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기습 공격 (3)
천마가 오거를 이리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두꺼비처럼 못생긴 몰골에다, 몽둥이 삼아 10여 미터는 되는 통나무 한 그루를 뿌리째 뽑아 쥔 모습.
이쯤 되면 위압감을 넘어 현실감각이 이상해질 정도다.
“이놈이 위험 등급 9였나 10이었나…….”
생긴 것만 봐서는 힘만 센, 둔한 곰 같았다.
하지만 학관 수업에서 가르치기론 곰의 탈을 쓴 여우라고, 정확히는 여우처럼 영악한 게 아니라 몸놀림이 빠르다 했다.
딱히 다른 이능이나 권능은 없지만 높은 마법 내성, 특히 화염에 유독 강한 내성을 지닌 녀석.
체구에 비해 상상도 못 할 힘을 지녔다고 했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 어떤 학관생이 물어봤는데, 다른 것 없이 순수한 힘만으로 따지면 전 몬스터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 꼽힌다고 했으니까.
크워어어어어!
‘하긴. 기세가 본 교의 웬만한 놈들보단 낫군.’
특히 포효할 때 느껴지는 기세는 천마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저 소리만 시끄러운, 오크가 내지르는 흉성과는 급이 달랐으니까.
‘그런데 이놈이 왜 여기에 있지?’
본래는 군세 밖에서 수장 주변을 호위하고 있던 오거.
어지간해선 움직이지도 않을 녀석이 여기 와 있다.
여럿이 아니라 홀로 전선으로 온 걸 보면, 정찰병으로 보낸 듯했다.
혹은 지진이 일어나고 화염이 솟으니, 그 방해물을 제거하라는 뜻일지도.
“그오오오오오!”
주춤주춤.
오거의 외침에 물러나는 오크들.
놈의 포효는 귀청을 때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충격을 발산했다.
그리고 천마는 그런 그놈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보통 때는 곧장 달려들었을 그이지만, 곧장 싸움을 걸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심득.
한순간 다가온 이것을 어떻게 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참에 이걸로 한번 해 보자.’
콱!
바스타드 소드를 땅에 박고는 천마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 서서 까닥까닥! 오거를 향해 손짓하며 상대가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그 태도가 거슬렸는지 놈이 사납게 돌격해 왔다.
구워어어어얼!
오거. 육상 몬스터의 제왕이라 불리는 놈.
하지만, 이제껏 천마가 싸워 온 네크로맨서 청명 진인이나 카르삭 왕릉의 카르삭 같은, 네임드 몬스터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다.
달리 말해, 지금 이놈, 오거 한 마리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단 말이다.
‘이 신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경험을 쌓아야 해.’
콰직!
오거가 든 통나무가 천마가 있는 곳을 때렸다.
하지만 가볍게 피해 냈다.
그는 그곳에서 고작 한 보 떨어진 옆에 서 있었다.
패애애액!
이를 본 오거의 얼굴이 대번에 사나워졌다.
통나무를 옆으로, 천마가 있던 방향으로 세차게 휘둘렀다.
하나, 어느새 뒤로 물러난 천마.
그때부터였다.
“쿠어어어!”
상대가 약삭빠르다는 걸 인지했는지, 오거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부우웅! 부우웅! 부우우웅!
가까이에 있던 오크들이 통나무가 쓸고 지나간 바람에 휩쓸려 나가거나, 눈먼 통나무에 얻어맞고 머리가 터지는 이가 있을 정도로.
빠르고 날쌔며, 위협적인 공격이 쏟아진 것이다.
콱! 콰직 쾅! 쾅! 쾅! 쩌어어억!
사방팔방으로 휘두르는 통나무의 공격에, 자연히 천마의 움직임도 상당히 빨라졌다.
찌르르릇!
“큭!”
그러던 차, 이리저리 피하던 천마가 한 대 맞더니 10미터 넘게 부웅 날아가 버렸다.
“무슨 놈의 힘이…….”
천마의 눈에 약간의 당혹감이 담겼다.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 갈비뼈가 부러진 듯한 느낌이었다.
이 정도라면 평소의 호신강기를 올려도 피해를 입을 정도의 힘이 아닌가.
권능도 이능도 딱히 없고 가진 것은 근력일 뿐이라지만, 왜 저 몬스터가 육상 몬스터의 제왕이라 불리는지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해 보자.’
찌르르릇! 찌르르릇!
목숨을 담보로 한 팽팽한 줄다리기.
이는 굉장히 위험한 방식이었다.
도망쳐야 한다고, 안 그러면 죽는다고.
온몸의 감각이 수많은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천마는 실실 웃어 댔다.
“좋구나. 이 느낌.”
그러고는 상대의 궤적을 읽었다.
한 번도 싸워 보지 못한 적의 공격 방식을 이해하는 것.
아니, 단순히 이해함을 넘어, 어떤 사고를 하는 것.
이는 불가에서 말하는 육신통의 하나로, 자신이 중심이 아닌 타인에게로 사고를 넓혀, 그것을 깨달음으로 체화해 내는 싸움 방식이다.
콱! 콱! 쩌어엉 컹!
물론 오거는 보통 몬스터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천마의 예상을 빗나갔다.
두 보 옆으로 비키면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공격 권역은 다섯 보를 넘었고.
십여 차례 연속 공격이 날아들어 이제 적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겠다고 생각하면, 무슨 소리냐는 듯 십여 번을 더 휘두르곤 했다.
심지어.
퍼어억!
호심공을 4성까지 올리면 되겠다 싶은 공격에도 십성으로 최대한 끌어올려 방어했건만, 그조차도 예상 이상.
쿨럭!
이번엔 꽤나 중한 내상을 입었다.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오거가 흉험한 포효를 터뜨렸다
-쿠어어어어!
척 보기에도 느껴졌다.
얼굴이 붉어진 녀석은 가히 미치기 일보 직전이란 걸.
고개를 든 천마는 입가에 피를 뚝뚝 흘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맞았는데 네놈이 왜 열받냐?”
뭐, 대충 짐작은 갔다.
놈이 가진 것은 그야말로 맹수의 본능.
아무래도 매번 일격 필살의 공격을 가하는 데도 아슬아슬하게 피하거나 맞아도 죽지를 않으니, 분노가 더해진 듯했다.
그리고 천마는 그 분노의 근원을 알고 있었다.
바로 두려움, 공포였다.
“이번엔 좀 제대로 와라.”
처억.
천마는 두 발을 벌렸다.
내상도 장난 아니지만, 그간 받은 충격에 뼈가 몇 군데나 부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이 순간을 즐겼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희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그가 선호하는 가장 짜릿한 싸움 방식.
생전에 그의 싸움을 본 많은 이들은 그냥 죽고 싶어 미친놈의 개싸움이라고 평했지만, 천마는 그런 말에 그저 코웃음만 쳤다.
-죽음을 모르는 놈이 어찌 삶을 논하느냐.
생사를 건 혈투에서 상대의 투로(鬪路)를 읽는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몸이 굳고 의지가 바스러지는 경험을 수차례 반복해야 성장할 수 있다.
극마는 그런 경지다.
머리로 사고를 하기 전에 몸이 반응해야 한다.
의식이 반격을 떠올리는 순간 몸이 이미 나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체득, 몸에 완전히 익히는 것.
두근두근! 두근두근!
사선에 섰을 때 심장은 가장 격하게 뛴다. 모순되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생존 욕구다.
죽음에 가까이 갔을 때, 신체의 감각은 극도로 증폭된다.
눈이 밝아지고 귀는 예민해지며, 심장이 미친 듯 박동 치며 온갖 감각이 미쳐 날뛴다.
그걸 넘어설 때, 그걸 익숙함으로 잡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사선을 넘어섰을 때, 상대의 투로를 정확히 볼 수 있게 된다.
쩌어어엉.
통나무가 사방으로 휘둘러졌고, 이내 오거의 내려찍기가 이어졌다.
그에 이번에 취한 천마의 동작은 간단하게.
스윽.
한 손을 드는 행위였다.
* * *
“저런 미친 짓을!”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멀리서 천마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반응은 제각기 달랐다.
갑자기 싸움에 뛰어든 청년.
그는 엄청난 무위를 선보였다.
천에 달하는 적의 군세 속에 뛰어들어 오크들을 도륙하기란, 12대 클랜인 브레이커 자신들이라 해도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할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간 백 퍼센트 죽을 테니까.
일단 이쪽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청년이 난입하면서 이곳으로 몰려오던 오크와 트롤들이 그를 상대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서이와 무휘는 한숨 돌리고 안전히 물러났다.
그리고 뭘 하나 보고 있는데, 조금 전부터 청년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거에게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가진 전사라도, 지척에서 오거의 피어에 직격당하면 손발이 꼬이고 몸이 굳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니었다.
싸우는 것도 아니고 방어하는 것도 아닌, 그저 앞에서 알짱대다 쥐어 터지기를 계속하는, 저건 대체 뭘 하는 짓일까.
“나도 모르겠어. 좀 엉뚱한 추측을 해 보자면…….”
뒤쪽에 있던 신비의 미간이 좁아지며, 천천히 말이 나왔다.
“몸풀기. 수련을 하는 것 같다.”
“뭐?”
“이런 미친!”
서이와 무휘는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육상 몬스터의 제왕, 살육의 야수. 오거를 앞에 두고 수련을 하다니?
“뭔가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 아냐?”
“저건 수련법이 아니라 자살법이라고.”
그들의 항변에 신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느새 벗고 있던 여행자의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것 외에는 짐작 가는 게 없어. 수치가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낙폭이 너무 커.”
“수치? 아아. 내력 수치가 요동친다고?”
무휘가 갸웃하다 끄덕였다. 서이가 다시금 의문을 표했다.
“싸울 때야 다 그런 거 아냐? 내공을 사용하는데?”
“내공을 사용하면 당연히 낙폭이 크지. 하지만 싸울 때는 아냐. 경계와 긴장, 예측 못 한 공격에 대비를 하거든. 그래서 전투 중 내력 수치는, 최대가 100이라고 하면 최저는 보통 80이야. 하지만 저 사람은 그 정도가 아니야.”
신비의 말이 길어졌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제야 서이와 무휘는 알아차렸다.
신비가 얼굴이야 무표정하지만, 속내는 엄청나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쾅! 쾅! 쾅! 쾅!
오거의 날뜀이 계속 이어졌다.
사방의 흙먼지가 가득 날리고, 죽었다 생각한 그 속에서 청년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히 죽었을 법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미친!”
갑작스러운 신비의 외침에 무휘가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얼마나 오르내리길래 그래?”
객잔에서 360만의 수치가 뜬 이후로, 그는 미연에 안경알을 바꿨다.
여행자의 안경의 알은 3가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바꾼 안경알은 무려 9,900만까지 측정이 가능하다.
“…들으면 믿지 못할 거야.”
신비는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평소의 무표정이 완전히 날아가고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가장 적게는 천.”
“…….”
일반인의 숫자다.
하지만 내가기공의 무림 고수가 내공을 그렇게까지 갈무리할 수 있다는 거에 두 사람은 놀랐다.
“그리고 가장 많게는…….”
객잔에서 마주쳤던, 노인과 함께 있던 청년.
당시에는 360만을 초과했다.
그리고 바꿔 끼운 안경으로 측정했을 땐 550만을 기록했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비는 이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9,900만이네.”
“말도 안 돼!”
“그거 고장 난 거야.”
서이도 무휘도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무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신비를 바라봤다.
내력의 최대치가 1,000에서 9,900만이라니.
1,000에서 9,900만의 낙폭도 이해할 수 없지만, 갑자기 내력이 1갑자가 넘게 는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아주 1억이 넘는다고 하지, 그냥?”
무휘의 어이없다는 말에 신비는 간단히 대답했다.
“아마 넘을 거야.”
“… 뭐라고?”
불신으로 무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신비는 아주 약간, 평소처럼 냉정을 찾고 말했다.
“이 안경의 알도 9,900만이 넘어가는 건, 측정이 되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