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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09화 (110/310)

109화. 천마의 제자 (2)

타타타탁.

화려한 채썰기가 소채를 삽시간에 부챗살 모양으로 만들어 냈다.

옆에서는 다져진 고기와 파를 넣은 찐만두가 익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반죽된 당초육이 솥 안에서 노릇노릇하게 튀겨지고 있었다.

“아직이다. 애송이.”

만두를 접시에 담으려던 소진의 동작이 멈췄다.

흑객이 충고하듯 매섭게 꼬나봤기 때문이다.

“만두소와 안의 내용물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지점을 잡아야 한다. 너무 많이 익히면 만두소가 물렁물렁해지고, 적게 익히면 맛이 조화롭지 못해.”

“…아, 알겠습니다.”

“또한 지금 네가 할 일은 만두소를 접시에 담는 게 아니라, 관창(灌腸-순대)이 오르기 전 마늘즙을 넣은 뒤 다시 튀기는 것이다.”

“그리하겠습니다.”

소진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빠르게 마늘을 짚었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조금 떨어진 탁자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실로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설로만 내려오던 천마, 그분의 유지를 계속 이어 오신 분을 제 눈으로 직접 뵙게 되다니!”

노달이 진심 탄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 전체가 터지거나 부어오르고 머리에 주먹만 한 혹 자국을 여러 개 달고 있었지만, 그는 생각 이상으로 밝아 보았다.

“쩝쩝, 뭐. 영광까지야.”

천마는 대충 옷을 껴입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씬 두들겨 패 준 뒤, 대화를 이어 가려던 중에 오히려 노인이 질문을 해 왔다.

바로 천마신교와 어떤 관계냐는 것.

천마는 거기서 조금 망설였다.

아무리 그가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해도, ‘내가 바로 그 전설이다’라고 하려니,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작 극마 수준의 놈에게 고전했다는 것이 맘에 걸린 것이다.

해서 천마는 자기 자신을, 있지도 않은 ‘숨겨 둔 제자의 후예’라고 대충 둘러댄 것이다.

옆에 있던 흑객 역시 자신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딱히 별말을 하지 않았다.

“하면, 그 전설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노달의 물음에 천마는 턱을 들며 말했다.

“무슨 전설?”

“대격변의 날. 본 교의 마지막 교주께 천마께서 깃드셔, 저 리치왕의 진격을 홀로 막아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천마의 눈이 슬쩍 커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보는 눈과 귀도 없었을진대, 본교가 전멸당한 그 싸움을 아는 자가 있는 건가.

뭔가 뜨뜻미지근하지만, 그것도 대충 둘러댔다.

“…뭐, 그랬을걸?”

“오오오오! 역시 천마님!”

노달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그의 얼굴이 지나치게 달아오르니 천마는 ‘너무 때렸나’ 하는 괜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흥분해 있는 노달을 향해 천마는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왔다.

“네 말을 정리해보면, 천마신교를 다시 재건 했지만 교주 자리가 공석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140년 전 본교가 괴멸 상태에 이르렀지만, 완벽하게 없어진 건 아니었지요. 많은 은거고수분들과 새외나 강호에 나가 있던 분들이 다시 돌아오시어 본교를 재건하셨습니다.”

감숙 대설산(大雪山).

노달은 십만대산이 있던 과거의 총단과 달리, 지금은 그쪽으로 본거지를 옮겼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허나, 제자께서도 아시다시피 본교의 지존은 가장 강한 자가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남아 있는 마인이 천 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문파로 전락했기 때문에…….”

“확실히 적군.”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성기때 전투 인원만 6만에 육박했던 과거 마교와는 달리, 지금은 고작 천여 명.

그것도 이것저것 다 채워 넣은 숫자들이다.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무인들은 5백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단(團)이라 하기에도 작은 일개 대대급. 딱 그 정도가 아닌가.

“고수들 중 극마는 몇 명 있냐?”

“열 명 정도입니다.”

“…그건 제법인데?”

천마의 눈이 조금 커졌다.

고작 천명도 되지 않는 숫자에, 극마 고수가 10명이나 된다.

꽤 흥미 있는 얘기였다.

“혹시 탈마도 있어?”

“두 분 계십니다.”

“정말? 누군데?”

이번엔 천마는 진심으로 놀랐다.

탈마는 자신이 오른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극마를 넘어섰다고 알려진 부교주 천월성.

그도 탈마와 극마 사이 경계라는 초극마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흑혈단주와 살운단주입니다.”

노달은 마교의 총병력이라는 2개단, 그들을 통솔하는 단주가 모두 탈마라고 했다.

“역시 세상이 변해줘야 제대로 된 수련을 하는구만.”

얼굴이 새삼 밝아진 천마가 거듭 물었다.

“어땠냐?”

“예? 무엇이…….”

“탈마에 올랐다면 보통 마인들과는 다를 것 아냐. 근처에 가면 어떤 느낌이 들었어?”

“아, 그것 말씀이십니까?”

노달은 고개를 끄덕이고 옷깃을 여몄다.

천마가 자신의 소견을 통해 신교에 남은 고수를 파악하려 함을 안 것이다.

“탈마에 오르신 날, 두 분을 대면한 느낌은 정말 기이한 느낌이었습니다.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근처에만 있어도 온몸이 위축되는, 거대한 산맥과도 같은 기운이 전해졌습니다.”

“에잉, 그놈들 아니구만.”

하나, 노달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아쉽다는 듯 쯧, 입맛을 다셨다.

“극마에서 한 번 더 진일보할 때 다들 그런 착각을 하지.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선 탈마가 아닌, 그저 극마를 뛰어넘은 경지일 뿐이야.”

“그런……?”

“탈마가 되면 의도적으로 기운을 흘리지 않는 이상,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변하는 극마와는 또 다르지. 그래서 오히려 조금 모자라게 느껴지니까.”

천마의 말에 노달의 어깨가 살짝 내려앉았다.

“하면 탈마는 아니란 말입니까?”

“물론이지. 탈마에 이르면 자연스레 상단전과 중단전, 하단전이 교류를 할 수 있는 선이 만들어지게 돼. 그리되면 상단전의 영향을 받아 몸이 최소한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 형태로 바뀌지. 필요에 따라서 자연의 기운까지 끌어 쓰기 위함이거든.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내 생각에 저둘은 탈마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극마를 초월한 수준일 뿐.”

“허어……!”

천마가 쏟아내는 말에 노달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저 전설, 전승으로만 내려오는 높은 경지를 이리도 예리하게 짚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

또 생각해 보면 납득할 만했다.

그의 사부는 마교 역사상 제일 강하다고 알려진 분이 아닌가.

“나왔습니다.”

투욱. 투욱.

탁자에 요리가 푸짐하게 차례졌다.

고기부터 시작해, 채식 요리까지 뭐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흑객과 소진이 옆자리에 앉았고.

“근데… 여기에 뭣 때문에 왔냐?”

잠시 그들을 쳐다보던 천마가 그제야 본론으로 넘어갔다.

“남이현의 일 때문입니다.”

* * *

서창(西昌) 남이현(南理縣).

사천 땅에서도 곡창지대로 손꼽히는 지역.

식량 작물이 풍부하여 농업을 기반으로 상거래가 발달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노달의 말로는 거기에 천마신교의 주요 분타가 있다고 했다.

무너진 천마신교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와 자원을 필요로 했고, 때문에 가장 비옥한 땅에서 수익을 얻어 땅을 사고 유통망을 확보해 왔다는 것.

“…한 달 전부터 주기적으로 연통을 보내던 교인들의 소식이 끊겼습니다. 혹시나 하여 조금 더 기다려 봤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죠. 흑혈단주께서 직접 명을 내리셔서 제가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흑객이 헉 하고 되물었다

“사부님, 쉽게 믿기 힘듭니다. 남이현이라면 몬스터들에 대한 대비가 확실히 되어 있는 곳이 아닙니까? 그런 곳이 피습당했다면 사천 바닥에 진작 소문이 퍼졌을 겁니다.”

남이현은 곡창지대인 만큼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갑작스런 웨이브, 몬스터들의 급작스런 출몰이 있어도 어지간한 방비는 충분히 갖추고 있는 곳.

특히 그곳은 천무학관에 비견된다고 하는 ‘관도 수비대’가 뒤를 봐주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각 지역의 재력가들이 학관 졸업자들을 고용해 만든 조직으로, 과거 위험 등급 6급의 와이번이 떼로 출몰했을 때에도 민가에 끼친 피해 하나 없이 사태를 수습했을 정도였다.

“습격을 당한 것이라면 그렇겠지. 조사를 나간 인원들만 사라졌으니까.”

“서, 설마 천령조원들이……?”

“그래,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아.”

흑객의 표정이 일순 경직되었다.

천령조(天令組).

10명의 인원으로 편성된 조직이다.

하지만 일개 조직이라고 만만히 보면 큰 오산이다.

이렇게 강호에 은밀히 활동하는 자들은 본교에서 엄격한 심사로 선발한 ‘정예요원’이었으니까.

“왜? 그놈들이 강해?”

천마가 짧게 묻자 노달이 아닌 흑객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고작 10명뿐이지만, 천령조의 조장은 초절정에 달하고, 부조장 둘은 모두 절정입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도 모두 절정을 바라보는 일기당천의 고수들입니다.”

“음…….”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옆에 있는 흑객의 무위가 절정, 때로는 그 이상이라 할 때.

그보다 더 높은 초절정에 오른 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 보통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최근에 얻은 극비정보를 말씀드리자면…….”

노달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중요한 얘길 꺼내려고 하니, 괜히 옆에 있던 청년이 눈에 거슬린 것이다.

사실 본 교에 관해 얘기를 꺼낼 때부터 처음부터 그랬다.

“저기, 저는 이만…….”

분위기를 파악한 소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의자를 밀 때였다.

“그냥 말해. 문제 생기면 죽이지 뭐.”

“컥.”

소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죽인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속이 확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거기다 그들은 재빨리 달아날 틈도 주지 않았다.

“남이현 북쪽에 있는 산 주변에서 검은 깃발의 오버로드(Overlord)를 봤다고 합니다.”

“…헉!”

“쿠. 쿠아토요?”

흑객이 반사적으로 신음을 흘리고 소진은 비명을 질렀다.

“오버로드? 그건 또 뭐야?”

그 사이에서 천마는 천연덕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군장, 우리 말로는 패주라 부를 수 있습니다. 트롤이나 오크들의 무리를 다스리는 놈이지요.”

“아, 트롤과 오크라면 그린스킨? 이름이 쿠아토라고?”

“예, 리치왕의 수호장 아락취의 직속으로, 가장 강하고 빠른 자이죠.”

“직속, 오른팔 같은 건가?

천마는 대충 끄덕였다.

사실 여기까지가 딱, 소진에게 설명을 들은 그가 아는 척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노달은 그걸 모르고 주억거렸다.

“웬만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족속들입니다. 무림인들을 무서워해서가 아니라, 지능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들이 나타났을 땐, 대부분 흔적도 없이 적을 몰살시킵니다. 특히나 오버로드 쿠아토는.”

노달이 꿀꺽, 침을 삼키며 설명을 이었다.

오버로드.

무리의 힘을 증폭하고, 무리가 큰 만큼 강해지는 오크로드와는 또 다른 변이 개체.

동족의 몸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거나, 피에 미치게 만들어 전투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나 오버로드 중 쿠아토의 흉험함은 다른 것에 있었다.

“먹습니다.”

“먹어? 뭘?”

“사람은 물론이고 병기나, 돌, 기물까지도 먹어 치운다고 알려진 괴물입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강해집니다. 그쯤 되니 아락취의 오른팔 대접을 받는 것이겠죠.”

쩌억.

어지간한 천마도 입이 벌어졌다.

사람은 물론이고 돌이나 쇠까지 먹어 치운다니. 이쯤 되면 옛적에 산해경에 실린 괴수의 수준이지 않은가.

“특이한 친구네. 그래서 그놈 얼마나 강한데?”

“얼마나냐 하시면…….”

노달이 우물거렸다.

이제보니 천마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흑객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지난번의 네크로맨서보다는 강합니다. 최소한.”

“그럼 잡자.”

탁.

천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결론 내렸다.

“무립니다. 절대로..”

“그, 무슨 소리를……!”

흑객이 경악하고 노달이 펄쩍 뛰었다.

다른 자도 아닌, 오버로드 쿠아토.

적어도 극마 고수 셋은 있어야 하고, 그 수준에 달하는 마법사도 보조하지 않으면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고 평가받는 몬스터.

흑혈단주도 그를 보면 피하라 하지 않았는가.

“괜찮아. 일단 가 보자고.”

천마는 씨익 웃었다.

그러며 미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마침 할 것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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