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실기시험 (2)
2학년 1학기 실기시험.
성적이 비등한 반끼리 서로 실력을 겨뤄, 그 과정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협동심과 집단 전술, 그리고 임기응변을 볼 수 있어 50년 전부터 전격 시행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토너먼트. 무과와 문과끼리 계속 싸워 최후의 승리자 하나만을 가려냈지만, 그 방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단 하나뿐인 1위라는 이름에 예민해진 학관생들이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학관은 토너먼트를 폐지했고, 반 대항전은 1년에 한 번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부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드디어 3반과 4반인가.”
2학년들의 실기시험 중 가장 관심을 받은 대련은 3반과 4반이었다.
무투반으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3반.
마법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4반.
흥미진진한 대결이라 그런지, 교관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하루에 3번. 총 4일 동안 치러지는 실기시험의 첫날에 이 두 반의 대결을 배정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다들 모였느냐?”
가로세로 90m는 될 듯한 체단실 중심에서 체육학 교관 심상천이 목소리를 높였다.
좌우로 모여 있는 4반과 3반이 그의 말에 따라 대답했다.
“옙!”
“그렇습니다!”
그는 출석부를 들어, 아이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25명의 3반과 28명의 4반.
3반이 사람 수가 더 적으나, 실전시험은 그대로 진행됐다.
전력 평가를 맡은 무공학 교두 최일이 충분히 동등하다고 판단해 준 것이다.
‘다들 모였군.’
심상천의 시선이 2층으로 향했다.
그곳엔 각 학과의 조교들과 교관들이 빼곡히 자리해 있었다.
그중 각 학과 수석 교관들은 채점표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3층을 보니 교두들도 보였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모두가 참석할 정도로 다들 이번 대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조금 전, 4반과 3반 학관생들에겐 체급에 맞는 장포와 단봉이 지급됐을 것이다.”
심상천의 말 대로였다.
좌측의 4반, 우측의 3반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장포와 단봉을 장비한,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4반은 백의를 입고 있고, 3반은 흑의를 입고 있다는 것.
“규칙은 간단하다. 단봉에 묻은 먹을, 다른 반 학생의 옷에 묻히는 것! 옷에 먹이 묻은 학생은 탈락이고, 모든 학생이 탈락한 반은 패배한다.”
스으윽.
학관생들의 눈이 각각 저마다의 장포와 단봉으로 향했다.
오 척(1.5m)길이의 짧은 단봉은, 그 끝에 회색의 먹이 묻어 있었다.
심상천이 학반 아이들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시험은 모의전이다. 무력을 쓰든, 마법을 쓰든, 보법이나 전술 전략을 쓰든 상관하지 않는다. 가진 역량을 모두 보여라. 단!”
심상천이 잠시 말을 끊고 학관생들을 매섭게 훑어보았다.
이게 이번 실기시험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아이템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상자 발생에는 엄히 책임을 묻겠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즉각 탈락이다. 부상의 정도에 따라 정학까지 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도록!”
웅성웅성.
교관의 말에 학관생들이 서로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심상천은 잠시 시끄러워지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반 대항전이지만, 늘 시험의 유형은 달라진다.
그러니 내용을 미리 숙지하지 못한 학관생들에게 시험의 의미를 파악할 시간은 필요했다.
“질문 있는가?”
한참을 웅성거리게 놔둔 후 교관이 묻자, 4반 학관생 중 하나가 불쑥 손을 들었다.
“상대 반의 옷에 먹을 묻히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냥 스치거나, 정타로 맞히거나 똑같은 판정입니까?”
“그렇다.”
“어, 그럼… 일부 학관생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해지지 않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3반에게 유리하다는 말이었다.
나름 타당한 지적이었다.
지금의 규칙대로라면, 중갑 전사에게는 불리하고 경보병에게는 유리해진다.
손발만 빠르고, 치명타를 넣지 못하는 ‘날파리’들만 활약하고, 느리지만 착실히 전진해서 한 방을 날리는, 둔중한 대신 유효타를 가진 중보병들에게는 제약이 너무 컸다.
“그게 불만이라면 시험을 포기해도 좋다.”
“아. 아니. 제 말은…….”
“이미 개개인의 능력을 교관들이 파악한 바. 어떤 전술을 쓰느냐에 따라 승패가 어느 쪽으로든 기울 수 있다.”
교관이 이미 분석했다는 말에 그는 더는 말하지 못했다.
척!
잠시 웅성거림이 더 이어지더니 이번엔 3반 학관생 하나가 또 손을 들었다.
“고의가 아닌, 단순 실수로 부상을 입히게 된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단순 실수도 실력이다. 그러니 딱! 상대에게 흔적만 남기는 정도로 공격에 신중을 기하도록. 나중에 고의가 아니었다느니, 억울하다느니 하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교관 심상천은 머쓱해진 학관생에게 호통치고, 다시금 매서운 눈으로 학관생들을 쏘아 보았다.
규칙을 정하면 꼭 그 규칙을 아슬아슬하게 어기려는 놈이 있는 법이다.
“부상시킨 놈은 당연히 탈락이지만, 부상 입은 놈 또한 탈락이다! 괜히 잔머리 써서 엄한 수작 부리려 들지 말도록!”
꼼수로 이기려고 드는 것들을 애초에 차단하는 한마디였다.
“나머지는 모두 너희의 몫이다! 머리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움직여라! 작전을 짤 시간은 이각. 이후에는 바로 시작하겠다.”
펄럭!
신호를 알리는 붉은 기가 내려졌다.
반 대항전. 그 작전을 짤 수 있는 준비 시간이 주어졌다.
* * *
“이거, 어떻게 하지?”
“음…….”
전혀 예측하지 못한 시험 내용에 3반 학관생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반 대항전의 성격으로 치러지는 2학년 1학기의 중간고사.
주관하는 교관의 성미나 관점에 따라 매번 다른 분야를 주제로 잡는 것이다.
“모의전, 집단전. 일단 이게 교관님 생각인 거 같으니까…….”
“그러네. 이번 시험은 전략 전술, 조직력을 주로 보는 걸 테고.”
이는 실기시험의 특성 때문이다.
계속 같은 주제를 정하고 그것만 평가하다 보면, 딱 거기에 맞는 꼼수를 찾으려는 학관생들이 나온다.
때문에 천무학관은 의도적으로 같은 주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부러 신경을 쓰고 있었다.
“주제가 전투라면, 제일 먼저 정해야 할 게 있어.”
운소령의 말에 학관생들의 시선이 쏠렸다.
“뭔데?”
곧장 학관생 하나가 물었고, 운소령이 대답했다.
“이번 모의전에서의 대장을 정해야 해. 우리 반의 전력을 잘 알고 활용할 줄 아는, 그리고 4반의 전법을 파악하고 허를 찌를 줄 아는 리더 말야.”
“맞는 말인 것 같아.”
당무련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반 대항전에 맞게, 운소령을 포함한 학우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실, 그녀는 당황하고 있었다.
사천 당문 출신인 당무련으로서는 단봉이라는 무기의 제한이 대단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독도 못 쓰고 암기도 못 쓰다니. 너무 불리해.’
그녀는 단병 접전이 아니라, 중거리에서 암기와 독을 쓰는 것에 전문이다.
때문에 심상천 교관이 모의전 규칙을 설명할 때, 가장 당황했던 학관생 중 하나다.
“그럼 대장을 누구로? 일단 반장인 방윤으로 할까?”
“아니, 그건…….”
양미의 말에 방윤이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그는 분명 뛰어난 무인이지만, 소림 출신이었다.
도덕심과 자제력이 있어 평소라면 반장이 좋은 인선이지만, 집단전에 관해서는 익숙하지 않았다.
애초에 승려가 무슨 전쟁을 알겠는가.
“나보다는 서문영을 추천해.”
방윤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시선을 받은 서문영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어, 그러네. 서문영이라면…….”
“확실히 제격이네. 군진이나 병략도 많이 알고 있잖아?”
“맞아. 지난번 실전학 수행평가 때도…….”
움찔!
별생각 없이 말하던 아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지난번 카르삭 왕릉 때 서문영의 뛰어난 지휘 능력을 보았었다.
하지만 지휘 능력과 상관없이, 정작 그 시험의 수행평가 점수는…….
“인정한다. 지난 수행평가 때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지만…….”
서문영이 눈을 떴다.
아이들의 평가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번 반 대항전을 승리로 이끌고, 대장으로서의 지휘력을 보여 자신의 평가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내게 기회를 준다면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 보여 줄게.”
“오오!”
“좋아! 서문영!”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학관생들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채 커지기도 전에.
“이한은 어떻게 생각해?”
한 학관생이 물음에, 거의 확정 분위기던 아이들의 반응이 식었다.
그리고 시선이 하나둘 이한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평소라면 거부했을 학관생, 그를 미워하던 학관생들이 조용했다.
평소 고깝게 보던 방윤부터 당무련. 심지어 제일 부정적이었던 언규까지.
이렇다 할 반대 의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은, 어느 순간 주목받기 시작한 이한의 존재가.
운소령, 서문영 다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았다.
“흐음.”
천마는 팔짱을 끼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 이내 조금 전, 언급된 서문영을 바라봤다.
“…….”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자신의 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천마는 다시 운소령을 바라봤다.
그녀 역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듯 조용히 하고 있었다.
“서문영 시켜.”
“오!”
“이한이 드디어 인정했어!”
아이들의 들뜬 반응에 서문영의 감정은 복잡했다.
건방진 녀석이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이 불편하고, 짜증 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 그럼 내 생각을 말하지.”
반 아이들의 관심에 서문영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작전 타임으로 주어진 이각 중에 벌써 일각이 지나갔다. 최대한 빨리 짜고, 준비해야 했다.
“나는 초반에 기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시작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4반 녀석들의 숫자를 줄여 버리는 거야.”
“초반에 기습? 이유가 있어?”
종천도가 곧장 물었다.
“우리는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마법은 영창(Casting)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4반도 우리 반을 대충 아니까, 아마 우리가 예상 못 한 기책을 준비했겠지.”
서문영은 학관생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 기책을 쓰기 전에 먼저 압도해 버리는 거다. 서로 피해가 좀 있겠지만 나쁘지 않아. 수가 적으면 작전이 단순해지고, 위기 시에 대응하기 쉬우니까.”
‘애송이는 아니었구만.’
천마는 지금의 상황이 약간 의외였다.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상대가 마법을 쓰는 몬스터일 경우 초반에 방어를 굳히고, 전황에 따라 틈을 노리는 게 공통적인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서문영은 되레 전투적으로 생각했다.
상대는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고, 마법사와 전사의 싸움은 시간과 거리의 싸움이다.
고급 마법을 방어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고급 마법을 쓸 틈을 주지 않겠다는 거다.
“이제껏 전위를 맡아 봤던 10명을 돌격조로 뽑겠어. 지원할 사람?”
서문영의 말에 언규, 종천도, 그리고 방윤 및 소림 출신의 무승들이 자진해서 손을 들었다.
“좋아. 그럼 두 번째는 가장 뒤쪽에서 지휘를 맡을 사람이 필요해. 상황이 혼란스러워질 때,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내게 알려 줄 사람… 운소령이 맡아 줬으면 한다.”
“알겠어.”
운소령은 어렵지 않다는 듯 어깨를 슬쩍 올렸다.
무투파인 3반에 비해, 4반은 전력 대부분이 마법이다.
그리고 운소령은 눈이 좋은 편이었다.
마법사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보고 즉각 서문영에게 전달해 주면, 좋은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위 후위가 있으면, 예비대가 필요하게 되지. 필리아, 소진, 이한.”
굳이 꼭 집어서 얘기하자, 학관생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이전 무공학 시험 때도 그렇고, 너희들은 돌발 상황에 대응을 잘할 것 같아. 일단은 후방에 빠져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내게 와 줄래? 특히 필리아.”
“응.”
주르륵.
갑자기 모여드는 시선에 필리아가 불편해하며 대답했다.
“4반의 마법 전력에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반에선 네가 유일해. 잘 부탁한다.”
“음… 알겠어.”
“좋아. 그럼…….”
대충 인선이 끝나자, 서문영은 경기장에 시선을 두었다.
가로세로 90m의 공간인 체단실 안.
60미터 남짓한 사각의 모양이 높이는 1.5미터 정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연무장처럼 도드라지게 만들어진, 이번 반 대항전의 전장이었다.
‘밀어서 떨어뜨리는 것도 생각해 보야겠군.’
서문영의 머리가 기민하게 돌아갔다.
이번 실기평가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자신의 구겨진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 * *
“반 대항전! 준비! 시---작!”
삐이이익!
학관생들이 무대에 올라 진영을 짜고, 교관이 호각을 불었다.
그 순간.
파파파팟.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는 2학년 학관생들.
전위에 서 있던 10명이 방비를 도외시하듯, 저돌적으로 튀어나갔다. 그 속도는 굉장했다.
하지만 4반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스(Grease)!”
애초부터 상대가 아니라 땅에 마법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와앗! 와당탕!
바닥이 미끄러워지자, 빠르게 달려 나간 3반 아이들이 죄다 땅을 구르고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보던 교관들은 허를 찌르는 4반의 발상에 감탄했다.
“저서클의 기초 마법이라!”
캐스팅에 시간을 오래 끄는 고위 마법이 아니라, 캐스팅 시간이 짧고 마나 소모도 적은 보조 마법.
하지만, 정작 놀랄 것은 따로 있었다.
“블리자드(Blizzard)!”
갑자기 허공에 맺히기 시작한 회색 구름.
차가운 눈보라의 돌풍이었다.
그리스에 미끌어진 3반 학관생들은 경기장 밖으로 밀려 나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애초에 4반이 노린 것은 그게 아니었다.
투투투투툭.
회색빛의 분진.
지급된 단봉의 먹을 깎아 내 콩알만 하게 쪼갠 파편들이 차가운 돌풍을 타고 쏘아져 나갔다.
“조심해! 스치기만 해도 탈락이야!”
수많은 회색의 먹 조각이 3반 학관생들 전체를 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