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학과장과의 조우 (5)
퍽!
기생충이 터져 나가며, 바닥에 싯누런 덩어리가 떨어졌다. 인간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그런 형체와 색이었다.
다만, 문제는 기생충이 아니었다.
“크어어…….”
상인 목의 정수리 안으로 잠식된 기생충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그로 인해 목은 그 자리에서 곧장 절명했다.
“아이고. 젠장.”
천마는 목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걸 보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이 녀석은 중요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몸이었다.
아직 넘치는 심장을 회수하지도 못했는데 죽게 되다니.
“키익!”
지켜보던 남은 상인 셋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천마는 목의 행동을 보며 이들이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이해했다.
목과 달리 바로 죽지 않았다는 건, 기생충이 전부 제거되지 않다는 걸 뜻했으니까.
퍼퍼퍽!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천마가 손을 내뻗자마자, 거짓말처럼 녀석들의 머리가 깨져 버렸으니까.
철퍽. 후드득. 털썩.
목을 위시한 장년인 넷의 사체가 쓰러졌다. 하나같이 머리가 터진, 끔찍한 몰골이었다.
“아… 이거, 어찌한담.”
천마는 그 모습을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공간 인벤토리.
목을 이번 일에 참여시킨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보관창고. 목은 그 안에 넘치는 심장을 보관하고 있었다.
한데 그 주인인 목이 죽어 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아이템을 회수하나.
아공간 인벤토리를 보이면서, 목은 장담했다. 혹여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더라도, 그를 통해 이득을 얻지는 못할 거라고. 신기하고 든든한 창고지기였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그 창고지기를 죽인 지금 천마도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니. 큰 손해였다.
“곤란한데. 이대로라면 모처럼 얻은 게 홀라당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
짤그랑. 땡그랑.
그때였다.
탱탱탱탱. 좌르르륵. 와다다다닥!
“어?”
갑자기 허공에서 우두두두, 엄청난 금은보화와 각종 보석, 그리고 서류 뭉치들이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왔다.
턱. 데굴데굴.
그중에는 진한 녹색의 보석. 천마가 찾던 넘치는 심장도 있었다. 목이 소유했던 인벤토리가 주인을 잃자 내용물을 쏟아 낸 것이다.
득득득득! 득득득득! 득득득득!
은자와 금괴, 채권 뭉치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걸 보고 있던 천마는 기가 막힌 얼굴로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아니, 사라진다며?”
이제껏 하던 고민이 좀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
* * *
“끄응! 후우…….”
천마는 어깨에 멘 관짝을 한 곳에 내려놓았다.
철렁. 좌르륵. 와자자작.
관이 내려앉으며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보석과 금괴, 그리고 각종 채권 뭉치들의 소리다.
목이 죽으며 토해 낸 값비싼 재물들. 이걸 어찌하나 싶었던 천마는 곧 적당한 크기의 목함을 찾았다. 참고로 그게…….
죽은 자의 안식을 위한 관이라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우. 무겁다.”
아무리 천마라 해도, 관짝 하나 크기의 금과 보석들을 짊어지는 건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본관 1층의 쉼터에 가져와 숨을 돌리고 있자니 마침 흑객이 나타나 급하게 달려왔다.
“교주… 아니, 제자님!”
“어, 일 끝났냐? 대화는 잘했고?”
천마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지만, 흑객은 멈칫했다. 천마의 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 관 때문이었다.
“누구… 죽었습니까?”
“어? 아, 이건 그 목인지 금인지 하는 상인 녀석. 그 녀석이 토해 낸 보물들이야.”
“…보물이요? 죽이신 게 아니라?”
“엉? 죽이긴 했지. 근데 죽이려고 죽인 건 아니었어. 그냥 제 일을 못 하게 된 거라서. 그래도 뭐, 묻어는 주고 왔어.”
“……?”
흑객의 얼굴이 괴상해졌다.
그도 그럴 게, 보통 관은 시신을 담아 옮기는 물건이다. 그런데 시신은 묻어 버리고, 관에는 금은보화를 담아 왔단다.
이건 또 무슨 엽기적인 행동인지.
“기생충인지 뭔지에 감염되었대. 멀쩡하게 있던 놈들이 갑자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잖아? 그래서…….”
그러자 천마는 그간의 일을 짧게 설명했다.
자칫하면 넘치는 심장, 오크의 신물이라 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 학관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고.
무엇보다 기생충을 통해 천마 자신을 알아보려는 기색이 들어서, 즉각 처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과연……. 그랬었군요.”
이야기를 듣고 난 흑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흑객 역시도 쿠아토를 쓰러뜨리고 난 후, 이 모든 게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 강한, 더 위험한 몬스터가 오크의 보석을 찾아 쫓아올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고는 해도, 패러사이트라니. 이건 예상 못 한 수단이었다. 충분히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면 감염당할 일은 없겠지만,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은 언제든 노출되어 적의 손발이 될지 모른다.
그건 일상생활의 심대한 불편을 야기한다. 누가 갑자기 훼까닥 돌아서 음식에 독을 타거나, 화장실에 폭탄을 설치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무래도 이전 놈보다 강하거나, 강하지 않더라도 짜증 나는 놈일 것 같은데… 누굴까? 아는 거 있냐?”
“음…….”
천마의 말에 흑객은 잠시 고민했다.
“제가 알기로 쿠아토보다 강한 자라면, 오크로드 아락취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린스킨의 수장이고, 리치왕의 4대 호위장. 자리를 비운 후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제껏 없었다고 앞으로도 없을 거란 보장은 없잖아?”
“그 말씀은 맞습니다만… 어쨌든 그린스킨은 아닐 겁니다.”
“왜?”
흑객은 뭔가 생각을 떠올리는 듯 가늘게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오크, 트롤, 오거 같은 그린스킨 계열은 세간에서 말하는 ‘무투파’들입니다. 골수까지 싸움만 들어찬 녀석들이 패러사이트 같은 감시 마법을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투파라, 깨작깨작 간 보는 일은 안 한다? 거 화끈하긴 하네. 그래서?”
“패러사이트 같은 기생충을 부리는 녀석은 주로 흑마법사 쪽이랍니다. 합성 생물, 키메라 같은 것들요.”
“흑마법사? 네크로맨서?”
“아, 같은 계열인데 좀 다르답니다. 검객과 창수처럼요.”
흑마법사 하면 제일 유명한 게 네크로맨서. 하지만 이들은 보통 해골이나 유령 등, 언데드 몬스터들을 부려서 쓰는 군단장의 성격이 강하다.
네크로맨서가 아닌 흑마법사 중에는 합성 생물을 부리고 만들어 내는 녀석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키메라.
사자 얼굴에 염소 몸통, 뱀의 꼬리에 날개까지 지닌다는, 산해경에도 나오지 않는 괴물 덩어리.
“신기한 게, 이렇게 만들어진 키메라들 중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도 나온답니다.”
“호오.”
이러한 키메라들의 소속은 링가드 휘하다.
링가드는 그린스킨의 수장인 오크로드 아락취와 동급으로, 리치왕의 4대 수호장 중의 하나.
그리고 아락취 아래의 직속 수하로 쿠아토가 있었듯이, 링가드 아래에도 오른팔, 왼팔 역할을 하는 직속 몬스터가 있었다.
가디언 링가드.
그의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마법 생명체다.
와이번, 가고일, 스핑크스, 이무기 등 강력하거나 혹은 위험한 특이 능력을 지닌 몬스터들. 거기에 수장이 <가디언>이라 그런지 하나같이 방어력이 뛰어나고 수명이 길다.
“켈리스, 그리고 켈베로스. 그 두 놈은 아주 위험합니다.”
그중에서 켈리스라는 놈은 위험 등급이 14급이었다.
즉, 얼마 전에 마주친 폭식의 쿠아토, 그놈과 동급.
거기다 켈베로스는 수호장 아래에 있는 행동대장 중에서 데스나이트의 수장 칼베스의 오른팔 ‘듀라한’과 함께 최고 위험 등급에 올라 있는 녀석으로, 무려 15급이라 평가받는다.
“만약 이 둘이 함께 움직인다면, 매우 심각한 일이 될 겁니다.”
“심각하든 어쩌든.”
천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처리해야 할 놈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뭘 걱정하냐는 듯 간단하게 정리하는 천마. 하지만 흑객은 거기서 한 가지를 지적해야 했다.
사실, 지금은 몬스터보다 다른 의미로 더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이다.
“그리고 블랙 마켓 상인들 말인데… 어쩌면 좋을까요?”
“응? 뭘 어째?”
천마가 태연하게 되묻자 흑객은 살짝 머리가 아파 왔다.
“아니… 일단 사람이 죽었잖습니까. 그것도 블랙 마켓이라면서요? 사유를 설명하고 보상이든 뭐든 해야 하는데…….”
“우리가 왜 보상을 하냐. 오히려 큰 피해를 입을 뻔했는데.”
“…….”
흑객은 천마에게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이런 게 원래는 강호의 도리고 상식이라고 말하자니, 감히 교주께 무례를 범하는 것 같아서.
애초에 이분은 이런 부분에서 추호도 걱정을 하지 않는 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제껏 걱정할 일이 없는 인생을 사셨으니까. 새삼 알려 준다고 알 것 같지도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뭐… 상인들 소속은 스승님이 아시겠죠.”
“그래, 그래. 노달이나 보러 가자.”
벌떡.
흑객의 말에 천마는 일어섰다. 그러고는 툭툭,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좀 무겁더라. 잘 들어.”
“…….”
그리고 당연히 관짝에 든 금은보화는 흑객이 들게 되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어깨에 메고는 신음했다.
묵직.
정말 엄청난 무게였다.
* * *
“주, 죽이셨다는 말씀입니까?!”
노달은 기겁했다. 천마가 너무 쉽게 말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왜? 뭐 문제 있어?”
“…….”
천마와 그 뒤에 시립한 흑객의 표정은 상반되었다.
천마는 왜 그러는데, 라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고, 흑객은 왜 이러실까요, 라는 피곤한 얼굴이었다.
노달은 흠뻑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모르셨습니까? 블랙 마켓의 뒤를 봐주는 놈들이 딥 블랙이라고요.”
“그게 뭔데……? 뭐 대단한 곳이야?”
“하…….”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천마와 점점 눈이 흐릿해져 동태 눈처럼 변해 가는 흑객.
노달은 답답함을 속으로 꾹 누르며 신음처럼 말했다.
“중원 전역에서 순위 3위랍니다. 강호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 클랜. 그런 놈들이 뒤를 봐주는 곳이 이 암상인 놈들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으으윽, 하고 신음하며 천정을 올려다보는 흑객.
그리고 여전히 그게 뭔데? 라는 얼굴로 바라보는 천마.
노달은 머리를 부여잡고 말을 이었다.
“제자님… 상대는 마음만 먹으면 한 성을 하루 만에 무너뜨릴 정도의 힘을 가진 클랜입니다. 블랙 마켓의 상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당연히 조사가 나올 것이고요.”
“기생충에 감염되었다니까? 고객인 내 물건을 빼돌리려고 했어!”
“아니, 그러니까요… 죽일 만해서 죽였다고 쳐도… 문제는 이겁니다. 목이란 상인이 가진 고유의 아공간 인벤토리 안에 있던 보물들, 우리가 모두 갖고 있지 않습니까.”
“…아.”
천마는 그제야 ‘아, 문제 있네’ 라는 얼굴이 되었다. 덕분에 노달은 잠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호랑이를 피해서 늑대 굴로 들어온 꼴이랄까.
홍매학관의 추적을 피하려고 고용한 블랙 마켓 암상인.
그들은 딥 블랙의 소속이다. 즉, 지금 천마가 가져온 관짝. 그 안에 든 금은보화들은 전부 딥 블랙의 물건들이다.
이걸 돌려줘야 한다.
그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또 걱정되는 게 있었다. 바로 목의 죽음이다.
소지하고 있었던 재물의 양으로 보아, 목이라는 상인은 아마 블랙 마켓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다.
즉 딥 블랙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상인을 죽여 버린 것이다. 이 일로 그들이 어느 정도의 손해배상을 요구할지 상상도 잘 가지 않았다.
“이걸… 어찌해야 할지.”
노달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자, 천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뭘 고민하냐? 내가 가서 이야기하고 올게.”
“아니… 제자님께서 굳이 이런 일로 나서실 필요야…….”
노달이 반사적으로 말리고, 천마는 씨익 웃었다.
“아냐, 이참에 그 천하의 3위? 라는 클랜 구경도 하고.”
“…으음.”
문득, 흑객이 다음 말을 예상한 듯 살짝 뒤로 돌아 버렸다.
“맘에 안 들면, 죄다 쓸어버리면 되지.”
“…아, 그건 그렇지요.”
노달은 그저 긴 한숨만 내쉬었다.
앞으로의 일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