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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90화 (91/310)

90화. 낯선 천무학관의 요원 (2)

콰아아앙!

육상 드레이크 몬스터는 몇 가지 일관적인 습성을 지닌다.

그 첫 번째. 중거리에 먹이가 보이면, 튼튼한 제 몸을 믿고 머리부터 돌격해 온다는 것이다.

전방으로의 직선 돌격.

듣기에는 일견 상대하기 쉬울 것 같지만 그 돌격을 실제로 당하면, 숙련된 용병들도 셋 중 하나가 죽는다.

작은 집채만 한 거대 파충류가 느릿느릿 기어오다가 갑자기 화살처럼 확 달려들면.

알고도 피하지 못하는 사람이 열에 아홉은 된다.

샐러 드레이크의 위험 등급은 7급.

하늘에서 활개 치는 와이번보다 한 등급이 더 높은 이유가 그래서다.

쿠와아아악! 치익!

흑객은 이를 알기에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샐러 드레이크 킹이 달려오는 걸 보자마자 전력으로 자리에서 도약했고, 그랬음에도 옷깃이 휘말리는 바람에 살짝 찢겨 나갔다.

바람 때문이다.

“…뭐 이런”

투욱.

압도적인 중량을 가진 거체가 움직이면, 그만한 돌풍이 일어나는 법.

이전과 위치를 바꿔 선 흑객의 표정이 황급히 구겨졌다.

“제기랄.”

와그작. 와그작.

흑객을 노렸던 샐러 드레이크 킹은 기분 좋게 뭔가를 씹고 있었다.

처음 목표로 했던 인간은 빠져나갔지만, 대신 뒤에 얼어붙어 있던 인간 서넛을 깔아뭉갠 후, 덮친 것이다.

“…….”

“…….”

그 모습은 살아남은 자들에겐 거대한 두려움이었다.

한 입에 몸의 반이 뜯겨 나가고, 두 입에 뜯긴 신체가 독액이 가득한 입안으로 사라진다.

끔찍한 고통일 텐데도 희생자들은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첫 충격에 이미 허파가, 성대가 터져 나갔기 때문이다.

“한낱 미물 따위가…….”

흑객은 노기가 치솟았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드레이크 두목의 암흑 같은 눈이, 정확하게 자신을 향했기 때문이다.

‘와라!’

푸화아악!

흑객이 그리 생각하기가 무섭게 시허연 안개가 돌풍이 일 듯 쏟아져 왔다.

속도는 가히 측정 불가.

핏! 핏! 핏!

흑객은 반사적으로 도약했고, 돌풍은 계속 그를 쫓았다.

솨아아아!

동시에 하늘에서 새하얀 물질이 뿌려졌다.

돌풍과 함께 방사형으로 넓게 뿜어진 안개는, 오가장 무사들을 집어삼켰다.

“흐아아악!”

“아아아악!”

“……!”

쏟아져 온 안개는 독이었다.

마비 효과를 지닌 용혈독.

독무를 온몸에 뒤집어쓴 희생자들은, 지옥에서나 울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세. 세상에…….”

“어떻게 이런……!”

단영과 오청운은 간발의 차로 몸을 피했다.

바람개비처럼 창을 휘둘러 독무를 흩뜨릴 수 있었던것이다.

지글지글!

살아남은 둘은 인세의 지옥을 목격했다.

독성이 얼마나 악랄한지, 산 사람의 몸에서 허물이 벗겨지고 살이 흘러내렸다.

희생자들은 몸부림도 치지 못했다.

마비 독에 몸이 굳어 석상처럼 선 채, 목이 터져라 비명만 지를 뿐.

와그작! 와그작!

그사이 숨죽이고 있던 샐러 드레이크들은 희생자들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시신도 남기지 못하는 끔찍한 죽음임에도, 그들을 오히려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그아아아!”

“꺼어억… 꺽!”

“끄아아아악!”

중독된 오가장의 무사들.

온몸의 살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신체가 마비되어 자결조차 할 수 없는 이들.

초 단위로 지옥을 겪고 있던 그들은 다가오는 샐러 드레이크의 아가리를 보며 겨우 안도했다.

차라리 죽게 되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테니까.

슈르르르. 콰직! 우드득!

킹의 독무가 지나간 곳은 샐러 드레이크들의 만찬장이되었다.

놈들은 산 사람을 물어뜯고 피와 살을 즐겼다.

그렇게 배를 채우는 동족을 보며, 킹은 거만하게 턱을 들고 있었다.

카앙! 크르륵?

그러던 차, 난데없이 날아오는 검은 칼날을 반사적으로 튕겨 냈다.

“칫!”

흑객은 혀를 찼다.

조금 전, 그는 킹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검기를 쏘아 냈다.

분명히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는데 그 기습에도 놈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대론 안 돼. 저놈의 약점을 찾아야 한다.’

흑객은 냉정히 머리를 굴렸다.

극독에 중독되어 하나하나 죽어 가는 오가장 무사들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들.

구하지도 못할 이들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문제는 바로 샐러 드레이크 킹.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되짚으며 눈앞의 놈을 쓰러뜨리는 게 중요했다.

‘대체 저놈은 어떤 종류의 킹인 거지?’

킹(King), 혹은 로드(Lord).

던전이건 필드건, 몬스터들이 일정 이상으로 모이면 그중 우두머리가 되는 놈은 항상 나온다.

하지만 무리 생활을 하는 놈들, 애초에 개체로서가 아닌 군체(群體) 활동을 하는 몬스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두머리에게 이능이나 권능이 깃든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오크 로드(Orc Lord).

천, 혹은 만 단위의 오크가 모이면 자연 발생하는 ‘초특급’ 위험 개체.

한 번 탄생하면, 부족을 몰살시키기 전에는 피해를 받지 않는다. 동시에 놈이 무리에 있는 한, 그 부족은 전투력이 몇 배로 상승한다.

오크가 인류의 가장 큰 악몽인 이유는 이 오크 로드 때문이었다.

퍼뜩! 파바밧!

“헛!”

허공을 계단처럼 디디며 뛰어다니던 흑객은 잠깐 멍하게 있다 말고 머리를 흔들었다.

상대의 약점을 찾던 중에, 갑작스레 이질적인 지식이 머리에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뭐지 이건?’

머릿속을 파고든 지식은 샐러 드레이크만이 아닌 오크에 대한 지식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흑객이 아는 것과 많이 다른 지식이었고, 그럼에도 정확했다.

너무나 근거가 확실했고 또한 자세했기 때문에.

‘마계의 대공, 흡혈귀 블라드 드라쿨레아의 지식이다.’

-던전… 의 마력으로 킹이 탄생했다고? 그 힘으로 다른 놈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제기랄, 내 그럴 줄 알았다. 애초에 화산이나 사막에서나 나오는 놈들이!

혼자서 중얼중얼. 어째선지는 모르겠는데, 혼잣말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잘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입을 벌릴 때 더욱 그렇달까.

쉭! 쉭! 카앙!

흑객과 샐러 드레이크 킹의 공수는 계속 이어졌다.

어느덧 흑객은 광산 옆의 절벽을 평지처럼 내달렸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샐러 드레이크 킹이 그 뒤를 빠르게 쫓았다.

크어어엉!

킹은 포효하고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난 것이다.

그에게 보인 인간.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쥐새끼처럼 계속 빠져나간다.

맞히기만 하면 한 방에 죽어 나자빠질 먹이가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거기다.

힐끗!

저 돌아보는 눈동자.

한 번씩 붉은 빛을 내뿜는 불길한 눈은, 킹에게 생소한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불쾌감은 놀랍게도 알 수 없는 공포였다.

그걸 깨달은 킹은 그래서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

콰득! 콰드득!

당장 씹어서 죽일 일념으로 킹은 절벽에 발톱을 박아 넣으며 기어올랐다.

그때였다.

파바바밧! 사사사삿!

흑객이 기다렸다는 듯 위에서 아래로 쏘아져 내렸다.

그 방향은 턱 바로 아래. 모든 드레이크의 공통적인 약점을 겨냥하기 위해서였다.

검보다 더욱 빠른 검기가 킹의 턱 아래로 쏘아졌고.

크르르르!

맞자마자, 킹은 아래로 뚝 떨어졌다.

‘실패다.’

흑객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킹의 턱 아래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검기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잠깐의 주춤.

그것이 오히려 위기를 불러 왔다.

부우웅! 피싯!

거대한 거체가 거짓말처럼 날아올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지면으로 내려오던 흑객의 눈앞까지 다가섰고.

길이만 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동시에 몸 곳곳의 비늘 사이에서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

흑객은 눈을 부릅떴다.

상대의 기습적인 맹독과 꼬리 공격.

둘 다 피할 수는 없다는 걸 느낀 것이다.

“큭!”

피리리릭!

흑객은 맹렬하게 몸을 회전시켰다.

마비 독 쪽이 훨씬 더 위험하기에 급격한 돌풍을 일으켜 독무를 밀어냈고.

결국 샐러 드레이크 킹의 꼬리에 맞고 말았다.

구----웅.

“…….”

잠시 의식이 날아갔다.

호신강기가 박살 나며 몸이 공중에 떴고, 이내 일격에 대지를 쪼개 버릴 충격이 몰려들었다.

“커… 허…….”

그건 흑객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맞는 순간 발을 박차고 스스로 밀려나 충격량을 나름 줄여 보려고 노력한 것이다.

쾅! 쿵! 콰다다다다!

방망이에 맞은 공처럼, 흑객은 절벽에 처박혔다.

다시 땅에 튕기고, 십여 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럼에도.

투욱.

흑객은 두 다리를 지지하며 몸을 세웠다.

인간을 초월하는 신체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한 것이다.

“제기랄, 약점이… 사라진 건가?”

흑객은 고개를 털털 털며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 그는 샐러 드레이크 킹의 전신을 훑으며, 기존 샐러 드레이크와의 차이를 염탐했다.

킹은 몸이 커졌고 힘이 세졌으며, 비늘이 더욱 두터워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샐러 드레이크라면 응당 가지는 약점. 턱 아래의 말랑한 살이, 새빨간 딱지로 감싸진 것을 보았다.

‘검기로는 어렵다.’

샐러 드레이크가 킹으로 변이하며 얻은 권능은 별것 아니었다.

좀 커지고, 좀 세지고, 치명적이던 급소를 ‘보완’하는 새 껍질이 생겼을 뿐.

그러나 그 작은 보완으로 인해 놈은 완벽해졌다.

유일했던 급소는, 새로운 갑주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 강도는 검기를 튕겨 낼 정도.

‘근접전만 할 수 있다면…….’

사실 흑객에겐 그런 것들이 상관없었다.

블라드의 피의 칼날.

그의 권능을 이용한 무기를 쓴다면 저따위 방어벽은 너무도 쉽게 제거가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독액.

근접전에 들어서면, 저놈의 공격을 쉽사리 방어해 내기가 어렵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구웅. 구웅. 구웅.

전신은 철갑으로 방호되고, 공격은 전차와 같으며, 숨결조차 맹독으로 쏘아 낼 수 있는.

거대한 괴물이 다가왔다.

더러운 침이 가득한 아가리는 잔뜩 벌어져, 웃는 것처럼 보였다.

피잇!

한데 암담함을 느끼며 거칠게 숨을 쉬던 흑객의 눈이.

솨르르르!

갑자기 흑백으로 반전되었다.

“어… 이건?”

그리고 그 색체의 변화는 익숙한 것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계속 겪어 오던 것.

자택에서 눈을 가리고 처음 외줄 타기를 했을 때.

천마가 권유해서 하긴 했지만, 왜 이런 수련을 하는 걸까 솔직히 이해가 안 갔었던 그에게 변화가 생겼다.

원래라면 보이지 않아야 하는 앞이 보였다.

흑객 자신이 겪고도 얼떨떨해할 때, 천마는 간단하게 단언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블라드란 놈이 너의 몸뿐만 아니라, 뇌리에 능력을 심어 놓고 간 게 확실하군.

-…하면 이것은?

-편복(蝙蝠:박쥐들)이 보는 세계다. 녀석들은 눈이 아니라 소리로 세상을 보지.

“…….”

사아아아-.

소리로 보는 세상. 그 광경은 기이했다.

구웅. 구웅. 구웅.

샐러 드레이크 킹이 디디는 발 울림이, 바위와 절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분산되고.

키이이이이-.

메아리쳐서 뒤늦게 돌아오는 소리에 의해, 사방의 물체의 형태와 거리가 느껴진다.

세상이 수묵화처럼 선으로 대충 그려진 듯 보이고, 동시에 시야가 가려 보이지 않아야 할 바위의 뒤가 보이는 등 흑객이 가진 인간의 시야에 박쥐의 시야가 함께 겹쳤다.

디잉. 디잉. 디잉.

그리고 그 시야에 집중하는 순간, 흑객은 전율했다.

음파 시야라고 할까. 소리로 세상을 보는 이능.

찌리리릿!

그 이능의 원래 주인에게서, 이걸 어떻게 전투에 활용하는지에 대해 가르침이 전해진 것이다.

“블라드, 뭐 이런 능력을…….”

그어어어! 쿵! 쿵!

샐러 드레이크 킹이 달려들었다.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천천히 다가오던 그의 속도가.

파파팟.

한 지점에서 전광석화처럼 움직였고.

슈르르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흑객을 놓친 킹은 새카만 눈알을 돌려 옆을 보았다.

“너무도 편하군.”

흑객은 녀석의 등 뒤에 서 있었다.

번뜩!

<한쪽 눈>에서 여전히 불길하고 기분 나쁜, 핏빛 안광을 뿜어내는 상태로.

“나쁘지 않군. 이런 것도.”

무기화된 한 손을 드러내며, 그가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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