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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41화 (142/310)

141화. 토루스의 권능 (6)

뚝. 뚝.

진녹색의 걸쭉한 액체가 노달의 검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이 잘려 나간, 쿠아토는 앞으로 쓰러져 있었다.

절단면에서는 진초록의 피를 쏟아내며,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추르르륵. 절퍽절퍽.

신기하게도 목이 날아갔음에도, 인간과 같이 왕창 피를 쏟아내지는 않았다.

“휴우.”

노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다.

팔로마현의 경공술. 이건 나름 그가 기지를 발휘해 펼친 의도한 함정이었다.

일부러 급히 시전해서 환영을 만든 후, 쿠아토의 눈을 피해 등 뒤에서 나타나 틈을 노려 요격했다.

그렇게 놈을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정말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굳어 버린 발.

쿠아토의 마비의 파동을 완전히 피해 내지 못하고 굳어 버린 것이다.

지극히 적은 여력일 뿐이었는데, 그걸로도 이렇게 당하다니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이상하게도 형체가 유지되는군?”

쓰러진 쿠아토를 본 노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의 몬스터만 해도 목을 베어 죽이면 온갖 피를 토해 내거나, 체액이 쏟아져 나온다.

이놈은 이름부터 폭식이라서, 아이템이나 뭐나 온갖 게 다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마지막 녀석을 처리해야겠군.”

노달이 시선을 돌려 한쪽에 서 있던 주술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녀석은 둥그런 눈을 뜬 채로 뭔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영악한 녀석, 어디서 술수를 쓰려고…….”

“노달!”

그 순간 그를 향해 천마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가 의아한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자.

“크큭.”

죽었다고 여긴 쿠아토가 어느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아갔던 머리가 거짓말처럼 다시 붙은 채!

노달은 대경하여 반사적으로 검을 돌려 앞을 막았지만.

콰아앙!

이미 늦었다. 쿠아토의 손이 채찍처럼 뻗어 나가 노달을 후려쳤다.

콰드득!

엄청난 괴력에 노달은 지면을 뚫으며 쑤셔 박혔다.

“끄… 어!”

천마가 땅에 파묻힐 때와 흡사해 보였지만, 이번의 그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단 일격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노달. 피를 토해 내며 숨조차 가빠하는 그를 향해, 쿠아토의 손이 다시 한번 치켜들렸다.

“크아아악!”

“잇!”

천마가 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내심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천마군림보라도, 5장 가량을 순간 이동 하여 떨어져 내리는 쿠아토의 손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제기랄, 그럼 길동무라도…….’

최소한 노달이 억울하지 않게 같이 죽여 주기라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급하게 끌어올린 내력을 쏟아내려는 순간.

풋! 파삭!

“……!”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분명히 천마 자신의 등 뒤에, 몇 장이나 더 떨어져 있던 흑객이 갑자기 쿠아토 앞에 나타나 팔을 붙잡은 것이다.

“이… 뭔?”

“블라드 체페슈!”

천마조차 당황하는 사이, 흑객이 블라드의 권능을 발휘했다.

지이이잉!

기이한 소리와 함께 왼팔이 거대한 가시투성이의 창으로 변했다.

투콱! 콰드득!

쿠아토는 반응조차 못 하고 그대로 가슴을 꿰뚫렸다.

* * *

“뱀이여, 허물을 벗고 되살아나는 존재여. 이곳에 당신의 힘을 원하는 이가 있으니…….”

쿠아토의 목이 날아가는 순간, 토루스는 즉각 주문을 준비했다.

애초에 자신은 그걸 위해 자신이 온 것이니까.

“부디 부활의 권능을… 커어어억!”

부활(Reincarnation). 죽어 버린 존재를 일시적으로 되살리는 것.

극히 고위의 주술이기에 엄청난 대가를 필요로 하고, 제한 조건 역시 까다로웠다.

일단 대상이 최대 3미터 거리에 있어야 하며 죽은 지 3분이 지나지 않아야 하고, 살아난 후 3시간 안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쿨럭쿨럭!

토루스가 피를 토해 냈다.

이걸로 술자인 자신은 최소 10년 이상의 수명이 줄어든다. 어쩌면 20년, 30년이 줄어들지도 몰랐다.

이런 종류의 권능은, 대상자의 힘의 크기에 따라 대가가 증감되는 법.

폭식의 쿠아토는 강력한 존재였고, 그를 되살리다가 당장 이 자리에서 피를 쏟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숨을 아끼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후드드득! 좌르르륵!

토루스의 기름졌던 머리털이 뭉텅이로 빠지고, 온몸의 피부가 급속도로 쭈글쭈글해졌다.

신체가 활력을 잃고 급속도로 노화되었다. 하지만 그건 곧 대가를 치렀다는 의미.

스스슥.

땅을 구르던 쿠아토의 잘려진 목이, 시간을 되돌린 듯 굴러와서 달라붙었다.

“노달!”

위험한 인간이 경고했지만, 쿠아토는 다시 생명을 얻자마자 바로 손을 썼다. 나이 든 노인에게 손을 휘두른 것이다..

콰아앙!

땅속까지 노인이 깊이 처박혔다. 상대의 뼈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자신의 귀까지 들렸다.

쉬이잇!

예의 위험한 인간이 다시 달려들었다. 즉각 반격할 태세로 움직이는 쿠아토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곧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파슷!

“……!”

무려 6장이나 떨어져 있던 적 하나가, 눈 깜박일 사이도 없이 쿠아토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이건 이른바 ‘무림인’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말하는, 경공술 같은 것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속도. 말도 안 되는 거리에서 펼쳐진, 예비 움직임조차 없는 이동.

마법도 아니고, 무공도 아니라면 그건 권능이라 봐야 했다.

거기서 토루스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가지가 있었다.

‘시프트!’

위치도 시간도 자유자재로, 한순간에 이동하는 공간도약.

거기에 나타나자마자, 적의 왼팔이 날카로운 창처럼 변하는 것을 보고 그는 확신했다.

저놈은, 뱀파이어의 권능을 가졌다고.

“블라드 체페슈!”

지이이잉.

하지만 이어진 기술은 단순히 일반적인 뱀파이어의 권능이 아니었다. 기이한 소리와 함께, 왼팔이 거대한 가시투성이의 창으로 변했다.

투콱! 콰드득!

쿠아토는 반응조차 못 하고 그대로 가슴을 꿰뚫렸다.

단번에 절명할 치명상이었지만,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짜자자자작.

몸을 뚫은 가시 창이 수없이 많은 다른 가지를 뻗어 내고, 그 가지가 또 수많은 가지를 뻗어 내, 쿠아토의 몸 전신을 파고들었다.

“그아아아아!”

끔찍한 고통에 신음을 토해 내는 쿠아토. 그에 토루스는 눈앞이 핑핑 돌았다.

‘미친!’

블라드 체페슈. 피의 꼬챙이.

마계의 귀족 용공 블라드 드라쿨레아의 기술이다. 수도 없이 뻗어 나가는 흉악한 피의 창날을 보면 전승과 하등의 차이도 없었다.

‘말도 안 돼. 대체 인간이 어떻게?’

그래서 토루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불사자이며 살육자라 불리는 용의 아들이, 어떻게 여기서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그리고 대체 무슨 수로 인간들이 그의 힘을 쓴단 말인가.

쇄애애액!

쿠아토는 전신이 찢겨 나가는 상태에서도, 거대한 앞발을 흑객을 향해 날렸고.

사르륵!

흑객은 그 자리에 없었다. 또다시 시프트를 쓴 것이다.

“아…….”

공중에서 이를 지켜보던 토루스는 기겁했다.

번뜩.

어떻게 된 건지, 적은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쿠아토의 부활을 일으킨 대상이 누구인지 눈치챈 것이다.

“얼쩡거리지 말고… 뒈져라!”

토루스가 급히 지팡이를 집어 들며 방어를 한다고 해 봤지만, 너무도 허약했다.

콰득!

단 일격에 그의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토루스으으으으!”

멀리서 수하의 죽음을 본, 쿠아토가 분노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르륵! 확!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이동한 흑객. 지근거리에 나타난 그가 이를 갈며 말했다.

“덤벼라, 괴물.”

촤라라라락.

그리고 또다시 변하는 왼손.

이번에는 좀 전의 금속성의 가시 창이 아니라, 분명한 인간의 혈육, 주먹으로 바뀌어 있었다.

“죄다 박살 낼 테니까.”

* * *

과쾅! 쾅! 쩡! 쩌어엉!

맞고 때린다. 때리고 맞는다.

정면에서 주먹다짐이 오가는 육박전이 벌어졌다.

이제껏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흑객과 격노에 찬 쿠아토의 싸움. 그런데 이번 싸움은 순수하게 괴력과 괴력의 대결이었다.

‘이 녀석……?’

지켜보던 천마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흑객이 적의 약점을 노릴 것이라 추측했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놀랍게도 그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쿠아토와 난투전을 벌이고 있었다.

쩌어엉! 쩌어엉!

더욱이 놀라운 건, 힘의 균형이 생각 외로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쿠아토의 초인적인 힘이, 어떻게 흑객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주춤. 휘청!

물론 조금씩 흑객이 밀리곤 있긴 하나, 쿠아토와 그의 체중의 차는 수십 배에 달한다. 몇 대 맞는 정도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이놈, 이미 몸은…….’

금강불괴.

극마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흑객의 몸만은 이미 극마에 다다른 상태였다.

아니, 사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화경이나 극마에 오른다고 해서 흑객처럼 전부 금강불괴를 이루는 건 아니다.

감각, 반응 속도, 외공, 내공 등 모든 것이 다 성장하긴 하지만, 주력이라 불리는 건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빠르면, 더 빨라지거나 내공이 더 중후해지거나 하는 식으로.

때문에 금강불괴에 이르려면, 적어도 극마에 오를 때 타고난 무골이거나 외공에 주력하는 이어야 한다.

바로 지금의 흑객처럼 말이다.

콱! 콱!

쿠아토의 피부가 점점 찢어지고 있었다.

흑객의 혈육으로 만들어진 주먹임에도,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재생은 어마어마한 잠력을 요구한다.

부상만 해도 떨쳐 내고 제 힘을 발휘하기까진, 상당한 휴식이 필요하다.

하물며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건, 원래 그의 체력, 마력, 모든 힘의 근원이 고갈 직전까지 다 쓰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흑객의 주먹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닿기만 해도 찢겨 나가는, 괴이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이,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쿠아토도 알고 있었다.

제멋대로 이동하는 신체. 그뿐만 아니라, 계속 원하는 대로 변하는 병기.

이건 평범한 인간이 펼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토루스의 죽음의 순간, 그 역시 한 존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블라드 드라쿨레아…….”

“…….”

“어떻게… 어떻게 그의 능력을 얻은 것인가? 아니, 마계의 대공이 어찌 한낮 인간의 몸속에 들어간 것인가?”

쿠아토는 오버로드 이전에 오크로드였다. 그린스킨 사이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전승이 있기에, 그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어둠과 피가 존재하는 땅에선, 그 어떤 몬스터도 접근하지 못하는 전설의 군주.

“그게… 그리 궁금한가?”

“…….”

“곧 박멸당할 놈들이?”

그 말에 쿠아토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폭식의 권능.

눈앞에 있는 적에게 쓰기에는 이것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쑤우우웁!

갑작스러운 폭식.

그보다 더 빨리 퍼진 마비의 파동 앞에, 흑객 역시 순간적인 마비는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게 멈춘 건 아니었다.

곧장 그의 입으로 빨려드는 그 시점에서 흑객의 왼팔이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 마음대로 움직이더니, 점점 시뻘건 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막 아가리에 삼켜지기 직전.

쿠아토의 목을 겨냥했다.

촤아아악!

하나, 쿠아토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칼을 두 손으로 잡아 버린 것이다.

꾸우우욱! 뚝! 뚝!

또다시 힘의 대결이 펼쳐졌다.

저항의 힘과 파괴시키려는 힘의 싸움이 이어졌다.

완전히 마비된 흑객과 달리 쿠아토는 오로지 팔만 움직이고 있었고, 지금의 이 힘만 누그러뜨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팽팽하게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이봐, 이쯤하지.”

툭툭.

쿠아토는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던 한 청년을 보았다.

‘……!’

그리고 깨달았다.

가장 강했던 상대.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단 사실을.

“자, 처먹어라. 멸화공이다.”

화르르륵.

그의 손바닥에는 이미 불꽃이 피어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제껏 본 불꽃과는 완전히 다른.

그런 것이었다.

화르르르륵!

“크아아아아악!”

몸에 불꽃이 번지자마자,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치고, 쿠아토의 몸이 완전히 불꽃으로 뒤집혔다.

“크아아악! 크아아아악!”

계속된 비명.

피부가 익어 버리는 것과 재생이 반복해서 이어지자, 권능은 끔찍할 정도의 고통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

좀 더 시간이 흘렀을 때쯤 쿠아토의 몸은 하얀 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토루스가 없어서 더 이상 되살아날 수 없었지만, 있다고 하여도 재생은 불가능했다.

완벽히 재로 변해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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