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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22화 (123/310)

122화. 몬스터의 반격 (4)

홍매학관의 본관은 작은 성채만 한 크기였다.

학관의 교두, 교관들이 관리하며 옛 역사와 주요 기밀들이 처리되는 곳.

여기서는 회계, 금전적인 처리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예산의 분배, 그리고 집행. 앞으로의 수익 계획도 포함이다.

다른 학관이라면, 돈놀이나 한다고 비난을 받겠지만, 파산을 두 번이나 겪어 본 홍매학관의 입장에서는 돈은 곧 목숨이었다.

쿠구궁! 쿠궁!

돈이 얽히는 곳은, 어디를 가든 방비가 삼엄하다.

돈을 쓰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은 몬스터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차압을 당해 본 홍매학관에겐 확실히 그랬다.

그래서 본관의 금전 처리는, 엄선된 고수들과 치밀한 마법 장치 등으로 겹겹이 세워진 경비 아래서 진행된다.

가히 철옹성을 연상하게 하는 곳 가운데, 유독 시커멓게 철로 지어진 거대한 금고가 있었다.

매령지관(魅靈芝關).

홍매학관의 모든 아이템이 모여 있는 곳.

영약과 비급, 그리고 신병이기, 아티팩트 등, 값비싼 귀물이나 연구 중인 아이템들은 모두 1차적으로 매령지관에 등록된 후에 분배된다.

아이템 보존학과가 따로 만들어질 정도로 엄중한 관리를 자랑하며 그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도, 이곳만을 지키는 책임관 교두와 교관들이 항상 순시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그리고 강력한 마법진. 중원의 진법과 서역의 마법으로 결계가 세워진 이곳은, 어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도 방어할 수 있게 설계된 건물.

매령지관은 그렇게 삼중 사중으로 엄격하게 지켜지는 곳이었다.

“저건 뭐야?”

그 매령지관의 책임관 조휘(趙輝)는,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그르릉. 그르르릉.

맞은편, 무림전술연구관 건물 앞으로 걸어가는 거대한 거체.

키가 컸고, 온몸은 근육으로 둘러쳐져 있었으며, 한 손에는 거목의 통나무로 만든 곤봉을 들고 있는 거인.

“저거… 오거 아닙니까?”

옆에 있던 기양천(寄陽天) 교관이 말하다 말고 툭, 하고 입이 벌어졌다.

“아니, 당연히 오거인데…….”

사실 조휘도 저게 뭔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다. 그저 너무 기상천외한 일이라서 반사적으로 물은 것이었다.

고블린이나 코볼트도 아닌 오거? 그게 다른 곳도 아닌 홍매학관의 본관 앞에 나타나?

그것도 세 마리나?

사막에서 물고기가 퍼덕거리는 걸 보면 이런 기분일까. 위험지대에 파견 근무를 나가기 전에는 절대 볼 일이 없는 몬스터가, 절대 있을 수 없는 곳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반응이 늦었다.

쾅! 콰콰콰콰캉!

내가 졸려서 헛것을 보고 있나?

혹은, 어느 괴팍한 마법사가 또 환상 마법을 쓰고 있나? 하고 갸웃거리는 사이.

눈앞에서 건물 하나가 박살 나고, 벽이 거짓말처럼 쓸려 나갔다.

“으아아악!”

“꺄아아악!”

천정이 무너지고, 부서진 벽의 잔해에 맞은 조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르르륵.

오거는 생물의 내장을 파헤치듯, 뜯겨진 건물의 내부에서 부상당한 조교들을 끌어냈다.

우지지직!

그리고 과자 까먹듯, 부상당한 조교 하나를 먹어 치웠다.

사방에 피와 비명이 번지고, 괴성과 함께 오거가 빠르게 행동을 개시했다.

“우오오오오오!”

쿵! 쿵! 쿵!

두 놈이 뛰쳐 나갔다.

한 마리는 건물의 입구를 틀어막았고, 또다른 놈은 뒷문을 점령했다.

콰드드등! 쿠우웅!

나머지 한 놈은 건물의 기둥을 때려, 계속해서 붕괴를 가속시켰다.

“으악!”

“크아아악!”

내부는 아비규환이었다.

황망한 중에 출구로 뛰쳐나온 조교들은 오거와 마주쳤다.

그들도 잠시 눈앞의 오거에 눈을 의심했고, 그사이 뒤이어진 통나무 일격에 저항 한 번 못 해 보고 피떡이 되었다.

퍼억! 철벅! 푸더덕!

애초에 저항해도 별 무소용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4학년 학관생 수업을 마치고, 조교가 되었다 한들.

육지 몬스터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거, 힘 그 자체가 권능인 몬스터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으니까.

“조 책임관님! 이거 어떡합니까?”

교관 기영천이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거리 20장. 눈앞에서 조교와 4학년생들이 죽어 나간다. 그걸 보고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매령지관의 경비는 절대 자리를 이탈하면 안 되었기에.

“조 책임관님!”

“…제길.”

조휘 역시 이를 갈았다.

애초부터 어이없는 사태였다.

매령지관, 본관의 아이템 창고 코앞에 거대 몬스터가 나타나는 일 자체가.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교무처에서 곧장 추가 순찰과 지원이 돌아야 했다.

사고가 터진 거야 그렇다 쳐도 수습은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

하지만.

쿠궁- 쿵- 쿵쿠궁-.

교무처에서는 지원이 오지 않았고, 본관 주변에서는 연신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

이곳처럼 오거, 혹은 다른 거대 몬스터의 침입이 일어난 거다. 여기저기서 병장기 소리가 들려옴은 물론 간간이 비명 소리도 섞여 들렸다.

‘대체 어느 정도인 거지?’

조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매령지관은 엄중한 방비로 보호되는 곳이다.

다르게 말하면, 밖에서 보기도 힘들지만 안에서도 바깥을 관찰하기 힘든 지형이다.

쿠구궁! 쿠와아아아!

그래서 소리로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자잘한 폭음. 뒤이어 끔찍한 괴성과 오싹한 이능의 파동이 흘러 퍼졌다.

듣기만 해도 직감했다. 저건 뭔가 위험하다. 상대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카각! 쐐애애액!

하지만 그다음 귀를 찢는 검강과 마법의 소리가 있었다. 뒤이어 또다른 폭음과 고통스런 몬스터의 비명 소리.

쿠웅! 쿵! 크아아아아!

소리가 멀어진다. 조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격퇴한 건가…….’

아마 교무처에 상주하는 홍매학관 최고의 교두들이 나선 것이리라.

뭣도 모르고 감히 본관에 쳐들어온 몬스터는 급하게 뒤로 빠지는 듯했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남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파괴가 이어지는 곳은, 본관과 그 옆에 있는 기숙사 건물.

그곳에선 이제 겨우 한 사람 몫을 하게 된, 홍매학관의 인재들이 꽃처럼 지고 있었다.

“으아악!”

“피해!”

꽈… 아아악!

청력을 펼쳐 주위를 확인한 조휘의 주먹에 피가 맺혔다.

기숙사와 연구관에 있던 조교나 4학년생은 무공 수준이 아직 낮았다.

2년, 혹은 3년만 더 실전에서 굴렀다면 모르되, 지금 당장은 감히 오거 같은 중형 몬스터들과 대적할 만한 실력이 아닌 것이다.

“조 책임관님!”

“…그래. 알았다.”

기양천의 비명에 결국 조휘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가슴에서 작은 호각을 꺼내, 있는 힘껏 불었다.

삐---이이이익! 삐익! 삐----이이익!

귀를 찢는 요란한 소리가, 본관 1층을 메아리쳐 울렸다.

“저. 전원 소집이요? 이건 너무…….”

그 신호를 알아들은 기양천이 당황했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 눈앞에서 연구관 조교와 4학년생들이 죽어가고 있다.”

채앵!

조휘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에는 선명한 푸른빛 검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책임관님! 저희 임무는…….”

“우리 임무 따위는 나도 이미 알아!”

주저하는 기양천에게 조휘가 버럭 소리 질렀다.

매령지관의 경비는 절대 자리를 이탈하면 안 된다.

이 안에 보관 중인 아이템들은, 그저 값나가는 재산이 아니라 홍매학관이 두 번의 파산을 겪으며 모은 피눈물이었다.

“그래도 저들을 구해야 한다. 저들이 홍매학관의 미래다. 재물이나 아이템은 다시 모을 수 있지. 하지만 사람은?”

“…….”

기양천이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멀리서, 안 보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모르되, 눈앞에서, 고작 20여 장 앞에서 혈육 같은 학관생들이 죽는다.

아무리 매령지관이 중요한들, 동료들이, 후배들이 죽어 나가는 걸 두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는 것이다.

타닥! 타닥!

“조 책임관님!”

“무슨 일입니까! 전원 호출이라니!”

하나둘씩, 매령지관 경비들이 모두 모여 들었다. 하나같이 교관급 고수들이 모두 열 명.

처억.

조휘는 검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오거 3마리다. 그것도 상급으로. 거기다 몇 마리가 더 있을지 모른다.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관들이 전부 달려들어야 이길 수 있다.”

“하면 이곳은……?”

“바보 녀석들! 여기가 무슨 동네 잡화점이냐! 어떤 녀석이든 이 마법진을 뚫지 못한다. 또한, 강제로 열려면 신호를 알릴 터. 그때까지는 아이들을 구해야 해!”

타악!

살짝 주저하는 교관의 말을 묵살하고 조휘가 달려 나갔다.

그 뒤로,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며 교관들이 오거의 만행을 저지하러 나섰다.

* * *

쿠우웅! 쿠우웅!

크워어어어어!

사방에서 폭음이 일었다. 그리고 비명과 괴성이 일었다.

스르륵.

짙은 그림자 한쪽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크로드 마나트.

그는 오거들에게 달려드는 인간 열 명, 그들이 나온 어두침침한 복도의 뒤에서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경비들이 모두 빠진 것이다.

크와아아! 카우우우!

“쿠아토 님은 시간을 잘 끌어 주고 계시고…….”

저 멀리서 들리는 우렁찬 굉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품에서 잿빛 돌덩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휘우우우우…….

소용돌이치는 잿빛.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어둠.

“흐흐흐흐…….”

이건 쿠아토의 폭식의 권능, 그걸 자그마치 1년 동안 담아 놓은 영혼구였다. 어지간한 마정석으로는 담을 수조차 없는, 거대한 허(虛)의 권능.

스으윽. 지직.

그걸 마나트는 매령지관의 문에 던졌다. 영혼구는 쨍그랑 소리조차 없이 깨어지며 사방으로 굶주린 허기를 뿜어냈다.

지지직. 지지지직.

마법진이 반응했다.

홍매학관의 거대한 금고. 매령지관을 보호하는 지수화풍의 각종 마법.

그 위력은 자그마치 9서클에 달하며, 화경급 고수의 검강을 맞는다 해도 열 번 이상 버틸 수 있는 출력이 있었다.

파스스슥. 피직! 피직!

하지만 쿠아토의 권능인 폭식은,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마법이든 내력이든 죄다 먹어 치우는 허기와 허수의 힘이었다.

스르르르…….

그래서 소리도 반발도 없이, 마법진의 모든 힘을 삼켜 버렸다.

말 그대로 먹어 버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매령지관의 철문에 둥그런 구멍까지 만들어 버린 것이다.

“크큭.”

마나트는 만족스럽게 그 구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찾고자 했던 것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애초부터 목표는 단 하나.

크기는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어두운 초록빛 보석이었다. 그 보석을 원래 보호하고 장식하던, 인간의 해골들은 전부 벗겨져 앙상한 몸통이 드러나 있었다.

“드디어…….”

그건 실로 모욕적인 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회가 되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감히 그린스킨의 힘을 연구한답시고 인골을 벗겨 낸 그 덕분에 파장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절그럭.

마나트는 거대한 목걸이, ‘넘치는 심장’을 손에 넣었다. 그는 흡족한 얼굴로 목걸이를 가슴에 품고. 크게 도끼를 휘둘렀다.

“그럼, 이제까지의 보관료다.”

우드득. 쩌저저적!

매령지관 1층에서 요란한 파열음이 일었다.

홍매학관이 그간 모아온 각종 신병이기들이 박살 나는 소리였다.

* * *

쿠르르릉!

“어?”

천마는 홍매학관의 본관으로 가다 말고 눈을 의심했다. 뭔가 믿기지 않는 것을 본 것이다.

“노달, 저기가 매령지관 맞아?”

매령지관. 홍매학관의 아이템 금고. 그렇게 듣고 털러 온 곳이 영 이상했던 것이다.

“맞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아니, 마법 어디 갔어? 방어 마법. 경비도 없고. 텅텅 비었잖아?”

천마의 손짓에 눈을 돌린 노달도 기막힌 소리를 냈다.

“어……?”

거대한 마법진의 결계. 본관 건물에서부터 뻗어 나와 1층과 지하까지 두루두루 엮인 방어 마법.

특유의 희고 붉은 마금속의 선이, 죄다 어디 갔는지 눈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고, 고장 났나?”

“고장… 은 아니고. 음.”

노달이 당황하며 중얼거리자, 천마가 턱을 긁다 말했다.

“딱 보니 누가 해체시켰구만?”

“해체요? 누가 말입니까?”

노달이 반문했다.

홍매학관 최대의 결계.

9서클에 달하는 지수화풍의 복합 마법진. 이걸 해체시키는 건 보통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사실, 당장 천마를 따라오면서도 그가 전전긍긍 고민하던 일이 그것 아니었던가.

“누군 누구겠어. 저놈들이지.”

황당해하는 노달에게, 천마는 천천히 한 곳을 가리켰다.

쿠쿵! 크아아악!

매령지관의 맞은편, 오거와 한창 혈투 중이던 홍매학관 교관들이 노달의 눈에 들어왔다.

“모. 몬스터가요?”

노달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어.”

천마가 대답했다.

“몬스터가… 기습을 해서… 몰래 아이템 창고의 마법을 해제했다고요?”

“어.”

천마가 다시 대답했다.

노달은 이제 미친놈 쳐다보듯 하는 눈이 되었다.

“그게 말이 되는…….”

“말이 안 되면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래?”

“…….”

그리고 천마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노달로서도 다른 해석이고 뭐고 떠오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잘 짜여진 체계. 여기 오는 도중에 여러 방향에서 폭발음이 울렸지. 아무래도 홍매학관을 습격한 몬스터는 우리와 같은 목적이었나 본데.”

“…….”

그리고 뒤이어진 천마의 해석에, 노달의 얼굴이 굳어졌다.

작전과 계획. 오크로드의 지휘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건 오크가 아닌, 인간이나 잘 법한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만큼 교활하고 음습한 오크로드가 존재한다는 것.

그렇게 걱정하는 가운데, 천마가 배시시 웃었다.

“뭐, 상관없지 않나? 우리야.”

그러고는 주변을 한 번 살피고선, 눈앞의 건물에 턱짓을 했다.

확실히.

훔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공범이 있으면 더 좋잖아?”

그 말을 끝으로 천마는 허공을 날았다.

홍매학관 3층.

입구가 아닌 창가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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