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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47화 (148/310)

147화. 블랙 마켓 (1)

천무학관의 2학년 수업은 오늘도 계속되었다.

무협학 수업 시작과 함께, 단상 위에 나온 교관은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 갔다.

칠판을 보던 천마는 오늘 아침 노달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본 교는 이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너는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천마가 그렇게 지시한 이후, 노달은 한동안 칩거하며 생각을 다듬었다.

이제껏 제삼자가 보기에, 그는 사실 일파의 원로라 보기에 다소 덜떨어져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역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과도한 짐 때문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천마신교의 태상장로.

그냥 무공만 강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제자님께서 명하신 바를 생각해 보고 기억이 났는데… 암상인과 거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암상인?”

“통상 블랙 마켓이라 부릅니다. 주 거래 품목은 아이템이나 아티팩트죠. 이제껏 제가 강호를 돌며 수확한 아이템들을 싼 값에 판 덕분에 안면이 있고, 약간의 신뢰도 있습니다.”

이제껏 노달은 강호를 돌아다니며 돈 벌기에 급급했다. 천마신교의 본단이 무너진 이후, 남은 교인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부족한 교단의 고수와 자산으로는, 겨우겨우 명맥만 남은 교단의 인물들을 먹여 살리기에도 벅찼다.

몸이 가난해지면, 정신도 궁핍해지는 법이다. 극마에 오른 고수 노달의 성미는 쪼잔해졌고, 대국적으로 보는 눈을 감아 버렸다.

하지만 그래야 했었던 막중한 책임을 천마가 덜어 주자, 노달은 이제껏 쓰지 않던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오크의 보석을 그놈들에게 팔자고? 믿을 수 있는 놈들인가?”

“그럴 리가요. 애초에 이문 때문에 거래를 튼 놈들이니, 제 놈들 이문이 클 것 같으면 주제 모르고 본 교에다 빨대를 꽂으려 들 놈입니다.”

“그래서?”

“이제껏 본 교는 놈들에게 저자세로 나갔었습니다. 아쉬운 게 이쪽이고, 돈을 가진 건 저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자님께서 계신 이상, 우리가 아쉬울 게 없습니다. 오크의 보석을, 우리가 놈들에게 싼값에 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녀석들에게 이걸 비싼 값에 팔라고 의뢰를 넣겠습니다. 애초에 녀석들은 암상인. 의뢰주가 드러나지 않는 판매가 전문인 녀석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추진하면, 본 교가 오크의 보석의 출처로 드러날 일이 없습니다.”

“생각 많이 했군. 좋아. 판매처는?”

“제자님께서 다니시는 천무학관이 제격입니다.”

천마는 등교 전, 노달의 얘기를 떠올리며 자신이 들고 온 배낭을 슬쩍 바라보았다.

노달은 여러 가지 사안을 고려했다.

정체 모를 오크의 보석은, 충분한 연구 설비와 연구자가 있어야 그 가치를 완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 설비가 있는 곳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천무학관이었다.

또한 천무학관은 중원 전역을 통틀어 가장 강대한 무력을 가진 학관이다. 혹여 다른 몬스터들이 오크의 보석을 찾아 공격해 온다 해도, 천무학관의 방비를 뚫기는 힘들 것이다.

혹여 천무학관의 방비가 뚫릴 만한 공격이라면?

그렇다면 천마신교든 어디든, 어차피 중원 어디가 되어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기왕에 그렇다면 과거야 어찌 됐든, 천무학관에 팔아 버리는 것이 낫다.

노달의 결론은 그러했다.

“그 암상인이라는 녀석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미 지급으로 연락을 넣었습니다. 빠르면 오늘, 늦어도 사흘 안에는 올 겁니다. 돈 냄새라면 환장하는 놈들이니까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한다.”

무협학 교관이 수업을 끝내고 나가자, 천마는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이한, 무슨 일 있어?”

소진이 툭툭, 천마의 책상을 두들기며 말을 걸어왔다.

평소라면 수업 중에 거침없이 투덜거리거나, 엎어져서 자거나 하던 천마가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게 묘했던 것이다.

와하하! 하하하하!

창가에서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놀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단련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천마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툭 하고 뜬금없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소진.”

“…응?”

“우리 학교 학과장, 어떤 사람이야?”

“학과장? 리그웨더 님?”

소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가 묻는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하지만 곧, 물끄러미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천마의 모습을 보고 아는 대로 주절주절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일단은 뭐, 천무학관의 최강자지. 현존하는 중원 제일 고수이기도 하고. 특기는 무예가 아닌 마법. 그리고 몬스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대. 외견은 굉장히 아름다운 서역 미인인데,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라는 게 정설이야.”

“드래곤?”

“어… 좀 황망하지? 사실 나도 믿어지지는 않지만… 기록상으로는 그렇대. 140년 전 대격변의 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 계신다고. 더 놀라운 건, 그때부터 늙지도 않고 계신다나.”

“흐음.”

천마는 턱을 쓸었다.

확실히 그동안 학관 생활을 하면서 학과장이 실은 인간이 아니라느니, 골드 드래곤이니 어쩌고 하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제갈세가를 다녀오고 난 뒤, 생각해 보니 새삼 기분이 묘했다.

‘리치왕 놈이 나타난 게, 애초에 골드 드래곤 리그웨더를 추적하다가 그리되었다던가.’

그러다가 천마 자신과 천마신교가 가운데에 끼어 엉뚱하게 박살 나고 말았었다.

‘일단 그 책임은 나중에 확실히 묻기로 하고.’

문제는 앞으로다.

리치왕의 사연이 사실대로라면, 놈은 언제고 반드시 부활해서 골드 드래곤 리그웨더를 공격할 터.

리그웨더도 그걸 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상대할 것인가?

현재의 중원 상황이 그 답이었다.

리그웨더는 그저 사람이 좋아서 중원에 마법을 전수하고, 학관 연합을 출범시킨 것이 아니었다.

옛 정파 연합이 그렇듯, 결국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중원의 모든 인간을 제 방파제로 세운 것이다.

‘언제고 한 번은 마주쳐야 하는데.’

골드 드래곤 리그웨더.

현재로서는 적은 아니다. 대몬스터 대항 연합의 수장으로서, 일단은 강력한 아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뒤가 찜찜한 아군만큼 위협적인 것도 없었다.

기분 같아서는, 당장 쳐들어가서 멱살 잡고 속내를 탈탈 털어 내고 싶지만, 아직은 아니다.

천마 자신의 힘도 아직 복구 중이고, 무너져 버린 천마신교의 힘이 밖으로 드러내도 괜찮을 정도로 강하지도 않았다.

딱 몇 년만 은인자중하면, 마교는 예전의 힘을 되찾을 것이다. 당장은 그 시간이 필요하기에, 노달 역시 암상인을 통해 자금을 벌 수단으로 먼저 접촉을 하자는 말을 한 게 아닌가.

‘그만한 힘을 가지고도 학관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다는 건… 뭔가 제약이 있다는 말인데?’

소진의 떠버리를 차곡차곡 들어 새기며, 천마는 리그웨더가 어떤 인물인지, 어느 정도 대단한 존재인지를 따져 보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어이! 이한!”

복잡한 생각에 휩싸여 있는 천마를 보고, 반 학우 하나가 그를 불렀다.

“저 1층에서 누군가 널 찾는 사람이 있던데?”

“날 찾는 사람?”

“어, 차림새로는 어디 상단의 사람 같더라. 돈 꿨어?”

“…아하.”

천마는 그 말에 직감했다.

노달이 말했던 블랙 마켓의 암상인.

그들이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

매점 내에 있는 학관생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곧 2교시가 시작될 때라 그런지 다들 수업 준비를 하러 바삐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떠나지 않는 일행들이 있었다.

숫자는 다섯이었고, 의자에 앉은 이들은 둘이었다.

“허허, 여기가 그 천무학관의 매점이군요.”

찾아온 이는 검은 비단옷을 차려입은 중년인이었다.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털이 반달 모양처럼 수북이 쌓인, 스스로를 목(木)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노달의 심부름으로 온 거야?”

천마가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듣기로는 이문에만 혈안이 된 이들. 굳이 친밀하게 대화를 섞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예, 어르신이 시켜서 왔습니다. 감사하게도 항상 그분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심부름, 이라는 말에 상대의 눈썹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감사한 줄 안다니 다행이군. 무인들이 목숨 걸고 아낄 신병이기를 반값도 안 되는 헐값에 사 갔으니 살림살이가 참 많이 늘었겠어.”

“허허… 그런 걸, 우리 쪽에서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합니다. 저희는 좋은 물건을 구해서 좋고, 어르신은 급한 돈을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그렇게요.”

“내가 보기에는 갈취인데 말이지. 물건값을 그렇게 쪼잔하게 쳐 주면, 노달이 더 좋은 곳을 알아볼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봐?”

천마는 블랙 마켓이란 이들을 한번 도발해 보았다.

이런 암상인들은 그릇이 큰 녀석일수록, 자존감은 높고 자존심은 낮다.

수익이 된다면 언제든 굽힐 줄 아는 녀석이니, 한번 밟고 넘어가는 게 좋았다.

“당연히… 노달 어르신께선 저희 외에도 다른 거래선을 알아보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거래를 했지요.”

“오, 뭣 때문에?”

“저희의 실력 때문이죠. 일시간에 대량의 돈을, 출처 없이 세탁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데 목이란 녀석은 도발에도 걸려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제법이었다. 대놓고 까 내리는 말을 듣고도 불쾌한 감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실력에 자부심을 내 보였다.

이건 천마가 아는 쓸 만한 장사치의 조건에 확실히 부합했다.

“좋군. 그 정도면 보여 줘도 되겠어.”

천마는 배낭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예의 오크의 보석을 올려놓았다.

달그락. 부우웅.

기다렸다는 듯 보석을 감싼 쇠사슬이 흔들렸고 빛이 보였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이건, 그린스킨의 아티팩트군요.”

목이란 중년인은 품에서 외알 안경을 꺼내 보석을 한 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

천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무 확신하는 거 아냐?”

“근거가 있는 확신입니다. 그린스킨들은 주로 목걸이에 자신들의 습성과 문화를 문양으로 새겨 놓지요. 이건 척 보기엔 보석 같아 보이나, 이 안으로는.”

툭툭.

목은 반짝이는 보석의 내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상당한 고위급의 주술이 걸려 있는 걸로 보입니다. 보통 이런 건, 오크의 피나 누군가의 원령이 같이 담기지요.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제법인데. 과연 노달이 사람을 잘 데려왔군.”

천마는 대답하는 대신 칭찬으로 말을 돌렸다.

은근슬쩍 출처를 묻는 것을 막은 것이다. 사실, 이 아티팩트의 유래를 천마 본인이 잘 모르는 탓도 있었고.

“좋아, 좋아. 물건의 가치는 아는 모양이고, 자, 그럼 말해 보지. 얼마 줄래?”

천마는 그들을 보며 웃어 보였다.

“…흠.”

그런데 조금 전까지 시원하게 대답하던 목이란 녀석이 입을 닫았다.

표정도 굳어 있는 걸로 보아, 뭔가 이상한 반응이었다.

“뭐야,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나? 그렇게나 능력 있다고 자신하더니.”

“이게 좀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목은 생각을 잠시 정리하는 듯 뜸을 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냥 저희가 이 아티팩트를 산다면, 가용한 예산 안에서 얼마라고 바로 즉답을 드릴 겁니다. 하지만 노달 어르신도, 공자님도, 이 아티팩트는 이곳 천무학관의 학과장에게 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생각하는 가격과 학과장이 생각하는 가격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흠.”

천마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들이 살 물건도 아니니, 얼마를 주겠다는 답을 바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터.

“일단, 너희 일은 이걸 최대한 비싸게 파는 거야. 그 가격을 보고 너희의 능력을 판단하겠어.”

“그러시다면야…….”

목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판매가의 성공보수를 5대 5. 이렇게 쳐 주는 걸로 하지요.”

“반을 가져가겠다?”

“그렇습니다.”

“이런 도둑놈의 새끼가…….”

천마의 눈매가 날카로워지자 목은 고개를 내젓고,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공자님, 그저 비율에 주를 두지 마시고, 판매가의 총금액이 얼마가 될지, 그리고 공자님께서 얼마를 가져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주시지요. 결코 손해가 아닐 겁니다.”

“어째서지?”

“공자님께서는 이 목걸이를 다른 곳에 파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물건의 가치도 모르는 놈들은, 고작해야 금 백 냥에 사들이겠죠. 반면 저희가 천무학관의 학과장을 설득하면, 금 만 냥은 우습게 뜯어낼 수 있을 겁니다.”

“……!”

천마의 눈빛이 바뀌었다.

방금 한 말은 그저 예에 불과하겠지만, 상인의 말대로라면, 성공보수를 떼 주고도 5천 냥을 받는다는 것이다.

비율 좋게 금 백 냥. 비율 반반으로 금 오천 냥.

둘 중 어느 것이 더 이익일지는 말할 것도 없다.

“무예에 관해서는 저희는 공자님의 발끝도 미치지 못합니다. 공자님이 전문이시니까요. 하지만.”

“…물건을 파는 것만은 너희들이 전문이다, 이런 말인가?”

“과연, 영민하십니다.”

상인이 점잖게 미소 지었다.

때를 놓치지 않는 아부. 천마 자신 같은 고수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대담함. 그리고 하나하나 짚어 내면서 자신의 입장을 보이는 설명까지.

“…잘 팔아 준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놈은 이 바닥에서는 나름 인정해 줄 만한 놈인 것 같았다. 그리고 뭐, 애초에 수수료를 얼마나 떼니 마니 하는 것도, 손에 쥐어지는 금액보다 중요한 것도 아니고.

“하나 확인하고 싶은데, 너희가 이걸 팔아야 할 사람이 말이야. 골드 드래곤이란 거 알아?”

골드 드래곤.

알려진 바로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는 신비의 몬스터.

그런 이를 상대로 장사질을 할 능력이 되냐고 묻는 것이다.

“그게 꼭 저희에게 나쁠 이유가 있겠습니까.”

“…무슨 뜻이지?”

“리그웨더 학과장님이라면 소문대로 당연히 이 물건의 가치를 아시겠지요. 저희들보다 더 말입니다.”

달그락.

목은 다시금 외알 안경을 꺼내, 한쪽 눈에 끼고 오크의 보석을 보았다. 그러고는 끄덕였다.

“제가 볼 때, 이 아티팩트의 가치는 최소로 잡아 금 이천 냥은 될 거 같습니다. 하면 골드 드래곤, 세상 모든 지혜의 근원이시라면 이 물건의 가치를 얼마로 셈하실까요?”

“…….”

“더 잘 아는 사람은 더 싸게 살 수 있다. 그게 보통이지요, 하지만 저희 상인들 간에 도는 말로, ‘더 잘 아는 사람은, 종종 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달그락.

외알 안경을 내려놓으며 목이 말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이번에는 후자 쪽의 경우고요.”

“그렇군.”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굳이 길게 끌 필요가 없어 보였다.

“거래하지. 안 할 이유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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