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토루스의 권능 (3)
지상으로 걸어 나온 쿠아토의 시선은 먼저 흑객에게 머물렀다. 그리고 미묘하게 틀어져 노달 쪽으로 이동했고, 다시 이름 모를 건물로 향했다.
“의외군.”
그는 낯선 환경에 잠시 당황했다.
넘치는 심장, 권능의 목걸이를 찾기 위해 움직이다 도착한 이곳.
나름 방비되어 있는 곳일 줄 알았건만, 이런 허름한 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때마침 옆으로 다가온 토루스가 조언했다.
쿠아토는 불쾌한 듯 노려보았지만, 그는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들은 일찍이 먼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상컨대, 마나트의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너까지… 나를 무시하려 드느냐?”
“쿠아토 님, 그게 아니오라…….”
일그러지는 쿠아토의 표정을 본 토루스가 목을 쑥 집어넣었다.
샤먼 지르케와의 대화 후에 그는 평점심을 잃기라도 하듯 분노에 차 있었다.
토루스는 지금 괜히 말을 더 꺼냈다가,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쿵. 쿵. 쿵.
쿠아토는 토루스를 놓아두고 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러서라, 흑객.”
한편, 노달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 있었다.
상대가 다름 아닌 쿠아토.
이전에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위압감이 실로 엄청났다.
기묘한 체형과 가죽처럼 쭉 늘어진 피부.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입은 녀석이 과연 지상의 생물체인지 의심이 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의 말대로 흑객이 노달 뒤로 이동했고, 한 발짝씩 걸어오던 쿠아토가 입을 열었다.
“가져오거라.”
“……?”
“너희들이 가져간 우리 종족의 물건. 우린 그것만 있으면 된다.”
곧장 달려들 것 같던 쿠아토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눈앞에 인물처럼 마나를 갈무리하는 존재가 어떤 수준에 도달한 건지를.
‘화경의 고수.’
기를 갈무리한다는 건, 강기를 생성해 낼 수 있다는 것.
고작 한 놈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음에도 그는 이번에 신중하게 행동했다.
회복한 지 얼마 안 돼, 굳이 또 힘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었나.’
그 반면, 노달의 표정은 다른 의미로 좋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아침부터 뭔가 찜찜하긴 했다.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아이템 보석.
설마 그게 이놈들을 불러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부…….”
흑객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폭식의 쿠아토.
말로 많이 들었고 이전에도 목도하긴 했었지만, 직접 앞에서 보는 것은 또 달랐다.
이렇게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들고 올까요?”
흑객이 묻자 노달은 즉각 고개를 저었다.
“제자님의 것이다. 허락도 없이 함부로 넘겨줄 수 없지.”
말은 그러했지만, 노달이 거부한 건 다른 의미였다.
눈앞에 선 쿠아토. 교단의 원수로, 수많은 수하들의 목숨을 앗아 간 녀석.
대군을 끌고 다니는 그일진대, 오늘은 오직 주술사 한 놈만 대동했다.
그는 흔치 않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넘치는 심장을 들고 온다면 너희들의 목숨은 살려 두겠다.”
“…….”
또다시 쿠아토의 제안이 이어졌지만, 노달과 흑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금 쿠아토가 물었다.
“못 들었느냐? 넘치는 심장을 가지고 온다면……!”
그 순간.
쿠아토의 황갈색 눈에 뭔가가 날아들었고.
콰아아아앙!
그대로 한쪽 눈이 터져 갔다.
노달이 품속에서 비도를 꺼냄과 함께 전력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거리가 가까운 데다, 극마에 오른 고수의 기습은 그대로 적중했다.
거기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터져 나간 쿠아토의 한쪽 눈에서 폭발은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났다.
광폭의 단검.
닿는 즉시 몇 번이고 폭발하는, 벽력탄의 최소 수십 배의 위력이 담긴 아이템을 사용한 것이다.
구오오오오-.
‘이런!’
폭발로 생성된 연기가 서서히 걷혀 나갈 때쯤, 노달은 직감했다.
놈은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열기가 몸을 덮어야 함에도, 고작 그의 눈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연기가 서서히 걷히자, 쿠아토는 흉측한 얼굴을 보였다.
예상대로 피해는 그리 입지 않았으나, 분노하는 감정은 여실히 드러났다.
“인간 따위가아아아!”
쿠우우웅! 쿠쿠쿠쿠쿠.
쿠아토가 땅을 내려찍자 땅이 쪼개질 듯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음조각이 깨지듯, 점점 범위가 커지더니.
쿠쿠쿠쿵!
노달이 밟고 있던 지면의 일부가 거짓말처럼 꺼져버렸다.
그 순간.
쾅!
쿠아토가 엄청난 움직임으로 노달을 향해 달려들었다.
갈퀴처럼 생긴 손으로, 상대의 몸을 찢어발길 듯 휘두른 것이다.
“어딜!”
하지만 노달은 극마에 오른 고수였다.
오히려 쿠아토를 향해 더욱 파고들었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어깨, 팔꿈치, 허벅지, 무릎으로 막아 내는 기격(技擊)을 펼쳤다.
쾅! 카쾅! 쾅! 쾅!
발력(發力) 위주의 수많은 방어 동작.
부딪칠 때마다 진력이 터져 나왔고, 쿠아토의 가공할 힘을 맞상대해갔다.
그렇게 인접한 거리에서 치고 막고를 수십 차례.
그러던 한순간, 노달의 눈이 빛났다.
빈틈을 발견한 것이다.
“하아앗!”
강렬한 장법으로 쿠아토의 몸체를 후려갈겼다. 무려 1갑자의 내공이 실린 8성의 적파장(赤破掌).
결코 가볍지 않은 내력 때문인지 쿠아토가 무려 4장이나 밀려 날아가 버렸다.
‘좋아, 느낌이 있었…….’
주오오오오오-.
얼굴이 밝아지던 노달의 표정이 어느 순간 경직됐다.
완벽하게 격파당했으라고 생각한 쿠아토가 잠시 휘청거리기만 했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담담히 일어났다.
‘이런.’
노달은 약간의 절망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찢어진 상처만 보일 뿐, 장법은 복부를 관통하지 못했다.
오히려 퀴퀴한 냄새를 뿜으며 찢어진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는 장면만 보일 뿐.
“이이익!”
쿠아토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듯했다.
녀석의 흉측하게 일그러지는 얼굴을 본 노달은 더더욱 확신에 찼다.
“쿠아아아악!”
그래서인지, 그는 결국 폭식이라는 별명답게 장기를 펼쳐 들었다.
구오오오오오-.
‘이게 무슨…….’
순간적으로 노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대가 어떻게 한 건지, 한순간 몸이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다 쿠아토의 입을 통해 생성된 소용돌이를 향해 자신의 몸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딜!”
하지만 노달은 극마에서도 통달의 영역에 다다른 자.
뇌천벽과 천극태보다 한 수 위였다.
거부하면 할수록 점점 몸이 굳어지는 걸 깨달은 그는, 모든 힘을 완전히 빼는 초강수를 뒀다.
그리고 일시에 다시 내기를 끌어올렸고.
광혈심법(狂血心法)을 통해 기를 폭주하게 만들자 잠시간, 쿠아토의 마비가 깨져 버렸다.
그리고 그 잠시간은 노달에겐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놈의 권능의 흡수를 벗어나 검을 빠르게 쥐었고, 지체 없이 검강을 생성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처였다.
패애애애액!
실명할 듯한 빛 무리와 함께 노달의 검 끝에서 검강이 쏘아져 나갔다.
급하게 쏘아 낸 탓인지, 강기는 광범위하게 커지며 쿠아토를 덮쳤다.
콰아아아아앙!
이내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 * *
‘제길.’
노달은 미간을 찌푸렸다.
쿠아토가 있던 자리는 완전히 박살이 났다.
하지만 정작 없어져야 할 녀석은 뒤쪽으로 물러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직감적으로 상대가 강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쿠아토의 분노는 이미 하늘에 닿을 듯 보였다.
얼굴에 미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걸로도 부족한지, 온몸이 쩌적 갈라지는 현상을 보였다.
‘이번에, 이번에 끝내야 한다.’
노달 역시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무공을 펼치고 있지만, 상대에게 확실한 상처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쿠아토의 힘은 어느 정도가 끝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회외마공(回外魔功).’
스스스슥.
노달은 주변의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본인이 가진 내력을 넘어, 외부에서 기를 끌어오는 마공.
그는 이것으로 일격 필살을 준비하려고 한 것이다.
사사사사삭.
그런데 갑자기 쿠아토가 땅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파고들던 그는 어느 순간,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개수작을!”
내공을 모으던 노달이 짜증을 내듯 소리쳤다.
그리고 작전을 변경했다.
무려 여덟 명이 넘는 환영이 주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팔로마현.
적의 눈을 속일 때나 다가서기 힘들 때 펼치는 경공술이지만, 여기선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
적이 어디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었기에, 수많은 환영을 만들어 그가 반응하는 걸 포착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건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어?’
콰아앙!
환영 여덟이 자리하고 있던 지면이 갑자기 푹 하고 꺼졌다.
당연히 그의 분신들은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른 지면을 밟았다.
그 순간.
찌익. 찌익.
뭔가 끈적한 것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타액이었다.
‘이건!’
적이 달려들 거라 예상한 노달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모든 환영에 그 녀석의 타액이 묻어 버렸고, 그로 인해 팔로마현이 강제로 해제돼 버렸다.
그러자 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노달은 심각한 얼굴로 서 있었다.
‘당했다.’
그저 단순하게 덤빌 줄 알았던 놈이 머리를 썼다.
어떻게 여러 방향에서 타액이 동시에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움직임을 묶어 두는 데에 성공했다.
더욱이 타액을 맞자마자 거짓말처럼 근육이 굳어 버리는 효과까지 생겨났다.
쿠어어어엉!
때마침, 부서진 바위틈에서 튀어나오는 쿠아토.
그를 본 노달은 재빨리 마공을 운용했다.
“열화공!”
화르르륵.
발바닥에서 일어난 타오르는 열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단번에 노달을 삼켜 버리려던 쿠아토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고, 쿠아토의 마비를 풀어 버린 노달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쩌어엉! 쩌어어엉!
몇 번째 교전.
하지만 누구 하나 쉽게 밀리지 않았다.
노달은 검강을 사용할 시간적 여유 없이 공격을 쏟아부었고, 상대 역시 내공을 삼킬 새 없이 발톱으로 공격만 할 뿐.
하지만 무리한 내공 운용 때문인지.
촤아아악.
이번엔 노달이 어깨를 베이고 튕겨 나가듯 물러섰다.
“사부님! 괜찮습니까!”
“으읍.”
흑객이 급히 다가왔다.
노달의 어깻죽지부터 파고든 날카로운 상처가 갈비뼈까지 이어져 있었다.
“괜찮다. 나는… 어?”
급히 정신을 차린 노달이 다시금 고개를 들 때였다.
“블라스트!”
뒤에서 한동안 지켜보던 주술사 놈이 뭔가를 중얼거렸고, 그로 인해 쿠아토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진 몸이 본래의 두 배에 달했을 때쯤.
“쿠오오오오오!”
또다시 쿠아토가 폭식의 권능을 또다시 펼쳤다.
“윽!”
“악!”
순간적으로 파고든 상대의 공격에 노달과 흑객은 꼼짝없이 당했다.
몸이 마비되었고, 이번엔 입도 열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빨려들려 하고 있었다.
“흑객! 노달!”
하지만 그때, 멀리서 다가온 자에 의해 쿠아토는 권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단순히 외침 때문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거의 대지를 뒤엎을 듯한 기의 파동이 쿠아토와 토루스를 덮쳐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