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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50화 (151/310)

150화. 학과장과의 조우 (2)

골드 드래곤.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드래곤. 그중에서도 가장 지혜롭고 온화한 존재.

이전부터 중원에서의 용은, 그 자체가 신령한 신수(神獸)로 경이롭게 여겨졌다.

그러던 것이 대격변의 날 이후로 더욱 존경받게 되었다.

-언제고 이 땅의 혼돈을, 중원의 고수들을 이끌어 사악한 몬스터들을 물리칠 존재.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그 말을 한 사람은 리그웨더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리라.

중원에 마법을 가르치고, 전위와 후위라는 파티 전술을 정립한 자.

기본적으로 제각각이고 폐쇄적이던 강호의 문파를 하나로 통합해, 학관 연합을 출범시킨 자.

그 모든 일을 이뤄 낸 자가 천무학관 학과장으로 있었고,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

“많이 놀라시는 걸 보니, 그동안 제 소문을 믿지는 않으셨나 봐요?”

리그웨더는 그런 흑객의 반응을 재밌어했다.

그리고 차분히 시선을 내린 후, 다시금 말했다.

“그나저나 마교 출신인 분을 이렇게 보니 여러 의미로 놀랍군요.”

흑객은 시선을 들었다.

자신을 부른 이유. 아마도 그 얘길 하려고 하는 듯했다.

“심지어 이종(異種)과 같이 몸을 공유할 줄은…….”

“……!”

흑객의 눈이 커졌다.

예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이 또한 언제고 나올 이야기이긴 했다.

교주가 예상했다시피 골드 드래곤은, 흑객의 몸속에 있는 뱀파이어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음, 놀라게 해 드렸나요. 당황할 필요는 없어요. 저희 종족은 본디 그런 이종을 구별해 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니.”

“…….”

그 정도면 충분히 당황할 법하지 않을까.

듣기로 드래곤은 신과 같은 영역에 닿은 자들로, 그 눈은 세상 만물의 허와 실을 구분해 낸다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지금처럼 인간의 몸속에 있는 이종 정도는 즉각 파악할 수 있었을 터.

“학과장님께서는 제 몸을 어찌 보십니까?”

흑객은 최대한 침착하게 자제하며 물었다.

지금 현재의 몸 상태. 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몸을 차지하려는 그 녀석은 왜 어느 순간부터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마음 같아서야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려서라도 묻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지금 그는 천마신교의 대표 격이므로.

“공생하고 있어요.”

“공생(共生)?”

어이가 없는 소리다. 함께 도우며 살아간다니. 애초에 놈은 자신의 몸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믿기지가 않는군요.”

“저도 그래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군요. 인간을 맘에 들어 하는 뱀파이어라니.”

쓴웃음을 지으며 리그웨더 역시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제껏 수천 년을 살아온 그녀도, 이런 현상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흡혈귀와 인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기생(奇生)이다.

인간의 몸에 깃든 흡혈귀는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먹으며, 숙주에게도 강한 힘을 쓸 수 있게 도와준다.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뱀파이어의 필요에 의해서였고, 녀석이 원하면 언제든 숙주를 버리고 갈아탈 수 있었다.

그런데 리그웨더가 보기에, 흑객의 눈에는 이미 뱀파이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즉, 그는 이미 뱀파이어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그의 몸에 안착한 흡혈귀는, 숙주를 ‘인정’한 것이다.

“하급의 뱀파이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기묘한 일이지만 그는 당신이 맘에 드는 것 같아요.”

“어떻게… 공생이 가능한 겁니까?”

“그러게요. 원래라면 불가능하죠. 그럼에도 당신들은 공존하고 있군요. 아마도 그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거겠죠. 제 생각으론 아마 당신의 무공이 아닐까 싶지만.”

“제 무공이라면……?”

“마공.”

그녀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흑객을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기존의 정종 무공과는 다른, 파괴적인 기(氣). 원론적으로는 정종 무공보다는 부작용이 심하지만 그것은 너무 순수한 힘에서 비롯된 것, 태초의 힘을 쓰기 때문이죠.”

정파의 정종 무공은, 불가나 도가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리고 그들은 갈무리된 정순한 기운을 제일로 친다. 너무 순수한 자연의 기 그 자체는 오히려 정화하고 걸러서 써야 할, 급이 낮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삼라만상. 세상의 모든 것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맑고 밝은 기운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음습한 기운도 있다.

때문에 태초의 기운에는 온갖 불순물이 함께 섞여 있었다. 그대로는 인간의 몸에 해로운, 위험한 기운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리그웨더는 마공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정제되지 않은, 불순물조차 그대로 받아들이는, 다른 의미로 더욱 거칠면서도 자연 본연의 힘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이해한 마공이란 것의 본질이었다.

“이제껏 마교인들을 볼 기회가 흔치 않았어요. 대격변 이후 당신들은 늘 존재를 숨겨 왔으니까요. 우연히 몇 번 볼 기회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무인은 아니었죠. 그랬다가 당신을 만났고. 지금 보니 확실해졌군요.”

“…….”

“마공은 흑마법과는 다른 어둠의 기운이라는 걸요. 이제껏 정종 무공에서는 마기를 악과 죽음과 흡사한 기운이라고 했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걸.”

“본 교의 무공은 결코 사이하거나 악독한 것이 아닙니다!”

흑객이 버럭하자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제 눈에는 보이니까. 무엇보다 마공이 흑마법처럼 사이한 기운이었다면, 뱀파이어가 당신의 몸에 들어가지 않았을 테니까.”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뱀파이어는 굶주린 자. 그들은 피만이 아니라 피 안에 감도는 생명의 기운을 갈구하죠. 만약 당신의 피에 흑마법의 기운이 있었다면, 그는 당신에게 들어가지 않았을 거예요. 우연히 들어갔다 하더라도 바로 빠져 나왔겠죠.”

쪼로록.

말을 많이 했다고 느껴진 건가, 리그웨더는 자신의 잔에 차를 부었다.

절레절레.

흑객은 그녀의 말을 생각해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피 맛이 마음에 들어서 머물렀다는 것 아닌가.

“…흡혈귀 주제에 입맛이 까다롭군요.”

“원래 까다로워요, 그들은. 손을 한번 내밀어 보실래요?”

스윽.

리그웨더가 손을 내밀자, 흑객이 약간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후릅.

리그웨더는 거절당한 손으로 잔을 들어, 여유롭게 차를 들어 한잔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뱀파이어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답니다. 시사나, 용족, 하족, 진조 등. 당신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알기 위해선, 그리고 그의 능력과 현재 당신의 상황을 보기 위해선 접촉이 필요해요.”

“…음.”

흑객은 고민했다. 전능하다고 알려진 드래곤.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 큰일 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생각해 보면 어차피 코앞까지 와서 앉아 있는데, 손을 내미나 안 내미나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넓은 의미로 보면 협력해야 될 대상이니까.’

스윽.

그렇게 손을 내밀었고, 리그웨더는 미소와 함께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두 호흡을 내쉬었을 때였다.

“…아!”

리그웨더가 흠칫 몸을 뒤로 물리며 눈을 부릅떴다.

지금껏 침착하던 그녀의 당황한 모습에 흑객이 의아한 듯 바라봤고. 그녀는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용공 블라드 드라쿨레아가 인간의 몸에……?”

“…대단한 겁니까?”

흑객은 이미 블라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그 이름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존재인지는 도통 알지 못했다.

“블라드 드라쿨레아. 그 뜻은 용의 아들… 원래는 어느 작은 왕국을 지키며 대제국을 상대로 이긴 놀라운 기사.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저주를 받았었죠.”

“…허.”

“죽음을 맞이한 직후, 그는 영혼이 마계로 떨어졌어요. 마족이 된 거죠. 하지만 그 마족 사이에서도 기어코 대공의 지위를 차지한 인물. 드래곤들의 입에도 오르내렸던 자에요. 저 정도면 용의 아들이라 불릴 만하다고.”

“…….”

여전히 그 의미를 짐작하지 못하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리치왕. 우리 종족을 말살하고 여기까지 온, 그 존재가 흑마법에 한해서는 이미 그 능력이 신에 가깝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약, 무대가.”

리그웨더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떠올렸다.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 말뚝들의 벌판. 꼬챙이처럼 꿰뚫린 시신.

그 아래로 펼쳐진 붉은 피의 바다.

그곳에 서서 냉혹하게 웃고 있는 한 남자를.

“그 싸움터가 피로 가득한. 시체가 산을 이룬 곳이라면… 블라드, 그는 천하의 리치왕과의 싸움도 피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정말입니까?”

“확신해요. 어둠과 피의 군주, 블라드라면.”

리그웨더는 대답했다. 조금 전 흑객의 손을 잡은 순간,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정말 오랜만이군. 위대한 종족이여.

그건 절대적인 자신감이었다.

* * *

“후우… 다 왔다.”

4학년생 사유강(査流江)은 천무학관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 표국에 파견되었다. 임무가 끝날 무렵에 표국이 물자 수송을 했고, 그 덕에 팔자에도 없는 표사 역할을 하며 무려 이십여 일이 넘는 운송 일정을 마치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터억.

천무학관이 보이는 어느 언덕에서, 그는 발목이 뭔가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뭐지?’

분명히 끈끈한 풀 같은 것이 감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발을 보고, 지면을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끈적하게 느껴졌던 느낌도 이내 사라져 있었다.

‘기분 탓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금 발길을 재촉했다.

이미 날짜가 너무 지났다. 자칫하면 자신의 이름이 가장 아래에 적힐 수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천무학관에 들어서서, 접수처로 이동하던 중.

“아, 지루하군.”

“언제쯤 끝나려나?”

“기다려 봐. 큰돈이 걸린 일이니, 시간이 지체되는 게 당연하잖아.”

사유강의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매점 근처에서 한쪽 벽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나이가 많다. 그리고 옷이 값비싼 비단이다. 척 봐도 학관생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을 위인들이 아닌데…….”

그렇게 말하고 다시 가려던 걸음이 멈칫, 하고 굳었다.

“어…….”

살짝, 그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낮술이라도 한 듯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그는 한 무리의 상인들에게 향했다.

“이보시오. 당신들 누구시오?”

“엇.”

블랙 마켓 상인들은 학관생의 옷차림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책임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한인 목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다가오더니 예를 갖추었다.

“우리는 상인입니다. 팔 물건이 있어 이곳으로 왔습니다.”

“상인? 천무학관은 본관에서 거래를 하지 않소만?”

“아, 그렇지요. 다만, 물건의 가치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래하시는 분도 위치가 높으신 분이라…….”

“흠.”

사유강은 표정을 찡그렸다.

경비를 서는 무사들도 그렇고, 잡상인은 무조건 출입 금지인데 이곳에 들어온 것을 보면 뭔가 있다고 봐야 했다.

“알겠소. 일이 끝나면 빨리 돌아가시오.”

스륵.

어느새 풀려 있던 눈의 초점이 돌아와 있었다. 사유강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발길을 돌렸다.

“저기, 말입니다.”

“……?”

그런데 조금 전, 대화를 나눈 덩치 큰 장한이 그를 불렀다. 묘하게도 살짝 눈이 풀린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오?”

“아니, 다름이 아니라…….”

사내는 뭔가 불편한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고는 이내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방금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

이 사람이 농담을 하나 싶었던 사유강.

하지만 덩치 큰 장한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고 하긴, 천무학관에 거래가 있어서 왔다고 하지 않았소?”

“아, 그렇지요.”

그는 눈을 번뜩였다.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렇게 그는 뒤돌아, 본래에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목, 뭐라는가?”

“4학년 학관생이지? 생각보다 강해 보이는데?”

모여 있던 블랙 마켓 상인들이 한마디씩 했다.

불려 나갔던 목이 돌아오니 괜히 찜찜한 기분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너희들, 이름이 뭐야?”

“…….”

갑자기 목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이제껏 함께해 왔던 일행들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때.

갑자기 또 한 명의 사내가 눈이 풀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 뭐 하면 되지?”

뜬금없이 밑도 끝도 없이 던지는 질문.

“뭘 하긴? 흑객이란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아. 같은 말 또 하게 만드네, 이 녀석.”

그러자 바로 옆 중년인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마라. 골드 드래곤과 만났으니, 돈은 넉넉히 받을 수 있을 거야.”

또 한 명의 사내가 거들었고.

“무려 금 백만 냥이라고.”

“넘치는 심장이란 아이템이 참 특이하다더만.”

“인간이 쓰기엔 어떤 효능도 없다고 하던데?”

갑자기 정신없이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이제껏 침묵하던 목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 공간에 숨겨 둔 아이템. 넘치는 심장 말이지. 어떻게 꺼내?”

그 말을 끝으로.

“어떻게 꺼내?”

“어떻게 꺼내?”

“어떻게 꺼내?”

패러사이트에 감염된 다른 세 녀석이 똑같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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