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태상장로 노달 (2)
“그냥 우리 백화점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흑객이 시장을 보러 가던 사이, 천마와 소진은 제법 큰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사람이 한쪽만 보면 안 되지. 두루두루 봐야 할 것 아냐.”
천마는 주위의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보라고.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와 있겠어? 너도 너희 백화점에 뭐가 부족한지 살피는 기회로 삼아.”
“음…….”
그들 위에는 만물잡화점라고 적힌 현판이 떡하니 내걸려 있었다.
잡화점.
140년 전, 세상이 격변한 후, 가장 먼저 세워지기 시작한 곳.
강호의 무인들은 몬스터 사냥으로 얻은 아이템을 팔 곳이 필요했고. 그 수요에 따라 잡화점이란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국에 학관이 세워질 때쯤 잡화점은 일대 부흥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각종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잡다한 상품을 두루 파는 곳이 아닌, 특정 상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무기구나 방어구, 마법구 같은 가게가 생겨났고 전당포, 용병소 같은 특수한 가게들도 번성하게 되었다.
“어디, 이 가게의 포션은 어떤지 한번 볼까?”
그중에서 특히 천마가 관심이 갔던 것이 바로 포션(Potion)이라는 물건이었다.
과거 그가 강호에서 활동하던 시절, 외상에 가장 많이 쓰이던 금창약과는 효능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치료약.
빠르고 효과적이며, 어디에나 쓸 수 있다.
다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니.
“이한, 포션은 기본 가격이…….”
“걱정 마라.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천마를 보며 소진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성격이 바뀐 거야? 아니면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 거야?’
이제 적응이 되었나 싶으면 다시금 헷갈리게 만드는 동급생.
1학년 때의 이한은 말수가 적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2학년이 되자마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무예가 급성장하고, 성격도 과감해졌다.
심지어 가끔은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일 때도 있었다.
학관의 기본적인 교육과정조차 모른다든지, 시장에서 뭘 어떤 걸 파는지 모른다든지.
이제껏 생활하며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들을 몰라서 되묻는 때는 가끔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4학년생이랑은 무슨 관계지?’
특히 새로 구해 준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
4학년 4반에서 나온 학관생 흑객.
듣기로는 용병과 고용주의 관계라고 들었는데, 가끔 그가 보이는 모습은 지극히 공손했다.
소진이 아는 용병은 대개 자존심이 높고 거만하다. 간혹 예의가 바른 사람도 있긴 했지만, 저토록 정중하게 고용주를 대하는 사람은 본 적이 드물었다.
“안녕하세요.”
소진과 천마가 가게 안에 들어서자 동자(董子-불도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생긴 아이가 그를 맞이했다.
복장이 특이했는데, 그가 두른 앞치마 앞면에 상품(上品)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시지요.”
아이의 안내를 받은 천마는 물건들이 내걸린 벽 한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검, 창, 기형도 같은 물품들이 내걸려 있었고, 철퇴 같은 특이한 형태의 병기도 보였다.
“오, 신기한 게 많네?”
“뭐, 백화점을 제외하면 사천에서 여기보다 큰 곳은 몇 없긴 해.”
천마는 천천히 진열대를 올려다보았다.
맨 위에는 팻말 하나가 붙여져 있고, 그 아래에는 십여 가지의 병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고전 병기 - [검]>
무명소졸의 흔한 검 → 은 5냥.
일류고수의 예리한 검 → 은 8냥.
…….
무당파의 태극검 → 금 5냥.
화산파의 송문고검 → 금 6냥.
남궁세가의 창천검 → 금 7냥.
…….
그리고 그중 하나를 보고 천마가 입을 벌렸다.
“화산의… 송문고검이라고?”
동자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예, 이 송문고검은 섬서 화산파에서 직접 공수한 검입니다. 매화검수께서 시연회 때 직접 사용했다고도 알려져 있지요.”
“그치만 정품은 아냐.”
때마침 소진이 끼어들었다.
“요즘은 화산파 주변으로도 대장간이 많이 생겼어. 돈이 궁해서 이름만 빌려주는 거지. 직접 사용하려고 만든 검은 아냐.”
“아, 그래?”
그는 기다렸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
덕분에 동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이긴 했지만, 대놓고 저리 말하니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뭐. 말코들이 하는 일이야 다 그렇긴 하지.”
천마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심, 과거에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현상에 내심 놀랐다.
화산은 스스로를 뿌리 깊은 명문이라 자부하는 문파다.
대의니 명분의 자존심이니 하여, 자신들의 검을 절대로 판매하지 않는 게 구대문파 놈들이었다.
그런데 소진의 말대로라면 그것도 그저 예전의 일인듯했다.
“음, 저건 또 특이하네?”
천마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창과 암기를 둘러본 천마가 시선이 다시 한곳에 고정되었다.
<아이템 - [검]>
그라디우스(Gladius) → 금 3냥.
브로드 소드(Broad Sword) → 금 5냥.
그레이트 소드(Great Sword) → 금 8냥.
시미터(Scimitar) → 금 13냥 .
그랜드 샴쉬르(Grand Shamsheer) → 금 20냥.
....
....
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 → 금 12냥.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은 재료를 넣은 병기들입니다. 아시다시피, 단순 광물만으로 제작하는 것에 비해 몬스터 뼈나 이빨 등을 집어넣어 만든 것들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강도가 높습니다.”
동자가 재빨리 설명했다.
“대신 보수에 비용이 많이 들어.”
소진이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이곳은 무기 전문점이 아냐. 잡화점이지. 그럭저럭 쓸 만은 한데, 놓여 있는 물건들이 죄다 일반 등급. 마법적 효과나 다른 쓸모를 기대하긴 힘들어.”
‘이놈이 계속…….’
빠득.
동자의 미간에 주름이 가득 생겼다.
물품을 광고할 때마다 한마디씩 툭툭 잘라 버리는 것이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심지어 틀린 말도 아니라 더 속이 상했다.
“어라, 이건 좀……?”
그중 천마의 눈이 바스타드 소드란 것에 머물렀다.
일반적인 장검이다.
다만, 크기가 자신이 아는 것보다 조금 크고 검 자루의 무게도 제법 있어 보이는 것이, 예전에 자신이 휘둘렀던 대검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좀 더 둘러보십시오. 저희 잡화점은 다른 가게에 있을 만한 웬만한 건 모두 취급한답니다.”
확실히 그래 보였다.
무기구뿐만 아니라, 방어구라고 적힌 팻말 아래에 괴상하게 생긴 것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저게 스케일 메일이란 거군.”
스케일 메일(Scale Mail).
얼핏 보기엔 생선 비늘처럼 작은 철판이 좌르륵 붙어 있는 양의 갑주는 천마의 표정을 일그러지게 만들었다.
“모양은 좀 요란하지만 제법 좋은 물건이야. 판금 갑옷과 비슷한 방어력을 지니는데 비늘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몸이 조금 자유롭지.”
“움직일 때 소리가 날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그래서 스케일 메일류는 기본적으로 무음 마법이 장착되어야 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 그보다 포션 없나?”
소진이 와르르 떠벌려 대는 걸 천마가 끊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아, 포션 있지요. 그런데 그건 따로 진열해 놓지 않습니다.”
“…왜?”
“워낙 귀한 것들이라…….”
“난 그걸 보러 왔다.”
천마의 단언에 동자의 얼굴이 대번에 피었다.
“아, 그러십니까. 잠시만요. 관리자님이 2층에 계시니 모셔 오겠습니다.”
* * *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포션을 찾으셨다고?”
병장기를 찬 무인 두 명과 함께 등장한 자.
문사복을 입고 걸어 나온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천마는 적당히 하오체로 그의 말을 응대했다.
“어떤 포션을 원하십니까? 저희 만물잡화점은 취급하는 포션의 종류가 워낙 많고 성능도 다양해서…….”
“최고로.”
천마의 말은 짧았다. 덕분에 소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한, 너 어쩌려고?”
포션은 등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특히 상등급으로 올라갈수록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간다.
소가백화점을 업고 있는 소진으로서도 감당하기 쉽지 않을, 그런 물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 생각이 있다니까.”
“하하하. 잘 선택하셨습니다!
천마의 말을 들은 중년인이 급히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천마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조금 안쪽으로 걸어가니 작은 공간이 하나 나왔다.
그곳엔 이상한 문양과 표식이 그려져 있었고, 벽 끝에 긴 탁자가 놓여 있었다.
“정말 운이 좋으십니다. 마침 저희 가게에 특상급 포션 세트가 하나 들어왔는데 그걸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한쪽 수납장을 열고는 그 안에서 목함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천마와 소진이 보이는 탁자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병부터 매우 고급스러워 보이지요? 한정판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모두 7개로 구성되어 있지요. 여기 안을 보시면.”
딸깍.
그가 목함을 열자 손가락처럼 생긴 작은 유리가 일렬로 꽂혀 있었다.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습니다. 각각 체력 증강, 내공 증강, 외상 치유, 내상 치유, 마법에 대한 저항, 신속성 증가, 200가지 독 제거의 효능이 담겨 있지요.”
“오호. 정말이오?”
“물론입니다. 여길 보시지요.”
딸깍.
그는 녹색 포션 하나를 집어 들고 그 안을 가리켰다.
“여기에 기포 자국이 보이지요? 고도로 농축된 마나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중년인은 유리병 덮개에 새겨진 붉은 밀랍으로 된 인장을 재차 가리켰다.
“맹(盟)이라는 글자 보이십니까? 무림맹에서 보증한 것이지요.”
“과연 무림맹이라면.”
천마가 끄덕였다.
정파 놈들이 한데 모여 만든 최고의 집단.
그 고지식한 놈들이 보증했다면, 꽤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소진의 반응은 달랐다.
‘안 돼! 이건 최소 하나당 금 백 냥짜리야.’
척 봐도 저건 이급 포션이다.
유리병 안에서 보글보글, 기포 자국이 올라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저 정도로 농축된 품질은 시중에서도 구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구입 가격도 엄청난 것이다.
“사겠소.”
“이한! 아, 안 돼!”
“단, 지금은 돈이 없으니 이름으로 달아 주시오. 외상으로 구입하겠소.”
“…….”
결국 예상했던 말이 나오자 소진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얼굴이 불처럼 붉어지는 순간.
“물론입니다. 천무학관 출신은 어느 가게에서도 우대하지요.”
상인은 의외로 후덕한 미소를 지으며 천마를 위아래로 주욱 훑었다.
“대신 물품이 물품인지라, 오늘부터 사흘마다 2부 이자가 적용되는데 괜찮겠습니까? 참고로 복리입니다만.”
“좋소. 그게 뭔지 모르지만.”
“…이한, 이건 미친 짓이야!”
호쾌하게 대답하는 천마. 그리고 뒤에서 비명을 지를 듯한 얼굴의 소진.
“아. 그리고.”
붙잡고 말리려 드는 소진을 뒤로하고 천마가 한 곳을 가리켰다.
“주는 김에 저거도 주시오. 바스다스인가 뭔가 하는 그거 있잖소.”
“바스타드 소드 말씀하시는군요?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한 손 검과 양손 검의 특징을 합친, 실용적인 병기이지요.”
그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상인은 손님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빠르게 서류 하나를 작성하며 고개를 들었다.
“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자체적으로 별도의 조사는 하겠지만, 그래도 외상에 대한 최소 절차가 필요했다.
천마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흑객.”
순간, 다시금 말리려던 소진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했다.
“천무학관 4학년 4반. 흑객으로 달면 되오.”
“어……?”
고용주가 용병의 이름을 달고 외상을 하다니.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그래서, 학관에 가게 됐다고?”
노달은 자리에 앉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분노가 얼마나 심했던지, 거처로 돌아올 때까지 제자인 흑객과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제자에게 그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딱히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 호위 대상이 약속된 시간 내에서 요구한 일이었기에…….”
“이 녀석! 그렇다고 대천마신교의 마인이 어찌 학관 따위에 들어가!”
얼굴이 달아오른 노달의 호통이 이어졌다.
“천무학관이 어떤 곳이냐! 저 구대문파의 잡놈들이 세운 학관이다! 임무든 뭐든 천무학관의 명부에 네 이름이 올라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게냐!”
“사부님, 저는 그저…….”
“자랑스러운 천마신교의 인물이 결국 구대문파에 굴복했다는 뜻이다! 이 일을 본 교의 사람들이 들으면 어찌 될 것 같으냐! 흑혈단주께서 들으면 피를 토하고 쓰러지실 것이다.”
“주. 죽을죄를 졌습니다!”
흑객은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생각해보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행하고 있다는 걸 느낀 것이다.
천마신교와 정파 무림맹의 사이는 원래부터 좋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격변의 날, 천마신교의 본단이 멸망한 그날. 소위 정파라는 것들은 리치왕의 수하들 앞에서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신강과 청해성의 수많은 양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도.
한 손도 거들지 않았다. 그 혈겁을 감당한 것은 오로지 천마신교뿐인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할꼬…….”
때문에 노달에게 옛 무림맹의 잔존세력인 천무학관은 다시없는 비겁자, 비열한 위선자들일 뿐이었다. 그런 똥구덩이 같은 곳에.
하나뿐인 제자가 명부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내 장로들과 모일 때면 항상 너를 본교를 이끌어 갈 재원이라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는데… 저잣거리에서 다진 고기나 사고 있을 줄이야…….”
잠시 흥분을 진정시켰을까.
그는 호흡을 크게 들이 마시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좋다. 너의 행동에 큰 문제가 있다곤 하나, 모든 게 천마신교의 재건을 위한 일임을 볼 때 질책은 이쯤에서 끝내마. 하나, 이 사부는 아직 궁금한 게 있다. 왜 기한을 연장했느냐? 그것도 그 녀석의 협박 때문이냐?”
“그건 아닙니다.”
“하면?”
“그를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노달의 시선이 흑객을 응시했고,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는 뛰어난 고수였습니다. 마교에 대한 이해도 깊고, 배울 점도 많아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용병과 고용주 간의 관계였지만, 제자는 점차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뚝.
흑객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사부 노달이 자신의 해명을 듣다 말고 돌처럼 굳어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사부가 보는 것은 탁자 옆, 벽에 대문짝 만 하게 내걸린 문건.
한때, 자신이 서명했던 고용주와의 계약서를 치우지 못한 것이다.
<독점적 소유권>
갑: 고용주
을: 흑객
1. 을은 내달 초하루까지 갑의 끼니 때마다 식사를 내놓기로 약속한다.
2. 을은 갑의 만족도를 위해 매끼마다 다른 형태의 식사를 제공하기로 한다.
3. 을은 갑의 허락 없이 다른 이의 식사를 차리지 못하며, 이를 어길 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기로 한다.
“…아.”
노달을 보던 흑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노여움을 참기 힘든지 두 손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특히 그를 화나게 한 대목.
“매끼 식사…….”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붉으락푸르락하던 그의 얼굴은 한없이 창백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