족보-를 얻을 수 있다면, 골치 아픈 필기시험에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놈들이 엮여 있었구만.”
천마는 대충 이유를 짐작했다.
당시에 자신을 포섭하려는 분위기였는데, 귀찮아서 거절했더니 그게 뭔가 앙심을 품게 된 모양이다.
“자, 무기를 꺼내라. 내 이름은 원홍. 비겁하게 틈을 노리지 않는다.”
척. 척.
상대가 한 손에 둥근 방패, 다른 한 손에는 길게 뻗은 삼지창을 들고 다가왔다.
“흠.”
-방패는 몬스터의 공격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 긴 봉을 이용해 앞쪽 날인 삼지창으로 찌른다. 혹여나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라도 괜찮다. 삼지창은 적이 공격해 오는 오는 칼날도 막을 수 있다. 상당히 효율적이다.
천마의 머릿속에 병기술 수업 시간에 조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에 따르면 상대는 기본에 충실한 전형적인 군병.
저벅저벅.
조심해서 오는 그의 표정은 상당히 집중한 모습이었다.
더욱이 척 봐도 그냥 방패로 보이지 않는다.
희미한 막이 빛에 언뜻언뜻 비쳤기 때문이다.
‘마법 방패인가?’
“칼을 들어라!”
뚱보는 다시금 외쳤다. 전장에 나간 사람처럼 상당히 긴장한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칼을 들어… 컥!”
천마가 빠르게 접근해 방패에 주먹을 한 방 갈겨 주는 것으로 끝이 난 것이다.
쾅!
주르르르.
그는 거의 삼 장이나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대자로 자리에 뻗었다.
“기본적인 흘리기도 모르는 녀석이네. 전형적인 쭉정이구만.”
그 꼴을 보고 천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는 데 최고의 장비다.
하지만 일정 이상의 충격은, 방패를 장비한 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때문에 방패병은 공격에 대해 비스듬히 흘리는 각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상대는 그런 쪽으로는 영 젬병인 모양이었다.
“원홍! 제기랄!”
“역시 보통이 아니었어!”
“이번엔 내가 한다!”
한편, 주변에 서 있던 학관생들은 난리가 났다.
당장 한 명이 쓰러지자 잔뜩 긴장해서 나온 녀석.
그는 왼손에 그물을 들고, 오른손에는 스피어를 들고 있었다.
“그건 그물 아냐?”
천마는 이번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포획과 견제를 전문으로 하는 그물. 제대로만 쓰면 방패보다 더 효율적이다.
그렇게 수업 시간에 듣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 싸움에서 사용하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대격변의 날 이전에도 그물을 무기로 쓰는 강호인은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천마신교가 자리한 곳은 사천 이북의 청해성.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기에 더욱 쓰는 걸 볼 수 없었으니.
“재미있겠네. 한번 와 봐.”
천마는 까닥까닥, 흥미로운 얼굴로 손가락을 까닥였다.
백문이 불여일견.
처음 보는 전술이라 흥미롭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 왜 그물을 그렇게 경계하라고 했는지도 궁금했으니까.
붕붕붕!
상대는 그물을 유성 추처럼 휘둘렀다. 회전력이 속도로 변해서 점차로 빨라지더니.
“야압!”
휘릭. 촤악!
그물을 펼침과 동시에 창을 찔러 왔다.
챙.
천마는 창날을 검으로 튕겨 내고, 뒤이어 검으로 그물을 그어 버렸다.
씨이익!
‘어?’
그런데 뜻밖에도 그물이 잘려 나가지 않았다.
그로 인해 넓게 사방으로 펼쳐진 줄들은 천마의 온몸을 덮어 버렸고.
쫘아악!
“하핫! 잡았다! 월척이다!”
뒤이어 상대가 줄을 당기자, 그물이 온몸을 칭칭 감아 왔다.
검도, 팔도, 다리도 꼼짝달싹 못 하게 된 상황.
“…아하, 참.”
그물에 묶인 천마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뭐,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보통의 무인들은 충분히 경계할 만했다.
투척하는 그물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질김 역시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특별히 질긴 재료, 혹은 특이한 구조로 베기를 흘려 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멍청한 녀석! 그냥 휙 하면 자를 수 있는 줄 알았지? 포획망은 애초에 날붙이를 상대로 한 무기다!”
“그러네. 아주 방심했어.”
“그럼 이제… 어?”
식. 투둑.
말을 걸던 녀석의 눈이 커졌다.
상대의 몸을 감싼 그물이 어느 샌가 가볍게 찢겨 나간 것이다.
검기 때문이다.
그물이 잘리지 않자, 천마가 검기를 주입하여 한 번 더 잘라 냈고, 이처럼 자연스럽게 풀린 것이다.
“덕분에 잘 배웠다. 대체 왜 이따위 물건에게 걸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천마는 녀석의 입이 쩌억 벌어진 보며 칭찬해 주었다.
하수의 솜씨지만, 천마는 이 그물 무기가 싸움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았다.
그리고 예전 수업 때 이해가 안 가던, ‘왜 당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 것 같았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뭐든 배우는 입장이었으니, 천마는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 내 그물이… 이 녀석!”
“잠시만, 이것 좀 적고. 대화하자고.”
천마는 필기구를 꺼내 빠르게 뭔가를 적어 나갔다.
<그물>
1. 낭창낭창한 그물은 초월적인 속도가 아니면 벨 수 없다.
2. 그물에 따라 마법이 걸려 잘 베어지지 않을 수 있다.
3. 그물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포획하는 용도지만, 움직임을 제한하는 효과도 가진다.
4. 거리와 위치 싸움에서 강점을 발한다.
“다 됐고.”
천마는 필기구를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어리둥절해하는 학관생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자, 이제 전부 와.”
천마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수업 내용 더 복습해 보게. 얼른.”
“으…….”
“으아아아아!”
그것이 끝이었다.
이리저리 달려들었지만, 그날의 습격조는 천마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고 모두 바닥에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