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4학년 실전 평가 (2)
뇌천벽이 마교 출신의 흑객을 거론했기 때문일까.
천무학관 교무처에선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그 이야기는 들었소만… 그는 아직 본인만의 독문절예가 없지 않소?”
무협학과 지공대사가 탐탁지 못하다는 얼굴로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독문절예, 성명절기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특별한 기예를 말한다.
절정 이상의 제대로 된 무인이라면, 남들이 따라 하지 못할 자기 자신만의 대성한 무예가 있게 마련이다.
하여 독문절예가 없다는 말은 그 무인이 제대로 된 경지, 오롯한 자기 자신만의 무예를 가지지 못했다는 말과 같았다.
물론 지공대사가 독문절예를 운운하는 데는, 출신 탓도 있었다. 아무래도 소림의 후예다 보니, 마교의 무공을 신뢰하기 힘든 것이다.
“숨기고 있을 수도 있지요. 그리고 딱히 독문절예가 필요합니까? 애초에 그가 데스나이트를 잡았다는 걸 기억해 보시지요.”
“크흠.”
“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학관은 어중이떠중이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흑객이 입관할 때는 학관의 모든 교두가 그의 출신과 능력을 확인했다.
그때 특히 검증에 신경 쓴 것이 흑객의 이력.
소수의 파티를 구성해서 데스나이트를 잡았다는 사실이었다.
데스나이트. 자그마치 최소 위험 등급 7, 평균 11급이라 불리는 죽음의 기사.
몇몇 조력자가 붙었고, 골마(骨馬 : 뼈로 된 말)도 타지 않아서, 추정 8급이라곤 하나, 애초에 데스나이트는 조력자 없이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놈은 흔히 말하는 보스 몬스터. 휘하에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을 거느린다.
때문에 놈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무력이든 지략이든 무수한 몬스터 무리를 처리하거나, 따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독문절예야 그렇다 쳐도… 그에겐 대단한 신병이기도 없지 않습니까?”
이번엔 던전학과 월산 교두가 반박했다.
“그것도 확실하지 않지요. 본인이 숨기고 있을지도.”
“허. 천무학관의 눈 아래에서 신병이기를 숨긴다고요? 거기다 그 상태에서 남궁호와 호각을 이뤘다고요? 거, 아주 대단한 실력자군요.”
“맞소. 대단한 실력자요. 그러니 본인이 이토록 추천하는 게고.”
비아냥거리는 상대의 말을 뇌천벽이 되받았다.
“다시 말하지만 남궁호는 수르트의 검을 지니고 대결에 임했소. 그런 상대를, 신병이기도 없이 상대해서 호각을 보였다면, 그거야말로 더 대단한 것 아니오?”
“……!”
“…흠.”
장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듣고 보니 뇌천벽의 말대로였다.
신병이기 없이 신병이기의 소유자와 맞섰다는 건, 본인의 능력이 더 대단하다는 것이 되지 않는가.
“독문절예에 대해서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오만. 천무학관의 검증 과정에서 특별한 비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 둘 중 하나지. 하나는 우리의 관찰 아래서도 본인의 비기를 숨길 만큼 용의주도한 성격이거나. 혹은.”
“…딱히 독문절예 없이도 천무학관 4학년의 역량이 되거나.”
“그렇소. 잠재력의 측면을 보면 그게 더 대단할 수도 있지.”
“흐음… 제 교두, 어떻게 생각하는가?”
반박과 반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구용천은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회의 내내 침묵하던 중년인. 실전학 교두인 제운비에게 시선이 모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본인에게 묻는다면, 남궁호가 적절해 보입니다.”
“하.”
“역시.”
몇몇은 따라 동의했고.
의아하게 바라보는 다른 교두들은 제운비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학관에서조차 자기 능력을, 혹은 아이템을 숨긴다? 좀 꺼림칙한 일이지요. 그렇게 비밀이 많은 자를 임무에 보낸다는 건 위험 부담이 큽니다.”
“그건 그렇지요.”
“과연. 맞습니다.”
이번엔 대부분의 교두들의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력이 있는 발언이었다.
단 한 명, 뇌천벽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흥. 웃기지도 않는 소리하고는.’
비밀이 많아서 임무에 못 보낸다?
어이없는 말이다.
무림인 중에 사연 없고 비밀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
애초에 정파고 사파고 다 협력하는 공간이 바로 학관이다. 그런 학관 안에서 투명한, 숨기는 것 없는, 검증된 인재라고 하면 방향은 오직 하나뿐.
뇌천벽이 줄을 대고 있는 옛 정파 무림뿐이다.
숨길 것도, 사연도 없는, 달리 말해 유력자들의 가문 출신들.
이래서 뇌천벽이 제운비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후임자를 챙기려는 생각이겠지. 겉으로는 무공에만 전념하는 고고한 인물인 척하고는, 뒤에서는 이런 식으로 관내 정치라니.’
4학년의 실전 평가.
이들은 다른 학년과 달리 유급이나 낙제 같은 건 없다.
다만, 점수를 얼마나 받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졸업한 후, 어떤 점수를 받았느냐, 어떤 임무를 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수석을 노리는 남궁호에겐 이보다 더한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남궁호는 대놓고 제운비와 줄이 닿아 있었다.
“좋소. 그럼 금전표국 일은 남궁호를 투입하도록 합시다. 그럼 다음으로.”
펄럭.
그렇게 한 건이 마무리 되었다.
이후 구용천이 시선을 보내자 이중구가 파락파락, 서류철을 넘겼다.
혹시 놓친 게 없는가 두 번 세 번 확인한 후 그는 다음 서류를 읽으며 말했다.
“사천 오가장에서 연통이 왔습니다. 외부 활동을 하던 소가주의 추가 호위를 부탁한다고.”
“오가장?”
“사천 제일 상단에서 추가 호위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오가장(誤家莊).
사천에 가장 부유한 집안으로, 밀과 쌀에서부터, 비단까지, 모든 물품을 다루는 상계 집안이다.
이름 그대로 사천 제일 상단. 재력으로 치면 소진의 소가상단보다 몇 배는 컸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재력을 지닌 곳이 아닌가.
“오가상단의 자체 호위에 문제라도 생긴 게요?”
“그런 말은 없습니다만…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오가상단에서 극비로 연구 중인 상품이 있는데, 타 상단에서 견제가 심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은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집단이다.
당연히 자신들을 보호하는 고수를 초빙할 때, 돈과 여러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인연을 만들고 세력으로 삼는다.
하나 돈을 보고 들어간 무인은, 다른 돈에 휘둘릴 수도 있는 법.
오가상단의 ‘사천 제일’이라는 이름에 도전하려는, 다른 상단들의 견제는 진작부터 있었다.
그들은 오가상단의 호위 무사 중 행실이 가볍거나, 혹은 약점이나 흠이 있는 자를 매수하여 비밀을 캐거나 상단의 정기 상행 정보를 얻어 내 교역에 지장을 주곤 했다.
“타 상단의 견제라… 상단끼리 서로 치고받는 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그럴 만하군. 위치는?”
“북이현(北理縣) 저잣거리 초입에서 남서로 이백 장쯤 떨어진 거리입니다.”
“…흠.”
크게 대단한 사건처럼 여겨지지는 않았다.
상단 간의 알력 다툼이라. 원래라면 천무학관이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오가상단은 천무상단에 오래전부터 협력해 오며 두둑한 지원금을 보내 온 곳.
“요구 조건은?”
“최소 조교급. 가능하면 교관급의 무사들을 좀 파견해 달라고…….”
“터무니없군. 본 학관이 동네 뜨내기 학관인 줄 아는 건가?”
피식. 픽.
장내에 어이없다는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천재지변급 재난이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천무학관 교관들은 이권 다툼에 개입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사천 제일이라는 이름을 가졌든, 한해에 몇만관의 금을 보내오든, 이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냥 4학년 중에 뽑아서 보냅시다. 조교로도 넘치는 임무 같소.”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 교두들은 누가 좋아 보이오?”
“조금 전에 물망에 오른 흑객이 어떻습니까?”
술렁.
장내가 잠시 서늘하게 식고, 뇌천벽의 얼굴이 굳었다.
“조금 전에 뇌천벽 교두께서 말 하셨다시피, 흑객이란 이는 꽤 훌륭한 인재입니다. 용병으로 생활을 시작했고, 신병이기도 독문절예도 없이 남궁호와 호각을 이루었지요. 이 정도면 교관급 무인을 원하는 오가상단에도, 충분히 체면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
“무엇보다 오가상단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거상. 임무에 성공하면 적지 않은 보상을 제공할 겁니다. 본 학관에도, 파견 무사인 흑객에게도. 어떻습니까. 뇌천벽 교두?”
우드득.
뇌천벽은 얼굴을 굳히고 손을 말아 쥐었다.
‘이런 비열한 자식들!’
임무 조건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위험 요소가 너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 위험 요소가 없다는 건 그만큼 평가가 높지 않은 임무, 성과가 발생할 수 없는 임무다.
일종의 한직 발령이랄까.
이런 일에 자신이 추천한 이를 밀어 넣으려 하는 것이다.
“듣고 보니 좋은 의견이로군. 다른 교관들의 생각은?”
다들 말이 없었다. 동의하는 것이다. 뇌천벽은 화가 뻗쳐 올랐으나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조금 전에 막 흑객을 치켜세운 직후인데, 지금 와서 그는 부족하다느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느니 하며 빼려 했다간 흑객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체면이 상하는 것이다.
“좋군. 다들 동의하는 모양이야. 이건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안건이니 흑객에게 보내게.”
사각사각. 탕!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견 명령서가 만들어지고 직인이 찍혔다.
그 말에 문 쪽에 서 있던 교관 하나가 급히 다가와 문건을 받았다.
그리고 재빨리 어디론가 빠르게 뛰어갔다.
“하아… 일이 이렇게 되면…….”
참으로 신속하게도 처리되어 버린 안건. 뇌천벽은 한숨을 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흑객이 몬스터 웨이브라도 맞닥뜨리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건가.’
다만 차마 입으로 할 말은 아니라 속으로 삼켰다.
* * *
쿵쿵쿵! 쿵쿵쿵!
한밤중이었다.
육체 수련을 끝낸 흑객이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요란하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흑객은 빠르게 수건으로 땀을 닦고 옷을 걸친 후, 문을 열었다.
저택의 문 앞에 서 있는 중년인은, 딱 봐도 천무학관의 사람이었다.
“네가 흑객이냐?”
“…그렇습니다.”
첫 만남부터 하대라니.
기분 나쁘지만 일단 넘겼다.
천마를 모시기 위해서는, 천무학관의 학관생이라는 신분을 지킬 필요가 있었으니까.
“천무학관에서 내려진 임무다. 내용은 오가장의 추가 호위.”
펄럭. 스슥.
“사천 제일 상단의? 무슨 일이랍니까?”
오가장이 어떤 곳인지는, 용병 생활을 했기에 일반적인 학관생보다 훨씬 잘 아는 그였다.
흑객은 자리에 선 채로 파견 지령서를 받았다.
하나 급하게 펴 본 서찰은, 생각보다 밍숭밍숭했다.
“극비적인 연구… 호위… 나 참.”
“딱히 어려운 임무는 아닐 거다. 부른 곳이 부른 곳이니 대접은 후할 터. 적당히 잘 놀고 오도록 해. 하지만.”
빈정거리는 흑객에게 교관이 애써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주의도 잊지 않았다.
“혹여, 실수하여 천무학관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뭐, 그래야겠지요.”
“……?”
눈을 부라리던 교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하던 도중 의도적으로 그에게 기세를 쏘아 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일으킨 기세이니, 원래라면 파르르 떨며 긴장해야 했다.
보통의 4학년 학관생이라면 응당 그렇다.
“알겠습니다. 더 시킬 것이 있습니까?”
흑객이 태연하게 물어 오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흠. 커흠! 그래, 없다. 수고하도록.”
괜히 불편해진 심기를 헛기침으로 감춘 것이다.
‘뭐였지?’
그렇게 소식을 전해 주고 문을 나온 교관.
몇 발짝 걷던 그는 다시금 전각을 돌아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기세를 쏘아 낼 때, 돌아온 기운.
살기와 흡사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대놓고 드러내는 적의가 아닌 뭔가 다른.
본능적인 두려움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이걸 보고를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교관.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학관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