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05화 (106/310)

105화. 태상장로 노달 (1)

저잣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한 노인이 뭔가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갈색 상의에, 회색 외의를 걸친 그는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착의였다.

스윽.

노인은 품속에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에 적힌 글을 한 번 읽어 보고는, 다시 고개를 올려 건물 위 편액을 바라보았다.

「사천용병점」

“음. 맞구나.”

노인은 시선을 내렸다.

그러고는 들어가는 입구 옆, 벽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실력 검증은 모두 마쳤습니다. 저희 가게의 이름을 걸고 확실히 보장합니다!>

사박.

그는 종이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이후, 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적한 가게 입구와 달리 안은 사람들로 제법 북새통이었다.

가게 안 좌우측에 마련해 둔 원탁 주위로 무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간 던전은 어때?”

“말도 마. 들어가기도 전에 구울 한 마리가 튀어나왔는데, 그걸 본 고용주가 무서워서 바지에 오줌을 싸더라고.”

척 봐도 나름 한가락 하게 생긴 무림인들이었다.

3층으로 된 이 가게는 규모가 크고 많은 용병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용병들도 일감을 찾아 1층에 내려온 듯했다.

아무래도 지명도가 낮은 자들은 직접 호객 행위를 해야 수익을 더 올릴 수가 있었다.

“칠독아, 손님 받아… 어? 어르신!”

마침 그의 옆을 지나던 가게 주인 구염이 노인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부리코에 단신의 노인.

특히 그의 반들반들한 민머리를 모를 수가 없었다.

“아이고, 이게 얼마 만에 발걸음이십니까!”

“오랜만이네. 잘 지냈는가?”

노인은 단숨에 달려온 구염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역시 알아본 것이다.

“그러믄요. 2층으로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편한 곳이 좋네. 혈기 넘치는 무인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도 좋아지고.”

“아. 옙.”

구염은 곧 위층, 한적한 방 하나를 가리켰다.

따로 분리되어 있는 방이 아닌, 장지문으로 반쯤 가려진 객방이었다.

***

쪼르르륵.

시종이 차를 한 잔 따르고 물러서자, 구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놀랐습니다. 본 교의 태상장로께서 여기까지 방문을 하실 줄은…….”

노인의 인상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안다면 결코 가볍게 볼 자가 없었다.

태상장로 노달(老達).

대천마신교의 장로들을 대표하는 태상장로로, 원로를 제외한 장로 중 서열이 가장 높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일선에 물러나 있다곤 하지만, 몇몇 단주나 특수직 당주를 제외하면 발언권이 가장 강한 인물.

그런 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그간 너무 무심했네. 몇 년 전에 사천에 가게를 냈다는 얘길 들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 찾아보지도 못했지.”

“아닙니다. 매해 뛰어난 인재들을 추려 내 저희 가게로 보내 주지 않았습니까. 특히 태상장로의 제자이신 흑객을 보내셨을 때는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그 녀석은 잘 적응하던가?”

“늘 기대 이상이었습죠. 지금은 명실공히 가게의 매출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행일세. 그렇지 않아도 못난 제자가 잘 적응할까 걱정했었는데… 자네가 매달 넣어 주는 돈도 그렇고, 본 교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윗분들께서 많이 고마워하시네.”

“어이구,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그렇게 보아 주시니 그저 영광이옵니다.”

구염이 양손을 모아 불꽃 모양을 그리며 답례했다.

사실 이 용병점의 주인은 천마신교의 사람이었다.

140년 전.

리치왕에 의해 마교의 본단이 풍비박산 나고 순혈의 인재들은 대부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천 년에 달한다고 일컬어지는 마교의 명맥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깊은 동굴에서 폐관 수련 하던 고수들.

세속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은둔 고수와 원로들.

그리로 집체교육을 위해 자리를 비웠던 수많은 마인들이 한데 모여 다시금 천마신교를 세웠다.

하지만 재건을 하기에는 여건도, 시대적인 환경도 따라 주지 않았다.

대격변의 날, 마교는 본단이 궤멸당했다. 본단 건물은 물론이고, 수많은 인재와 교인들이 몰살당했다.

그 피해가 워낙 컸기에, 인원이 적어진 탓에 마교는 폐쇄적인 정책을 버리기 시작했다.

은밀히 중원 각지로 이동하여 세력을 모으고, 후대를 양성하는 일을 끊임없이 해 온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야 그 결실을 맺고 있었다.

구염 같은 인물들을 키워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아, 그렇지.”

구염의 말에 노달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뭐, 잠시 일이 있어 사천에 나왔네. 마침 이 근방을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고… 자네도 보고 제자의 얼굴도 볼 겸 해서.”

“아, 흑객 말이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구염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가 놓인 중역 서탁을 뒤졌다.

그리고 서류 한 장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확인해 보니 좀 이상하군요.”

“왜 무슨 문제가 있는가?”

“몇 달 전에 한 청년이 제자분을 고용했었지요. 그 이후로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원래라면 지금쯤 오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어쩐지… 매주 연통을 넣던 제자의 소식이 뜸하더란 말이지. 뭐, 사실 그것도 괜찮지 않겠나? 고용주가 웃돈을 꽤 얹어줬다면 말이야.”

“웃돈은 없었습니다. 정확히 공식 금액만을 지불했습니다.”

“응? 그럴 리가? 그럼 웃돈도 받지 않았는데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는 건가?”

문득 노달의 눈썹이 위로 치켜올라갔다.

“뭐,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이 건에 대해서는 알아보고, 고용주에게 확실히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럼, 자네라면 믿고 맡길 만하지. 좀 더 알아보게. 그건 그렇고 말일세…….”

“예, 말씀하십시오.”

딸깍.

다시금 찻잔을 드는 노달.

그런데 차를 입가에 가져가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아니, 그래도 말일세. 상계에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데… 남의 시간을 뺏어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짓이라니, 구염. 열 배는 더 받아 내게!”

“옙!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구염은 혹여나 태상장로가 기분 상하지 않을까 즉각 대답했다.

노달의 목소리 끝에 약간의 노기가 섞여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노달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자신도 차를 마시기 위해 손을 내밀던 그때.

쾅! 쾅! 쾅!

그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올라갔다.

노달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친놈처럼 갑자기 자신의 주먹을 벽에 후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씨벌, 고용주 새끼가 돈을 처먹었으면 제 기일에 맞춰서 딱딱 데리고 왔어야지! 사람을 개처럼 부려 놓고! 돈으로 사람 목에 밧줄을 채워 놓고!”

후려치는 힘이, 아니, 내지르는 얼마나 컸던지 목소리가 장지문 밖, 모두의 이목을 집중되었다.

그중 몇몇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문밖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차, 찾아내겠습니다! 반 시진 안에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구염은 탁자에 머리를 처박으며 외쳤다. 거의 고성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울분을 토하던 노달은 그 모습에 잠시 경직되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이 풀리며 손짓을 했다.

“크흠흠. 좀 그래 주겠나. 그리고 내가 왔다고 알리지 말게. 제자가 괜히 부담되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이미 깍듯이 머리를 숙이는 구염의 얼굴엔 땀이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뵌 지가 너무 오래되어 잊고 있었다.

태상장로는 ‘돈’과 관련된 일이라면 누구보다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보이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 그리고 이번 달 입금일도 지난 것 같으니. 빨리 넣어 주게. 좋은 게 좋은 거지 않나.”

“예? 제가 그런 큰 실수를! 당장! 그건 지금 입금하겠습니다!”

“허어, 아니네. 자네를 나무라는 게 아니야. 그럴 수 있어. 내 주책이지. 뭐.”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태상장로는 뭔가 미안한 듯, 그의 손을 슬쩍 포개어 잡았다. 그 행동에 구염의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때쯤 태상장로가 다시 말했다.

“아, 내 정신 좀 보게. 자네 밥은 먹었나?”

“아직입니다.”

“그래? 나도 먹지 않았네.”

“……?”

자리에 앉으려던 그의 동작이 멈췄다. 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따라 일어난 노달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식사를 아직 하지…….”

“그렇네. 나도 먹지 않았어.”

“…….”

또다시 침묵.

구염의 속은 황당함과 어이없는 감정으로 천천히 물들어 갔다.

노달이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 의도를 그제야 이해했으니까.

***

“맛집이 이 주변에 있다고?”

“예, 멀지 않습니다.”

구염이 앞장서며 노달을 안내했다.

인근에 있는 유명한 객잔을 가기 위해 저잣거리로 나온 것이다.

“사천은 곡창지대라더니… 거래가 활발하군.”

노달은 곁눈질로 곳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포목점부터 시작해, 좌판을 깔아 놓고 다과를 판매하는 사람들.

행렬을 이루며 과일이나 야채를 판매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요즘은 신기한 음식들도 많이 팔지요. 비스킷(biscuit)이란 음식은 먹어 보셨습니까?”

“처음 듣는데… 그건 뭔가?”

“5년 전부터 이 일대에 파는 음식인데. 밀가루에 계란과 유우(乳牛)를 넣어 구운 빵 과자로, 참으로 맛이 있습니다.”

“비싼 것들만 골라 넣었으니 당연히 맛이 있겠지.”

노달은 퉁명스럽게 투덜거렸다.

세상이 매일매일 변하고 있다는 건 그 역시 체감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자신이 모르는 것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음식이 그러했는데, 어떻게 이런 게 있는지 감탄하는 것들이 생겨나곤 했다.

“음?”

한데 한참 그렇게 걸으며 지나치던 중에, 노달의 눈에 한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노점에 고기를 꺼내 놓은 아낙. 그리고 그 아낙과 실랑이를 하는 젊은 청년.

“스무 냥이요.”

“아니, 당초육에 사용하는 고기 가격이 뭐 그리 올랐소? 내 어제는 분명 열여섯 냥이라 들었는데.”

“그땐 하도 졸라 대서 해 준 거고. 오늘은 안 돼.”

“아니, 이번에도 양파와 부추도 살 거요. 그리고 예전에도 여기서 구입한 적이 있지 않소. 좀 싸게 해 주시오.”

“예전에? 그냥 이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살 듯 말 듯 사람 간만 보지 않았나? 그러고는 정작 산 건 손톱만큼 사 가고! 이젠 못 해 줘!”

“내 그래서 그땐 대파도 함께 사들였잖소. 박리다매 모르오? 박리다매?”

“뭐든지 적당히 해야지. 가! 안 팔아! 안 판다고!”

“어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사람 잡겠네!”

붕붕.

정육점 아낙이 약이 올랐는지 고기 써는 칼을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그에 호들갑을 떨며 소리 지르는 사내의 모습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끌끌끌…….”

“왜 그러십니까?”

구염은 노달이 가만히 서 있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내가 되어 가지곤. 허리에 찬 검이 아깝구나.”

구염은 노달의 시선을 재빨리 따라갔다.

그러자 곧 이내 씩씩거리며 실랑이를 하는 두 남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잣거리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장사에서는 흥정을 하는 게 기본이지 않은가.

하지만 구염은 끌끌 혀를 차고 노달의 비위를 맞췄다.

“꼴 보기 사납군요. 아무리 돈이 중하다 하나, 몇 푼 되지도 않는 걸 두고 저런 모습이라니.”

“동전 한 닢도 아끼는 자세는 좋아. 하나 남자가, 그것도 무인이, 자신의 체면도 돌보지 않아서야 곤란하지. 누군지는 몰라도 저놈의 사부도 참 한심해. 우리가 돈이 없지 체면이 없나? 그것부터 가르쳐야 하거늘…….”

그렇게 둘이 혀를 차고 있던 중에 사내가 한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그냥 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안 사! 더러워서 안 사! 안 산다고! 에이. 아주 망해 버려라!”

그 모습에 노달과 구염이 표정이 구겨졌다.

“이젠 아주 경망스럽기 짝이 없군. 어허, 강호의 도의가… 통탄할 일이로다.”

“그만 자리를 피하시지요. 부끄러운 자와 함께 있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지나치려는 그때.

“……!”

“……!”

“……!”

세 명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두가 멎었다.

눈앞에 여기 있지 말아야 할, 아니, 있어선 안 될 사람이 서 있었다.

‘이런 망할!’

구염은 동작이 멎어 버린 두 사람 사이에서 가장 빨리 물러섰다.

혀를 차던 사내가 다름 아닌 태상장로의 제자 흑객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뭐 하느냐.”

저잣거리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노달이 물었고.

“…사부님이 여길 어찌?”

흑객은 반문했다.

그리고 딱딱하게 계속 노달이 노려보자 흑객이 미약하게 입을 올렸다.

“그것이…….”

수많은 변명이 떠올랐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천마께서는 오가장의 일로 자신의 신분을 알리길 꺼리시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속사정을 어떻게 털어놔야 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노달의 시선이 이미, 자신이 어깨에 짊어진 보자기로 향해 있었다.

“그건 뭐냐?”

“사부…….”

“그게 뭐냐고!”

흑객은 고개를 숙였다.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사부 앞에서는 그것이 더 버릇없는 행동임을 알고 있었다.

“만두와 돼지 창자. 다진 고기 조금과 양파와 부추입니다.”

“다진 고기? 만두… 뭐?”

“소 창자. 그리고 양파와 부추…….”

“허…….”

노달이 이마를 짚으며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물었다.

“그걸 왜 네가 들고 있느냐.”

“…….”

“지금 그걸 네가 왜 들고 있느냐고오오오!”

쩌렁쩌렁.

호통에 심후한 내력이 실려 버렸다. 덕분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흠칫 떨었다.

“그것이…….”

흑객이 주저하자, 노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앞으로 장차 본 교의 백년대계를 이끌어 갈 네가! 다진 고기와 양파, 부추를 왜 들고 있느냐고 묻질 않느냐!”

흑객이 시선이 보자기로 향했다.

바닥에 내려놓은 보자기 끝 사이로 고기와 돼지 창자가 보이자 그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사부, 실은 제가…….”

천마는 분명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밝히길 꺼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현답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한참을 머리를 굴리던 그는, 번뜩하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밝히지만 않으면 되지 않는 게 아닌가.

“본 교의 또 다른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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