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44화 (145/310)

144화. 다시 만난 페이탈리스트 (3)

스륵.

천마의 모습을 한 녀석의 고개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모습. 마치 자신의 감정을 꿰뚫어 보겠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넌 보이지 않을 게다.”

천마는 코웃음을 쳤다.

탈마.

정파로 치면 현경이란 경지는 그렇다.

내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기본이 되어야 하며, 다른 대상, 경물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세상에 대한 이치가 뒤따라야 한다.

우주공부(宇宙工夫)라 하여, 낮과 밤, 어둠과 밝음처럼 자연의 순환을 깨닫는 것.

그건 보고 배우고, 머리로 기억하는 또 다른 깨달음의 영역이었다.

[헛소리.]

천마의 말에 관심이 생긴 걸까.

대꾸하던 검은 천마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화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웃음이었다.

[왔던 길이라면, 왜 오르지 못하지?]

“이유가 뭐겠나?”

천마는 기다렸다는 듯 호기롭게 말을 받았다.

도발이었다. 천마는 녀석의 분노, 광기, 혼란 같은 모든 감정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강렬한 감정은, 찰나간의 판단을 흐려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 몸으로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대답과 함께 천마는 마공을 끌어올렸다.

그르르륵!

조금 전에 손바닥에서 피어오르던 것과 달리, 지금의 마공은 온몸의 혈맥 위를 따라 가파르게 치솟고 있었다.

암흑심화인(暗黑沈化人).

과거 녀석과 조우했을 때, 그가 펼쳤던 무공.

당시에는 극마의 끝에 다다르지 않고서도 놈이 손쉽게 구현해 내는 걸 보고 패배를 직감했지만.

츠츠츠측!

이번엔 정작 천마, 본인이 그것을 펼쳐 냈다.

“나의 깨달음은 가장 죽음과 맞닿아 있는 곳, 심연(深淵) 속에서 주로 얻기 때문이지.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실패할 확률이 낮아. 왜냐면 실패하면 뒈지니까…….”

[…….]

페이탈리스트는 꽤 놀란 듯했다.

그는 과거 천마의 잠재력을 끝까지 끌어올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천마는 그때의 힘을 손쉽게 구현해 내고 있었다.

즉, 이론상 지금의 천마는 그때의 천마 자신에게 잠재된 힘을 모두 끌어 쓴 것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예전과 달라졌군. 키키킥.]

그럼에도 페이탈리스트는 괴상망측하게 웃어 댔다.

뭐가 어찌 됐든, 그의 눈에 인간의 능력이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광기와 만월의 주인.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한계치, 그 극한의 힘을 광기로 뿜어내어 만월의 권능을 얻은 그였다.

절대로 패할 수도, 다칠 수도 없는 몸이었다.

츠츠츠측!

검은 천마의 몸에 한순간 강렬한 불꽃이 타올랐다.

천마와 같은 암흑심화인을 펼친 것이다.

[와라! 두 번의 아량은 베풀지 않는다. 이번엔 완전히 공멸시켜 주마.]

그의 움직임과 함께.

“카아아압!”

천마의 첫 선공이 시작되었다.

* * *

파바바바바박!

천마는 첫 공격은 권법이었다.

그저 일반적인 손바닥의 부딪침이 아닌, 내기 발출을 통해 여섯 번 펼쳐 낸 주먹질이었다.

일격은 정면을 향한 직선,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좌우로 크게 휘어져 상대를 에워싸듯 날아갔다.

쩌저저저정!

기(氣)의 파괴력만 따진다면, 강기보다 더 응축된 기운.

그런 기운 앞에서도 페이탈리스트, 검은 천마는 한 손을 슬쩍 들어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휘이이이익.

페이탈리스트에게 날아가던 여섯 줄기의 권강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휘르르릉.

공격한 힘의 주인이 바뀐 듯, 권강 여섯 줄기는 검은 천마의 손을 따라 모이기 시작했고. 여섯이 하나로 응축되어 거대한 힘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건곤대나이? 아니, 그 이상이다!’

건곤대나이. 천마신교의 호교기공.

본래라면 기운을 흘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돌려 버리는 사량발천근의 극의.

하지만 검은 천마는 그것을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승화시켰다.

분명히 공격을,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운을 모아 붙잡아서 그 성질마저 바꿔 버리는, 타인의 기운에 개입하여 통제하는 수준까지 다다라 있었다.

[큭…….]

비웃음과 함께 상대는 더욱 강한 기운을 자신에게 쏘아 냈다.

빙그르르.

손을 뻗어 역시 건곤대나이로 대응하려던 천마의 눈이 커졌다.

‘이건?’

오랜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저 기운에 이렇게 대응하다간 위험하다고.

콰과과과과과과과 쩌어엉!

그 경고가 현실로 일어났다. 천마의 지척 거리에서 폭발이 일었다. 그리고 그 폭발은 이제껏 보았던 어떤 것과도 달리 수십 장의 여파를 만들어 냈다.

쿠구구구궁.

불꽃이 튀고 돌과 파편과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 광경을 보던 검은 천마는, 비스듬히 꺾인 고개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놀랍군. 알고서 피한 건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꽤나 굳은 표정의 천마가 서 있었다.

맞받아치거나, 건곤대나이를 펼쳤다면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 자명한 상황.

하지만, 그는 오히려 피하는 것을 선택해 피해를 최소화했던 것이다.

사사삭.

사전 동작도 없이, 제자리에 서 있던 천마는 검은 천마의 지척까지 다가가 그대로 불꽃을 방출했다.

무보격공술(武步隔功術)과 염화공(炎火功).

순간적으로 상대의 거리감을 속이며 접근한 뒤, 무공을 발출했던 것이다.

쩌저정!

검은 천마는 너무도 쉽게 막아섰다. 거기다 근접 거리에서 불의 고리까지 생성해 그대로 맞받아쳤다.

쾅! 콰콰콰콰쾅!

두 천마의 공격이 마주칠 때마다 불꽃과 함께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건물 하나를 날려 버릴 정도의 충격파가 같이 전해졌지만, 둘은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콰르르릉! 쿠왕!

그리고 점점 폭발도 강해졌다.

푸른 기운에다 자색빛의 기운까지 더해지자 허공에서 충격파가 일어나 지면까지 죽죽 터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제길.’

콰과가각!

점점 뒤로 밀리던 천마는 결국 다른 수법을 꺼내 들었다.

파바바바밧!

천마군림보. 검은 천마의 주위로 십여 개의 환영을 펼쳐 낸 것이다.

[…그건가?]

사사사삭.

그리고 검은 천마 또한 똑같이 반응했다.

그 또한 천마군림보를 통해 환영을 만들어 냈다.

‘다섯이 더 많다는 얘긴가?’

천마군림보의 환영은 단순한 내공이 아닌, 깨달음. 그 능력은 주로 경지와 비례한다.

천마는 그 녀석이 가진 능력의 한계치를 보았다.

자신이 열여덟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는 데 비해, 그의 환영은 스물이 넘었다.

그 말은 자신과의 차이가 그 정도 난다라는 얘기다.

사사사사삭.

그리고 다시금 격돌이 일어났다.

천마와 검은 천마는 실체이자 환영을 서로 하나씩, 하나씩 지워 나가고 있었다.

‘속도, 빠르기.’

동등한 힘. 동등한 반응 속도.

광기처럼 날아드는 적의 움직임을 보고 천마는 기묘한 사념에 사로잡혔다.

‘예전에…….’

자신도 저런 것을 숭상한 적이 있었다.

애초에 마공을 다루는 이였으니, 마성이란 것에 심취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더 나은 경지를 추구할 때마다 늘 부딪쳤던 문제는 바로 광기. 마공의 가장 큰 원동력 그 자체였다.

절제되지 않은 탐욕과 갈구는, 그저 욕망의 배출일 뿐, 더 높은 경지의 상승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불가와 도가의 사상을 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정중동(靜中動).’

한때는 위선과 가식만 가득하다 생각했던 그들의 무학.

하지만 기묘하게도, 마교의 마공에 그 위선과 가식은 마지막 부족했던 한 조각을 맞추는 일을 했다.

광기에 사로잡혔을 때. 탐욕에 미쳐 갈 때.

어이없게도, 천마가 마지막까지 중심을 잃지 않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정도문파의 철학이었다.

‘더 나은 것을 바라기에 사람이다. 더 나빠질 수 있기에 사람이다.’

그때쯤 이르러, 천마는 본인이 추구하던 방향을 조금 다르게 틀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강해지기 위해서 가졌던 광기를 더 강해지기 위해서 버린 것도 그때쯤이었다.

쾅!

천마가 펼친 천마군림보의 환영이 모두 지워졌다.

하지만 적은 여전히 열 명이 넘는 환영이 남아 있었다.

하나씩 지워지던 천마의 환영은 종국에선 급속도로 지워졌고, 적은 천천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너만 남았군. 완전히 지워 주지.]

검은 천마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광기로 충혈된 두 눈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 그때쯤 하늘을 보았었다.’

천마는 여전히 멍한 시선으로 이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 몸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아닌, 더 멀리, 보이지 않는 곳을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촤아아악!

검은 환영이 다시금 달려들었을 때, 천마의 팔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또다시 달려들었을 때는 천마의 다리가 잘려 나가고.

‘그 끝에는 내가 열망하던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저 거대한 자연과, 초라하고 덧없는 평온만이 가득했다.”

퍼펑!

그리고 이어진 공격에 천마의 복부가 터져 나갔다.

[공멸하라.]

십수 개의 환영이 그렇게 덤벼드는 순간.

천마는 보았다.

“……!”

너럭바위에 앉아 있는 자신을.

그리고 다시 펼쳐진 자연의 경관을.

다른 이계가 아닌, 페이탈리스트를 부르기 전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게…….”

천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자신의 몸을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다니…….”

몸은 이미 변화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옷가지가 모두 타 버린 상황에서 골격 또한 이전과 달리 좀 더 크게 변했다.

환골탈태.

드디어 일어났다. 그것도 자그마치 탈마에 들어서는 변화가 아닌가.

씨익.

천마는 웃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속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퍼진 단전의 내부를 관조했다.

단을 일구는 밭. 기가 가득한 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미묘하게 스며든 검은 기운을 떠올리며, 흐름은 부드럽게 이어졌다.

“이번엔 내가 직접 가지.”

피이이이익-.

대답과 함께 다시 눈앞이 바뀌며, 어둠이 눈앞에 펼쳐졌다.

* * *

[뭐, 뭘 한 거냐……!]

페이탈리스트, 검은 천마는 눈을 의심했다.

완벽하게 공멸해 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공멸한 자였다.

그런데 그가 다시금 나타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내려갔다 왔어.”

[어, 어떻게……?]

그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공멸한 자가, 이곳에 나타난 것도 그렇지만.

더욱 충격적인 건, 이번엔 자신이 불러들인 게 아니었음에도 그 스스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긴말할 필요 없지. 자, 이제 진짜를 보여 주마.”

스르륵.

천마는 손을 들어 올렸다.

온몸에 끓어오르는 기운. 그것은 천마의 몸을 타고 지면으로 퍼져 나갔다. 염화공과 전혀 다른 기운.

완벽한 자색의 불꽃이었다.

“이것이 바로 탈마다. 페이탈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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