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오크로드의 권능 (4)
“크아악!”
투학!
천극태의 한쪽 팔이 날아갔다.
“이런!”
“미친!”
제운비와 뇌천벽이 즉각 검기를 뿌려 냈다.
검강까지 끌어올리려면 많은 집중과 시간이 필요했던 탓이다.
촤아악!
화경 고수의 검기.
검강에 못지않은 파괴력을 지닌 이 기운은 결국 쿠아토의 몸에서 피가 튀게 만들었다.
하지만 놈은 부상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역의 불독이 그러하듯, 한 번 문 먹이는 놓치지 않았다.
크르르르! 와지직! 와작!
뜯어 낸 천극태의 팔을, 상어처럼 이빨 가득한 아가리로 씹어 삼키는 쿠아토.
놈은 입안에서 터지는 인육과 피 맛을 음미하며, 계속 천극태에게 달라붙었다.
타악!
“차압!”
그걸 제운비가 제지했다.
그는 허공으로 크게 뛰어올라, 시야를 확보하고, 쿠아토의 뒷덜미를 향해 검강을 쏘아냈다.
쩌어어엉!
“크륵!”
이번 공격만큼은 경시할 수 없었던지, 쿠아토가 급히 물러났다.
콰아아앙!
대지를 찢어발기는 폭발과 폭음.
돌의 파편과 흙먼지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가운데, 지민 교두가 마법으로 부상당한 천극태를 뒤로 빼냈다.
“앞을 막아 줘요!”
“걱정 마시오!”
“시야가 나쁘다! 조심해!”
뇌천벽과 제운비가 흙먼지 자욱한 전방으로 나섰다.
“크윽… 제, 제기랄……!”
천극태가 온몸에 피를 쏟으며 욕을 내뱉었다.
쿠아토의 움직임은 그들의 생각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인간이 펼칠 수 있는 경공술로서도, 거의 최고조에 달하는 움직임이었다.
워낙 덩치가 크고, 온 몸이 출렁이는 살로 덮여 있으니, 왠지 모르게 움직임이 느릴 것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다.
그 대가는 값비쌌다.
잠시 눈을 돌렸던 천극태는 오른팔을 잃었다.
생으로 뜯겨 나간 팔은 출혈이 막심했다.
“괜찮아요? 일단 뒤로 빠져요!”
“안 돼… 그랬다간…….”
지민 교두가 급히 마법으로 지혈을 하며 천극태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왼손으로 검을 쥐었다.
“균형이 무너져! 큭!”
교관 넷이서 아슬아슬하게 대치를 유지하던 상황.
여기서 천극태가 빠지면 나머지 셋이 그만큼 더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슈아아아아---!
힘겹게 자세를 갖춘 천극태.
그의 흐릿한 눈에 주변의 흙먼지가 급속도로 사라지는 것이 들어왔다.
“폭식이다!”
“조심!”
스르릉!
제운비와 뇌천벽이 바로 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쿠아토가 그들의 검강을 무시하지 못하듯, 그들 역시 쿠아토의 저 공격은 절대 경시할 수 없었다.
폭식.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쿠아토 고유의 권능.
콰드득! 드드드득!
바닥의 돌이, 무너진 건물 파편들이,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화살처럼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얄궂게도 천극태를 구한 제운비의 검강이, 역으로 쿠아토가 힘을 발동할 시간을 주고 만 것이다.
휘이이익-!
단단히 검에 기운을 불어넣고 있던 제운비도, 뇌천벽도 신음을 흘렸다.
“크윽!”
“윽!”
뒤에서 밀어 닥치는 바람은 둘째 치고, 그저 가만히 서 있는데도 몸에서 내력이 줄어들었다.
폭식이 집어삼키는 힘. 허(虛)의 소용돌이.
그건 흡사 역(逆)의 브레스 같았다.
닿는 범위의 모든 것이 힘을 빼앗기고 빨려 들어간다. 형체가 있는 물체든, 형체가 없는 기운이든 전부.
“꺄아아악!”
“엇!”
그리고 이런 공격에는 아무래도 마법사가 취약하게 마련. 마법학 교두 지민이 마력을 빼앗기고, 미친 듯 불어닥치는 돌풍에 몸이 떠올랐다.
펄럭펄럭! 찌이이익!
로브. 마법사들의 복장이자 보호구는, 하필이면 바람에 취약했다.
매서운 강풍이 몰아닥치자, 편안하고 낙낙하던 느낌의 로브는 밧줄처럼 지민의 몸을 휘어 감았다.
“막아!”
“핫!”
뇌천벽이 딸려가는 지민 교두를 붙잡고, 제운비가 검강을 쏘아냈다.
한 명은 방어. 그리고 한 명은 공격.
평소에는 사이가 좋지 않던 두 사람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완벽하게 합을 맞추고 있었다.
투콰악!
“됐……!”
순수한 파괴의 힘.
제운비의 검강이 드디어 쿠아토의 팔을 날려 버렸다. 네임드 몬스터든 뭐든, 이것 앞에는 장사가 없다. 이걸로 승세를 탔다고 생각한 순간.
쿠와아아악!
쿠아토가 다시 돌격해 왔다.
아까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제운비와 뇌천벽, 지민 세 사람이 방어에 집중한 순간.
스팟!
“천 교두!!!”
“이런!”
쿠아토의 신영이 떨어져 있던 천극태를 덮쳐 버렸다.
팔을 잃고 출혈이 심해 휘청거리던 그는 그대로 쿠아토에게 어깨를 ‘씹혀’ 버렸다.
“크아아악!”
와그작! 으드득!
“바리코!”
지민은 무영창으로 마법을 쏘아내고 울컥 피를 토했다.
고위마법사인 그녀라도, 캐스팅 없이 의지만으로 마법을 발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치이이잉!
천극태의 주변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솟았고, 강력한 힘이 쿠아토를 밀어내, 둘 사이의 거리를 벌렸다.
크르르르!
하지만, 쿠아토는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온몸에 퍽퍽 칼바람을 맞아 피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눈앞에서 빈사 상태에 빠진 천극태를 향해 기어코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천극태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 역시 화경의 고수.
쇄애애애액-!
급격하게 내공을 끌어올린 강기를, 아가리를 벌린 쿠아토에게 날린 것이다.
서걱! 파직!
강기에 맞아 얼굴의 절반이 날아간 쿠아토.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놈은 멈추지 않았다.
상처를 감내하고, 기어코 천극태를 물려고 든 것이다.
‘이 미친!’
‘이 미친!’
커억!
천극태는 급히 검과 팔로 막으며 호신강기를 펼쳤지만, 쿠아토의 이빨은 그런 걸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와지직! 우득!
“……!”
놈은 그대로 먹이의 어깨 어림을 물어, 씹었다. 끔찍한 고통에 천극태는 비명조차 흘리지 못했다.
“하앗!”
“합!”
쐐애액!
뒤늦게, 쿠아토의 뒤를 노리고 날아드는 두 줄기의 강기.
서걱! 치잉!
쿠아토는 물러섰다. 반응이 늦어 등의 일부와, 아까 날아간 팔의 일부가 더 잘려 나갔지만, 입에 인육을 한껏 담은 놈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이미 목표는 달성했기 때문이다.
“처. 천 교두!”
“이런…….”
급하게 살피러 온 제운비와 뇌천벽. 두 사람은 천극태의 몸을 보고 신음했다.
입가로 줄줄 피를 흘려대는 천극태. 그의 오른쪽은 팔에서부터 가슴까지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안색은 창백하고,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쿨럭… 쿨럭… 커헉…….”
폐까지 손상이 갔는지, 기침조차 제대로 못 하는 그.
목숨이 위태로운 치명상이었다. 당장 뒤로 후송해서 치료받게 해야 했지만, 통탄스럽게도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르륵. 그르륵.
괴이한 목울음을 울리는 쿠아토.
놈도 분명 상태가 좋지 못했다. 검강에 맞은 얼굴의 삼분지 일이 날아가고, 눈 하나도 없어진 상황.
거기다 지근거리에서 맞은 칼날 바람 때문인지, 온몸은 걸레짝처럼 찢어지고 피륙이 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제. 3. 명. 남. 았. 군.”
놈은 웃고 있었다. 여전히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이 녀석이…….”
제운비와 뇌천벽은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오크 주제에 인간의 말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눈앞에서.
굼실굼실. 스르륵.
전신에서 피를 흘리던 쿠아토. 놈의 상처가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폭식.
이 위험한 권능은 이제껏 놈이 먹어 치운 모든 것을 자신의 회복에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 * *
“후욱. 후욱…….”
마나트는 바람 걸음을 사용하며 은밀하게 이동 중이었다.
산들바람의 가호.
일종의 은신술로, 이동할 때 발걸음 소리나 기척을 줄여주는 오크들의 기예였다.
‘너무… 느리군. 이쯤에서 풀까?’
다만 은신술 계통의 기예가 대부분 그렇듯, 기척을 죽이고 이동하는 것은 이동속도를 크게 저하시킨다.
주변을 잠시 돌아보고, 홍매학관에서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 싶자, 쿠아토는 산들바람의 가호를 해제했다.
“휴우우우…….”
터덕. 터덕.
묵직한 발소리가 땅을 울렸다. 오크로드가 되면서 마나트 역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났다. 일반적인 오크보다 두 배는 커진 두툼한 몸집이 된 것이다.
그 몸을 기척 없이 이동시키느라 소모한 마나와 기운이 제법 되었다. 주변에 다른 오크들도 없이 혼자 움직이는 바람에 피로도는 훨씬 더 컸었다.
“흐흐흐흐…….”
하지만 피로를 느끼지 못할 만큼 마나트는 흐뭇했다.
두근. 두근.
그의 손에 쥐어진 ‘넘치는 심장’.
한때 오크로드였던 쿠아토를 오버로드로 진화시키고 ‘폭식’이라는 권능까지 부여했던 오크들의 신물.
원래 대족장 오크로드 아락취의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리치왕의 영면을 지키는 아락취가 바깥세상에서 활동하는 오크, 그의 후손들을 위해 하사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 마나트의 손 안에서 진한 초록빛을 뿜으며 고동치고 있었다. 겨우겨우 돌아오게 되어 기쁘다는 듯이.
‘길었다… 참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던가. 간악한 인간들의 협공으로, 위대했던 오버로드 쿠아토가 패하여 이 아티팩트를 잃어버린 후, 오크들은 절치부심했다.
이를 악물며, 오늘만을 준비했었다. 넘치는 심장은 오크들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이능에 눈을 뜨게 한다. 또한 맹렬한 활력과 번식력을 부여한다.
때문에 오크로드나 오버로드에게, 이 목걸이는 필수불가결이라 할 수 있었다.
로드의 진가는 개체의 전투력이 아니라, 수많은 오크를 양성하고 그들의 힘을 증폭시키는, 군주(Lord)로서의 정체성에 있었으니까.
우우우웅-.
“이크.”
그렇게 흐뭇해하던 마나트는, 넘치는 심장이 갑자기 고동치는 것에 기겁했다.
어린애 얼굴만 한 크기의 진녹색 보석이, 갑자기 크기가 줄어들며 주먹만 하게 변하는 것이다.
“아니다. 나는 네 주인이 아니니라!”
마나트는 급하게 자기 목에 걸려 있던 해골-인간의 두개골을 뜯어, 넘치는 심장에 씌웠다.
구우우웅-.
그러자 진녹색 보석이 불만스러운 울림을 울리며 조용히 잦아들었다. 마나트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까딱했으면 죽을 뻔했군.”
조금 전 일어난 것은 귀속 반응, 혹은 주인 의식. 아이템이 소유자를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현상이다.
스스로 원시적인 자아를 가진 귀한 에고 아이템에게서 일어나는 일로, 주인 의식에 성공하면 소유자는 아이템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낼 수 있게 된다.
오크로드로서, 오크의 신물인 넘치는 심장에게 귀속 반응이 일어난 것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이 녀석이 본래 오버로드 쿠아토의 것이라는 것.
마나토가 여기서 주인 의식을 치렀다간 자칫 쿠아토의 아이템을 빼돌려 제 것으로 만드는, 파렴치하고 명예롭지 못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건 마나트가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쿠아토가 화가 나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 해도 귀속 반응이 일어난 이상, 넘치는 심장을 양도하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귀속 반응을 해제해야 하니까.
“음?”
한데, 넘치는 심장이 다시 크기를 회복해 갈 때, 마나트는 갑자기 조여 오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패애애애액-.
“……!”
급하게 몸을 날려 피한 마나트. 그의 얼굴이 일순, 경직되었다.
콰지직! 와드득!
바로 발치에서 잘리며 쪼개지는 거대한 바위.
한 끗 차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이 날아갔을 터.
검기라는, 무림인들이 주로 펼치는 공격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베는 힘.
화경 고수들이 쓸 수 있다는 검강이었던 것이다.
“여… 네가 오크들의 대장이냐?”
그리고 검강을 날린 주범. 낯선 인물이 자신을 향해 건들건들 물었다.
마나트는 그를 보며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고작 스무 살도 안 된 앳된 얼굴 이었던 것이다.
“넌. 누. 구. 냐?”
마나트가 인간의 말로 물었다. 성대를 긁어 내는 탁한 소리였다.
“나? 천마.”
처억.
그에 천마는 어깨에 검을 올리며 피식 웃었다.
“지금 네 목숨을 거둬 갈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