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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37화 (138/310)

137화. 토루스의 권능 (2)

솨아아아!

거센 물살이 정수리부터 어깨, 등, 몸을 타고 세차게 두들기고 지나간다.

반나절가량 흑객은 인근 야산의 폭포를 찾아, 옷을 벗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물살이 살을 두들기는 가운데, 이따금 자잘한 돌이나 나뭇가지가 실려와 흑객의 머리를 때렸다.

콰아아아. 투득. 빠직!

그러고는 사정없이 부서져 나갔다.

차가운 물결에 살짝 희게 변한 얼굴로 흑객은 숨을 토해냈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

폭포수를 맞으며 정신 집중을 유지하는 수련.

학관 연합이 중원에서 출범한 이후,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옛날의 수련법이다.

사실 폭포수 아래에서의 참선이란, 옛 고서에서 많이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정석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위험천만하고 무식하기 그지없는 방식이다.

솨아아아! 후득. 푸슥.

일단 차갑고 거센 물살이 수련자의 몸을 두들기며, 불규칙적으로 코와 입으로 역류해 들어온다.

내공이든 외공이든, 무인은 기본적으로 호흡을 통해 힘을 쓰는 법.

호흡에 지장을 받으면 자칫 기혈이 역류하게 된다.

딱! 딱! 빠직!

더군다나 이따금 물살에 섞여 머리나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잔돌은 어떤가.

가뜩이나 힘든 호흡에, 외부의 충격까지 더해진다.

이쯤 되면 기혈이 진탕됨은 물론이고, 주화입마에 들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흑객은, 강하고 시릴 정도로 차가운 폭포수를 맞으며 너무도 태연하게 수련하고 있었다.

스으읍. 후우. 스으읍. 후우.

‘마치 강철의 껍질을 두른 것만 같다.’

뱀파이어가 몸에 깃든 후, 그의 육신은 질겨지고 강해졌다. 웬만한 충격은 타격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좀 다쳤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회복된다.

피만 좀 먹으면.

그렇기에 폭포를 맞으며 참선하는 이 수련이 그에게는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콰콰콰콰! 파바박!

격하게 쏟아지는 폭포수가 어깨에 부딪혀 튀어 오르며 코와 입을 적신다.

당연히 흑객의 호흡은 방해를 받았다.

푸르륵. 스읍. 후우.

하지만 그 튀어 오르는 물줄기가, 언제 어느 정도로 튀어오르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어떨까.

역류해 오는 물줄기를 사전에 알고 잠시 숨을 멈출 수 있다면, 호흡은 방해받지 않는다.

푸르륵. 스읍. 후우.

음파 시야. 마계의 대공 블라드 체페슈의 권능.

흑객이 초반에 물을 몇 번 먹은 후, 흡혈귀의 본능은 폭포 아래의 수련을 생명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찌이이이- 피이이이-.

그리고 사정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전력을 다해 분석하고, 숙주인 흑객이 알도록 만들었다.

핏. 핏. 촤륵. 퐁.

그 때문에 수십만, 수백만의 물방울이 튀고 부서지는 광경이 실시간으로 흑객의 뇌에 주입되었다.

부르르르…….

지나치게 많은 정보량이 그의 뇌를 혹사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흑객에게는 훈련이 되고 있었다.

푸르륵. 스읍. 후우.

딱. 딱. 빠직!

이미 역류하는 물줄기도, 폭포수에 섞여 떨어지는 잔돌도, 흑객에겐 아무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저 수없이 많은 물방울들로 이루어진 폭포수가 쏟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반응하는 몸, 그리고 기민한 정신으로 새롭게 깨달음을 얻었을 뿐.

‘이제 보니 이건 정신의 수련이었군.’

정기신(精氣神)의 최상승의 단계, 신(神).

처음에는 물을 먹으며 이것이 기(氣), 그러니까 흡기(吸氣)와 호기(呼氣)를 지켜내는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돌이나 나뭇가지에 머리통을 직격당하며, 이것이 호흡 중의 신체 반응, 그러니까 끊임없이 몸을 긴장시키는 외공, 정(精)의 수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알게 된 건, 미리 알고 있으면 호흡이든 몸의 긴장이든, 딱 필요한 만큼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숨의 위협 속에서, 앞으로 몇 초 뒤에 일어날 일을 감지하는 폭포 아래의 수련.

그건 영적인 느낌, 일종의 신기가 없이는 계속 수행할 수 없는 고난도의 훈련이었다.

‘후우… 이렇게나 어처구니없는 육체라니.’

그걸 몸에 깃든 본능, 그것만으로 해낼 수 있다니. 흑객은 이런 몸의 변화에 낯설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 정도면 금강불괴나 다름없다.

물론 진짜 금강불괴는 아니지만 딱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힘으로 방어하여,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금강불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걱정이었다. 흑객 자신의 성장 속도는 정상이 아니었다. 너무도 가팔랐다.

이렇게 급속도로 강해진 끝에, 언젠가 ‘블라드’라는 이 신묘 막측한 권능의 주인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때 벌어질 싸움은 자신의 몸을 건, 생사를 건 싸움이 될 터였다.

-아마 질 거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흑객은 물었다.

자신이 극마에 오르게 되면 이 불길한 힘의 주인, 뱀파이어를 물리칠 수 있겠느냐고.

하나 매정하게도, 천마의 답은 간결했다.

애초에 블라드의 권능의 일부로 강해진 흑객이기에, 그 권능의 주인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다고.

-하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물었다.

싸움에서 진다면 그저 흑객이 죽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이미 예전보다 엄청나게 강해진 자신이, 흡혈귀에게 잠식당하면?

아마도 본 교의 사람들이고 뭐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피만을 갈구하는 희대의 괴물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잠시 고민하던 천마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얘길 했다.

-깨달음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경험과 체득에 의한 것. 이건 단계를 밟아 가는 깨달음이다. 이 경우, 이류가 일류가 되고, 일류가 초일류가 된다. 선후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것이지.

-그리고 둘째는 바로 우주다. 세상에 대한 이해를 몸으로 체화하는 것. 이는 궁극적으로 자연을 대상으로 한다.

-이 경우에는 내부와 외부의 변화가 동시에 오지. 즉, 이류가 초일류가 되거나, 절정이 될 수 있다. 일반적인 선후 관계를 넘어설 수 있지.

말은 쉬웠다.

하지만 무인이 평생을 거쳐 하나 오를까 말까 하는 것이 그런 단계라는 것이다.

그 단계를 한 번에 두세 개 뛰어오르라는 건 무슨 말장난 같기만 했다.

그래서 ‘뱀파이어라는 놈들이 그렇게 준비해야 할 정도로 강한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글쎄, 다른 흡혈귀라면 그 정도는 아닐 거야. 하지만 이놈은 좀 다르지 싶다.

-이놈은 단순히 극마의 초입에 오르는 걸로는 부족해. 아마도 2단계는 뛰어넘어, 통달의 단계까지 올라야 그럭저럭 상대가 될걸?

-쉽게 말해 네 사부만큼 강하다는 거다. 그러니 네 몸속에 숨어 있음에도 이런 여유를 부렸겠지.

흑객이 반나절 동안 이곳에서 수련을 해오고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점점 강해지는 몸. 그에 따라 때가 가까워진다.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데 한가하게 여유를 가지고 쉴 수가 없었다.

푸르륵. 후우. 흐읍. 후우…….

찌리릿!

그렇게 시간을 잊고 수련에 집중하던 중, 뇌리에서 불쾌한 경고가 울렸다.

이제 한계인 것이다.

아무리 흡혈귀의 능력이 보조하고 있다고 해도, 이 이상은 무리다. 피가 모자랐다.

더 했다간 예외 없이 폭포수에 사레가 걸리거나, 좀 큰 돌에 머리통을 맞아 비명횡사할지도 모를 일.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솨아아악.

흑객은 폭포수를 빠져나와 몸을 말리고, 대충 개켜 둔 옷을 입고 거처로 이동했다.

슬슬 해가 제법 기울어 가는 것이, 얼른 교주님과 사부의 수발을 들 시간이었다.

“오, 수련하고 왔느냐?”

“아, 사부님.”

허겁지겁 거처에 도달해서 식사 준비를 하려니, 사부인 노달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뒷짐을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자신이 들고 있는 솥단지를 발견하고는 밝게 웃었다.

“고생이 많구나. 수련하랴, 밥하랴, 시간이 부족하지?”

“좀 그렇습니다.”

“이놈 하곤, 시간이 없으면 그 시간을 만들어야지. 항상 부지런히 해야 한다. 내가 너 때는 말이다. 숨 쉴 시간도 없었다니까.”

“…….”

갑자기 여기서 ‘나 때는 말이야’라니.

흑객은 잠시 쓴웃음을 짓다가 곧 수긍하고 고개를 숙였다.

“예, 제자가 게을렀습니다.”

방금 그가 한 폭포 수련만 해도, 블라드의 권능 없이는 자칫 죽을 정도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부 노달은, 자신처럼 이족의 권능을 가지지 않고도 그 위험한 수련을 생으로 버텨 내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어리고 모자랐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보니 새삼 사부 또한 대단한 분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

“사부님?”

한데,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침묵하는 사부.

흑객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노달의 눈은 크게 뜨여 있었고, 온 얼굴은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물러서거라.”

“사부님……?”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갸웃할 때 갑자기 흑객의 뇌리에도 벼락같은 예감이 찾아 들었다.

팟! 파팟!

콰아아아아악!

급하게 발을 박차자, 갑자기 터져 나오는 땅. 그리고 뒤이어 치솟는 거대한 몬스터.

그우우우우-!

“샐러 드레이크……?”

흑객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고작 얼마 전에 죽기 살기로 상대했던 위험한 몬스터. 하지만 지금 나타난 샐러 드레이크는 그때의 놈들과는 체급이 아예 달랐다.

쩌어억.

거대하게 벌어지는 아가리. 그 크기만 해도 예전에 본 샐러 드레이크 킹의 세 배는 우습게 넘는다.

이놈이 여기를 왜? 하고 긴장하고 있을 때.

철벅. 철벅.

벌어진 샐러 드레이크의 아가리에서 안면이 있는 몬스터가 걸어 나왔다.

투욱. 저벅저벅.

거대하고 뒤룩뒤룩 살이 찐, 기묘한 체형의 오크.

흑객은 그저 멀리서 한 번 보았을 뿐 거의 잊고 있었지만, 그의 사부인 노달은 달랐다.

“쿠아토……. 이놈.”

노달의 목소리에 분노와 극도의 긴장이 동시에 서렸다.

* * *

타악. 탁. 탁.

제갈세가를 나온 천마는, 공중에 뜬 채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그는 천마비행을 펼치고 있었다.

황당하게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 보니, 그냥 된 것이다.

“음…….”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날지를 못했다.

그래서 공중에 그저 떠 있는 상태로 이렇게 주변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일단은 어설프게라도 흉내 내지는군.”

천마비행.

능공허도, 육지비행 등으로 불리는 경신술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단계.

공중을 새처럼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움직이는 극한의 경공. 오직 탈마에서만 펼칠 수 있었던 최상승 무공이었다.

오랜만에 펼치니 이렇게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이다.

“대충 저쯤인가?”

천마는 멀리, 자신의 집으로 짐작되는 곳을 찍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작 지면과 이십 장 정도 떠 있었을 뿐인데 심력이 흔들릴 정도였다.

바람이 거세지는 탓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몸속에 내재된 내공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내공의 양이 아니라, 뽑아내는 양이 모자란 것이다.

“하긴, 예전엔 이걸 극복하기 위해 고민을 했었지.”

어떻게 하면, 허공을 밟고 서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차게 부는 바람을 극복할 수 있을까.

사람이 하루 종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탈마로 가는 심득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했던 것들.

그것이 상단전 개안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걸로 기억에 남았다.

“음…….”

사실 천마가 이렇게 무리하게 천마비행을 운용하고 있었던 건, 조금 전 마주친 제갈세가의 노인 때문이었다.

그녀에게서 느낀 기운.

특이할 정도로 거대한 마나를 품고 있었다.

단순히 마법사의 마나였다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마의 눈엔 그 마나가, 이제껏 보았던 것과 달리 자연의 기운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그녀 역시 현재 자신의 깨달음에 모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탈마와 같은 경지에 올랐을 수도 있었다.

“……!?”

투욱. 파바바밧!

천마는 지면에 내려오자마자, 전력 질주 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이유도 근거도 없이 갑자기 깨달아지는 것.

오랜 수련을 거친 무인은 때때로 예지나 예감 같은 초월적인 감각을 획득한다. 그리고 그 감각이 지금 알려 주고 있는 것은.

“노달! 흑객!”

파아아앗!

그의 수족인 두 사람의 위험이었다. 천마는 전력으로 경신술을 전개하며 빛살처럼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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