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21화 (122/310)

121화. 몬스터의 반격 (3)

홍매학관 인근 저잣거리.

그날도 여느 때나 다름없는, 평온한 날이었다.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과, 팔러 온 상인들. 그리고 가게 앞에는 새로운 신상품을 계시해 놓은 알림판까지.

하지만 그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던 저잣거리는 거구의 불청객 하나가 들이닥치자 완전히 난리가 났다.

쾅! 콰카카캉!

대지가 울렸다. 무지막지한 힘에 가게는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고, 주변의 손님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피해!”

“괴물이다!”

감당 못 할 폭력이 폭풍처럼 날아온다. 가게 주인도, 상인들도 누구 하나 대항하는 이가 없었다.

이히이이잉!

마구간의 말들도 탈출을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다.

쩌엉!

하지만 곧바로 덮쳐 오는 거대한 통나무 한 방에 모두 물거품이 됐다.

도망치던 사람들도, 말들도, 집을 부수며 날아드는 일격에 맞아 공중으로 솟구치거나, 저 멀리 날아갔다.

크워어어어!

“무슨 이런 괴물이…….”

포효하는 거대한 몸체를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몬스터.

홍매학관 인근에는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나긴 했다.

괴물들이 마을 근처에서 출현하고, 갈 곳을 잃은 가고일이나 구울, 그리고 와이번들이 갑자기 공격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위험하긴 해도 일상의 범주였다.

마을에 상주하는 무사들이나, 인근에서 파견 나와 거리를 순시하는 호위병들에게 곧잘 제압이 되곤 했다.

이번에도 그 든든한 수호자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 출현한 몬스터는 누구도 막지 못했다.

“어서 없애자!”

“아냐! 덤비지 마! 이놈은 격이 달라.”

오거의 존재는 저항은커녕, 감히 맞서 싸우려는 생각까지 앗아가 버릴 정도의 강대한 위협이었다.

콰우우우!

쾅! 쾅!

“으아아악!”

“연통! 연통을 전해! 빨리!”

압도적인 힘과 체력. 그리고 천부적인 싸움 실력.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거대한 몸.

이제껏 저잣거리를 순시하던 무사들은 재빨리 도움을 요청했다.

이 주변에서 이놈들을 막을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

바로 홍매학관 이었다.

홍매학관 주 건물.

“그러니까 이 사건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딱. 따닥. 딱.

같은 시각, 홍매학관은 한창 수업 중이었다.

이들은 학기별로 시험을 치는 천무학관과는 수업 체계가 달랐다.

그들은 평소 수업 시간을 중시한다. 주에 한 번씩 쪽지시험을 치르며, 모든 점수가 학기 중에 반영된다.

그래서 그들은 여름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재앙이 발끝까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저건 뭐지?”

“어?”

예나 지금이나, 이변을 알아차리는 건 모범생이 아니라 엉뚱한 녀석들이다.

한창 수업 중이던 교실에서, 2학년의 학관생 하나가 창가를 보다 말고 옆자리의 학생을 두드렸다.

쿵. 쿵.

거대한 크기의 몬스터 하나가 운동장을 지나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이라서, 실전 수업의 교보재인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형면! 수업에 집중해라!”

교관의 호통에 남자 학관생의 몸이 흠칫했다.

하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아직 아무 이변도 알아차리지 못한 학생들 중, 유일하게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교관님, 창문 밖에 몬스터가 있는데…….”

“그 무슨 소리냐?”

계속된 수업 방해에, 교관 마충(馬筮)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드르륵!

그리고 반투명하게 가려 놓은 창문을 크게 열어젖히며 호통 질렀다.

“대체 밖에 뭐가 있다는…….”

콰아아아아아앙!

그때였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창틀이 뜯겨 나갔다.

우드드드득!

사람 몸통 굵기의 거대한 통나무가 창가를 긁고 지나갔다. 자리에 가까이 앉아 있던 학관생 서너 명은, 거기에 휘말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투욱. 쿠웅!

거대한 발 한짝이 지면에 걸쳤고, 이내 거구의 몬스터가 이들을 바라봤다.

크르르르…….

2미터 크기의 거대한 얼굴. 눈에는 흉악한 살기가 빛나고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가 침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까아아악!”

“으아악!”

곧장 교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천마와 싸운 오거보다 더 큰 덩치를 자랑하는 이 녀석은 신장이 무려 8미터.

그중 머리 크기만 2미터.

게다가 온몸에 파괴적인 근육을 둘둘 감은 거대한 몸이었다.

특히나 상징처럼 들고 있는 거대한 통나무는, 학관에서 몬스터 수업을 받아 본 학생이라면 모를 순 없었다.

“오거다!”

“피해! 도망쳐!”

우르르르!

아이들의 외침 속에서 놈과 정면으로 마주한 마충은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오거가 어떻게 여길…….’

홍매학관의 교실. 그리고 절대로 마주쳐선 안 되는 몬스터.

이럴 리가 없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하는 현실도피의 사고가 잠시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의 놀람은 잠깐이었다.

팟.

그는 곧장 교재를 던지며, 온몸의 내력을 두 손에 끌어모았다.

학생들에게서 떠나 자신에게 시선이 향하던 몬스터를 본 마충은, 즉각 몸을 던져 장법을 시전했다.

“하아앗!”

철장파산(鐵掌破山)의 신공. 홍매학관에서 모든 교관들에게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장법이었다.

그는 일격에 자신의 모든 내력을 때려 부었다.

퍼어어억! 쿠우으우우우-.

제대로 먹혔다.

하지만 1갑자 이상의 강한 진기가 자신의 몸을 때렸음에도, 오거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석판도 일격에 부순다는 거력의 장공이 쏟아졌는데, 분명 생물이라면 쓰러지진 않아도 피곤죽이 되어 비명을 흘려야 하는데도.

두두두두둑.

녀석은, 너무도 여유롭게 통나무를 다시 집어 든 것이다.

“어서 가라! 어서!”

아직 교실을 채 나가지 못한 학관생에게 버럭 소리치며 마충은 또다시 달려들었다.

타닥!

이번엔 자신의 전공 분야인 각법. 그중 무영각을 운용해 상대의 머리를 노린 것이다.

쾅! 쾅! 콰아아앙!

1갑자에 가까운 내력이 담긴 발차기가 오거의 머리를 때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연속해서 이어진 수십 번의 발차기.

원래라면 한 번에 상대의 급소를 일곱 번 가격하는 빠른 발길질이었지만, 오거의 머리통은 사람보다 더 컸다. 딱히 급소랄 것도 없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내기를 뿜었고, 맞는 순간 놈의 몸이 휘청일 정도로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런.’

하지만 연속으로 각법을 날려 대던 도중 마충은 느꼈다.

오거가 얻어터지는 와중에도, 놈이 든 통나무가 자신을 향해 무지막지한 힘으로 휘둘러지고 있다는 것을.

퍼어어억!

“…….”

의식이 끊어졌다. 상대의 통나무에 맞자마자 마충의 몸이 쭈욱 날아갔다.

쿵!

인간의 육혈이 마치 성문을 뚫는 파쇄추처럼 교실의 벽을 뚫었고.

쾅! 쾅! 쾅!

벽을 부수며 날아가다, 또 벽에 맞고, 또 뚫고 들어가 벽에 맞고를 반복.

콰카콰 쾅!

마지막으로 건물 외벽을 부수며, 학관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가히 상상을 벗어나는 미지의 힘이었다.

“그오오오오-!”

교실에 들어온 오거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어붙은 학관생들을 향해 통나무를 휘둘렀다.

“으아악!”

“크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교관들의 낭랑한 설교가 이어져야 할 교내에, 죽음과 울부짖음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쿵! 쿵! 쿵! 쿵!

입구에 두 마리.

쿵! 쿵!

옥상에 두 마리.

콰콰캉! 쾅! 콰지직! 쿠웅!

2층 교실에 세 마리.

모두 여덟.

구오오오오!

육지 몬스터의 제왕이라는, 오거 여덟 마리가 홍매학관의 팔방에서 일시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다.

홍매학관 기숙사.

마법진이 곳곳에 설계된 이곳은 홍매학관 4학년생들이 기거하는 곳.

4학년의 교육과정은 대부분의 학관이 동일하다.

천무학관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4학년생은 교내에서 수업을 받는 것보다 실전에 참관하며 그 성과를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기숙사에 머무르는 4학년생은 많지 않았다. 전체의 반절 이하의 수였고, 대부분은 실전에서의 피로와 여독을 푸느라고 풀어져 있는 상태였다.

쾅! 콰콰쾅!

구오오오오!

그렇다고 무력하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적습이다!”

“대피! 무장! 산개!”

오거 넷이 입구로 들이닥치자, 먼저 기숙사에 새겨져 있던 강력한 중력 마법이 발동했다.

구우우웅!

뒤이어, 유리한 지형을 잡은 4학년 마법사들의 화염과 얼음 공격이 쏟아졌다.

콰아아앙! 쩌저정!

그그그그그!

하지만 오거에겐 유의미한 타격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이들은 화염 저항과 마법 면역이 피부에서 자동으로 발동하는 체질이었다. 아예 검강이나 강기급 파괴력을 지닌 공격이 아니고서는,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체질인 것이다.

그오오오오!

마법을 이겨 낸 이들은 곧장 입구로 쳐들어갔고, 곧장 비명이 울렸다.

* * *

“클클클클… 아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아수라장이 된 홍매학관.

그 한쪽 거대한 건물 옥상에서 이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는 자들이 있었다.

오버로드 쿠아토와 오크로드 마나트.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는 대주술사 토루스였다.

“여기저기서 죄다 부서지고 죽고, 비명을 깩깩 대는 꼬라지가 정말 유쾌하군요. 저도 가서 한자리 끼고 싶을 정도입니다. 클클클.”

진초록빛 얼굴로 토루스가 입을 열었다.

그는 매우 신나 있었다. 인간세계에서 이렇게 대놓고 한 방 먹이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인가.

야만의 피를 가진 그는, 한동안 힘을 비축할 때부터 이런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바랐다.

“방심하지 마라, 토루스. 그래도 인간의 교두들이다. 주 전력이 밖으로 나갔다 해도, 오거 몇은 쉽게 제압할 거다.”

일이 잘 진행되고 있었지만 쿠아토는 방심하지 않았다.

무림인들의 강대한 힘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특히 놈들이 한데 모이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도.

한때 목숨을 잃을 뻔했었던 위기. 그의 몸에 새겨진 흉터만큼 수많은 싸움을 거치며 얻은 지식이었다.

“뭐, 그것만으로도 목적은 달성하니,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마나트는 말했다.

그가 짜낸 성동격서는 제대로 먹혔다.

1천의 오크와 트롤이 관도 수비대와 사천의 곡창지대를 공격하자, 홍매학관의 교관과 교두들이 죄다 그쪽으로 빠져나갔다.

인간의 강점은 그도 잘 알았다.

저들은 뭉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그다음에 각개격파.

인간의 강점은 조직력이지만, 그 조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모여야만 한다. 그래서 사방으로 퍼뜨려 놓으면 약해진다. 이들이 가진 약점 중 하나는 이동 속도다.

“마나트, 오거 전사 셋을 하사하겠다. 너는 저들의 아이템 창고를 털어라.”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만.”

“이놈, 인간의 힘들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쿠아토는 눈을 부라렸다.

“우리의 어버이이신 대족장 아락취. 그분만이 아니라 네 명의 수호장들도 인간 하나를 잡지 못했다. 개개는 약하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위험 요소를 잊으면 안 된다.”

“그… 죄송합니다.”

마나트는 항변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 당시의 리치왕은, 차원의 문을 연 직후였다.

그리고 그 직전에 수십 마리의 드래곤을 처리하느라 엄청난 힘을 소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리치왕을 안식에 들게 한 것은 인간 하나였다고 한다.

분명 믿기지 않는 전승이었지만, 그렇다고 쿠아토에게 그건 믿을 수 없다는 얘긴 감히 꺼내지 못했다.

“어서 가라. 네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번 싸움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

바로 홍매학관의 아이템 창고였다.

그곳에는 ‘넘치는 심장’이라는 고대의 유물이 있었다.

오크들의 번식력, 힘, 경우에 따라선 잠재적인 이능력 까지 깨우치게 만드는 신비한 룬의 돌.

이는 과거 쿠아토가 목걸이로 지니고 다니던 오크의 신물이었다. 그걸 인간의 고수들에게 습격당하며 잃었다.

그 뒤로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 홍매학관 녀석들이 그걸 가지고 연구하다, 사방에 파장을 울려 위치를 알게 된 것이다.

“쿠아토 님은……?”

“난 네 녀석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겠다.”

“아, 옙.”

이번 성동격서의 가장 큰 방침.

바로 홍매학관의 교두들이 한데 뭉치지 못하게 하는 것.

제아무리 쿠아토라도, 단신으로 홍매학관에 돌격했다가는 절대로 당해 낼 수 없다.

한때 망했다 어쨌다 말을 해도, 이들 중 화경의 고수도 다섯이 넘는다.

더군다나 7서클 마법사들도 몇 명 있었다.

따라서 쿠아토와 오거들은 학관 내에서 수많은 학관생과 주요 건물을 파괴하며, 놈들이 한곳에 뭉치지 못하고 사방에서 지역방어를 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전에, 최대한의 피해를 주고 재빠르게 떠난다.

이것이 이번 작전의 개요.

“그럼 무운을.”

후욱!

마나트가 고개를 숙이더니, 바로 그 모습이 사라졌다.

산들바람의 걸음(Walk of Breeze). 조용히 움직이는 이상, 모습과 형체를 볼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의 팔찌를 사용한 것이다.

“좋아… 그럼.”

쿠아토는 고개를 돌렸다.

“어디, 어떤 교두들이 오는 지 좀 볼까?”

도끼를 든 그의 입가에는 흉악한 살소가 감돌았다.

* * *

“저깁니다.”

노달과 천마는 서둘러 홍매학관에 도착했다.

비밀 분타 회회리는 마침 홍매학관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학관이 급습당했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바로 지름길을 통해 이리로 온 것이다.

“학관 지도는?”

“여깁니다.”

노달은 급히 품에서 준비해 둔 약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거대하고 복잡한 학관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정말 쿠아토와 싸울 예정입니까?”

다짜고짜 달려 나온 천마의 움직임에 노달은 따라가기도 벅찼다. 무려 수십 리가 넘는 거리를 경공술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걱정이 앞섰다.

정말로 싸운다면… 교단의 가장 중요한 인재를 잃는다면, 그 타격은 어찌할까 하고.

“싸워? 지금? 뭐 하러?”

“예?”

뭔 소리냐는 듯 말하는 천마를 보며 노달은 오히려 당황했다.

그럼 여기까지 이토록 빨리 달려온 이유가 무엇인가. 분명 쿠아토 그놈을 잡자고 말한 것이 조금 전인데.

“음. 그러니까… 저기군.”

천마는 지도를 확인한 후 한 건물을 가리켰다.

척 봐도 눈에 띄는 건물.

홍매학관 본관. 건물 크기부터 가장 거대했고, 벽에서부터 주변 지대까지 새겨진 마법진은,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그저 대놓고 누구의 침입도 불허한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건물.

“저기는 왜……?”

“아이템. 돈 부족하다며.”

“……?”

“값나가는 게 잔뜩 쌓여 있겠는데. 저걸 털어 오면 본 교에 꽤 큰 도움이 될 거야.”

천마는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짧게 신호하고는 말을 이었다.

“부잣집에 불이 나면, 창고 경비는 비는 법이지. 가자. 훔치러.”

훅!

그리고 천마는 다시 경공술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