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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84화 (85/310)

84화. 2학년 중간고사 (1)

천무학관은 중원 전역에서도 손에 꼽는 명문 중에 명문.

하여 시험 난이도 역시 중원에서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노력하지 않는 자. 떨어져 나갈 것이니.’

조적상은 이 수업의 학관생들 절반은 50점을 넘지 못한다고 예측했다. 아니, 예측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업 시간에 알려 준 병기술 내용은 제원과 쓰임새, 그리고 기본적인 활용뿐.

하지만 고대의 전투에 쓰인 병기의 활용법과 대격변의 날 이후 큰 폭으로 변화한 병기들의 유래는 물론이고 그 쓰임새와 장단점, 그리고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기입하는 문제까지 있었다.

‘함정도 있고… 이 정도면 제갈세가의 여식도 서너 개는 틀릴 수 밖에 없을 걸?’

조적상은 씨익 웃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천무학관의 시험 난이도를, 조적상 같은 악랄한 교관들은 대폭으로 더 올려 버리곤 했다.

애초에 틀린 문제, 혹은 답이 없는 문제를 시험문제에 내는 것이다.

스스슥… 끄으응…….

고작 일각이 흐르기도 전에 반응들이 나타났다.

아이들의 필기구는 움직이지 않았고, 곳곳에서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건 운소령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매끄럽게 답을 기입하던 필기구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흥. 예상대로군.’

조적상은 턱을 들고 오연히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평소 학관생들에게 ‘부처님 교관’으로 불리웠다.

수업 시간에 졸거나, 딴짓하거나, 아예 수업에 나오지 않은 학관생의 태도 점수를 깎거나, 체벌하거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는 천무학관에서 가장 엄한 교관이었다.

그는 학관생이 수업에 불성실하든, 출석을 하지 않든, 아무 상관 하지 않았다.

아무런 혼도 내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서운 벌임을 알고, 그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실력이 있다면, 증명해라.’

그는 철저하게 결과를 원했다.

실력이 있으면 수업 때 놀아도 된다. 자도 된다. 아예 학관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물론, 수업이라는 가장 기본에도 성실하지 못한 놈이, 그 실력을 갖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으윽…….”

“크…….”

여기저기서 흐르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 조적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관생들아, 수업이 장난 같더냐? 어디 이 시험문제도 장난이라 해 보려무나.’

그렇게 마음으로 무언의 호통을 치던 중에.

“쉽네.”

낭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조적상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아이들의 몸도 흠칫했다.

‘뭐야? 저거?’

‘어떤 놈이야!’

갑자기 뻘소리를 해서 집중을 깨는 놈을 노려보고 싶었지만, 감독관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 못한 것이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조적상은 눈을 부라렸다.

시험 수칙 중에 입을 열지 말라는 건 없었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풀다 보면, 누군가는 절로 욕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런 것까지 처벌하는 건 과도한 일이니까.

하지만 시험 시간에 조용히 해야 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그 말 내용이 하필 조적상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건 사실이었다.

“아, 혼잣말이었는데. 들으셨습니까?”

“…….”

뻔뻔한 학관생의 대답에 그는 두 가지를 확신했다.

하나는 이전에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그 망나니 녀석이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것.

또 하나는 이번에도 자신을 교묘하게 희롱하고 있다는 것.

“크읍.”

조적상은 끓어오르는 감정보다 이성을 먼저 선택했다.

이놈이 한 개소리를 되물어서 확실히 구실을 잡도록.

“시험문제가 쉽다고 했느냐?”

“예. 쉬운 문제 같은데요?”

“…허.”

그런데 너무 대놓고 받으니 어이가 없어졌다.

최근에 말투가 고쳐졌긴 했지만, 전부터 뭔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녀석.

배우려는 노력도, 강해지겠다는 의지도 없는 녀석.

불평불만만 가득한 패배자.

“그 말은, 다 맞힐 수 있다는 뜻이지?”

조적상은 눈앞의 학관생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감정적인 물음을 던졌다.

“말해 봐라. 하나도 틀림없이 다 맞힐 수 있겠지?”

‘헉! 이한이 사고 쳤어!’

한편, 교실 한쪽에서 열심히 문제를 풀던 소진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는 이한이 왜 저런 식으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 받아 든 문제의 수준은 소진에겐 충격이었으니까.

시험 첫 문제부터, 학관에서 쓰이는 병기술이 아니라 고대에 문헌으로만 남아 있던 병기, 그 기원과 활용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까다롭지만, 거기까진 상관없었다.

소진의 뛰어난 기억력은, 예전에 본 모든 문헌을 기억 할 수 있었으니까.

중간중간 헷갈리게 만드는 예시도 있었지만, 삼음절맥의 암기력은 완벽했다.

필기시험만 놓고 보자면, 소진은 운소령, 서문영과 같은 급의 강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것이 있었다.

-두 자루의 검이 엇갈려 세워져, 인(人) 자를 그리고 있다.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각도를 계산하라.

‘…이거 대체 무슨 뜻이야?’

특이 이 문제가 어려웠다.

얼핏 보면 계산 문제 같고, 얼핏 보면 인성 문제 같다.

애초에 병기술에서 수학적 계산, 물체와 그 그림자의 각도가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풀자면 답은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30도가 될 수도 있고 45도가 될 수도 있고. 90도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태양이 어디에 있을지 나와 있지 않으니까.

즉, 답이 답이 아니다.

그런데 이걸 다 맞힐 수 있다고?

반 학관생들 역시 이 문제에서 골몰할 거라 예상되는데 말이다.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냐? 문제가 쉬우면 한 문제도 틀리지 않을 것 아니냐? 이제 와서 겁이라도 난 게냐?”

한편, 조적상의 으르렁거림에 천마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기를 한참.

스윽. 스윽. 스윽.

정적을 깨뜨리며 그가 종이에 대고 X자를 그었다.

“잘못된 세 문제만 빼면 가능합니다.”

“뭐?!”

툭.

말과 함께 필기를 마쳐 버리는 천마.

“여기 3문제. 이건 애초에 틀린 문제니까 말이지요.”

스윽.

천마가 문제지를 조적상에게 건넸다.

그리고 꿈틀꿈틀 경련하는 조적상에게 짜증 난다는 투로 물었다.

“전 끝났으니, 나가도 됩니까?”

“…….”

“그럼.”

덜그럭. 스슥.

그렇게 시험 자리를 나가 버리는 이한.

“이… 무슨…….”

조적상의 동공은 지진 난 듯 사정없이 흔들렸다.

망나니 이한. 그놈이 제출하면서 아예 스스로가 ‘틀렸다’라고 그어 버린 문제 셋.

‘저놈이 어떻게 이걸……?’

그건, 조적상이 직접 출제한 함정 문제였다. 뭐라고 답을 쓰든 죄다 틀리게 되어 있는 문제였다.

그저 글월만 외워서, 무예를 머리로만 아는 녀석은 절대 낼 수 없는 답.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는, 진정한 무인이라야 패기 있게 낼 수 있는 답.

-교수님, 이거 문제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렇게 적어야 답이다.

그런데 그 답을.

‘망나니가…….’

제대로 적었다. 대단히 성의 없고 기분 나쁘지만, 놈은 분명히, 정확하게 조적상이 낸 문제를 딱 짚어 표시했다.

<이 세 문제는 애초에 틀린 문제다>라고.

“…….”

조적상의 눈이 틀리지 않은 나머지 문제를 훑었다. 그리고 더욱 부릅뜨여졌다.

이 답안지는 놀랍게도.

완벽했다.

스슥. 슥.

조적상이 경련하는 사이, 서문영, 운소령, 그리고 소진도 나름 답을 기입했다.

안타깝게도 틀린 답을.

* * *

“이번 시간은 치유학이다.”

두 번째 시험. 이전 시험과 달리 문제는 무려 20장.

문제는 12개며, 문제 안에 소문제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해답지가 넉넉하게 많이 나왔다.

이유는 바로 신체의 혈도뿐만 아니라, 작용과 반응에 대해 쓰라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온 문제의 상태란.

1. 경락의 오수혈을 음경, 양경으로 분류한 뒤, 오행로를 구분해 모두 쓰시오.

어처구니가 없었다.

출제된 문제의 혈자리는 모두 60개.

그것도 오행을 기준으로 음과 양에 따라 쓰여 있는데 이 모든 걸 쓰는 데도 한참이나 시간이 걸린다.

이런 문제가 거의 대부분이다.

다른 문제와 비교하면, 첫 번째 문제는 그중에서 제일 간단하고 쉬운 문제였다.

‘이거, 조금 헷갈리는데…….’

소진 역시 여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3번 문제까지는 나름 수월하게 풀던 그는 4번 문제에서 막혔다.

다름 아닌, 인체 혈도의 명칭을 적으라 해 놓고, 사람 신체 그림이 앞뒤로 떡 하니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45개.

문제는 그 위치를 정확히 표시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이렇게 많은 걸 어떻게 다 맞혀…….’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같았다.

특히 4번이 어려워 5번 문제로 넘어간 이들은 더욱 가관이었다.

5. 여기서 말하는 경혈의 이름과 쓰임, 주치증(主治症)은?

(1) 화개 외측 6촌으로 유두 상측 3번째 늑간인 전흉부 외상측의 제1늑간.

(2) 승령 하측 1촌 5푼으로 뇌호 외측 3촌의 후두부.

(3) 양릉천 상측 3촌으로 대퇴골 외측상과 직상의 요함부.

…….

이런 소문제가 무려 50개나 되었다.

덕분에 소진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전력으로 필기를 해 나갔고, 주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이거 이 정도면 속도전인데…….’

이마에서 송글송글 땀이 솟았다. 문제의 답을 맞히느냐 못 맞히느냐가 아니라, 써야 할 글자가 너무 많았다.

1문제당 써야 할 글자가 평균 40자. 그런 문제가 12개? 보자마자 바로 답을 알아야 하고, 그냥 필기만 해도 45분이 지나갈 분량이다.

심지어 문제지 중반에서 소진은 헉, 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흘려야 했다.

7. 해당 혈도가 적용되는 부위를 서역어로 기입하시오.

‘…이 문젠 미쳤어.’

사각사각. 사각사각.

천무학관의 치유학과는 교육과정상 서역의 해부학 공부도 등장한다.

수업을 제대로 들은 사람이라면, 몇몇 혈도가 지나는 자리의 서역어 명칭도 알 것이다.

물론, 한 번 듣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걸 풀 수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겠지?’

마침 소진이야 천재적인 암기력으로 그걸 다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런 재주를 가진 학관생이 또 몇이나 있을까.

헉. 허억.

과연. 아니나 다를까 몇몇 학관생들이 뒤늦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소진이 마주친 문제를 뒤늦게 발견한 것이리라.

‘한동안 좀 사려야겠는데…….’

소진 자신은 잘 풀 수 있었다. 필기 한정으로, 그는 운소령, 서문영급의 강자였으니까.

‘이게… 뭐야!’

한편 서문영 역시 난리가 났다.

그의 낯빛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5. 여기서 말하는 경혈의 이름과 쓰임, 주치증(主治症)은?

(1) 화개 외측 6촌으로 유두 상측 3번째 늑간인 전흉부 외상측의 제1늑간.

(2) 승령 하측 1촌 5푼으로 뇌호 외측 3촌의 후두부.

…….

앞서 몇 문제가 너무 극악스럽게 어려웠다. 그래서 몇 개는 건너뛰고 배점이 높은 후반부로 왔다.

그랬더니 이번엔, 상상 이상으로 난공불락의 문제가 좌르륵 펼쳐져 있는 것이다.

10. 기공 수련이 일어나는 현상의 12가지.

‘2학년이 어떻게 할 분야가 아니잖아! 이건!’

자만이 아니라, 서문영의 종합 지식 수준은 탈 2학년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었다.

객관적으로 학년의 차석, 천무학관 2학년 중의 2번째라는 건 열심히 하는 정도로는 미치지 못하는 경지였다.

서문영 자신도 그걸 알았다. 그는 사실 3학년 과정의 일부도 미리 선행학습으로 배우곤 했다.

그런데.

지금 나오는 문제들은, 그 3학년 과정에서나 다룰 이야기였다.

‘망할…….’

분명 수업 시간에 배웠다곤 하지만, 그냥 교관이 지나가듯 말했던 것. 그런 것이 여기에 심화 문제로 포함되어 있었다.

-어, 이런 게 있는데, 너희들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배울 거야. 흥미 있으면 더 찾아보든가.

한데, 그런 식으로 스치고 지나가면, 누가 더 들여다보겠는가. 가뜩이나 수련과 훈련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너는… 방법이 있어?’

힐끗.

서문영은 슬쩍 눈을 들어 대각선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운소령이 흐읍, 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건… 2학년 학관생 수준에서 알 수 없는 문제인데…….’

툭. 툭.

운소령 역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초반에는 지식량과 달필을 요구하고, 중반에는 세부 과목인 해부학과 서역어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내공으로 일으키는 기공의 속성과 그에 따른 신체 변화까지 묻고 있었다.

‘학관에 있는 2학년이 이걸 어떻게 풀어?’

이건 실전, 혹은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나 답 할 수 있는 문제였다.

운소령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최소 3학년, 혹은 4학년 수준에서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사각사각. 사각사각.

물론, 그럼에도 답은 낼 수 있었다.

평소 외모 때문에 다들 잊고 있지만, 운소령은 제갈세가의 사람.

현장 경험은 적지만 그 경험을 기록한 지식, 그 지식량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갈세가.

그 제갈세가에서 선출되어 천무학관에 온 것이 운소령이다. 실제 경험은 없지만, 지식으로 ‘그렇다고 합니다’라는 답은 낼 수 있다.

‘소진도 아마 이 정도는 풀 테고…….’

운소령은 사실, 천재가 아닌 범재였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승부하는 부류였다.

자신이 딱히 특출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른 학관생들의 잠재력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 다 풀었다. 참 쉬웠어. 으그그극!”

‘……?!’

시험 시간을 절반 이상 남긴 채, 기지개를 켜는 학관생이 있었다.

그게 이한일 거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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