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그리핀의 알 (3)
쿵!
“…….”
쿠우웅! 콰가가가강!
“이 무슨…….”
거대한 몬스터가 암벽을 부수며 광산 입구를 넓히고 있었다.
우르르르!
갱도 천정에서 흙먼지가 쏟아졌다. 모두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동굴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 위태위태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드드드득!
산을 뒤흔드는 듯한 파괴력. 필시 보통 몬스터는 아니었다.
“저건 대체 뭐지?”
“나. 나가야 합니다! 이대로는 광산이 무너집니다!”
벽에 기댄 오청운이 비명을 질렀다.
광산은 그저 단단한 돌벽만을 캐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이라는 놈은, 바위 덩어리보다 흙과 토사가 훨씬 많다.
그래서 갱도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장과 천장이 내려앉지 않게 버티는 지지대다.
우지직!
그런데 몬스터가 가하는 충격으로, 그 지지대가 차례차례 부러지고 있었다.
“나가는 길이 어딘가!”
단영이 비명 지르듯 고함질렀다.
“이쪽입니다! 따라오십시오!”
오청운이 달려 나가고,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탁탁탁탁! 쿠구구궁!
“흐으윽…….”
오정은은 숨을 몰아쉬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갱도를 달리는 중에, 계속해서 토사와 작은 돌이 쏟아져 내렸다.
당장이라도 동굴이 무너져, 깔려 죽을 것만 같았다.
철벅철벅!
“이쪽입니다! 서둘러서!”
다행히 그 고역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청운의 뒤를 따르자 갑자기 확 하고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와드득! 쿠우우웅!
“헉…….”
간발의 차로, 그들이 나온 동굴이 무너졌다. 단영과 오정은은 물론이고, 흑객마저 그 광경에 가슴이 서늘했다.
“저. 저건…….”
그래서 오청운이 신음하는 이유를 조금 늦게 보았다.
크우우우우-!
광산을 뒤흔들어 기어코 무너뜨려 버린 거대 괴물.
생긴 건 거대한 도마뱀과 같았는데, 그 몸 크기는 대략 40미터를 넘어 보였다.
굵기는 직경 3미터가량. 온몸은 두터운 비늘로 덮여 있었으며, 등에는 거대한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그리고 까마득히 위로 솟은 머리는 뿔이 여럿 난 도마뱀의 것과 같았다.
“이 녀석은 대체…….”
솨아아악. 솨아아악.
녀석은 계속해서 암벽을 들이박았다. 그 행색은 마치 산을 통째로 캐내서라도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휘이이잉!
그 와중에 성질이 났는지 거대한 꼬리로 암벽을 후려갈겼다.
“아가씨!”
파팟.
오정은의 가장 옆에 있던 오청운이 반응했다. 그는 즉각 소가주를 껴안고 옆으로 뒹굴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돌 더미들이 쏟아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 오정은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그리고 그건 한 번이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캉!
거대한 뱀은 엄청난 힘으로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폭발음과 함께 바위와 돌들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졌고. 흙먼지가 자욱해서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저건 대체 뭔가!”
창으로 돌 더미를 쳐 내며, 단영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저런 건 처음 봅니다!”
“바질리스크예요!”
오정은이 큰 소리로 고함질렀다.
“뭐?”
“허.”
“……?”
단영은 충격을 먹은 듯 멍한 시선이 되었다. 오청운도 입이 쩍 벌어졌다.
흑객만이 그 말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바질리스크? 뭐 하는 놈이오?”
“샐러 드레이크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위험한 녀석이에요. 몬스터 도감 공식 추정 등급 10에서 13! 저 크기라면 아마도 11급!”
“이건 말도 안 돼…….”
오청운은 거의 기절하려고 들었다.
몬스터 도감은 중원에서 출몰하는 모든 몬스터를 기록하고 평가한다.
그중에서 10등급 이상은 따로 ‘극히 위험’이라는 평가가 붙는다.
민간인은 물론이고, 무림인이나 마법사도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말 것. 만나게 되면 무조건 도망갈 것.
이런 놈과 싸울 수 있는 이들은 중원 전역에서 극히 드물다.
그렇게 위험한 놈들이 10등급이다. 하물며 그보다 더 높은 11등급이라니.
“잘못 본 거 아니오? 바질리스크가 이런 바위산에 나온다는 얘긴 들어 보지 못했소.”
흑객이 내달리며 강하게 거부했다.
그도 나름 용병 생활을 하는 와중에서도 소문으로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바질리스크(Basilisk).
용종이나 파충류 계열 몬스터들 중 최강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하나.
습하고 어두운 동굴이나 습지에서 주로 생활하며, 어지간하면 인간과 마주칠 일이 없는 희귀종 몬스터다.
특히, 독성에 한해서만큼은 세 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위험한 놈이라 했다.
“잘못 볼 수도 없어요! 저 거대한 체고! 그리고! 저런 생김새를 가진 몬스터가 달리 뭐가 있나요?!”
오정은이 악을 썼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자기 목숨처럼 배낭을 단단히 등에 메고 있었다.
“아가씨, 역시… 이 알입니다! 이 알이 몬스터를 불러들이는 겁니다!”
거기서 오청운이 절망적으로 외쳤다.
“오청운!”
단영이 제지하려 했지만 오청운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대장님! 대체 몇 번쨉니까! 이 알이 오기 전에는 광산에서 샐러 어쩌고는 물론이고 오크도 나온 적이 없었다고요!”
“…….”
단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오청운의 말 대로였다. 애초에 그리핀의 알이 모든 사달의 중심에 있었다.
알이 점점 생명력이 강해져 가면서, 광산 인근 마을의 연구소에선 기이한 현상이 있었다.
자그마한 뱀, 혹은 도마뱀. 그런 파충류들이 언젠가부터 수가 마구 늘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샐러 드레이크! 다음에는 킹! 이번에는 바질리스크예요! 다음에는 뭐가 나올지 상상도 안 갑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어!”
“다들 그만!”
흑객이 호통쳤다. 그와 함께.
쿠와아아앙!
또 한 번 폭음과 함께 바위와 돌의 비가 쏟아졌다. 거대한 바질리스크의 꼬리는, 암벽을 두부처럼 푹푹 퍼내고 있었다.
“말싸움은 나중에 하고! 싸울 거요! 아니면 도망칠 거요!”
흑객은 저 그리핀의 알에 무슨 저주가 걸렸든, 어떤 가치가 있든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눈앞에 나타난 바질리스크. 거대하고 위험한 몬스터.
“저걸…….”
“어떻게…….”
흑객의 말에 스윽, 단영과 오청운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쾅! 콰아아앙!
쳐다보기만 해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박력이었다.
바질리스크. 저런 괴물과 싸운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쿠드드등!
하지만 어떻게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바질리스크는 암벽을 들이받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것이, 아무래도 이 요망한 알을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이 방법밖에 없소.”
잔뜩 얼굴을 굳힌 단영이 입을 열었다.
“흑객, 그대는 아가씨를 데리고 대피시켜 드리시오. 그동안 나와 오청운이 놈의 시선을 끌겠소.”
“좀 미안한 말이긴 한데.”
흑객은 죽을 각오를 한 단영의 말을 매정하게 끊어 버렸다.
“당신들로서는 시선을 끌어 봐야 한두 방이면 박살이 날 거요. 차라리 내가 유인을 할 테니 당신들이 그새 도망치시오.”
“대, 대협……!”
단영도 오청운도 감격하는 얼굴이 되었다.
거대한 바질리스크. 맞서 싸우면 분명히 죽을 수밖에 없는 괴물. 그런 놈을 자신이 유인하겠다는 흑객은, 그들에겐 살신성인을 실천하는 대협 그 자체였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시오. 나도 죽을 생각은 없소. 당신들만 빠져나가고 나면 나도 몸을 뺄 테니.”
물론 흑객은 장렬한 희생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었다.
여차하면 그는 어디로든 몸을 뺄 수 있는 흡혈귀의 공간 도약이 있었으니까.
투욱.
흑객은 짊어지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막 움직이려는데,
“저기…….”
오청운에게 업혀 있던 여인이 불렀다.
“강호에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르군요. 당신들은.”
“…무슨 말이오?”
흑객이 되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흑객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싸움. 그것만을 생각해도 부족하니까.
“흡!”
타다닥!
일부러 요란하게 발소리를 크게 내면서 그는 암벽을 올랐다.
좌아아악!
일부러 암벽을 긁기까지 하니, 불꽃이 튀고 소음이 일었다.
“아가씨, 이제 갑시다.”
단영이 손짓하고 앞서 나갔다.
흑객이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갈 수 있는 곳까지 거리를 벌려 놔야 했다.
오청운은 그 뒤를 따랐고, 그의 등에 업힌 오정은은 점점 멀어져 가는 흑객을 보며, 예전에 그녀에게 강호에 대해 알려 주던 한 무인의 말을 떠올렸다.
-마교? 협의고 뭐고 없는 짐승 같은 놈들입니다. 아니. 그냥 짐승 그 자체죠. 관심 두지 마십시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마교 출신인 자는, 이제껏 보아 온 그 어느 정파 무림인보다 당당했다.
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걸까.
* * *
카가가각!
쇳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한참 암벽을 들이받고 있던 바질리스크가 멈칫하며 고개가 돌아갔다.
크우우?
암흑 같은 바질리스크의 눈에 흑객이 잡혔다. 거대한 목이 길게 뻗어 올라가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큭!
그러다가 시야가 조금 더 돌아갔다. 놈의 눈이 향하는 곳을 보고 흑객은 홱! 안색이 굳었다.
“이런!”
크우우우!
처음에 시선은 분명히 끌었다. 하지만 바질리스크의 목적은 애초에 자신을 이끄는 본능적인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눈앞의 인간이 아니라, 저 뒤.
도망치는 세 명의 인간 쪽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캬아아악!
4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뻗어 갔다. 막 자리를 이탈하던 오가장 일행은, 머리 위의 사각에서 떨어져 내리는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피……!”
콰아아아앙!
피하라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대지가 찢겨 나갔다. 단영은 그대로 암벽에 처박히고, 오청운은 바위 위로 주우욱 갈리듯이 밀려 나갔다.
“체엣!”
팟!
흑객은 즉각 공간 도약으로 놈의 위로 이동했다. 그리고 두 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주우욱. 찌이이이잉!
손날이 칼날처럼 길게 늘어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울렸다. 검기보다 더 강한 절삭력을 가진, 흑객의 초음파 블레이드였다.
카가각! 스걱!
고속으로 진동하는 칼날이 바질리스크의 등지느러미, 돛처럼 펼쳐진 피막을 갈랐다. 시커먼 피가 팍 솟아오르고, 기습을 당한 괴물이 고통스런 비명을 울렸다.
크아아아아!
부우우웅!
바질리스크의 꼬리가 섬찟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흑객은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핏!
일격 이탈. 공격하자마자 바로 몸을 뺐던 흑객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상대를 눈에 담았다.
이제 놈의 신경은 확실히 자신에게 쏠렸을 터.
‘이놈… 이길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싸우려고 보니, 새삼 상대가 괴물 중의 괴물이라는 게 느껴졌다.
덜렁덜렁.
바질리스크의 지느러미는 반쯤 찢겨진 채 놈의 몸통에 매달려 있었다. 원래 흑객의 예상대로라면 완전히 잘려 나갔어야 했는데, 절반도 깎아 내지 못한 것이다.
이 공격으로 샐러 드레이크의 킹조차 도륙했었는데.
“후우.”
눈앞의 몬스터는 이전에 싸워 온 것들과 태생적으로 달랐다.
압도적인 신체적 우위.
기록에 따르면 상대를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이능.
거기다 가장 위험한 건 독이었다.
아무리 블라드에게 피의 권능을 일부 얻었다지만, 이 거대한 놈을 상대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아니, 뭐. 독이 문제가 아니지.”
생각하다 말고 그는 피식 웃었다.
바질리스크는 커도 너무 큰 몬스터였다. 놈의 이빨이나 발톱에 걸리면, 독이 퍼질 틈도 없이 박살이 날 터였다.
그야말로 아득할 정도의 벽.
그런데 그 벽을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싶으냐?
그건 며칠 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수련을 하던 중 천마가 했던 말이다.
-간절합니다.
그는 수련을 멈추고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천마라면, 탈마의 극에 달해 신마경을 목표로 한 그라면, 명쾌한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럼 너보다 더 강한 적을 상대로 싸워. 이왕이면 한참 강한, 아주 아득하게 보이는 놈과 말야.
그 말에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강해지고 싶다 한들.
그토록 강한 상대와 싸웠다간, 강해지기도 전에 죽는 것이 먼저 아닌가.
-맞아. 대부분 죽어.
천마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러나 살아남으면 강해진다.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안 들으니만 못한 결론.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완전히 느낌이 다른 이야기였다.
-수련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기까지의 역할이다. 그 너머로 가기 위해선 그것을 극복해야 하지. 결국, 제일 좋은 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천마는 그렇게 한마디를 또 덧붙였다. 그답지 않게.
-상대의 약점이 보이지 않는 적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네가 강해질 거다. 왜냐면 그때쯤이면 상대가 아닌, 스스로의 강점을 찾기 위해 싸울 테니까.
‘나의 강점.’
솨아아악. 솨아아아악.
입김을 뿜어내며 천천히 시선을 마주치는 바질리스크.
흑객은 놈의 눈을 마주 보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놈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몸이 돌이 된 듯 굳어 버리는 권능이 있다고 했다.
“극마에 오르기 위해선 최적의 상대라…….”
촤아아악.
손에서 점점 검의 형태를 갖추는 오른손.
주르르륵.
그리고 몸에는 시뻘건 선혈이 물결치며, 전신을 뒤덮고 기이한 빛을 내고 있었다.
“참 기분 좆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