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실기시험 (1)
“결과 나왔다!”
“우와아!”
하루가 지난 아침.
2학년 복도로 12개의 채점표가 내걸리자, 등교한 학관생들은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등수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반에서 누가 1등인지.
그리고 전교에선 누가 1등을 했는지 관심이 쏠렸다.
<2학년 전교 총 점수표>
1등. 3반 운소령 총합 488
2등. 4반 하백운 총합 473
3등. 3반 서문영 총합 466
…….
“와! 과연 운소령 대단하다.”
“어? 4반 하백운이 2등이잖아.”
“그래도 서문영이다. 3등을 했어.”
자신들의 성적을 확인한 뒤, 전시된 점수표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세부 점수표에 시선이 갔다.
시험이 워낙 어려웠기 때문에, 과연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점수를 받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2학년 전교 세부 점수표>
1등. 운소령
<병기학> 92점 <치유학> 96점
<몬스터학> 100점 <무공학> 100점
<무협학> 100점
2등. 하백운
<병기학> 90점 <치유학> 94점
<몬스터학> 94점 <무공학> 95점
<무협학> 100점
3등 서문영
<병기학> 92점 <치유학> 90점
<몬스터학> 94점 <무공학> 90점
<무협학> 100점
“그 어려운 병기학을 90점을 넘을 수가 있어?”
“운소령 봐. 치유학 점수가… 96점. 이게 말이 돼?”
“서문영이 하백운보다 무공학에서 5점이나 밀렸구나.”
학관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번 중간고사는 명실 공히 역대 최악의 난이도라 할 만했다.
그 어려운 시험에 만점 과목이 무려 3개가 있다는 건 거의 경이로운 성적이었다.
특히나 서문영을 이긴 하백운.
과연 2학년에서 눈도장을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3등을 한 서문영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1등은 포기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2등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3등이다.
재수 없게도 4반 하백운에게 밀린 것이다.
단 한 문제.
혹은 두 문제를 맞혔더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3등이 어디냐. 난 전교 20등에 간신히 들었는데…….”
분노하고 있는 서문영의 어깨를 누군가 툭툭 쳤다.
종천도였다.
“그런데 이한은 어딨어?”
“그놈은 대체 몇 점 맞은 거지?”
서문영이 뭐라 말하려던 와중에 학관생들의 시선은 이제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그 잘난 체했던 이한의 점수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10등.
20등.
그렇게 순위를 내려가다, 눈길이 확 내려갔다.
굳이 확인할 필요 없이 학관생들이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크큭. 95등이잖아.”
“오. 그래도 나름 100등 안에 들었네?”
95등. 3반 이한 총합 400
“그 바보 같은 놈. 그리 잘난 체하더니. 하하하하!”
언규가 파안대소하며 후련하게 웃어 댔다.
고작 400점?
만점은 고사하고 평균 80점대다.
거기에 자신의 등수는 75등.
잘난 척하던 이한을 보기 좋게 눌러 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학관생. 바로 소림승들이었다.
특히 반장 방윤은 50등.
그동안 당했던 추억이 떠올라 아주 키킥 웃어 댔다.
“어쩐지 오늘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밑천이 드러날까 봐 도망간 거군. 크크큭.”
“형님, 그러기에 너무 상대하지 말자 하지 않았습니까.”
“머리에 든 게 없는 녀석은 피하는 게 상책이지요.”
세 소림승들은 언규와 함께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학관생들의 시선이 모일 정도로.
“야…….”
툭툭.
그런데 흐뭇하게 웃고 있던 중에, 종천도가 어깨를 두들겨 왔다.
“왜 그래?”
언규가 세 소림승과 함께 돌아보자 종천도가 한 곳을 가리켰다.
“저거, 세부 점수 봐봐.”
“뭐?”
종천도의 손끝.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언규가 먼저 눈을 돌렸다.
각 과목의 점수와 총점.
그 옆의 세부 점수표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보나 마나… 헉!”
언규의 눈이 부릅떠지고,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림승들.
그중 방윤은 뭔가 잘못 먹은 듯 대머리가 흙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어찌 저런 점수가…….”
뒤이어 관생들의 당황스런 반응이 이어졌다.
불신. 경악. 당황이 가득한 눈길이.
“어… 뭐야? 무슨 일인데?”
표정들이 좋지 않자, 괜히 찔끔해진 소진이 다가왔다.
그도 다른 학관생들처럼 전교 1, 2, 3등을 확인하고, 이한의 이름을 순위표에서 찾았다.
“아…….”
총점 400점.
나름 아쉬웠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시험은 자신조차도 정말 쉽지 않았으니.
그러다가 다시 세부 점수표를 본 후, 눈이 커졌다.
아이들이 반응이 왜 그런지 쉽게도 이해해 버린 것이다.
95등. 이한
<병기학> 100점
<치유학> 100점
<몬스터학> 100점
<무공학> 100점
네 과목이 만점이었다.
서문영이 절대로 만점이 나올 수 없다고 장담한 병기학.
난이도가 역대급으로 어려웠다는 치유학도 만점이었다.
몬스터학과 무공학 역시 그랬다.
그런데 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무협학> 0점
무협학.
기본 90점은 깔고 간다는 그 과목이, 천무학관을 통틀어 역대 최악의 점수를 기록해 버린 것이다.
“이한 이거,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야?”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 * *
천마는 매점에 있었다.
이번 주는 정규 수업은 없고, 오늘 실기시험만 있다는 얘기에 곧장 이곳으로 왔다.
“쩝쩝. 이거 맛나네.”
천마의 탁자 아래에는 각종 과자가 놓여 있었다.
그중에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과 카스텔라라는 빵이 있었는데, 하나는 얇고 바삭바삭한 껍질이 수십 수백 겹으로 겹쳐져 있었고, 또 하나는 달콤하면서 혀에 달라붙는 독특한 부드러움이 있었다.
“이, 이한!”
또 하나를 집어 들려는데, 누군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뛰어왔다.
그리고 그자가 익숙한 청년이란 걸 알게 됐다.
“어. 왔냐?”
“너, 여기서 뭐 해?”
“왜?”
소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어이없단 표정을 짓던 그는 한 곳을 손짓하며 말했다.
“다들 자기 시험 성적 보려고 2학년 복도에 있어. 너는 시험이 궁금하지 않아?”
“뭐가 궁금해. 답은 나와 있는데…….”
천마는 과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서 있는 소진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다 맞았지?”
“너, 알고 있었구나?”
“핏.”
천마는 턱을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뭔가를 음미하듯 말을 이었다.
“당연한 결과지. 본 좌가 살아온 환경이 그래서 그렇지, 사실 이런 시험엔 누구보다…….”
“근데, 하나는 아니야.”
“…그럴 리가?”
“사실이야.”
“…….”
그러자 천마의 표정이 굳었다.
매우 난처한, 그러면서 조금은 희망적인 눈빛을 내비쳤다.
“아슬아슬하게 하나 틀렸구나.”
“하나는 맞는데…….”
소진은 들고 왔던, 필기시험을 풀고 나눠 준 시험지 몇 장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첫 장 위에 있는 글자를 가리켰다.
“이 과목은 전부 틀렸어. 0점이야.”
“…뭐?”
무협학이었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아 든 천마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에이, 아니지?”
“진짜야.”
“정말인가?”
“그렇다니까.”
“아니라면, 네놈의 몸을 가차 없이 도륙 내 버리겠다. 아니, 먼저 손발톱을 다 뽑은 다음, 살가죽을…….”
말을 하던 이한은 소진이 퍼렇게 질리는 모습을 보고 이내 대답을 멈췄다.
과거의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나와 버린 것이다.
천마는 농이라고 한마디 던진 후, 천천히 시험문제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특히 의문인 부분.
아무리 봐도 틀릴 수 없는 문제를 지적했다.
“넌 5번 문제에 답을 뭐라고 적었냐?”
이한의 물음에 소진은 급히 내려다보았다.
내용은 이것이었다.
5. 당신은 천 명을 이끄는 수장입니다. 어느 날 산행을 하고 돌아오던 중, 수하 하나가 없는 걸 발견했습니다. 마침 다른 수하 하나가 던전에 들어가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본인들 능력으로는 제압하기 쉽지 않은 위험한 몬스터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판단을 내리겠습니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당연히 버려야 한다고 적었지.”
“왜?”
소진의 의아함에 천마는 더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왜라니? 당연한 거 아니냐? 수하 하나 살리려고 어떤 곳인지 모를 곳을 가냐?”
“아니, 훗날에 나도 던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잖아.”
“…그럼 더더욱 가지 말아야지.”
천마는 더욱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애초에 왜 들어가? 그보다 들어가서 이거 글렀다 싶으면 칼 물고 혼자 죽어야지. 자기 살자고 동료들, 대장보고 와 달라고 해? 오다가 다 죽으라고?”
“그건 아니지만…….”
“이봐, 소진. 대장은 때때로 사람의 심성을 버려야 해.”
천마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고작 한 명 살리려다가 전부 다 죽을 수도 있다고, 수많은 동료가. 그들의 인연까지 생각하면 더해.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 그를 아껴 왔던 사부, 그와 연관된 동생들은?”
“…….”
“죽음은 그만한 대가를 각오해야 해. 그리고 더 확실한 건.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 한 명의 정해진 죽음과 수백 명의 정해지지 않은 운명. 너무 계산이 명확하잖아?”
‘그럴지도…….’
소진은 내심 놀랐다.
처음에는 뭐 이런 당연한 걸 모르냐 싶었는데, 이한의 말을 듣고 보니 그걸 또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럼 12번 문제는?”
소진이 천마가 보고 있는 문제지를 몇 장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천마는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12. 곤궁에 처한 가난한 마을을 지나가다 굶주려서 쓰러진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금 한 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이거.”
천마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당연히 내가 챙겨야지.”
“무슨 소리야? 가난한 자에게 돈을 주는 게 맞지 않아?”
“그랬다간 사람 하나 뒈진다.”
“…뭐?”
천마는 허리를 등받이에 고정시키고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굶주려서 쓰러질 지경의 노인이야. 가족은 없을 거고, 집도, 돌봐 주는 사람도 없는 노약자. 그런 사람이 금덩이를 가져 봐라. 주변에서 바로 뺏으려 들지.”
“…….”
“노인은 저항할 테고, 그러다가 맞아서 죽을 거라고. 아님, 노인이 널 죽일지도 모르지. 혹시 돈이 더 있나 싶어서.”
“아니, 설마 그러기야…….”
“아직 애 구만.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순박한 생각을 하는 녀석들. 그런 놈들을 많이 봐 왔다.
인생의 말로 역시 순탄치 않은 모습까지도.
그래서 천마는 확실히 자신의 기준을 정했다. 괜히 실행도 하기 힘든 협의 어쩌고 하는 것보다, 확실히 사람들이 덜 다치고 더 안전한 방향을.
“어쨌든. 성적은 교두라는 놈 찾아가서 일단 나중에 따져 보면 되고…….”
천마는 스윽 자리에 일어섰다.
“자, 이제 실기시험 하러 가자고.”
곧 있을 반 대항전.
교관들이 직접 참관하는 시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