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실기시험 (3)
“어? 여긴 어쩐 일이세요?”
2층 좌측 끝에 앉은 무공학 교관, 허각 옆으로 한 여인이 말을 걸었다.
마력학을 담당하는 교관 엘리샤였다.
“뭐, 마침 시간이 한가해져서 말입니다.”
“신기하네요. 무공학 교관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카르삭 때문이죠?”
그녀도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알고 있었다.
카르삭 왕릉이 갑자기 붕괴되고 거기에 파견 나가 있던 교관들이 대거 돌아왔다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학교 내에 거의 머물지 않는 교관들이라 그런지.
그녀는 여기서 무공학 교관을 만난 걸 매우 반가워했다.
“뭐, 그냥 시원섭섭합니다. 카르삭에만 너무 오래 있었으니. 그리고 오랜만에 학관에 머무르니 재밌기도 하고요. 평소엔 학관생들의 커 가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실전학과와 무공학.
이 두 과목의 교관들은 대부분 위험천만한 일을 관리하거나 특수한 목적을 띠고 활동하는 자들이다.
특히 무공학 교관은 던전 관리를 도맡아 활동하기에, 편히 쉴 시간이 없었다.
평화로운 학관 생활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못 견디실 걸요?”
“하긴, 것도 그렇습니다.”
허각은 멋쩍게 웃으며 인정했다.
항상 외부로만 돌아다니다 보니 이렇게 교실에 있거나, 교두들을 만나 인사하는 게 어색했다.
사실 지금도 관전하기만 했는데도 몸이 근질근질했다.
“어느 반이 이길 것 같나요?”
엘리샤는 옆자리에 앉으며 재미 삼아 물어보았다.
무투파인 3반.
평균 전력으로 보자면 2학년 중 제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서문영, 운소령, 필리아 등. 재능 있는 이들이 많아 앞으로가 기대되는 학관생들이란 평이 자자하다.
하지만 4반은 마법이 주력.
아무리 3반이 무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쉽게 승부를 점치기가 힘들었다.
“개개인의 전력만 놓고 보자면 3반이 분명 우월하겠지만… 저런 집단전은 개인의 무력보다 지휘 계통과 협력이 훨씬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허각은 엘리샤를 힐끔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법의 활용도는 무한한 편이지요.”
“저 들으라고 좋게 말씀해 주시는 거죠?”
“하하, 글쎄요…….”
허각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핀 웃음꽃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잠깐, 두 교관은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끄럽게 막 작전을 짜고 있는 3반과 차분하게 반장의 말을 듣고 있는 4반을 번갈아 보았다.
이윽고 시작하기 위해 무대로 올라오는 이들을 본 엘리샤는.
“전 3반이 이긴다에 한 표 걸게요.”
정감 있게 입을 열었다.
“이유가 뭡니까?”
“허각 교관께서 4반에 걸었으니까요.”
“예?”
어색하게 바라보는 허각.
그런 그를 보며 엘리샤는 방긋 미소 지어 보였다.
왠지 허각을 놀리는 게 재밌다라는 생각이 담긴 웃음 같았다.
* * *
블리자드.
마법사가 최소 4서클일 때부터 사용이 가능하지만, 제대로 쓰기 위해선 시전자가 5서클 이상은 되어야 한다.
지역 전체를 타격하는 광역 마법 중 하나로, 그 특성상 시전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파괴력과 범위가 커진다.
특히 시전자가 냉기 마법에 감응력이 뛰어날수록 강해지는데, 6서클에 이르면 한 지역을 몬스터와 함께 지형까지 통째로 쓸어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니게 된다.
물론 강력한 만큼 마력 소모도 엄청나다는 게 단점.
쏴아아아아!
하지만 4반 하백운이 펼친 블리자드는 4서클이었다.
살상을 위주로 한 냉기 마법이 아니라, 오로지 맹렬한 바람에만 그 힘을 집중한 마법.
단봉의 회색빛 먹을 몇 개 깎아서 매우 잘게 조각 낸 후, 3반이 있는 곳에 광범위하게 떨어뜨렸다.
이번 시험의 규칙상, 옷에 먹이 스치기만 해도 사망 판정을 받는다.
그 규칙을 철저히 이용한 거다.
“피해!”
“어떻게!”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3반은 난리가 났다.
전방에서 우박처럼 쏟아지는 먹 조각.
회오리바람의 특성상, 때론 전방이 아니라 옆에서도 몰아치는 공격이다.
학관생들은 몸을 굴려 피하거나, 단봉을 세차게 휘둘러 먹 조각을 튕겨 내는 데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침착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필리아! 정령술로 방어!”
서문영의 외침.
무예가 부족해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만 있던 필리아는, 그 지시를 듣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른 이는 몰라도, 자신에게는 저 먹 조각을 차단하는 정령술이 있었던 것이다.
“…대지의 벽!”
구르르르릉-.
경기장 곳곳에서 돌로 만든 벽이 나타나 3반 학생들을 보호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쏟아지던 먹 조각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이런…….”
“아…….”
다만, 펼침이 조금 늦었기 때문인가,
적지 않은 3반 학관생의 옷에 회색 먹이 묻었고, 바로 교관의 지시에 따라 퇴장당했다.
그 수가 무려 여섯이나 되었다.
“이 자식들! 가만 안 둬!”
하지만, 3반이 그저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경기장 중앙에서 나타난 블리자드는 이미 신속하게 달려 나간 10명에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중 일곱은 상대의 마법인 ‘그리스’에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경기장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파파파팟.
방윤, 언규, 종천도는 살아남아 반격을 가했다.
그들은 몸이 뒤집어지는 순간, 오히려 공중제비를 하면서 일부 넘어지는 이들의 몸을 밟고 자세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언규의 속도가 가장 빨랐다.
“하아앗!”
“으아아… 매직…….”
퍽!
상대가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4반의 한 학관생에게 게 달려가 가볍게 먹을 묻혔다.
그리고 그 뒤를 종천도가 따랐다.
“쇼크 웨이…….”
“핫!”
단봉으로 방어하며, 구동어를 외치던 다른 학관생 하나의 옷에 잽싸게 먹을 묻힌 것이다.
파팟.
주변에 있던 마법반 학관생 둘이 재빨리 단봉을 들어 대항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패착이었다.
“야아아아!”
종천도의 키를 훌쩍 넘은 또 하나의 학관생 방윤.
그는 비호처럼 날쌘 동작으로, 좌우측에서 달려온 4반 학관생 두 명에게 먹을 그었다.
이 모든 것이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문영! 학익진이야!”
운소령은 3반의 움직임을 보고 즉각 외쳤다.
전위 10명 중 7명이 쓰러졌다.
가장 뛰어난 3명이 나름 활약하고 있었지만, 4반도 차례차례 캐스팅에 성공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이대로는 적진에 고립당하고 만다.
“양미! 옥애! 백무룡! 앞으로! 운소령! 너도!”
서문영은 즉각 반응했다.
파파팟.
전방에서 고군분투하던 전위 세 명에게, 추가로 4명의 학관생들이 붙었다.
팽팽한 기 싸움.
구동어를 외치는 이들에게 언제든 달려가려는 시선을 보내자, 그들은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방윤을 비롯한 세 사람은 천천히 후퇴했다.
척. 처억. 척.
그리고 또다시 대치 상태가 되었다.
북을 기준으로 4반 학관생들은 ‘冂’자로 물러선 상태였고, 3반 학관생은 ‘十’ 모양으로 중간에 정렬되어 있었다.
* * *
“이거 재밌네요. 이제 고작 2학년생들인데 어찌 저런 생각을 했을까요?”
엘리샤는 턱을 괴고 반 대항전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기특한 녀석이 시작하자마자, 블리자드의 마법을 펼칠 생각을 했을까.
마법은 시의적절한 응용이 핵심이다.
단봉이라는 무기의 제한을, 4반 아이들은 단봉 몇 개의 먹만 깎아 내어 광역 마법으로 뿌림으로써 극복하려 했고 그리고 결국 성공했다.
피해도 피해지만, 접근전에 강한 3반 아이들을 극심한 공황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3반의 대응도 제법이었소.”
허각은 뒤이어 펼친 전법에 꽤 흥미를 두었다.
자칫하면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먹 조각에, 3반의 대부분이 탈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원래 노렸던 전술 목표를 달성했다.
3반이 블리자드에 당한 숫자는 6.
연속된 그리스 마법으로 오로지 피해만 떠안는 듯 보였지만, 전방으로 돌격해서 맹활약한 3명의 학관생이 4반의 4명을 탈락시켰다.
또한, 그 이후 반응 역시 기민했다.
4반이 캐스팅을 시작하며 3반의 전위를 포위하려 들자 고립될 3명의 학관생들을 구하기 위해, 제일 강력한 운소령을 필두로 한 4명을 허리에 배치했다.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는 전열이 갖춰진 것이다.
“하지만 3반은 조심해야 할 걸요?”
엘리샤는 처음에 3반을 선택한 자신의 말과는 다르게, 오히려 불리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녀는 허각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 곳을 가리켰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예요. 이 정도 계산은 하백운도 이미 하고 있었을 걸요. 저길 보세요.”
* * *
“와. 아무래도 간단히는 안 되네?”
반장 하백운은 옆에 있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블리자드는 예상대로 허를 찔렀다.
수많은 먹 조각이 날아가자 3반 학관생들이 당황해서 나뒹굴 때는, 그대로 손도 못 쓰고 전원이 탈락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상대는 3반.
무투파의 최강자다웠다.
블리자드가 캐스팅되기도 전에 돌격해 온 놈들이 있었다.
나름 준비했던 그리스를 펼쳐 쓰러뜨렸지만, 그걸 뚫고 들어온 세 명이 자그마치 4명을 탈락시켰다.
“뭐, 그 방식도 이미 예상했으니까.”
부반장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탈락당한 4명은 4반에서 마법력이 약한 학관생들.
3반의 돌파력은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던 바였다.
그래서 나름 각오를 하고 내준 2선급 병력.
돌격해 온 전위를 전원 탈락시키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4반 전원이 캐스팅할 시간을 확보했고 남아 있는 마나의 양도 충분했다.
이 정도면 남는 장사였다.
2학년에서 제일이라며 콧대를 세운 녀석들에게 제대로 한 대 먹여 준 덕분에 3반은 아직 혼란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어떡해? 다음은 뭘로?”
하백운은 자신의 왼쪽에 서 있는 학우에게 물었다.
마법을 활용한 전략을 짜는데 있어 중심축이 되는 인물. 이경이었다.
“눈부터 가리지. 냉정을 찾기 전에.”
“좋았어.”
하백운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몇몇 학관생들의 손에서 기이한 마력이 샘솟기 시작했다.
4반의 두 번째 공격. 그건.
“셰이드(Shade)!”
그림자의 장막. 빛을 모두 없애 버리는 마법이었다.
솨아아악!
그들은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을 완벽히 차단하여. 체단실 전체를 완벽한 어둠으로 만들어 버렸다.
* * *
“우왓!”
“안 보여!”
사방이 어두워지자 3반 학관생들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자타 공인 2학년 제일의 무투파였다.
근접전으로만 끌어내면 무조건 필승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시야가 어둠으로 차단되자, 어쩔 줄 몰라 했다.
“침착해! 당황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서문영은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가 어둠을 불러왔다면, 그 의도는 분명하다.
야습, 그리고 그로 인한 혼란. 서문영은 그제야 이 모의전의 숨겨진 함정 하나를 깨달았다.
부웅! 부웅!
초조해진 3반 학관생 몇이, 먹이 묻은 단봉을 사방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딴에는 앞이 안 보여 자신을 보호하려 한 거겠지만.
“함부로 휘두르지 마! 먹은 회색이다! 아군을 공격하게 해서 탈락시키려는 목적이다!”
엇! 어엇!
몇 번 놀란 소리가 터지고, 그제야 혼란이 잦아들었다.
어둠으로 4반이 노린 효과는 분명하다.
혼란, 갈등, 의심, 분열.
그러니 더욱 집중해야 했다.
‘애들이라 그런가. 참 재밌게 노네.’
천마는 어둠으로 변해 버린 체단실 안에서 누구보다 여유로웠다.
진작에 펼친 야백안(夜白眼)의 수법을 통해, 한낮처럼 이 안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응?’
텅. 터텅. 텅.
그런 와중에 앞으로 떨어지는 단봉. 4반 학관생 몇이 단봉을 내던진 채 손을 뻗치고 있었다.
‘무기를 내던져? 무슨 생각이지?’
턱. 스르르르륵.
뒤이어 천마의 눈이 커졌다.
내던져진 단봉의 먹. 그것이 위로 오도록 꼿꼿이 서서, 3반 진영의 곳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마법이야?’
천마는 몰랐지만 그건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라 불리는 마법이다.
염동력으로 물건을 이동시키는 효과를 보여 준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무슨 소리야?”
“누가 움직인 거야?”
아직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3반 아이들아 난감해할 때, 4반의 마법사들은 수인을 맺었다.
‘설마…….’
그걸 보던 천마의 얼굴이 가볍게 굳었다.
먹이 묻은 단봉은 3반 학관생들의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있었다. 혹여나 여기서.
저 먹이 블리자드처럼 쏟아진다면.
그리고 그 우려는 사실로 변했다.
“익스플로전(폭발)!”
8서클 마법이지만, 블리자드와 마찬가지로 저서클에서 흉내 내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4반의 마법사들 몇이 동시에 캐스팅하자.
따다다다닥!
단봉의 머리에 달린 먹이 쪼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으니까.
이전처럼 하늘에서가 아닌, 바로 전, 후, 좌, 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