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40화 (141/310)

140화. 토루스의 권능 (5)

화르르륵!

그것은 분명 염화공이었다.

단순한 화염이었다면, 불의 고리가 저런 식으로 뿜어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걸 인지했을 때는, 이미 피할 수 없었다.

거의 검강에 필적할 속도로 천마의 몸을 덮어 온 것이다.

“큭!”

강대한 불의 고리가 뻗어 오자, 천마는 급히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 막아 세웠다.

콰창!

그리고 고작해야 평범한 철에 불과한 검이 즉각 부러졌다.

동시에 힘을 잃지 않은 강대한 충격파와 열기가 천마를 덮쳐 왔다.

쩌엉!

호신강기가 깨지는 굉음과 함께, 천마의 몸이 쭈욱 밀려 나갔다.

‘끄읍.’

그럼에도 그는 버텼다.

온몸이 불길에 타오르는 걸 버텨 내고, 자리에 서 있었다.

츠츠츠측.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들 때, 천마는 반쯤 그을린 얼굴을 천천히 들었다.

“쿨럭!”

이번엔… 진짜 큰 피해가 있었다.

몸 내부가 진탕되고, 정신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

쿠아토가 가한 공격은 단순히 불길만 생성한 게 아니었다. 염화공의 화염 고리가, 천마의 몸속 내부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기술을 훔친 게 아냐.’

천마는 이 상황을 믿기 힘들었다.

염화공.

쿠아토는 자신이 생성한 것과 똑같은 불의 힘으로 자신에게 공격해 왔다.

마법이 아니었다. 천마가 알기로, 마법이란 것은 발동 시간과 시동어가 필수적이었다.

위력이 강할수록, 고위급 마법일수록 그런 제약을 가진다.

그렇다고 무공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내기(內氣)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체화 해서 쓴 게 아니라 반사한 건가?’

지금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것뿐.

온몸이 불타던 쿠아토의 몸에는, 아직 빙정이 더덕더덕 달라붙어 있었다.

떨어지지도 않고 녹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자신이 펼쳤던 불의 기운만 돌려보낸 것이리라.

마교의 건곤대나이처럼.

‘이것도 그 권능이라는 것인가…….’

“이게 뭐, 놀랄 일인가.”

천마가 침음하자, 이번엔 쿠아토가 도발해 왔다.

이전과 달리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인간이여, 어디 다시 한번 덤벼 봐라.”

으득!

천마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아무리 낭패에 빠져도, 수세에 몰려도, 상대의 도발을 웃으면서 넘길 그가 아니었다.

“좋다. 원한다면.”

파드드득.

천마의 주변에서 불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면을 타고 불꽃이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아까와 같았지만, 이번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슈으으윽!

점차로 색이 변해 가는 것이다.

“이것도 한 번 되돌려 봐라, 쿠아토.”

화아아아아악-!

시뻘건 불꽃에 한 가지 기운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승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자줏빛의 불꽃이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저건!!!”

떨어져서 지켜보던 노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는 것이다. 염화공을 넘어서는 단계의 불꽃. 저 음산한 기운이 담긴 화염이 무엇인지를.

“사부, 색이 변했습니다. 대체 저게……?”

“멸화공이다… 기록상 본 교에서 단 두 분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는 화공의 끝!”

멸화공.

극양의 힘을 한데 모아 체내로 발휘하는 것이 혈수마공.

그 혈수마공에 내공을 극도로 응축하여, 불꽃의 정수까지 쥐어짜 낸 것이 염화공.

그리고 멸화공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신기체.

내기를 응축시키는 것을 넘어, 정념으로 모든 화기를 통제하고, 불꽃이 발화하는 미지의 힘까지 불러일으키는 것.

탈마에 올라서야 얻게 되는 기운을, 천마가 지금 이 자리에서 구현해 낸 것이다.

“자, 이것도 한번 날려 보거라. 할 수 있으면 말이다.”

화르르륵!

천마의 기운이 모두 모였을 때. 쿠아토의 눈이 커졌다.

‘저건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저 정도로 집약된 힘은, 결코 흉내 내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걸.

“흐읍!”

쿵!

그는 전력을 다해 발을 내려찍었다.

즈우우웅.

진각이 아닌, 기의 파동.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아지랑이가 고리처럼 번져 나갔다.

“흥!”

천마는 곧장 자리를 박차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처음에는 저 파동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같은 수에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부르르륵!

손목을 감싸며 타오르는 멸화공을, 천마는 쿠아토에게 조준하고 허공에서 쏘아 내려 했다.

“이제 뒈져라……?”

덜컥!

그런데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허공으로 떠오른 천마의 몸이 굳어 버린 것이다.

‘이런, 분명 피했는……?!’

당황하던 그는 한발 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쿠아토가 아니라.

“잘했다!”

멀리 허공에 떠 있다가 다가온 토루스였다.

스팟!

삽시간에 천마의 머리 위에 나타난 쿠아토. 그는 모든 힘을 짜내, 두 손으로 천마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콰콰콰콱!

퍼어어엉!

엄청난 굉음을 터뜨리며 천마가 땅에 처박혔다.

얼마나 깊이 뚫고 들어갔는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쿠아토는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론 녀석이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어랏!”

커어어엉!

포효를 터뜨리며 엄청난 속도로 바닥으로 떨어진 쿠아토.

놈은 다시 두 손을 한곳에 모았다. 이번 일격은, 앞서와 달리 손에 시뻘건 기운이 몰려들고 있었다.

촤아아악!

“……!”

한데 거기서 변수가 닥쳤다.

저 멀리, 거리를 두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늙은 인간. 그의 검에 맺힌 시허연 검강이 자신을 향해 쏘아졌다.

패애액!

몸을 비틀어, 지면을 밟은 쿠아토.

푸핫!

허공에는 그의 두 팔이 진녹색 피를 뿜으며 솟구치고 있었다. 천마를 노렸던 두 손이 검강에 잘린 것이다.

“하아아앗!”

노달은 연거푸 검강을 생성해 내며 쿠아토의 복부를 향해 그었다.

쉬이이익!

쿠아토는 반사적으로 몸을 다시 비틀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웠던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엔 너무 가까웠다. 결국 두툼한 다리 한 짝이 날아가 버렸다.

“흑객!”

쿠아토가 겅중겅중 외발로 뛰며 밀려나자, 노달은 흑객을 불렀다.

“네!”

쉬익!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토루스를 잡기 위해 공중으로 날아든 것이다.

“잘 가라!”

거리가 가까워지자, 흑객이 기를 실었던 검을 세웠다.

“히익!”

힘을 쓴 바람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떠 있던 토루스가 영락없이 두 조각이 나려던 순간.

“억!”

그 순간 흑객의 몸이 굳어 버렸다.

또 한 번의 마비. 하지만 이번에는 토루스가 아니었다. 아래에서 입을 쩍 벌린 쿠아토 때문이었다.

쿠와아아아!

흑객이 멈칫하던 사이 토루스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고, 그대로 쿠아토의 입에 삼켜져 버렸다.

꿀꺽. 끄르륵!

토루스를 삼키고 트림을 뱉어 낸 쿠아토.

“제 부하를 먹어……?”

“큭큭큭큭.”

쿠아토는 그냥 웃었다. 굳이 오해를 풀어 줄 필요 따윈 없었으니까.

타닥.

“흑객!”

흑객이 지면을 밟자 노달이 그를 불렀다.

“제자님의 상태를 살펴라.”

“옙!”

흑객은 지면을 뚫고 들어간 천마를 향했다.

그러는 사이 노달은 쿠아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수법으로, 오히려 우리가 당할 뻔했군.”

놈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이었다.

두 손이 날아가고 다리 한 쪽이 없어진 상태에서도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그래… 잘됐다. 너는 내가 처리해 주마.”

노달은 길게 숨을 뿜어내었다.

그에게는 기회였다.

잠시 제자님이 쉬는 사이 자신이 놈을 처리할 수 있는 순번이 온 것이다.

“네가? 내 상대가 안 될 텐데?”

“해봐야 알지.”

당당히 말하는 노달.

그의 검에 새하얀 빛이 다시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는 막을 수 없는 기운이나, 그것도 목표를 정확히 맞혔을 때야 의미가 있는 것.”

푸슉! 퓨슉!

쿠아토의 몸에 힘이 들어가고, 다시금 변이를 일으켰다.

잘려 나간 두 팔. 그리고 다리 한 짝이 거짓말처럼 복원되었다.

쿠웨엑!

그리고 그는 입을 열어, 질척한 타액 범벅이 된 무언가를 토해 냈다.

주술사 토루스.

분명히 쿠아토에게 삼켜졌었지만, 그는 죽은 게 아니었다.

폭식의 권능은 기본적으로 섭취, 그리고 소화다.

달리 말해, 소화를 하지 않으면 위험에 처한 아군이나 수하를 삼켜서 자신의 권능으로 보호해 둘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몸을 저장 창고처럼 사용해서.

“네놈이 나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피식!

기세등등한 쿠아토의 외침에 노달은 웃었다.

그는 싸움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쿠아토를 계속 보고 있었다. 그래서 놈이 부리고 있는 허세를 알 수 있었다.

잘려 나간 사지는 분명히 수복되었다. 하지만.

“나는 말이다. 쭈욱 생각해 왔었다.”

그건 분명히 놈의 힘에도 한계가 있을 거라는 것. 모르긴 몰라도 체력을 어마무시하게 사용했을 것이다.

저런 사기적인 능력에,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너만은 내 손으로 죽이기를. 수많은 본 교 사람의 억울함이 내 손에 풀리기를.”

지지지직.

노달의 검이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마치 그의 감정을 나타내듯 변화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그 기회가 올 줄이야. 정말로. 이 순간을 놓치면.”

“…….”

피지지지직.

검기가, 아니 검강이 삼 척이나 되게 쭉 길어졌고.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니지!”

그의 외침과 함께 지면 일부가 부서져 나갔다.

팟.

노달의 선공이었다.

* * *

“아이고…….”

주섬주섬.

어마어마하게 파고 들어간 지면을 어기적어기적 기어오르는 천마.

“괜찮으십니까?”

“어, 그런 것 같은데…….”

그는 통째로 땅에 처박힌 것치고는 꽤 멀쩡해 보였다.

흑객이 다가와서 살피자, 그는 슬쩍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처리하면 안 되지 않나 싶더라.”

“네……?”

콰카카카카칵!

검강과 괴성이 난무했다.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쿠아토와 노달.

그 둘을 가리키며 천마가 고개 저었다.

“저놈 저거. 가슴에 응어리진 게 있잖아.”

“…아.”

천마의 말에 흑객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제 보니 천마가 싸우던 중에 곧바로 다시 나서지 않은 것은, 평생 가슴에 한이 서린 수하를 배려해 준 것이었다.

펑! 펑! 펑!

확실히 노달, 흑객의 사부 역시 극마에 오른 고수. 아무리 쿠아토가 강해졌다고 한들,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폭식은 그 순간의 마비 효과만 무섭지 다른 건 그럭저럭 상대할 만도 했고.

“그런데 교주님…….”

“응?”

“코에 피가…….”

“아? 하하.”

천마는 코에 흐르는 피를 슥 닦으며 흑객의 뒤통수를 때렸다.

따악!

“싸움 중이야. 집중해 인마!”

* * *

쿠우우우웅.

노달의 검강은 거침없이 뻗어갔다.

삼 갑자가 넘는 그의 내공은, 무려 강기를 열 번 가까이 뽑아내고도 여전히 생생했다.

그리고 그 검강을 쿠아토 역시 두려워했다.

오러 블레이드는 무엇이든 뚫고 베어 낸다.

맞았다 하면 무조건 잘린다. 그 때문에 필사적으로 피해 내고 있었다.

‘한 번. 분명 파동으로 마비를 걸 것이다.’

그리고 노달은 알고 있었다.

앞서 놈과 싸운 천마 제자님처럼, 자신은 기의 파동을 볼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걸.

그렇다고 넋 놓고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상대가 그 강대한 권능을 일으킬 때, 분명 의식을 행하는 지점이 있을 터.

그걸 알아채기만 하면 된다.

퍼어어엉.

‘지금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곧장 찾아왔다.

노달은 놈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보곤, 급히 팔로마현의 경공술을 펼쳤다.

파바바밧!

허공에 여덟 개의 환영이 생성되고,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예의 파동으로 뻗쳐 나간 마비가, 환영을 싸그리 지워 버렸다.

“크르륵!”

그리고 남은 하나의 신형.

뻣뻣하게 굳은 노달에게 쿠아토가 입을 벌려 폭식의 권능을 쓰는 순간.

“걸렸군.”

“……!”

또 하나의 노달이 뒤에 있었다.

쿠아토가 광범위하게 펼친 마비의 파동이지만, 놈은 기력 부족으로 자신의 등까지는 파동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끝이다.”

노달은 이 싸움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점을 노렸다.

이미 검에 실어 놓았던 검강이 뻗어져 나갔고.

촤아아아아악!

피 분수를 뿌리며, 쿠아토의 목이 허무하게 떨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