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2학년 중간고사 (2)
“뭐…….”
“무슨……?”
아이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너무 놀랐던지 몇몇 아이들은 직접 대놓고 천마를 보는 이도 있었다.
“고개 내리세요!”
크게 주의를 준 치유학 조교.
흠칫 놀라 학관생들이 시선을 내렸고, 그녀는 이내 천마를 보며 말했다.
“제출하고 가시면 됩니다.”
“옙.”
천마는 그렇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쉬워. 쉽다고.”
휘이익~ 휘리리릭~.
한마디와 함께 유유자적하게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홀가분하다는 듯이. 그리고 덕분에.
“…….”
“…….”
“…….”
학관생들 몇몇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 * *
쉬는 시간.
2교시 시험이 끝나고, 다음 시험까지 약 일각(15분)의 휴식이 주어졌다.
학관생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시험문제에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
“아니, 혈자리 수백 개를! 모두 다 써 넣으라는 게 말이 돼?”
“내 말이! 당장 글자 쓰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그중 제일 분통을 터뜨리는 건 서문영 무리의 언규였다.
이번 시험문제의 난이도가 해도 해도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너무 불평 마라. 너만 어려웠겠냐? 다른 학관생도 전부 동등한 조건이야.”
와삭.
간식으로 들고 온 사과 한 입을 베어 먹으며, 종천도는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중요한 시험을 치는 와중에서도 그는 매우 느긋했다. 하지만, 언규는 그렇지 못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총합 200점은 넘어야 된다고. 여기서 너무 많이 틀려 버리면 다른 시험을 아무리 잘 쳐도 엿 되는 수가 있는데…….”
2학년 기본 이수 과목은 6개.
그중 2과목은 실기로 대체하지만, 4과목은 필기 점수가 절대적이다.
총점 200을 넘기지 못하면 낙제. 유급반으로 떨어지고, 자칫하면 아예 퇴학으로 가는 수도 있다.
그러니 병기술과 치유술에서 최대한 적게 틀려야 한다. 안 그러면 다른 과목이 아무리 잘 나와도 받쳐 주지를 못 하게 되니까.
“그나마 무협학이 있어서 다행인데…….”
“그나저나, 그 녀석. 정말 다 푼 거야? 설마하니 만점 나오는 건 아니겠지?”
조용히 침묵하던 일행 중 화산파 출신 곽정이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이라고 했지만, 누구인지는 이들 중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만점 같은 소리 하네. 병기학과 치유학 문제를 봐. 단순 암기가 아니라 실전 문제. 거기다 말도 안 되는 심화 문제까지 있었어. 이건 운소령이라도 다 못 풀걸?”
언규가 코웃음 치자, 종천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자신감은 넘치던데?”
이한은 두 과목 다, 종료까지 한참 남은 시간에 먼저 답안을 제출하고 나갔다.
만점은 아닐지 몰라도, 저런 태도는 대개 수월하게 풀린 고득점자의 자세다.
“하! 모르는 거 다 비우고 그냥 나갔을걸? 내 장담하는데, 그 녀석은 천무학관 역사상 최악의 낙제점을 받을 거다. 그 녀석이 만점이면 내가 그놈 신발을 핥지.”
언규가 다시 한번 비웃었다.
“네 생각은 어때? 서문영?”
종천도는 이제 다른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르르륵.
학관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문영에게 몰렸다.
그는 무과 수석이다. 운소령이 항상 1등을 하긴 하지만, 서문영과 점수 차는 10여 점 정도.
즉, 시험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가장 신뢰성 높은 인물인 것이다.
“서문영?”
“…음.”
서문영은 별로 말하고 싶은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침묵이 이어지고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할 수 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이런 시험에서 만점은 못 내. 누구도.”
“어, 그 운소령도?”
“운소령도. 참고로 오해하지 마. 학년 수석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이번 시험의 문제는 너무 악의적이야. 솔직히… 나도 답을 하긴 했지만 이건 도저히 못 푼다는 문제가 몇 개 있었어.”
서문영은 씁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시험지에서 맞닥뜨린 악의적인 문제. 그건 어떻게 봐도 풀라고 내놓은 문제가 아니었다. 틀리라고 만든 문제였다.
그냥 천무학관 시험에 만점자는 없다는 그런 고집으로 만든, 출제자의 의도가 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생각해 보니 천고의 기재인 이한이라면 가능할지도?”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
“당연하지. 보통 그런 걸 불가능이라 한다고.”
서문영의 말에, 다들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근래 이한의 무예가 꽤 급성장하긴 했지만, 신체가 아무리 뛰어나 진들 필기시험까지 뛰어나지진 않는다.
“병아리가 급성장해 봐야 장닭이지, 독수리가 되는 건 아니라고.”
누군가가 한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3교시 시험.
이번엔 교두 하청청이 직접 4반에 들어와 시험 문제지를 배부했다.
“시험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 마라.”
학관생들은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번 과목은 몬스터학. 위험한 몬스터의 종류와 그 대처법을 얼마나 아는지 점검하는 전형적인 암기과목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과목. 학관 졸업 후에 용병이나 헌터가 되어서도 요긴하게 쓰이는 지식들.
그렇기에 웬만한 학관생들은 천무학관 1학년 때 배움을 끝마친 것이다.
아주 특수한, 기록에도 거의 없는 환상종 몬스터가 아닌 이상 종류나 특성, 대처법들은 거의 외울 정도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미안하게도, 장담컨대 만점은 있어 봤자 한 명이다.”
하지만 하청청은 학관생들의 수준을 모두 꿰고 있었다.
그는 이제 이런 이론 수업은 2학년이 거의 끝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망라해서 시험을 출제했다.
이미 수업 시간에 언급하거나, 중원에 쉽게 발견되는 몬스터들은 매우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지식을.
그리고 언급하지 않은 몬스터들은 해상과 육지, 연안과 내지 모든 지역을 총망라해 수업 문제에 넣었다.
그 이유는.
“솔직히 말해, 이 나조차도 이 대륙의 모든 몬스터를 다 안다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둠 땅’에 대해서는 아직 정보가 거의 없으니까.”
술렁.
하청청의 말에 교실에는 약간의 불안감. 그리고 긴장이 퍼져 나갔다.
어둠 땅.
그건 대격변의 날에 리치왕이 나타나고, 잠든 십만 대산. 그리고 그 일대의 4개 성. 아직까지 인간이 탈환하지 못한 몬스터가 바글바글한 지역을 일컫는다.
“이제껏 너희가 배운 몬스터는 인류가 수복한 지역, 혹은 수복해야 할 중요 지점에서만 등장한 것들이지. 어둠 땅 인근의 몬스터는 없다. 왜냐, 그걸 본 이들이 살아남지 못했으니까. 무엇보다.”
꿀꺽!
하청청의 말에 교실의 긴장이 조금 더 올라갔다.
“몬스터와 던전은, 변이를 일으킨다. 어제 처리한 별것 아닌 고블린이, 내일은 던전이 폭주해 고블린 로드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게다.”
“……!”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드물지. 말 그대로 만의 하나다. 하지만 그 만의 하나가 자기에게 절대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
“…….”
교실은 조용해졌다. 이제까지 느긋하게, 손쉬운 시험이니까 대충 치르겠다고 방심하던 눈빛들이 돌변했다.
싸움을 앞둔, 전사들의 눈빛으로.
하청청은 그에 만족했다.
“시작해라.”
파라락!
시험 문제지가 일제히 자리로 날아들었다.
“흠.”
진지한 자세로 시험지를 받은 운소령은 차분히 문제지를 훑어보았다.
문제는 총 5가지.
이번엔 따로 보기 같은 게 없는, 모두 직접 기술해야 하는 주관식이다.
그리고 문제지의 마지막에 자리한 문제는.
바로 구울에 관한 얘기였다.
5. 구울의 신체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기술하시오.
구울. 언데드 무리의 중간급 몬스터.
살아 있는 시체인 좀비가 변이되어, 더 공격적이고 빠르게 진화한 놈이다. 중요한 특성이라면 ‘전염’이 있다.
좀비와는 다소 다르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심한 패혈증으로 고생하며, 더러는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 피해는 며칠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며, 치료도 가능하다.
반면, 구울에게 물린 사람은 치료가 거의 안 된다.
우선 급속하게 발병하여 죽은 후 좀비가 되어 버리거나, 혹은 그냥 산 채로 좀비가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때문에 언데드 몬스터 중에 가장 많으면서도 결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몬스터가 바로 구울이었다.
‘배점이 가장 높은 문제는 이거로군.’
[기본적으로 죽지 않음. 불사. 불사라고는 하나, 아예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체가 흑마법에 오염되어 거동하는 형태. 인간의 살을 탐하며, 하급 무사 정도의 전투력을 가짐.]
[기본적으로 인간형. 급소는 두뇌부. 머리를 파괴하거나 완전히 베어서 날려 버리기 전에는 방심은 금물.]
사각사각. 사각사각.
‘또… 뭐가 있었지?’
운소령은 그녀가 아는 것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구울이라니. 지나치게 단출한 문제. 그렇기에 대충 쓰고 답변할 것 같은 문제다.
하지만 그녀는 ‘모두’라는 부분에 시선이 갔다.
하청청 교두는 작정하고 있었다.
학관생들에게 가진바 모든 지식을 다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운소령은 그런 하청청 교두의 의도를 읽었다.
교두마다 가르치는 방향이 다르다. 어떤 교두는 문제를 내며 간결하게 답만 쓰는 것을 좋아했고, 어떤 교두는 온갖 계산식과 풀이를 세밀하게 다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음…….”
사각사각. 사각사각.
[장기간 활동을 강제하면 지방, 근육 등이 천천히 소모되어 말라 죽게 됨.]
그리고 운소령은 그저 지식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시험을 내는 출제자의 의도를 읽고, 만족시키곤 했다.
사실, 단순 지식량이라면 아마 삼음절맥인 소진이 가장 많이 쌓고 있을 것이다.
운소령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어느 교두가 어떤 형태의 답안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개선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답안을 만드는 것.
‘하청청 교두는, 이 문제 하나만 다 풀어도 만점을 주실 거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학년 수석이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구울… 그래. 이놈이 시작이었지.’
한편, 천마는 시험 문제지를 보자 잠시 회한에 서렸다.
-크르륵. 크르르륵.
머릿속에 그려지는 과거의 잔상들.
십만 대산의 전각을 박살 내고, 산 자 죽은 자 가리지 않고 물어뜯었던 괴물과 마물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자랑했던 놈들.
“후우…….”
천마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마물들은 죽지 않고 소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사체이기에 급소는 없으며, 삼매진화 같은 극양의 기공이 아닌 이상 파괴를 당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회복했다.
‘하지만 그건 놈들의 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천마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마지막 문제에서 한참을 고찰했다.
애초에 놈들은.
왜 죽지 않는 것이던가.
어째서 죽은 것들이 산 것처럼 움직이던가.
‘구울만이 아니다. 스켈레톤, 데스나이트, 뼈로 이루어진 말, 그리고 리치까지.’
생각해 보면 구울이고 좀비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언데드라는 몬스터 그 자체가 기이한 존재였다.
따지고 보면 저놈의 리치왕,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 그놈부터가 바로.
언데드가 아니던가.
스으윽… 사각사각.
천천히. 멈춰 있던 천마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염이라는, 위험한 속성을 가진 몬스터.]
[생명 재생의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처를 입는 경우, 재생과 더불어 특정 조건에서 변이체가 발생했다.]
사각사각. 사사사삭. 사사사사삭.
그 손은 점점 빠르게 답안을 적어 내기 시작했다.
[엄연한 사체이지만, 생자처럼 움직인다. 그 원리는 명확한 규명을 한 자가 없다. 현재까지의 알려진 연구로는 흑마법을 사용할 시 발동되는, 이른바 <암흑 마나>로 추정되나…….]
‘결국 그 끝에는 리치왕과 연관이 있을 터.’
사각사각. 사각사각.
이는 세상천지에서 오직 천마, 단 한 사람만이 눈으로 직접 겪은 것이었다.
리치왕의 눈에서 봤던 암흑의 불꽃.
그 기운이 이 마물들과 느낌이 흡사했다.
데스나이트도, 그놈이 타고 다니는 뼈의 말도.
농도와 파장은 다를지언정, 기본적으로는 그 괴이한 검은 기운에 근거했으니까.
사각사각. 사각사각.
‘모두 기술하라 했으니… 바쁘겠군.’
새하얀 백지에 점점 빼곡하게 내용이 적혀 갔다.
그건 좀비와 구울, 스켈레톤 등 언데드 몬스터에 대한 고찰. 그리고 천마의 수백 년 삶을 통한, 여러 가지 괴생명체들에 대한 가설과 검증이었다.
3교시 중간고사.
천마가 쓰는 이 글이 천무학관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이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