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백중지세 (1)
스르르륵. 스르르륵.
‘이건……!’
서문영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4반이 뭔가를 보내 올 때부터 그게 공격의 수단일 거라고 예상했다.
때문에 그는 반사적으로 3반 학관생들의 위치를 살폈다.
필리아가 만든 벽, 그 주위로 바싹 붙어 있는 3반.
스르륵. 스르르륵.
어둠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적이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모여드는 법이다.
그리고 병서에서는,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적을 일부러 한곳에 모아 일망타진하는 전술이 많이 나온다.
‘화공, 함정, 벽력탄. 그럼 폭발?’
서문영의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어두웠지만, 그는 미세한 소음이 학관생들 가까이로 점점 다가옴을 알 수 있었다.
돌벽에 바짝 붙은 학관생들. 그런 학관생들을 노리기에 최적의 수단은.
“필리아! 폭발이야! 방어해!”
“익스플로전!”
아주 약간, 캐스팅이 되기 직전에 서문영의 목소리가 먼저 터졌다.
그리고 그건, 역시 바짝 긴장하고 있던 필리아가 바로 반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노움!”
사방이 어둠이었지만, 필리아는 학관생들의 위치를 이미 알고 있었다. 다들 ‘땅’을 밟고 있었으니까.
드르르르륵!
그랬기에 수많은 돌벽이 만들어지며, 3반 학관생들의 전면을 차단했다.
따다다닥! 따다다닥!
간발의 차로 먹 조각이 돌벽에 막혔다. 캐스팅이 단봉의 먹 덩어리를 부수는 데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와… 이 정도면 반칙 아냐?”
“정령술사 때문에 뭘 하지도 못하겠네.”
“쟤부터, 무조건 저 자식부터 공격해야 해.”
3반의 방어에, 4반 학관생들은 탄식을 터뜨렸다.
나름 노리고 짠 전략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기회가 무산된 것을, 3반은 놓치지 않았다.
“필리아, 난 괜찮아! 벽을 열어 줘!”
“나도! 지금 바로 나가겠어!”
운소령과 서문영. 두 사람의 외침에 필리아는 정령술을 재차 감행했다.
“알았어! 노움!”
드르르륵!
돌벽이 사라졌다. 그러자 두 사람. 서문영과 운소령이 자리를 박차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적외선 시야(Infra vision)로 어둠속을 꿰뚫어 보고 있던 4반이 즉각 반응했다.
“온다!”
“홀드 퍼슨!”
“홀드 퍼슨!”
대인 속박 마법. 인간형에게 최적인 구속 방법으로, 형체가 없는 마법의 밧줄로 상대를 꼼짝 못 하게 묶는다.
“홀드 퍼슨!”
“홀드 퍼슨!”
특히나 이 마법은 여러 번 중첩이 가능했다. 마법 내성과 마법 저항을 가진 3반의 우등생 둘이기에, 4반은 대여섯이서 동시에 속박 마법을 펼쳤다.
파파파파팟.
하지만 운소령과 서문영은 걸리지 않았다.
마법 저항으로 풀어 낸 것이 아니었다. 4반이 마법을 걸 때, 그들은 이미 그 시야에서 사라졌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허공답보.
절정 고수나 보일 수 있는 최상승 경공술을, 고작 2학년 학관생들이 펼쳐 낸 것이다.
“하앗.”
제운종으로 더욱더 높은 곳으로 솟아오른 운소령은, 허공에다 대고 단봉을 휘둘렀다.
패애애애애액!
그러자 네 방향으로 일어나는 바람들.
그 바람에는 회색빛 분진이 담겨 있었다. 단봉 끝의 먹을 살짝 부순 후, 그걸 뿌려 낸 것이다.
슈슈슉!
그리고 그건 서문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인 찌르기. 운소령 바로 아래에서 3방향으로 검풍을 쏘아 냈다.
지나치게 강한 찌르기는 단봉 끝의 부드러운 먹에 균열을 일으켰고, 작게 조각난 먹이 검풍을 타고 쏘아졌다.
‘오, 머리 좀 쓰는데?’
천마는 내심 놀랐다.
단봉이라는 무기는 당연히 접근전에서 쓰이는 무기다. 그런데 그 무기로 접근전이 아닌 원거리 공격을 생각해 내다니.
와다다닥!
그리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먹 조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들의 옷에 묻었다.
“앗. 아얏!”
“앗 따거! 이런!”
“아. 맞았어.”
솟구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4반의 일곱 명이 그대로 당한 것이다.
부상자는 없었다.
검풍을 쏘아 내면서 속도, 강도를 적당히 조절했기에 딱 따끔한 정도로 맞힌 것이다.
“탈락! 탈락! 탈락자 나가!”
단 두 명이서 한 기습에, 24명으로 줄었던 4반 인원이 갑자기 17명으로 더욱 줄어들었다.
인원수에서 지고 있던 3반이 역전한 것이다.
“대공 진형!”
“좋아! 묶어 버려!”
하지만 그들의 기지는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왔다.
하백운과 4반 학관생들은 두 사람이 공중에서 편히 내려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홀드 퍼슨!”
“홀드 퍼슨!”
쫘아아악!
허공을 향해 속박 마법이 쏘아졌다.
대공 진형. 애초부터 4반이 준비했던 전술이다.
무예가 뛰어난 3반에서, 경신술로 날아드는 아이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으윽!”
“앗!”
아무리 서문영과 운소령이라도, 이번만큼은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마법 내성과 마법 저항으로 버텨 내려 해도, 무려 십여 명이 동시에 캐스팅한 것을 당해 낼 수는 없었으니까.
“텔레키네시스!”
우우웅!
그리고 두 학관생이 떨어지는 운소령에게 염동력을 써서 단봉을 날렸다.
운소령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막 그녀의 옷에 회색빛 먹이 묻으려던 순간.
퍼억.
그걸 손으로 막아 내는 이가 있었다.
“규칙상 옷에만 묻지 않으면 되는 거지?”
천마의 첫 등장이었다.
그는 필리아가 세운 돌벽을 뛰어넘어, 운소령에게 향하던 두 개의 단봉을 잡아챘다.
“흡!”
화르르르륵!
다음 순간, 단봉이 먹째로 타올랐다. 그리고 그 불꽃은 거대하게 피어났다.
“와앗! 저거!”
“읏! 눈부셔!”
그 덕분에 4반 학관생들의 시야가 잠시 마비되었다.
적외선 시야는 열을 감지하는 것. 저렇게 강렬한 불꽃을 정면으로 보면, 일시적으로 장님이 되는 것이다.
투욱. 우당탕!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운소령과 서문영. 그리고 천마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3반이고 4반이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던 그때, 천마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얕보다가 진다니까?”
* * *
“방금 그것 보셨습니까?”
“아……!”
교관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3반과 4반의 대결은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4반이 먼저 마법으로 어둠을 부르고, 텔레키네시스로 단봉을 옮겨 폭파시킨 것은 기발하기 짝이 없었다.
그걸 간발의 차로 파악해서 필리아에게 지시한 서문영의 눈썰미도 훌륭했다.
뒤이어 운소령과 서문영이 튀어나왔을 때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든 무예든, 노렸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사람은 가장 큰 허점을 보인다.
아쉬움, 막막함. 그리고 캐스팅 딜레이까지.
지극히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에 움직일 수 있는 무위가 있다면 노릴 만하다.
“우와아.”
“저런!”
지휘부로 활동하던 서문영과 운소령. 두 사람은 놀라운 무위로 무려 일곱을 검풍을 통해 탈락시켜 버렸다.
그러자 4반이 기다렸다는 듯이 요격에 들어갔다. 허공에서 더는 경공술을 쓸 수 없는 두 사람을 향해, 작정하고 대공 포화를 퍼부은 것이다.
이번만큼은 꼼짝없이 당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또 한 명의 학관생이 나타나 두 사람을 구해 냈다.
“저 학관생, 누굽니까?”
“방금 펼친 게 뭐지요?”
서문영과 운소령. 그 옆에 선 학관생.
3반 수업을 가르치지 않은 교관들 사이에서 의문이 생겨났다.
먹이 옷에만 안 묻으면 되니까 손으로 잡았다는 것은 엉뚱했고, 두 사람이 요격당할 거라는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재빠르게 나선 것도 기이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단봉을 불태워 버린 화염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화염 공격 마법의 위력이었으니까.
하지만 무투파인 3반에, 마법을 쓰는 학생이 있었던가?
“저게 무슨 마법이요?”
허각이 물었다. 그는 이한이 단봉을 맨손으로 잡는 순간 크게 웃느라고, 불타는 순간 기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지 못했다.
어쨌든 강렬한 화염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마법을 쓴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물었더니 엘리샤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법 아닌데요?”
“음?”
“무공 아니에요? 마법에는 저런 방식이 없는데?”
“허어? 그게 무슨…….”
오히려 그녀가 묻고 있었다. 허각의 물음에 엘리샤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설명했다.
“보통 마법은 백회혈에서 상단전으로 이동하는 찰나의 틈에 마나가 나오는 거예요. 자연의 힘을 이용한 수법. 그런데 저건, 마법이라 하기엔 힘의 원천이 다른데요?”
“어떻게 다르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상단전이 아니라 하단전에서 일어난 기운이에요. 혹시 무공에는 저런 기술이 없나요?”
그 말에 허각의 표정은 심각히 굳어졌다.
있다.
당연히 있다.
강렬한 열기로 불을 일으키는 힘.
‘삼매진화.’
하지만 그건 일개 학관생이 펼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절정에 올라야, 아니, 저 정도로 강렬한 화염을 피워내려면 초절정에 육박해야 한다.
즉, 교관이 아니고서야 저런 것을 피워 낼 수 없다는 뜻이다.
“무슨… 열양공인가 보군.”
허각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그냥 끄덕였다.
삼매진화로는 아니지만, 극양의 기운을 가진 무공을 썼다면 아까 같은 화염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최소 1갑자의 내공에, 전력을 다해 일으켰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튀고 싶어 안달 난 놈이겠지.’
자리로 돌아가는 천마를 보고 허각은 그리 생각했다.
* * *
솨아아아-.
그림자가 사라지자, 창틀로 빛이 들어왔다.
전략이 이미 실패했으니, 셰이드 마법으로 계속 빛을 차단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용되는 마나도 아까웠고.
“방금 그놈 누구야?”
4반의 부반장 서린이 인상을 썼다.
조금 전에 있었던 절묘했던 기회를 놓치니 속이 쓰린 것이다.
대공 진형. 무투파인 3반이 언제고 몸을 날려 올 걸 상정하고, 이미 수십 번 연습한 작전이다.
기습에 7명을 잃긴 했지만, 운소령과 서문영. 3반의 에이스 둘을 처리할 수 있다면 오히려 승기를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무리하게 마법을 시전했는데.
실패했다.
갑자기 들어온, 저 녀석 때문에.
“저거… 본 적 있는 녀석이야. 저번 이론마법학 때, 운소령 따라서 들어온 녀석.”
사중현은 그제야 기억난다는 말했다.
당시에는 별 볼 일 없다고 여겼는데, 이런 식으로 튀어나올 줄이야.
“그냥 운 좋은 놈은 아닌 거 같은데? 3반에 저 정도 실력자가 있었나?”
“음.”
서린의 말에 사중현 역시 동의했다.
비록 눈이 어둠에 적응될 쯤에 움직였다곤 하나 그 짧은 시간에 서문영과 운소령을 둘 다 구한 건,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하기엔 부족했다.
“무협학 빼고는 전부 만점인 놈이야. 만만히 봐선 안 돼.”
외알 안경의 이경이 말했다.
“뭐?”
“그랬어?”
“정말이야?”
서린과 사중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하백운은 더욱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제껏 그는 순위권만 보다 보니 그 아래 학생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어찌할까, 반장?”
다른 학관생 하나가 물어 오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비장의 수를 써야 할 때 같은데.”
“벌써?”
“그래.”
그는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의 충돌로 4반의 인원이 팍 줄어 버렸다. 그리고 승기를 잡은 3반은 이 기세를 이어 나갈 터.
“아마 이번에는 전력으로 들어올 거야.”
이경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그 말에 하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더욱 사양할 일이 없지.”
* * *
“미안하다. 이번에는 내 실책이야.”
한편, 본진으로 들어온 서문영은 이한에게 사과했다.
“어……?”
운소령이 약간 당황했다.
그토록 자존심이 어마어마하던 서문영이, 이한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러게 왜 그랬냐. 사지로 뛰어 들어가고.”
그런데 이한은 거기에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학관생들 눈에는 확실히 적을 만드는 성격이었다.
“…그러게. 생각이 짧았어.”
그럼에도 서문영은 수긍했다. 그만큼 이번에 겪은 위기가 컸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4반이 저렇게나 기민하게 움직일 줄 몰랐다.
마법사를 얕보다가 자신과 운소령 둘 다 탈락할 뻔했고, 그랬다면 3반은 확정적으로 패배했을 것이다.
“모두 잘 들어. 이번엔 접근전을 할 거야.”
하지만 그걸 피해 냈기에, 승기는 이쪽에 있었다. 남은 3반의 학관생들에게 서문영이 입을 열었다.
“…서문영?”
“무조건 붙을 거야. 이제 우리 반이 인원이 많아. 소극적으로 굴 필요 없고, 한 번에 몰아친다.”
“저 녀석들 준비 많이 했던데, 어떻게 뚫으려고?”
언규가 물었다.
전력으로 몰아치다가 실패하면 그만큼 큰 피해를 입는다.
4반은 3반을 상대로 단단히 대비했고, 그 대비를 뚫을 방법이 없는 이상 다가가기 전에 당하리라는 예상이었다.
“그게…….”
“검기를 뿌려 봐.”
“뭐?!”
서문영이 고민하던 그때, 누군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어처구니없는 대답.
검기라니. 모의전 시작하기 전부터 부상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교관의 말을 듣지 못했는가.
하지만 천마는 뭘 그리 놀라냐는 듯 웃어 보였다.
“꼭 살상할 필요가 없다니까.”
학관생들은 선뜻 반박하지 못했다.
무슨 의도로 그렇게 얘기한 건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더 들어 보고 싶었다.
그때.
“맞아, 그 방법이 있었어.”
서문영이 말을 받았다.
그의 얼굴에 가라앉았던 흥분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