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34화 (135/310)

134화. 다시 돌아가는 학관 (4)

“오! 이한이다!”

“이한이 왔어!”

천마는 조금 놀랐다.

그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묘하게 변한 것이다.

‘왜들 이래?’

예전에, 기억하기로는 그가 들어설 때면 다들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것도 2학년 3반 전체가.

하지만 지금은 마치 대단한 사람을 본 것처럼, 학관생들이 서로 수군거리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 몸에 힘을 빡! 주고 뻣뻣하게 손을 흔드는 것이다.

“어, 어이, 이한…….”

“주말 잘 쉬었어? 나 이번에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치 서문영처럼, 혹은 운소령처럼.

그저 교실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반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여간에 어린애들은 무슨 생각인지…….’

천마는 이것도 그저 애들의 변덕이겠거니 싶었지만, 사실 학관생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번 반 대항전.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은 아니었지만, 천마는 승리에 혁혁한 기여를 했었다.

서문영에게 작전 수립의 단초를 주고, 마지막에는 좀 얻어걸리긴 했지만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3반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쉽게 진 4반도 제법 고득점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 4반을 이긴 3반은 감독관 전원 일치로 역대급으로 높은 평가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의 이한을 보던 적대감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호의를 가진 이들이 생겨났다.

특히 여학생들 중에서.

“이한! 이한! 너 대체 어떤 무공을 익히기에 그리 강해진 거야? 나도 좀 가르쳐 줄래?”

“너는 해도 안 돼.”

너무들 달라붙어서 귀찮아진 천마가, 가감 없이 대답했다.

“…어?”

여학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폭언에 가까운 천마의 말에 그녀의 마음이 크게 상하려는 순간.

“이한 말은! 그러니까, 일단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얘기야. 이한이 익힌 기공은 극양의 사파 계열이라, 정혜처럼 정도 무공을 익힌 사람은 해도 안 된다는 뜻이야!”

속사처럼 말을 내뱉으며, 소진이 날쌔게 끼어들어 이를 중재했다.

“어? 그, 그런… 거야? 이한?”

정혜라 불린 여학생이 다시금 천마에게 물었다.

천마는 푸욱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라 해도, 소진이 이렇게까지 애써서 판을 깔아 주는데, 일부러 걷어차기도 좀 뭐했다.

“뭐, 성취도 엉망일 거고, 코 밑에는 시커멓게 수염이 나거나 팔다리가 울퉁불퉁해지겠지.”

“그, 그런 뜻이었구나! 고마워! 이한!”

정혜는 펄쩍 뛸 정도로 기뻐했다.

어찌 보면 당장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말보다 더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야, 야, 이한? 나도 말 좀 해 줘.”

“뭐부터 배우면 무공이 빨리 느는지 좀…….”

덕분에 다른 애들이 우르르 달라붙었다.

“아! 귀찮게!”

늘 그렇듯 불편한 발언을 하면서 휘적휘적 인파를 헤쳐 나가는 천마.

그럼에도 학우들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성격을 아는 터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딱 하나만 알려 주라. 응?”

“부탁해, 이한, 아니, 이한 형님!”

“쓰---!”

급기야 자기 자리까지 몰려와서 따라붙자, 천마의 인상이 사납게 돌변했다.

그리고 와다닥 소진이 뛰쳐나와 팔을 휘둘렀다.

“얘들아! 얘들아? 지금 이한이 기분이 안 좋은 거 같거든. 잠시만 나와줄래?”

수군수군.

다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리고 소진은 천마를 데리고 배정된 자리에 앉혔다.

‘휴… 큰일 날 뻔했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눈앞에 있는 이한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직접 목도했으니까.

아마 전력을 다한다면, 그는 천무학관의 대표 교두들과도 승부를 겨룰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거기다 그는 와해되었다고 일컬어지는 천마신교의 적통 후예. 그를 따르는 세력까지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다른 학관생과의 소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넌 왜 학관에 들어온 거야?”

아이들이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둘 때, 소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서 한 일파의 수장이 될 수 있잖아. 어차피 이한은 사라졌다며? 그럼 굳이 학관에 다닐 필요도 없는 것 아냐?”

“…아니, 있어.”

어색하게 대답하는 천마. 그는 잠시 먼 곳을 보다가 자그마하게 말했다.

“이한이, 그러니까 지금 이 몸의 주인이 그걸 원했거든. 반드시 학관을 졸업하겠다고.”

“…….”

“부모의 복수는 해 줬지. 하지만 염원은 남았고, 나는 이뤄 주겠다고 했어. 비록 상대는 사라졌지만 약속은 약속. 나는 내가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야.”

“응…….”

소진은 뭔가 알 듯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한 단체의 수장답게 신의는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뭐… 나쁘지 않으니까. 이렇게 새롭게 배운다는 거. 가장 아래에서 차근차근 배워 나간다는 것도 오랜만에 즐겁기도 하고. 여러모로 도움도 되고.”

뒤이어 중얼대는 천마의 말에 소진은 다시 한번 끄덕였다.

“그럼 내가 도울 역할이 있을 거야.”

“뭘?”

“조금 전처럼. 사람들과 엮이기 어려운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말이야. 내가 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겠다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너는 엄청 강하잖아? 그래서 말을 가리지 않지. 하지만 너무 직설적인 네 말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상처를 입을 거야.”

그러면 자연히 시비를 걸어 오는 사람들이 생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건 천마 자신에게 손해다.

학관을 무사히 졸업하는 것도, 학관을 다니며 자연적으로 인맥을 다지는 것도, 그것으로 이후에 천마신교를 다시 부흥시키는 것에도.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임은 자명했다.

“그렇다고 나더러, 자존심을 죽이라고?”

천마가 인상을 찌푸리자 소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어. 너는 그냥 그대로 있으면 돼. 상대 비위를 맞추고, 말을 부드럽게 바꾸는 건 내가 할 수 있으니까.”

“…….”

“너는 그걸 허락만 하면 돼. 딱히 이제까지와 달라질 것도 없을 거야.”

소진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천마는 살짝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대답했다.

“뭐, 그러든지.”

천마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았지만 소진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의 소가상단이, 마교와 같이 일할 수 있는 거래처가 된다면?

이는 천군만마를 얻게 되는 것과 같았다.

저벅저벅.

그러던 중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인물이 보였다.

‘그냥, 인사다. 가벼운 인사일 뿐이다!’

서문영이었다.

그는 천마가 등교하자마자, 용기를 내어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들어오자마자 왁자지껄한 인파에 휩싸였고, 다음에는 소진과 뭔가 긴요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제야 나선 것이다. 주변에서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학관생들이 있었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이한과 자신의 사이를 개선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고, 이번에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니까.

“이한, 좋은 아침이야. 이번 실기평가, 반 대항전에서는 네 도움이 정말로 컸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말을 해 가며 서문영은 자신의 마음을 굳혔다.

한때는 별 볼 일 없다고 여긴 녀석이지만, 옛말에 이르기를 사별삼일이면 괄목상대라. 선비는 언제든 급성장할 수 있으니 예전 모습과 기억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법.

그리고 서문세가의 이름을 잇는 대장부로서, 긴요할 때 도움을 받고 그냥 넘어간다는 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최대한 정중하고 친근하게 말을 걸었는데.

“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이한.

덕분에 머쓱해진 서문영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도움이 됐다… 고.”

“…….”

“그러니까 내 말은…….”

“…흠.”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툭툭.

“그러니까, 앞으로 친해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무, 무슨 소리야!”

서문영의 얼굴이 확, 하고 붉게 달아올랐다.

순간 잠깐의 정적이 일었고, 주변 학관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쏘아졌다.

“어, 어흠! 다음 수업 준비를…….”

그는 그렇게 뒤돌아 가서 급하게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러는 와중에 킥킥킥!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있었다.

“이여~ 천하의 서문영이…….”

“이한이 대단해졌네. 서문영도 친해지려고 말을 걸고.”

“아니, 근데 쟤, 지금 보니 좀 귀엽지 않아?”

“응응. 맞아 맞아. 항상 쌀쌀맞기만 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의외로 솔직하고 순진한 모습이 있네?”

‘크으윽!’

서문영은 얼굴에 불이 붙은 듯했다.

그는 내공을 끌어올려 수군대는 학관생들의 목소리가 들어오지 않도록 귀에다 장막을 쳤다.

부르르르.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핏기가 오른 귀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서문영은 몰랐지만 그런 모습에 다른 학관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까르륵, 소리 죽여 웃었다.

“음…….”

한편 천마를 지켜보던 운소령의 얼굴도 이상하게 붉어져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어제 저녁, 가문의 태상장로, 제갈유진이 했던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일 시간을 비워 두겠다. 그 아이에게 말을 전해 본가로 데리고 오거라.

‘증조모께선 대체 무얼 보신 걸까?’

지난번 반 대항전 때 운소령은 싸우는 틈틈이 천마의 모습을 살피고, 그것을 기억해서 제갈유진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증조모의 얼굴이 심각해지며 그리 말한 것이다. 맡긴 일을 잘 해냈다고 이례적으로 칭찬까지 하며.

‘아니, 그런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해……?’

문제는 조금 다른 곳에 있었다.

어느새 반 내의 인기인이 되어 버린 이한.

그런 그에게 운소령이 ‘오늘 우리 집으로 좀 와’라고 말을 꺼냈다간 소문이 퍼질 것이다.

반 전체, 아니, 학년 전체에게 놀림을 당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운소령 본인이 오해할 여지가 있는 말을 하자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지? 전음? 거부하면? 편지로 할까? 아니야! 더 큰 오해를 살 수 있어!’

바스락바스락.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꺼내 구기는 운소령.

그녀의 복잡한 감정은 첫 수업 시간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드르륵. 턱.

선풍도골의 얼굴에 긴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

무협학 교두인 지공대사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왔다.

턱.

단상 위에 선 그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이번 시험 때 다들 보았던 시험 문제지를 꺼내 들었다.

“다들 기분은 어떤가? 오늘 수업은 문제 풀이다.”

촤르륵.

그리고 나눠 주는 문제지와 시험지.

오늘은 바로 지난번 중간고사 때의 시험 문제 풀이를 하는 시간이었다.

“3번 문제. 와, 이건 정말 쉽다. 이런 쉬운 문제는 틀린 학관생이 없을 것이다. 안 그런가?”

그리고 그는 답을 쓰기 시작했다.

3. 아래의 의미를 써라.

1) 신족통(神足通)- 원하는 장소로 자유로이 이동하는 능력.

2) 천안통(天眼通)- 사람들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3) 천이통(天耳通)- 초인적인 청력.

4) 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

그는 이 정도 문제라면 모든 학생들이 다 올바른 답을 적었으리라고 확신했다.

소림에서 주로 참선하며 무예를 닦는다면, 훗날 얻게 되는 능력을 말한 것이니까.

스윽.

천마는 자신의 시험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쓰여 있는지를 확인했다.

3. 아래의 의미를 써라.

1) 신족통(神足通)

-배운 것 없는 흔한 땡중이의 헛소리.

한 호흡에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외치는 녀석치고 정작 몇 발짝 제대로 이동한 녀석을 본 적이 없음.

2) 천안통(天眼通)

-생각 없는 땡중이의 발악,

눈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녀석이 뭘 꿰뚫어 본다고?

3) 천이통(天耳通)

-정신 나간 땡중이가 환청을 들은 것.

소리를 분별하기 전에 칼 맞는다. 내 손에 몇 명 죽었지.

4) 타심통(他心通)

-검술 하나 제대로 익히지 못한 땡중이의 허언.

타인의 마음속을 보기 전에 뒈짐.

‘여기서 나서는 건, 좀 그렇겠군.’

거침없는 천마였지만, 그렇다고 사리 분별을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소림의 땡중들은 체면을 중시하는 녀석들.

학관생들 앞에서 모욕을 주면 강한 반발을 하며, 심지어는 품속에 숨겨 놓은 칼을 집어 들지 모른다.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이윽고, 자연스럽게 다음 문제로 천마의 시선이 이동했다.

12번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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