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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55화 (156/310)

155화. 블랙 길드 (2)

성도는 사천 제일의 도시였다.

시대상으로는 삼국시대의 촉한부터 오대십국 시대의 후촉까지, 익주 지방에 웅거한 세력들의 수도였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옛 시대의 영웅을 모신 사당이 많이 있습니다.”

“허허…….”

노달의 말에 천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성도 시내에 사람이 좀 많은 곳에는 여지없이 소열제, 관운장, 심지어 제갈량을 모신 사당이 즐비했다.

심지어 제갈량의 백우섭선이니 유비의 자웅쌍고검이니, 들기도 힘든 십팔 척 장팔사모, 청룡언월도 등을 파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혀 웃음이 터질 수밖에.

당연히 저것들은 그냥 모양만 따라 한 모조품들이다.

그럼에도 가게는 문전성시. 손님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세상이 달라졌다며? 그런데도 왜 이 동네는 이런 것만 있냐?”

“놀이니까요.”

노달이 설명을 이었다.

낙양이니 개봉이니 하는 오래된 대도시는, 예전부터 명문이 많고 역사가 유구한 곳이다.

그렇다 보니 그저 그 지방에 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했다.

반면 사천은 아무리 번영한들, 인근에서는 변방 촌것들이라는 인식이 짙었다.

정작 고수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전국을 누비지 않아 중원에 딱히 이름을 떨친 인물이 없었다.

“아미타불이니 하는 도관이나 사찰보다 옛 기억의 영웅들을 모신 무후사가 훨씬 많은 곳이 이곳 성도입니다. 저기 보이시죠?”

노달이 가리킨 곳을 보니, 과연 커다란 사당이 하나 있었다. 얼마나 참배객들이 많았는지 땅값이 비싼 시내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사당.

그리고 그 옆에는 큰 비석 하나가 서 있고 주변에 이것저것 향촛불이 피워져 다소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건 뭐야?”

“아, 그게…….”

천마의 물음에 노달은 조금 착잡한 얼굴이 되었다.

“제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대격변의 날에는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덕분에 사람도 많이 죽었지요.”

“음…….”

천마는 살짝 찔렸다.

리치왕이 쓴 마지막 마법이 메테오라고 그랬던가.

대격변의 날에 일어난 대규모의 지진, 거기에는 자신도 어찌어찌 손을 보탰으니까.

여하튼 리치왕과 싸우면서 벌어진 격돌의 여파가 너무 커서 수백 리는 떨어진 이곳 사천까지 대지진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큰 변이 났으니, 제갈무후께서 보호해 주시리라 믿고 사람들이 무후사에 몰려들었던 거지요. 그랬는데…….”

“흥, 멍청하긴.”

뒷말은 안 들어도 알 바라, 천마는 코웃음을 쳤다.

지진이 일어나면 넓은 곳, 평탄한 곳을 찾아서 대피해야 한다. 그런데 사당처럼 좁은 곳에 사람들이 몰려?

“죽으려고 작정한 모양이군. 노달, 본 교에는 그런 무식한 놈들은 없겠지?”

“…….”

“노달?”

“아, 허험. 네, 없습니다. 그런 불학무식한 자들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노달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

천마는 한숨만 쉬었다. 대충 사정을 알 것 같았기에.

“앞으로라도 교육을 잘 시켜라. 본 교에 무지렁이들이 이런 짓 하는 꼴, 나는 못 본다.”

“넵!”

천마는 그쯤 하고 넘어갔다. 노달이라면 이 정도로 말한 것만 해도 알아서 할 것이니까.

“그래서 딥 블랙의 지부는 저쪽입니다만…….”

“아, 그 전에.”

길을 안내하려는 노달에게 천마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 진지한 얼굴에, 노달은 잠시 긴장했다.

“준비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있지. 일단 밥부터 먹자.”

“…….”

“왜? 배 안 고파? 밥때 됐잖아.”

뭐가 문제냐는 투의 천마에게, 노달은 곧바로 납득했다.

적진에 들어가기 전에,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저도 배가…….”

옆에 있던 흑객의 말에 노달은 빠르게 한 곳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 * *

사천은 전반적으로 지대가 높은 고원 분지 지방이다. 하지만 장강의 상류가 있는 수원지이고, 주변에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수량이 풍부하고 땅이 너른데 기후까지 따스하니, 세상의 온갖 작물이 풍성하게 자랐다.

이에 세간에서는 사천을 ‘천부지대’라 하여, 세상 모든 작물의 곳간이라 불렀다.

쏴아아아. 화드드득!

노달이 안내한 곳은 크게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이 줄을 서 있고 달콤 고소한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세간에서 이른바 맛집이라 부를 만한 곳이었다.

“냄새가… 장난 아니군. 이건 산초? 후추도 있네? 그걸 기름에 튀기니… 우와.”

천마가 벌름벌름, 코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에 감탄했다.

“음식 하나는 일절이라 불리는 지방입니다. 바깥에선 이것들을 사천요리라 부른다 합니다.”

노달이 끄덕이며 설명했다.

사천은 기후가 따스하여 작물이 잘 자라지만, 동시에 기껏 만든 음식이 잘 쉬었다.

때문에 식료가 상하는 것을 막고, 살짝 냄새가 나는 것을 덮기 위해서 강한 향과 단맛으로 양념을 가했다.

덕분에 달콤 매콤. 조청이나 꿀 등으로 달게 만들고, 맵고 자극적인 향신료로 잡내를 잡고, 심지어 뜨거운 기름으로 튀겨서 맛과 보관 시간 둘 모두를 잡아 왔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 경지에 이르자, 사천요리라는 이름으로 위명을 날리게 된 것이다.

“주문하신 당초육, 계퇴(닭튀김) 나왔습니다.”

“오오!”

쫘아아악.

나온 음식을 보니, 희고 붉고 검었다.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후, 맵고 단 양념을 부어 감칠맛을 더한 것이다.

삽시간에 그릇을 비워 버린 후, 천마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칭찬을 했다.

“여기 굉장하군, 노달. 이곳 숙수를 좀 알아봐라. 본 교의 교인들도 이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군.”

“예…….”

대답을 하는 노달의 얼굴이 조금 어두웠다.

“왜 그래?”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사천의 성도 지역처럼 이런 좋은 곳에서 먹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

대격변의 날 이후 주변이 전란으로 불탔을 때, 대량의 이주민이 사천으로 몰려들었다.

많은 인구는 많은 생산물을 만드는 법.

성도의 번영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이런 성세를 구현하기는 어려웠다.

당장 여기야 식료도 수량도 풍부하고, 사람의 입은 많고, 거기에 천무학관과 홍매학관이라는 큰 시설도 있기 때문에 이처럼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관은 양민들에게는 안심할 수 있는 든든한 방벽입니다.”

특히 천무학관은 중원 전역에서 최고라고 공인받고 있다.

억지력이라고 할까.

애초에 학관 자체가 이 주변에 나타나는 몬스터를 막아 내는 주요 군사 지대의 역할을 겸한다.

학관의 교두, 교관, 조교는 물론이고, 매년 입관하는 수많은 학관생들까지.

무인들끼리는 한없이 높은 격차가 있지만, 양민들에게는 그들 전원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초인이자 전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음…….”

천마는 노달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도 학관을 만들어 볼까?”

“……!”

그냥 쉽게 꺼낸 천마의 말에, 노달은 크게 놀랐다.

천마신교가 세우는 학관?

그건 단순한 학관이 아닐 터였다. 애초에 학관은 학관생들을 가르치면서 무예와 기술만 전수하는 것이 아니다.

학관생들이 거저로 점수를 얻는 무협학.

그 과목에는 유불선이라는, 중원 사상 철학의 정수가 스며들어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마교, 아니, 천마신교가 할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교의 부흥이자, 세상에 널리 공덕을 퍼뜨리는 일일 것입니다. 본 교의 진정한 목적이지요.”

“제자님… 헤아릴 수 없는 높은 식견에, 이 흑객은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음.”

노달은 밀려오는 감동에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고, 흑객마저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을 내비치자 천마는 당황했다.

그는 우리도 닭튀김 마음껏 먹어 보자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저런 진지한 얼굴을 보니, 차마 속내를 말할 수가 없었다.

천마는 민망해져서 코 밑을 긁으며 화제를 돌렸다.

“뭐, 학관을 세우든 뭐든, 일단은 닥친 일부터 처리하자. 다 먹었지? 그럼 딥 블랙 지부라는 곳부터 가 볼까?”

“예!”

“예!”

두 사람이 과한 의욕을 보이는 가운데, 일행은 성도의 딥 블랙 클랜 지부로 향했다.

* * *

클랜 딥 블랙.

강호 공식 클랜 서열 3위.

그 위치에 걸맞게 그들은 공식적으로 화경의 고수를 여덟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경에 도달하지 못한 절정고수들은 기백에 달하는, 강력한 무력 집단이다.

와글와글. 웅성웅성.

인파가 엄청난 대로를 벗어나, 살짝 외진 곳으로 접어들자 커다란 장원 하나가 나왔다.

말이 클랜의 지부이지, 실제로는 사람 수백 명이 살 수 있는 작은 마을 수준이었다.

“실로 엄청난 규모군요.”

흑객이 신음하고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까지 아까 음식점에서 먹은 닭튀김과 당초육의 남은 맛을 되새기고 있었다.

달그락. 달각.

“저건……?”

딥 블랙 지부의 정문에는 마차 여럿이 도착해서 커다란 짐과 물목을 내려놓고 있었다.

흑객은 그 마차를 보고 낯익은 문양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가상단의 마차 아닙니까?”

“사천제일상단이니까 당연한 일일 테지.”

오가상단은 사천에서 가장 부유한 상단이다. 딥 블랙처럼 성세가 큰 클랜과는 거래를 트는 것이 당연.

이것이 나중에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일단 노달은 창구로 가서 자신을 밝히고, 클랜의 지부장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노달이라고 하오. 일전에 의뢰를 맡겼는데 일이 좀 생겼소.”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접수원은 한참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곧 피폐해진 얼굴이 되어 돌아왔다.

“안으로 드십시오. 마침 지부장께서 시간을 내주신답니다.”

“음.”

“뭐 이렇게 거만해.”

노달의 뒤에서 천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본 교의 태상장로인 노달이 직접 왔는데,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들어오라?

만나기도 전부터 천마는 딥 블랙 지부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확 깎았다.

드륵.

“어서오시오. 노달 장로.”

지부의 내실로 들어서자 건장한 남자 셋, 그리고 온몸에 철갑을 두른 여자 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갑옷?’

보통 전신을 풀 플레이트 메일로 보호하는 것은 남자인 법인데, 특이하게도 딥 블랙의 사천 지부에서는 여자가 두터운 갑주를 걸치고, 검과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자주 뵙는 것 같군. 그래, 어쩐 일이요. 지난번에 받은 의뢰에 일이 생겼다고?”

그 옆에서 콧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가 물었다.

그는 온몸에 가벼운 로브를 걸치고, 한 손에는 짧은 지팡이(Wand)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마법사, 그렇게 생각하며 천마는 다른 사람도 둘러보았다.

검사, 여기사(탱커), 그리고 또 한 명의 마법사.

하나하나가 보통 수준이 아니다. 최소한 천무학관의 4학년생은 넘어선 수준들이었다.

“음… 변고가 좀 생겨서, 목 대주가 목숨을 잃고, 그 수하들도 명을 달리했소.”

노달은 조금 망설이다가, 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그랬더니.

“그래? 그래서 그 살인자를 데려왔나?”

철컥.

온몸에 갑옷을 두른 여기사가 검을 쥐며, 천마를 노려보았다.

마치 뭔가 아는 듯한 동작으로.

“나야.”

하지만 천마 역시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도발은 자신의 성향에 딱 맞는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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