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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29화 (130/310)

129화. 결과물 (1)

‘뭐지?’

쿠아토가 점으로 보일 정도의 거리에 떨어진 주술사 토루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나트의 기운이 사라졌다.

잠깐 기척을 죽인 게 아니라, 고유한 오크로드의 기운이 완전히 증발해 버린 것이다.

죽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지? 누가…….’

홍매학관의 교두는 아닐 것이다.

그는 이 안에 있던 서른두 명에 해당하는 교두의 움직임을 모두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의 병력은 본관을 휘젓던 오거에게 쏠려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외부에서 들어와 그를 죽였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를 죽였다는 건 넘치는 심장의 목걸이도 빼앗아 갔다는 얘기일 것이다.

‘일단 물러나야 해.’

전장의 상황도 좋지 못했다.

교두 몇 명의 공격에 쿠아토가 연신 밀리고 있었고, 꽤 심각한 피해까지 입은 상황이었다.

고작 교두 4명을 상대로 이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지만 현실은 현실.

다다다닷.

거기다 본관 건물에 있던 교관 백여 명과 교두 이십여 명이 이동하고 있었다.

오거들을 모두 제거한 이들은 이제 마지막 남은 쿠아토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들 전부를 쿠아토와 맞닥뜨리게 할 수는 없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텔레파시를 보냈다.

잠시 뒤 한참 싸우고 있던 쿠아토가 반응해 왔다.

-문제라니?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퇴각하시지요.

콰콰쾅!

때마침 폭발이 일어나며 흙먼지가 솟아올랐다.

뒤이어 상당히 떨어져 있던 토루스의 귀청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파가 들렸다.

그리고.

스스스슥.

그의 옆으로 쿠아토가 나타났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고, 특히 얼굴은 거의 반죽이 되어 있었다.

-샐러 드레이크.

쩌저저적. 코오오오오오!

그가 마법을 쏘아 내자마자, 땅에 균열이 생기며 거대한 덩치의 드레이크가 나타났다.

그들은 빠르게 드레이크 아가리로 들어갔고.

그리고.

쐐애애애애액.

맹렬한 돌풍과 함께 땅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 * *

컹컹! 컹컹컹!

개가 짖었다. 목줄을 쥔 축산학과 교관, 명일이 손을 들었다.

“여기랍니다.”

“파게!”

쿠르릉 와지지직!

장정들이 힘을 모으고, 무너진 건물 잔해가 끌려 나왔다. 모락모락 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울렸다.

“부상자입니다! 살아 있습니다!”

“응급조치부터! 빨리 후송해!”

구조대가 왁자하게 소리치며 사람을 끌어내고, 동여매고, 들쳐 날랐다.

멀리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제운비는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끔찍하게 당했군.’

홍매학관.

옛 화산파를 전신으로 두고 있는 곳으로, 사천에서 천무학관과 수위를 다투는 이름 높은 학관.

근래 들어서 명예보다 사리사욕을 탐한다는 오명을 얻긴 했지만, 그건 역으로 규모가 급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나 그렇게 상승 가도를 달리던 홍매학관은, 오늘 벌어진 참사로 인해 한동안 날개를 접어야 할 지경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대체! 뭣들 하고 있었던 거냐! 몬스터가 학관에 쳐들어올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 게야!”

길길이 날뛰며 학관의 경비 책임자를 꾸짖는 교두.

그리고 그 앞에서 푹 고개를 숙인 교관들.

“죄송합니다. 설마 땅속으로 이동해 올 줄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경비 책임자들은 진상을 파악한 후 보고를 올렸다.

홍매학관 담벽 아래로 지하에 거대한 동굴이 뚫렸고, 몬스터가 거기로 들어왔다고.

사실 이쯤 되면 방비에 허점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시기적으로 너무 안 좋았다. 남이현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고, 학관 대부분의 교관들이 그 일로 사방 백 리를 순찰하느라 자리를 비웠던 상황. 여기에 몬스터가 땅굴로 침입을 해 오다니.

인원도 부족한 데다 평소라면 상상조차 못 할 계교가 아닌가.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게냐!”

하지만 그 이야기에 교두는 더욱 노기를 드러냈다.

적이 무슨 신출귀몰한 수단을 사용했든, 무사와 마법사들을 키워 내는 학관이 습격을 받았다는 건 경계와 경비의 실패를 의미한다.

상식적이지 않으면 뚫린다니. 그래서야 애초에 경비를 따로 두는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특히나.

“죄다 시말서! 아니! 면벽 수련에 감봉이다! 이 머저리 같은 것들! 너희 놈들 때문에 사라진 목숨이 몇인지 알기나 하느냐!”

주르르륵. 툭. 툭.

교두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교관 다섯. 조교 열일곱. 학관생 백이십.

이번 참사에 희생당한 홍매학관의 피해였다.

부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사망자만 헤아려서 이 정도 피해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교두 천극태 중태.

홍매학관의 최고수 중 하나인 천극태가 오늘내일한다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 * *

철렁. 좌르르륵!

보석과 금전, 전표 무더기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이, 이게 다 뭡니까?”

장귀산. 마교의 비밀 분타 회회리의 분타주는 천마와 노달이 노략질해 온 것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배낭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마정석과 포션. 심지어 노달이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온 금자와 보석들은, 마교의 여러 분타를 몇 달은 먹여살리고도 남을 만한 금액이었다.

“어떤가. 이 정도면 한동안은 돈 걱정 없겠지?”

노달은 저절로 목에 힘이 들어갔고, 장귀산은 납죽 엎드렸다.

“이를 말씀입니까! 장하십니다! 정말로 장한 일을 하셨습니다. 태상장로!”

“하하하. 내가 뭘. 이게 다 제자님, 아니, 본 교의 귀인께서 나서 주신 덕일세.”

노달은 흐뭇해하면서도 공을 천마에게 돌렸다.

사실, 이번 노략질에는 여러 가지로 운이 따르긴 했다. 하지만 천마가 없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성과들이었다.

애초에 돈이 없으니까 홍매학관의 금고를 털자는 발상 자체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학관에 침입한 이후의 거침없는 행동력. 이후에 탈출할 때 조우한 오크로드를 처리한 무력.

특히나 그 와중에 펼쳐 보인 천마군림보. 그건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복원해야 할, 천마신교의 잊힌 기예였다.

“과연… 처음 뵐 때부터 범상한 분이 아닌 줄은 알았습니다만… 아마 초대 천마께서 귀인께 가호를 내려 주신 모양입니다!”

“뭐, 별거 아냐. 됐어.”

장귀산의 탄복 어린 눈길에 천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생부터 찬양이나 칭송은 교인들에게 하도 많이 받다 보니 별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천마가 가호를 내려줘? 그럴 일이 있겠는가. 애초에 그 초대 천마가 자기 자신인데.

괜히 들어 봐야 그냥 낯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그보다 이거 좀 봐 봐. 오는 길에 잡은 오크로드가 뱉은 아이템이다.”

쩔렁.

천마는 마나트에게서 얻은 넘치는 심장을 내려놓았다.

두근. 두근.

기묘하게 빛나는, 짙은 녹색의 보석 목걸이.

애초에 오크로드라는 놈이 들고 있었던 물건이니 보통은 아닐 테고, 거기에 짐작 가는 것도 더 있었다.

“추측이긴 한데, 이번 홍매학관의 급습은 이 아이템 때문에 벌어진 거 같다.”

“…예?”

“시기가 너무 공교로워. 한번 생각 좀 해 봐라.”

스윽.

천마가 손을 펴서 손가락 셋을 들어 보였다.

“먼저 남이현의 몬스터 웨이브. 다음으로 그 때문에 사방으로 교관들이 순찰을 나간 홍매학관. 마지막으로 그 전력의 공백을 틈타서 잠입한 몬스터들.”

“…….”

“이쯤 되면 뭐 느껴지는 거 없냐?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놈들의 목표는, 애초부터 이거. 였다고.”

툭툭.

천마가 넘치는 심장을 두드렸다.

두근. 두근.

짙은 녹색의 보석은 화라도 난 듯 검게 얼룩졌다가 흐릿한 빛을 뿜다가 했다.

“과연… 확실히 연구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쓸모가 있든 없든. 몬스터들에게, 적어도 오크들에게는 애지중지할 만한 물건인가 보군요.”

장귀산이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일단 교단의 모든 능력을 집중해서 이걸 알아봐. 뭐. 쓰임새를 알면 좋고, 모르면 팔아 버리면 되지.”

“아니, 제자님…….”

“무슨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노달이 뭐라 하려 하자, 천마가 다시 손을 내저어 말을 끊었다.

“홍매학관, 한동안 추적이고 뭐고 엄두도 못 낼걸. 걔네들 망했어. 거의.”

“…예?”

“망했다고. 주요 건물은 박살 났고, 사람은 수백이 죽고 다쳤다. 피해 복구만 해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이 와중에 도난품을 찾을 여력이 있을 리가 없지.”

천마는 홍매학관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매령지관에서 노달은 그저 돈 될 물건만 찾느라 바빴지만, 천마는 기감을 퍼뜨려 홍매학관 안에서 벌어진 사태를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가 듣고 느끼고 관찰한 것을 설명해 주자 노달이 안심하고 장귀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과연.”

“그 정도면 수색에 나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군요. 애초에 포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째서?”

노달이 묻자 장귀산이 톡톡,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두 분 말씀대로라면, 매령지관은 애초에 그 오크로드가 파괴하다시피 했잖습니까? 우리는 몰랐지만, 홍매학관은 그 아이템이 오크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겠지요. 그렇다면 애초에 그 오크로드가 저 아이템을 훔쳐 갔다고, 다른 것들도 그 와중에 손상되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생각을 잘못했군. 그렇다면 값나가는 것들을 골라 챙겨 왔어야 하는데.”

노달이 뒤늦게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

장귀산은 그 얼굴을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건 또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가져오신 것들은 당장 쓸 수 있는 현물 자산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홍매학관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아주 높은 가치의 아이템에는 뭔가 추적이라든가 그런 조치를 해 뒀을 겁니다.”

“그 말이 맞다.”

천마가 거기서 끄덕였다.

그가 매령지관에서 챙긴 아이템들, 그리고 분명 강력해 보이지만 뭔가 꺼림칙했던 마력의 느낌을 말해 주자 노달과 장귀산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조치지요.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결국 뒤탈 없이 가져올 수 있는 최대한을 가져오셨으니, 더는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그래…….”

“아참, 그리고 태상장로님, 제자님. 아니, 흑객과 함께 온 소년 말입니다.”

노달이 한숨을 쉬자, 장귀산이 갑자기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가상단의 소진? 그가 왜?”

“엄청난 걸 밝혀냈습니다. 덕분에 아주 난리가 났고요. 잠시 저를 따라 오시겠습니까? 이건 직접 보여 드려야겠습니다.”

“……?”

그러고는 신나는 걸음으로 앞장섰다. 노달은 갸웃하며, 뭔가 좋은 일이 생겼나 하고 생각했다.

* * *

캉캉! 후욱후욱!

회회리의 대장간에서는 단조와 판금 작업이 한창이었다.

풀무 위에서 쇠를 달구는 자, 쇳물을 녹여 땜질을 하는 자 등.

이십여 명이 넘는 건장한 체구의 사람들이 한창 쇠를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후욱!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열기가 끼쳐 왔다.

“좀 더 들어와 보십시오.”

전각 옆에 있는 대장간에 들어간 장귀산은 노달과 천마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큰 고로(高爐) 앞에 섰다.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후끈 달아오르는 엄청난 열기가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걸 보십시오.”

“뭘 말인가?”

“이 열기 말입니다. 이 열기의 근원이 노달 어르신께서 가져온 아이템, 화염의 룬스톤이랍니다.”

“…룬스톤?”

전혀 쓸모 없다고 여긴 아이템.

그것이 장귀산의 입에서 언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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