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81화 (82/310)

81화. 4학년 실전 평가 (1)

2학년 중간고사를 앞두고, 휴일이던 천무학관 교무처에 학관을 대표하는 교두들이 모였다.

학력평가부가 2학년 중간고사의 시험 문제 출제로 바쁜 것과 달리, 교무처가 바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고학년들의 실전 평가를 위한 임무 배정이 그것이었다.

특히 4학년.

위험 요소와 변수를 제거하고, 가급적 계획된 임무만 수행하는 3학년과 달리, 4학년은 말 그대로 ‘실전’을 겪는다.

이 기간 동안 천무학관은 주변의 세가와 표국, 방파와 회(會) 등 여러 단체에서 보내 온 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으음. 그럼 이 임무의 난이도는 조금…….”

“이건 괜찮네요. 투입 인원은 몇 명을 예상하십니까?”

먼저 교두들이 모여 임무의 성격과 난이도를 분석하고, 임무를 던져 준다.

그걸 받은 교관들이 모여 담당 학관생들의 전력을 파악 후 다시 위로 보내며, 교두들은 선별, 투입을 최종 결정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천무학관까지 날아온 요청은 각 방파에서 자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난제(難提)들인 법.

당연히 위험하고,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 이런 실전 임무에는 적지 않게 사망자가 발생했기에 교두의 신경이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해야 했다.

위험 부담을 안고 가야 하는 이유는, 위기만큼 무인을 단련시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천무학관의 4학년들은, 한 명 한 명이 다음 세대의 초절정 무인이 되기 위한 인재들.

더욱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선 현장의 경험은 필수적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교두들은 임무의 난이도와, 성패를 예상하느라 머리털을 쥐어뜯고 있었다.

“그럼, 교두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이 지역에는 방금 언급했던 학관생 다섯을 투입하기로 하고…….”

탁. 타닥. 펄럭.

널찍한 원판에 서 있던, 교무처장 구용천은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호위 병력을 필요로 하는 어느 세가에 보낼 선별된 인원들을 정한 것이다.

“다음은…….”

촤락!

서류를 한 장 넘긴 시선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4학년 4반의 학관생 학급 명부가 보인 것이다.

“대충 추려 낸 바로는 여러 명이 투입하는 임무 6개, 단독 임무 2개가 있습니다.”

때마침 옆에 있던, 교무부장 이중구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번 임무 배정에서 사건의 규모와 투입될 인원들의 자료들을 조언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때문에 다른 교두들이 잘 알 수 있게, 제반 사항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우선 단독 임무 2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며칠 전, 금전표국(金錢鏢局)에서 호위를 부탁하는 회신이 왔습니다.”

“금전표국이라면… 사천 성도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곳 말인가?”

설명을 채 듣기도 전에 끼어든 자는 무협학과 교두 지공대사였다.

금전표국의 주인인, 금전보 가주와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라 그런지 꽤 관심이 가는 얼굴이었다.

“그렇습니다. 중소 규모지만, 점점 사천을 대표하는 곳으로 커 가는 표국 중 하나이죠. 그리고 금전표국이 표행을 하는 길에 내악산(內鏢局)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는 잠시 운을 띄우고 말을 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녹림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표국과 녹림은 주로 통행세로 갈등을 해결합니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 녹림이 통행세를 크게 올렸습니다.”

“얼마나?”

“표행 물품 가격의 2할입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로군.”

침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표행은 운수 산업이다.

강한 무력을 가지고, 비단 같은 값비싼 상단의 거래 물품을 보호하는 호송 부대가 표국이다.

따라서 시세 차익, 상단의 이익이 곧 표국의 수입이 된다. 그 보호비는 대략 표행 물품의 2할에서 3할.

한데 녹림이 표행 물품의 2할을 요구한다면, 표국은 수입 없이 무료 봉사를 해야 한다.

아니, 적자를 보아야 한다.

표국이 표행을 할 때는 수많은 인원과 부대 비용을 필요로 하니까.

“금전표국은 당연히 거부했고, 협상이 결렬되자 녹림은 조만간 큰 사달이 날 거라고 예고해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공전기협(空前奇俠) 왕호(王虎)라는 정사지간의 무사를 초빙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녹림(綠林).

세상이 변하고, 정파와 사파가 손을 잡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무리 중 하나.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늘어난 감도 있었다.

대격변의 날 이후, 몬스터 웨이브에 터전을 잃은 농민이 급증했다.

이들 대부분은 유민이 되어 유리걸식하지만, 그중 적지 않은 수는 도적이 되어 사람들을 약탈해서 먹고 살았다.

특히, 옛 하오문 출신은 본인들이 가진 재주나 정보를 사고팔며 녹림의 협력자가 되곤 했다.

“근거지를 추적할 수는 없소?”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방에 자생하는 도적들은 던전을 끼고 있습니다.”

“으음…….”

그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었다.

던전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지역.

언제 브레이크가 터져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 당연히 사람들이 피하고, 그 주변은 인적이 드문 지역이 된다.

그리고 그런 호랑이 굴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으니, 애초에 정보를 얻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이 도적놈들은, 던전을 처리하러 간 헌터나 길드를 기습하기도 했다.

던전을 클리어하느라 극도로 지친 상황에서 기습을 당하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헌터들이라도 명을 달리할 수 있었다.

“공전기협이라… 불우한 일이기는 하나 임무상으로는 좋은 건수로군.”

무공학 교두인 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학관의 교관이 알고 있는 정보로 그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남해 출신이지만, 숱한 기행으로 이름이 쌓인 정사지간 고수로 불리는 인물.

그의 무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신으로 와이번 한 마리를 손쉽게 상대했다는 것이다.

정보의 신뢰도는 높다.

수십 명의 목격자가 있었고, 얼마 후 와이번의 사체가 거래되었으니까.

“그래. 누구를 선발하면 좋겠는가?”

대충 파악이 끝난 구종명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표국의 지원, 표국주 호위. 확실한 실력자를 필요로 하는 임무였다.

“4학년의 남궁호가 적격인 듯합니다.”

던전학과 월산 교두가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곧장 반박이 날아왔다.

“4학년 학관생의 실력으로는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왕호는 만리표국의 표국주를 기습하여 살해한 전적이 있습니다.”

치유학과 교두인 적이연이었다.

왕호. 정사지간의 유명한 고수. 어떤 때는 가난한 마을에 식량을 베푸는 미담도 들려왔고, 어떤 때는 멀쩡한 상단을 약탈하는 악행도 들려온 인물.

“그건 확인된 정보가 아니지 않소?”

“맞습니다. 하지만 사실이라면요? 만리표국주는 저희 평가에 따르면 초절정의 고수였습니다. 기습이라고는 하나, 초절정 고수를 살해했다는 건…….”

왕호 역시 초절정 고수일 수 있다는 것.

변수는 알 수 없기에 위험하다. 이제껏 확인된 정보로는 왕호의 최대 무력은 와이번 두세 마리 정도. 절정에서 초절정 사이의 고수였다.

하지만 그가 근래에 기연을 얻어 전력이 상승했다면, 그래서 초절정 고수가 되었다면, 남궁호 정도로는 부족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남궁호 학관생의 수준은 하루하루 몰라볼 정도로 엄청난 성취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가진 신병이기를 생각해 보면… 흠. 질 거라는 상상이 쉽게 되지 않는군요.”

이번엔 우람한 체구의 병기학과 교두인 위지상(尉遲祥)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몇몇 교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르트의 검.

화염을 넘어 용암까지 뿜어내는 신병이기.

왕호에게 숨겨진 한 수가 있다 해도, 이 정도면 얘기가 다르다.

남궁호가 그 힘의 일부만 사용해도, 초절정 고수 정도는 압도할 수 있다.

“흐음…….”

장내에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나름 위지상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셈을 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를 한참.

“흑객은 어떻습니까?”

체육학과 교두 뇌천벽이 다른 이를 거론했다.

“그는 입관 전에 이미 용병으로 살아온 자입니다. 더욱이 그는 최근 대련에서 남궁호와 호각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 * *

콰콰콰콰! 다다다다!

흑객은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손잡이를 잡고 다리만 박찬다.

그러면 바닥의 발판이 바퀴를 따라 죽죽 밀려나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멀리 남쪽 지방에서 자란다는 고무가 철제로 만든 바퀴를 감싼 이것은 주행 기계(Running machine).

콰르르르! 콰르르르!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튀어 나가지 않는다. 애초에 주행 기계는 무한히 제자리에서 달리기 위한 장치였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그러기를 벌써 한 시진째. 흑객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고수라도, 내공을 쓰지 않고 육신의 힘만으로 몇 시진을 달리면 진력이 고갈되는 법이다.

하지만, 끔찍한 피로에도 흑객은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의 귓가에는 아직 뚜렷하게 남아 있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래 달려 보면 알게 될 거다. 네 몸이 예전과 얼마나 달라진 건지. 그놈은 네가 최대한 빨리 극마에 오르길 바라고 있어.”

“후욱! 후욱! 후욱!”

콰콰콰콰! 다다다다!

다리가 타들어 가는 듯했지만 참고 버텼다.

흑객에게 있어 천마의 말은 절대적인 신앙이었다. 애초에 천마신교의 하늘이자 교주다.

교주의 말을 믿지 않으면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잘하고 있다. 한동안 수련에 집중해. 그 블라드라는 흡혈귀는 네가 극마에 오르기 전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거다. 아마 네 몸을 빼앗으려 드는 것도 자제할걸?”

“…녀석이요? 어째서입니까?”

“간단한 이유다. 너보다 더 탐이 나는 몸. 나와 싸워서 내 몸을 빼앗고 싶어졌을 테니까.”

“아…….”

그 말을 듣고 흑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의 몸에, 언젠가 천마를 상대로 공격을 하려는 불측한 것이 깃들어 있다는 것에.

그리고 그걸 자신이 막을 수 없다는 것에 격렬한 자괴감을 느낀 순간.

“그래서 기대하고 있어.”

“예?”

“기대하고 있다고. 네가 정말로 강해지길 말이야.”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천마.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눈빛을 보니 오히려 오싹해지는 건 흑객이었다.

‘그릇이 보통이 아니야 확실히.’

그는 토끼나 쥐를 앞에 둔 호랑이처럼,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없이 오만한 미소인데도, 그게 너무도 자연스럽달까.

“그러니 너는 최대한 빨리 극마가 되어야 한다. 생각하는 것보단 쉽다. 쉽다고. 정말 쉽다니까?”

“아, 예…….”

콰가가가! 콰가가가!

주행 기계가 요란하게 돌아갔다. 이를 악문 흑객의 입가에는 땀이 아니라 옅은 피까지 흘렀다.

“크허억! 콜록콜록!”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말 듯하던 흑객은 겨우 몸을 누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핑그르르르-.

세상이 노랗게 보이고 빙글빙글 돌았다.

어마어마한 피로감. 현기증에 몸을 툭, 툭 경련하던 흑객은 곧 탄식을 흘렸다.

“…허, 참. 정말 어이없군.”

스르르르륵. 꾸드득! 툭! 툭!

흡사 거짓말처럼, 탱탱 부풀어 올랐던 다리의 붓기가 빠지고 있었다.

자그마치 두 시진을, 전력을 다해 달린 다리다.

내공을 봉인하고 순수하게 육신의 힘만 썼으니, 괴사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다리 근육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한데 통나무처럼 퉁퉁 부풀어 올랐던 다리가, 그렇게 엄청나던 붓기가 삽시간에 잦아들더니 오히려 근육은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마치 시간을 아득하게 빠르게 돌려 버린 것처럼.

“블라드라…….”

흑객은 이 조화를 부린 존재를 입에 담았다.

신기하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체력과 회복력을 얻었으니까.

“교주님까지 갈 것 없다. 반드시 내 선에서 끝내 주마.”

동시에 두렵기도 했지만 흑객은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그에게서 승리하겠다고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