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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49화 (150/310)

149화. 학과장과의 조우 (1)

천무학관이 보이는 한 언덕.

그그그극.

완만한 지면이 갈라지며, 거대한 생물체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샐러 드레이크.

이전에 폭풍우처럼 솟구치던 거친 움직임과 달리, 이번에는 고요하고 차분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이 바뀜에 따라 샐러 드레이크의 성향도 바뀐 것이다. 거칠고 광폭하던 폭식의 행태에서, 침착하고 조용한 파수꾼의 행태로.

쩌어억. 추르륵.

수송용 샐러 드레이크의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몬스터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앞선 자가 입을 열었다.

“…저기군.”

켈베로스.

그는 넘치는 심장에 묻은 마나트의 흔적을 따라 이동해 왔다. 원래라면 지척까지 바로 이어져야 했으나, 흔적이 이쯤에서 가닥가닥 끊겨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언덕 아래에 보이는 거대한 학관 도시. 천무학관.

그곳에 사이하거나 허락받지 못한 마나 줄기를 원천봉쇄 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대장, 제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켈베로스의 앞으로 두터운 털가죽을 두른 거대한 몬스터가 부복했다.

희고 길고 풍성한 털, 얼핏 보면 뚱뚱해 보이는 몸집.

북쪽 땅 멀리 있다는 설인(雪人)을 연상케 하는 생김새의 그는 설산의 군주 켈리스(Chales) 였다.

쿠아토와 같은 추정 등급 14급.

하나 절대적 권능인 폭식을 제외하곤, 총체적인 전투력 면에서는 쿠아토보다 높은 능력을 보여 주는 자였다.

“아니, 위험하다. 여긴 골드 드래곤이 머물러 있다고 추정되는 곳. 본부에서도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셨다.”

켈리스의 말에 켈베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학관 연합에서의 추정 등급은 15급.

10서클 얼음 마법을 사용하는 켈베로스는, 가디언 링가드의 오른팔이었다.

그런 그가 경계하는 절대 금지가 바로 천무학관.

저 철옹성에 단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라고는 리치왕의 수호장들 넷뿐이다.

“하면, 여기까지 온 이유가……?”

켈리스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쿠아토가 실패한 사건에 개입하는 건 그린스킨들이 결코 환영하는 바가 아니었다. 같은 리치왕 휘하라고는 해도, 그들 사이에도 파벌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켈베로스는 전형적인 매파. 과감하고 충동적인 성미라, 조심스레 은밀히 움직이는 것을 성미에 맞지 않아 하는 이였다.

“그냥, 궁금해서.”

켈리스의 물음에 켈베로스는 씨익 웃었다.

넘치는 심장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린스킨들의 전력을 대폭으로 상승시킬 수 있으니까.

하나, 그것과 상관없이 켈베로스가 나선 것은 마나트에 이어 쿠아토까지 연락이 두절되었기 때문이다.

죽었다고 보는 것이 당연. 그래서 흥미가 일었다.

폭식의 쿠아토. 그를 인간의 기준에서 놓고 보자면, 이른바 화경의 끝에 오른 존재다.

다시 말해, 쿠아토를 죽인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현경의 고수가 있다는 것.

“하면, 이제 어찌하시겠습니까?”

켈리스가 거듭 묻자, 켈베로스가 답했다.

“넘치는 심장은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하나 쿠아토를 죽인 이들도 확인해야 한다. 아마 학관생이라는 햇병아리는 아닐 거고, 이름난 교두겠지. 우선은 지켜보자꾸나.”

“그럼… 마냥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합니까? 놈들이 그 아티팩트를 들고 나오지 않는다면요?”

“아니, 아티팩트는 들고 나오지 않을 거다.”

“…예?”

켈리스가 갸웃했다.

출발하기 전, 분명 켈베로스는 이번 이동이 넘치는 심장을 탈환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었으니까.

“쿠아토가 죽은 곳은 이곳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넘치는 심장은 이 학관 안에 있다. 그 말은, 쿠아토를 죽인 자가 아티팩트의 중요성을 알고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

“하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일단 쿠아토를 죽인 자가 누구냐 하는 것. 그리고 아티팩트가 누구의 손에 들어갔냐는 것. 이 두 가지를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켈리스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켈베로스가 입을 열었다.

“학관으로 들어가는 인물이 보이면 패러사이트(Parasite)를 뿌리겠다. 그의 눈으로, 정보를 얻을 것이다.”

패러사이트. 인간의 몸에 파고드는 기생충.

딱히 강한 살상력은 없다. 애초에 전투를 목적으로 개발된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대신, 켈베로스가 사용하는 패러사이트는 인간의 뇌에 파고들어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기다려 보자꾸나. 과연 오크의 신물이 누구의 손을 탔는지.”

푸드득!

켈베로스가 손을 뻗자, 군데군데 털이 벗겨진, 흉측한 모습의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휘이이익.

녀석은 마치 전서구처럼 천무학관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와 함께 천무학관 전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비둘기의 시선으로 켈베로스의 눈에 들여다보였다.

* * *

“…그러니까, 아이템을 구한 사람만 알려 줘도 금 백만 냥을 주겠다고 했다고?”

점심시간의 한 매점.

부산한 학관생들 사이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일행이 있었다. 바로 천마와 블랙 마켓의 암상인이라 불리는 목이었다.

“그렇습니다.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학과장께서는 그걸 구한 인물에 관심이 있어 보였습니다.”

천마에게 이야기를 하며, 목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본래라면 그저 물건만 파는 게 저희 소관이지만, 이번 경우는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하하…….”

“뭐, 그럴 만하기는 해.”

천마는 목을 질책하지 않았다.

금 백만 냥이라니. 아무리 금전 감각이 별로 없는 천마라고 해도 한숨이 나올 정도의 금액이었다.

하물며 동전 한 닢 주우려고 열 길 물속을 긴다는, 뼛속까지 상인인 블랙 마켓의 목이 혹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어쩌시겠습니까?”

“음…….”

목이 다시 묻자, 천마는 조금 고민했다.

천무학관의 학과장 리그웨더.

현 강호 제일고수라 불리는 인물이다. 무력 면에서만 놓고 보자면, 천마가 그녀와 대면을 피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맞대면하는 것은 조금 꺼림칙했다.

‘리치왕. 그 녀석의 상대란 말이지. 어쩌면 그 정도 수준의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이유는 바로 권능, 혹은 이능 같은 것.

폭식이라는 괴이한 능력은 천마도 겪어 보고 놀랄 정도였다. 그건 단순히 무력이나 마법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마주하는 순간 그녀가 자신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아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숨길까?

내공를 완벽하게 무로 돌리는 극단적인 방식을 취한다면, 숨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이것 역시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굳이 돈을 준다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고.’

한참을 고민하던 천마가 목이란 사내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결정했다.”

“직접 나서시렵니까?”

“그래, 다만 전면에 나서는 건 내가 아니야. 이 사건에 적합한 인물이 있지.”

“…누굴?”

“있어. 4학년에 흑객이라고.”

천마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교주님 대신 제가 앞에 나서라고요?”

4학년 교실의 한 복도.

찾아간 천마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흑객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래, 대외적으로 고작 2학년에 불과한 나보다는 네가 나서는 게 더 나아.”

“아니, 그러다… 혹 본 교의 존재를 들키면 어찌합니까? 그 때문에 노달 어르신께서 저들을 부른 것인데…….”

“뭐, 꼭 우리 존재만 드러나는 건 아니잖아.”

“예?”

“이제껏 모아 왔던 소문들. 리그웨더가 진짜 드래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겠어?”

“아…….”

흑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과장이 사실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란 소문은 학내에서 공공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애초에 학과장과 대면한 사람도 적을뿐더러, 그녀가 직접 실력 행사에 나선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학내에서는 ‘그런 말이 있다더라’ 하는 괴담 수준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너는 학과장과 대면해서 알아봐야 할 일이 있기도 하고.”

“…어떤?”

“네 그 녀석 말이다.”

“……?”

흑객이 갸웃하고 천마의 시선을 따라갔다. 바로 자신의 왼팔이었다.

갑자기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전에 듣기로, 드래곤은 몬스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고. 애초에 다른 차원에서 온 녀석이기도 하고.”

툭툭.

천마는 진지한 표정으로 흑객의 왼팔을 두드렸다.

바로, 뱀파이어 드라쿨. 녀석이 깃든 곳을.

“그렇다면 네 몸에 기생한 녀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거야. 지금 너의 상황도 말이지.”

“아……!”

“내가 녀석에 대해 아는 건 어디까지나 추측과 감이다. 제대로 된 지식이 아냐. 하지만 소문대로 리그웨더가 골드 드래곤이라면, 그리고 골드 드래곤이 지혜롭고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존재라면…….”

분명 마계의 귀족, 드라쿨레아의 존재도 알고 있을 터. 그것이 흑객이 리그웨더를 대면해야 하는 이유였다.

“지금 네 몸은 금강불괴에 올랐다. 이미 녀석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야. 그런데 아직 놈은 움직이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뭘 노리는지, 이것만은 나보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 그녀가 제일 잘 알 것이다.”

“…그렇군요.”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 녀석을 제압하기 위해 네가 뭘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을 테고.”

“교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흑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말대로, 지금 그의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유일한 존재가 바로 학과장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침 잘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체육학과 교두가 저에게 언질을 넣어 왔습니다. 시간이 되면 학과장과 대면을 해보겠냐고.”

“…그쪽에서 이미 접근해 왔다고?”

“예.”

흑객의 말에 천마는 고민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자신과 흑객이 꽤 소란을 일으키긴 했다. 학관 사람들이 죄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나름 조사한 결과가 있을 터.

그리고 녀석들이 똑똑하다면, 이미 적지 않은 것들을 알고 있다고 예상해 두는 것이 나을 터였다.

“이참에 잘됐군. 생각을 잘 정리해서 들어가.”

“네.”

천마의 허락에 흑객은 안색이 밝아졌다.

이제야 겨우 자신의 몸에 기생하는 블라드, 위협적인 흡혈귀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

* * *

“그가 왔다고?”

교무처장 구용천은 흑객이 왔다는 소식에 기뻐했다.

그간 몇 차례 만남을 권했지만 계속해서 고사하던 마교의 고수.

그는 곧장 리그웨더에게 예의 사람이 왔다고 알렸고, 그를 학과장실로 안내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끼익.

방 안에서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간 흑객은 잠시 멈칫했다.

‘…이 사람은.’

흑객이 리그웨더를 보고 느낀 첫인상은, 매우 기이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그녀의 눈에서 그려지는 이지(理智)적인 기운은 신묘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은연중에 그녀의 몸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역시 생소한 것이었다.

이제껏 용병으로 활동하며 겪었던 마법사, 혹은 패스파인더와 같은 기운도 아니었다. 이건…….

이제까지 겪어 온 강함이나 위험함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무언가였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그렇게 계속 멀뚱히 보실 건가요?”

“…아!”

학과장을 너무 빤히 보고 있던 흑객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실례했습니다. 흑객이 천무학관의 주인을 뵙습니다.”

그는 깊게 머리를 숙여 무례를 사과한 후, 곧장 리그웨더가 준비한 의자에 앉았다.

사락.

뒤이어 리그웨더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저에 대해서 많이 궁금하신가 봐요?”

“예? 아닙니다. 전 그저…….”

“괜찮아요. 보신 대로, 저는 인간이 아니랍니다.”

“……!”

흑객의 눈이 커졌다.

인간이 아니라니. 어렴풋이 짐작하긴 했지만, 대놓고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괜찮으십니까?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셔도?”

“딱히? 저는 애초에 숨기려고 한 적도 없는 걸요. 이미 학관 안에서도 알 사람은 다 알아요. 오히려 알고도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죠. 그렇다고 제가 일일이 다 알려 줄 필요까지는 없었을 뿐이고.”

여유롭게 대답하는 리그웨더 표정은 밝아 보였다.

왠지 흑객의 반응을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하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흑객이 조심스레 물었다. 리그웨더는 다리를 꼬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드래곤. 마법의 종주이며, 리치왕의 대적자. 영원히 사는 생명이며,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자입니다.”

“……!”

“그리고,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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