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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12화 (113/310)

112화. 기습 공격 (1)

천마 일행은 주변 언덕에서 상황을 보고 있었다.

사방에 널린 몬스터의 대군.

크르르르르!

하늘을 나는 와이번.

그리고 그 아래 대충 세어도 천 가까이 되는 수많은 트롤과 오크들.

이 정도면 말 그대로 군세(軍勢)였다.

소진은 말할 것도 없고, 나름 흉악한 것 좀 많이 봤다고 자부하는 노달과 흑객도 긴장했다.

“더 센 놈이 있는데? 그 방향으로 좀 더 뒤를 봐.”

“예……?”

노달은 천마의 말대로 다시 한번, 눈에 안력을 집중해서 더 뒤를 보았다.

그리고 수백 장 뒤에, 그보다 조금 더 큰 몬스터를 보고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저 녀석이!”

조금 전 착각한 녀석은 오크 로드.

이놈이 쿠아토다.

놈은… 그냥, 달랐다.

압박감이나 기세를 제외하고, 그냥 덩치부터 달랐다.

일반적인 오크들의 평균 신장은 180센티 정도. 좀 세고 강한 놈들은 2미터에 육박한다.

하지만 쿠아토는 키부터 3미터를 넘었다.

오크가 아니라 오거라고 해도 믿을 정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피부색.

온몸이 검다 못해 시커먼 색이었고, 피둥피둥 어마어마한 살집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두 눈까지 기분 나쁜 검은색이었다.

“저놈… 저놈이 본 교의 수많은 교도들을…….”

으드득!

노달은 이를 악물었다.

여신(余烬)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 뜻은 잿불.

잿더미 속에 숨은 불씨라는 의미로, 마교의 개척 마을 중 하나였다.

총단이 무너진 이후, 마교는 어떻게든 세력을 모으려고 애썼다.

몬스터를 피하고, 옛 무림맹의 눈을 피해, 새 신도들을 받아들이며 어렵게 어렵게 터전을 만들었다.

그렇게 겨우 만들어진 거점.

한때 1만에 달하는 인구까지 도달했을 때, 마을에서 도시에 가깝게 성장했을 때, 놈이 왔다.

폭식의 쿠아토.

놈은 이름 그대로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 치웠다. 사람이고 병기고, 심지어 건물들까지.

여신의 1만 인구 중에 8천가량이 놈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뿌드득!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현 교주 대행인 흑혈단주의 명령.

놈과 마주치면 절대로 달려들지 말라는 엄한 명령이 아니었다면, 죽든 말든 저 몬스터의 군세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였다.

“노달, 혈기는 이럴 때 부리는 게 아니다. 그리고 처음 말한 네 말처럼 저놈과 맞서 싸울 상황도 아냐.”

천마의 표정 역시 굳어져 있었다.

처음엔 아이템 하나 얻는 가벼운 상황이라 생각했지만, 저 녀석을 보자 생각이 확 달라졌다.

얼핏 느껴지기로는 이제껏 자신이 싸워 본 상대들, 그러니까 데몬즈 루인 던전의 청명 대사나 카르삭 왕릉의 가고일 왕보다 약해 보였다.

그래서.

그랬기에 더 위험했다.

‘약한 녀석이 이런 대규모 군세를, 그냥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냥 무예나 힘이 강한 그런 게 아닐 터.

권능, 혹은 이능.

흑객의 몸에 깃든 흡혈귀 블라드처럼, 뭔가 괴상하고 초월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것.

“저놈들이 그 오거란 놈이지?”

천마는 쿠아토의 주변에 서 있는 덩치들을 가리켰다.

“예. 맞습니다.”

흑객이 대답했다.

하도 덩치가 큰 놈들이라, 이번에는 그도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체고 대략 6미터가량.

그리고 어깨 폭이 4미터에 달하는, 그냥 ‘파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 근육 덩어리들.

육상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거 십여 마리가 시커먼 변종 오크, 쿠아토란 놈 주위에서 마치 호위라도 하듯이 몰려 있는 것이다.

“흐음.”

스윽.

천마는 반대쪽 평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부우우. 부우우우.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인간의 병력이 천천히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뒤쪽에서 방어진을 쌓기 위한 일환일 터였다.

지금의 반쯤 무너진 성벽으로는 몬스터의 거센 공세를 막을 수가 없으니.

“여신이라… 그래, 저놈이 신도 8천을 먹었다고?”

노달이 부들부들 떨며 간략히 요약한 말에 천마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예,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천마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노달.”

“예.”

천마의 부름에 그는 곧장 두 손을 모아 예를 차렸다.

“저놈을 치자. 신도들의 피를 흘리게 한 놈이라니, 못 봤으면 모르되, 이대로 그냥 지나갈 수야 없지.”

“……!”

“교주… 님의 제자님! 안 됩니다!”

노달은 눈을 부릅뜨고, 흑객은 황급히 외쳤다.

폭식의 쿠아토.

놈은 악명이 자자한 네임드 몬스터다.

그 호위로 오거 십여 마리가 있고, 그 앞에는 오크 로드가 있다.

심지어 공중에는 와이번들까지 떼를 이루어 날아 다닌다. 이 상황에 싸움을 거는 것은 상식선에서 자살행위였다.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걱정 마라. 저 녀석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을 거다.”

“예? 그게 무슨……?”

“저들의 군세를 봐.”

천마가 트롤과 오크를 가리켰고, 흑객과 노달은 그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오크와 트롤을 합치면 천 가까이 되는데, 이들을 통솔할 놈은 지휘관급 놈들은 보이지 않는다. 쿠아토와 오크 로드는 저리 먼 곳에 떨어져서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 있지 않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건 너무 의미가 명확해. 저놈들은 그냥 무력 정찰을 나온 거다.”

노달과 흑객이 그 말에 전선을 다시 살폈다.

크워우! 캬아아악!

바글바글한 몬스터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몬스터는 없다.

그나마 눈에 띄는 지휘관급 오크와 족장이 몇 마리 있긴 하나 이들은 이상하게도 제일 앞, 전선에 있었다.

“애초에 확전할 생각이 없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간만 보러 왔다고 할까.”

천마는 사실 처음부터 이들의 의도를 읽고 있었다.

학관에서 배운 전술 지식은 차치하고, 그는 이미 오래전에 수천의 마교도들을 지휘해 본 적이 있다.

그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지금의 싸움은 서전(緖戰).

전술도 전략도 없이 그냥 대규모로 밀어붙여 자신들의 우월함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지, 작정하고 덤벼드는 것이 아닌 거다.

“혹은 솎아내기도 있겠지. 양민들이 보기엔 무섭겠지만, 움직임이나 기세로 보아, 저 중에 절반은 약한 놈들이다.”

“저게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저 중에서 대가리만 따 버리면 놈들은 기세를 잃고 물러날 거다. 딱 그 정도만 하면…….”

이 진군을 막을 수 있다.

천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노달, 너는 저기 날아다니는 놈. 대가리 셋 달린 저걸 잡아라. 할 수 있겠나?”

“충분합니다, 제자님. 잡고 오겠습니다.”

터억! 파앗!

노달은 두 손을 크게 마주 잡아 보이고 바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팟! 팟! 휘이익!

순식간에 화살처럼, 사람이 멀어져 가는 걸 보고 소진은 그냥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흑객.”

“옙!”

“너는 소진을 데리고 피신해라. 이 싸움은 네가 끼어들기에는 조금 거칠다.”

“…예.”

흑객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두 손을 맞잡았다.

그가 소진의 허리를 붙잡자, 소진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있다 입을 열었다.

“이한, 너는…….”

“꼬맹이, 나중에 보자.”

천마는 씨익 웃었다.

파앗! 샤아아악!

그리고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쭉쭉 뻗어 나가는 신형을 보고, 흑객이 아쉬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자. 우리도.”

타악!

능력이야 어쨌든 교주님의 친구. 거기에 소가상단의 아들이다.

일단은 인근에 있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생각이었다.

* * *

“사전에 대비한 대로 움직여라! 시간은 곧 피다! 너희가 준비하는 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수비대장 조삼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방어진을 치고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일단 전선의 병력을 뒤로 빼고 있었다.

“후퇴는 아직인가? 빨리 제4방어지대를…….”

“대장님! 조삼 수비대장님!”

임시 막사에서 한참 작전을 전달하는 도중, 참모 하나가 뛰어와 그를 불렀다.

힐끗.

조삼이 그를 보고 눈꼬리가 사나워졌다.

참모가 혼자 온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사람 다섯을 달고 들어온 것이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피난민들을 통제하라고 했더니!”

“그. 그게 말입니다!”

참모가 주춤하자, 뒤에 있던 인물 중 하나가 나섰다.

“여, 잠시만요. 저희가 수비대에 합류하겠다고 한 겁니다만.”

서글서글한 눈매에 허리까지 오는 금발. 조삼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눈을 좁혔다.

“실례지만 존함이?”

“브레이커 클랜장, 일표라고 합니다.”

“…뭣?!”

순간 잘못 들은 사람처럼 눈을 부릅뜬 조삼.

그는 그제야 상대의 목에 붉은 스카프가 매어져 있다는 걸 확인했다.

“브, 브레이커 클랜이라면…….”

“예, 몬스터 사냥꾼들이지요.”

처억! 조삼은 급히 대장들의 앞에 나서서,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

“모.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명성이 자자하신 분들이 여기엔 어떻게…….”

“당연히 도우러 왔죠. 근처 객잔에서 묵고 있는데, 갑자기 이쪽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길입니다.”

“허어…….”

조삼은 그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클랜. 보통 헌터라 불리우는 몬스터 사냥꾼들의 모임.

기본적으로는 용병, 내지는 사냥꾼의 모임이기에, 위험은 피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따진다.

하지만 상위 클랜, 무림맹 공식으로 서열이 등재된 100개의 클랜들은 성격이 다르다.

특히 브레이커 클랜은 몬스터와 던전을 수도 없이 작살 낸(Breaker) 클랜이다.

위기에 처한 마을이 있거나, 이번처럼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을 때 빠지지 않고 도움을 준, 존경받는 클랜.

“명성이 자자하신 브레이커 길드가 도와주신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 보이니 인사는 나중에 합시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일표가 말을 끊자, 조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솔직히 좋지 않습니다. 지금 방어선을 뒤로 물리고 있는데, 몬스터들이 계속 달라붙어서…….”

“그러면 저희가 후방으로 가서 추격을 저지하겠습니다. 병력을 철수시키고 부대를 재편하시죠. 그럴 시간을 벌겠습니다.”

“…진심이십니까?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만.”

일표의 말에 조삼이 피식 웃었다.

“몬스터 천 마리. 저희가 저놈들 전부를 상대할 수는 없어도, 진격 속도 정도는 늦출 수 있습니다. 서두르시죠. 이 시간에도 죽어 가는 사람이 있으니.”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처억!

조삼이 잔뜩 붉어진 눈으로 군례를 취했다. 그러고는 주변에 있는 분대장들에게 지시했다.

“다들 들었겠지? 우린 일단 4전선에 간다. 거기서 방어진을 다시 꾸린다. 따라오거라.”

“옙!”

“서둘러라!”

명령이 이어지자, 뒤에 늘어서 있던 병사 수백이 대답을 하곤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표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사람을 구하는 건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스터, 잠깐.”

그 옆으로 정후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장벽 너머 거대한 군세를 보며 말했다.

“상대가 오크라고 쉽게 보지 마. 저놈들 눈 뒤집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당연히 알지. 후우, 저 숫자라면.”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근 천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 무리. 놈들이 바글바글 몰려드는 것을 보고 일표는 입을 열었다.

“서이는 마법 준비. 어스퀘이크와 파이어 월. 그리고 무휘는 서이를 지켜 주고.”

“알았어.”

“응.”

서이와 무휘가 끄덕였다.

적 숫자가 많은 경우에는, 마법사가 일일이 일반 공격 마법으로 처치하기가 힘들다

천 마리의 오크와 트롤이라면, 고위급 마법사라 해도 그 반도 잡기 전에 탈진할 터.

그러니 마력 소모가 크다 해도, 지진이나 불의 벽 같은 광역 마법으로 전체 효과를 주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지금의 작전 목적은, 적 섬멸이 아니라 아군이 후퇴할 시간을 버는 거다.

“그래도 위는 누가 막아 줘야 할 것 같은데?”

“와이번이라면 내가 맡지.”

일표의 말에 원홍의 얼굴이 굳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 위험해, 마스터.”

상공에서 선회하는 수십 마리의 와이번 떼. 그중에 머리가 셋 달린 녀석의 힘은 측정 불가다.

함부로 달려들었다간 목숨이 위험하다.

“누가 싸운대? 난 그냥 유인. 시선을 끌고 내뺄 생각이야.”

그 말에 일표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발을, 정확히는 하얗고 작은 날개가 달린 신발을 들어 보였다.

플라이 마법과 대쉬(순간 질주)가 걸린 ‘헤르메스의 신발’ 이라는 마법 아이템.

싸우지 않고 약만 올리고 도망가는 건 이걸로 충분하다.

“신비? 텔레파시로 지시 부탁해. 서이? 혹시 모르니까 헤이스트와 힐을 준비해 주고. 원홍, 너는 나를 좀 도와줘.”

“알았어.”

“어어. 좋아!”

철컥. 타악!

붉은 건틀렛을 찬 남자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다가왔다.

그는 최전선에서 물러나지 않는 전위. 이제껏 수많은 싸움에서도 투지와 용기를 잃지 않은 이였다.

“가자! 저 새끼들 조져 버리자!”

일표가 제일 선두에 서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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