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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57화 (158/310)

157화. 블랙 길드 (4)

샤아아악.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당장이라도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공기.

딥 블랙 클랜의 단원들은 표 나지 않게 몸을 움직였다.

‘노달은 소드 마스터다. 제자는 어쨌건, 저자가 깍듯이 모시는 청년. 그 역시 소드 마스터일 터.’

특히 그중에서, 음침한 얼굴의 마법사는 조용히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핸드 스펠. 흔히 수인(手印)이라 불리는, 무영창(No Casting) 바로 직전의 단계.

위력이 다소 줄어드는 대신, 최소한의 준비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수단이다.

‘슬로우와 위크니스. 전력으로 간다.’

사이러스는 두 손으로 두 개의 마법을 준비했다. 대단할 것 없는, 고작 2서클 마법이었다. 하지만, 서클이 낮은 마법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검술만큼이나 마법도 기본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극상으로 단련한 기본기는, 어지간한 필살기 못지않다.

그는 발동 준비를 마친 채, 힐끗 레이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 뭐 하는 거야. 레이라?’

협공의 기본.

전사가 선공을 하고 적의 공세를 자신에게 집중시키면, 마법사는 한 걸음 물러서며 거리를 두고 마법을 쏘아 낸다.

그런데 먼저 나서 줘야 할 레이라는, 안색이 창백해져 몸을 일으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큭, 크윽……!”

문득, 사이러스는 아까의 딱! 소리가 기억났다.

이한이라는 청년. 그가 테이블을 두드린 순간 레이라는 처음에는 움찔했고, 다음으론 몸이 굳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탱커가 제압당한 것이다.

‘마법? 마검사였나? 제기랄. 이렇게 되면 나라도…….’

“…쿨럭!”

사이러스의 집중이 끓어오르는 순간, 답답한 기침 소리가 또 울렸다.

다름 아닌 지부장 페이튼이었다.

“그만. 경거망동하지 마라. 다들.”

기이하게도 그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목을 졸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고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스르륵. 꾸벅.

갑자기 마법사 페이튼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지, 지부장?”

“뭡니까! 왜…….”

클랜원들이 벌컥하며 반발했다. 그러자 지부장의 눈에 금빛 광명이 어렸다.

-[입들 다물어!] 안 그러면 내 손에 죽는다?

“……!”

딥 블랙 클랜원들은 즉각, 강제로 입이 다물려 버렸다.

그리고 흑객은 조금 전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우렁우렁한 소리, 음파에 섞인 기묘한 무언가를 감지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언령(Power Word)?”

파워 워드. 경지에 이른 마법사가 자신의 의념을 전달함과 동시에 말 그 자체를 마법으로 사용하는 마법.

아무래도 딥 블랙의 사천지부 지부장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고위급 마법사였던 모양이었다.

“크흠, 큼……,”

그는 시뻘겋다 못해 보랏빛으로 변한 얼굴로 천천히,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추한 꼴을 보였습니다. 실례를 용서하시길. 모자란 클랜원들이 가까운 단원을 잃어 동요했을 뿐이니, 부디 대인의 넓은 아량을 부탁드립니다.”

“흠, 추한 꼴인 걸 알면 됐다.”

“……!”

“……!”

극도의 공경을 보이는 지부장에게, 천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냉대했다.

덕분에 입이 막힌 딥 블랙 클랜원들은, 이마에 혈관까지 도드라질 정도였다.

하지만 납작하게 몸을 엎드린 지부장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의뢰는, 연유가 무엇이 되었든 실패는 실패. 의뢰를 수행하지 못한 블랙 마켓과 부족한 담당자를 인선한 딥 블랙의 실수입니다. 혹 위약금을 원하신다면, 즉각 지불하겠습니다.”

“……!”

“……!”

“됐다, 됐어. 누가 거지로 보이냐?”

휘이. 휘.

천마는 손을 내젓고, 품에서 슥, 하고 진한 녹색의 보석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넘치는 심장.”

“…네?”

“이번에 알게 된 내 아티팩트의 이름이야. 뭐, 나도 너희들 덕을 보긴 했으니, 대충 이 정도로 접자. 참, 그리고 말인데.”

천마는 페이튼을 보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네? …네? 네에?!”

화들짝 놀라며 마법사가 경악했다. 그러고는 완연하게 불신하는 얼굴로 턱을 달달 떨었다.

피식.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 어렵지 않을 테니. 노달? 흑객? 일 끝났다. 가자.”

홱.

천마는 가볍게 웃고는 몸을 돌려 나갔다.

저벅. 저벅.

한 박자 늦게, 천마신교의 태상장로와 그의 제자가 잔뜩 무게를 잡고 교주의 뒤를 따랐다.

힐끗.

거기서 노달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까지의 안면이 있어 드리는 충고인데.”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딱딱하게 굳은 레이라에게.

“앞으로 잘 기억해 두시오. 제… 이한 님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해는 서쪽에서 뜨는 거요.”

“…….”

“그럼 나도 이만.”

휘익.

그리고는 자리를 나가 버렸다. 딥 블랙 클랜의 사천지부는, 한참을 침묵에 잠겨 있다가.

“쿨럭… 커헉!”

풀썩.

지부장 페이튼이 주저앉으면서 겨우 소리가 일어났다.

“지부장!”

“대장!”

콜록콜록, 컥, 컥.

페이튼은 한참이나 버둥거리다가 겨우겨우, 단추를 뜯어내듯 풀어 목을 드러냈다.

반짝. 반짝. 반짝.

그의 목에는 짤막한 목걸이가 걸려 있었는데, 그 중앙의 보석은 요란하게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하며 점멸하고 있었다.

“크… 제기랄. 진짜 죽을 뻔했네…….”

뚝, 뚝, 쩔그랑.

딱 봐도 어떤 아이템, 혹은 아티팩트인 목걸이를 힘겹게 떼어 내고 그제야 페이튼은 푸하! 하고 숨을 돌렸다.

우우웅. 우우우웅!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보석 목걸이가 요란하게 진동한다. 잠시 그걸 보고 있던 페이튼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하, 시발… 15급 이상이라고?”

“지부장……? 뭡니까? 갑자기 왜……?”

“…갑자기 왜? 왜는 시발 새끼야! 지부 통째로 날려 먹을 뻔했다! 어!!!”

빠악!

물어보던 클랜원에게 주먹을 날린 페이튼.

그는 단번에 깩 하고 나뒹굴었고, 지부장은 아직 얼떨떨해하는 다른 단원들에게, 노한 눈길을 쏘아 내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말했지… 항상 말했지! 어? 힘 좀 생겼다고 거들먹거리다간 하루아침에 뒈진다고! 야 이 이 눈알을 삐꾸로 단 개병신들아! 니들이 뭔 짓을 한 건지 알아?”

“……!”

“……!”

페이튼의 노호에 잠시 클랜원들이 얼어붙었다.

지부장이 고개를 숙인 상대는, 그들이 보기엔 어떻게 봐도 평범한 어린 무인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전혀 못 느꼈는데?’

‘노달은 인정하지. 소드 마스터니까. 그 제자도 보통은 아니겠고… 소드 마스터가 둘이면 경계할 만도… 아.’

하지만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지부장은 겁이 많기는커녕,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상대가 조금만 만만해도, 슬금슬금 웃다가 바로 뒤통수를 갈겨 버리는 독심의 남자다.

그런 그가 아직까지도 부들부들 떨며 겁에 질려 있다. 그렇다면.

“호… 혹시 소드 마스터 상급입니까?”

“소드 마스터? 시발, 그랜드 소드 마스터다! 시발 새끼들아! 성도 전체를 날려 먹어도 모자랄 괴물한테! 니들이 협박하고 깝치고 있었다고!!!”

빠악!

다른 클랜원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린 페이튼.

콜록콜록!

그는 기침을 하며 목을 쓰다듬었다. 막 생겨난 시뻘건 핏빛 멍이 목 전체를 감고 있었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하, 시발 눈깔을 개나 줘 버린 새끼들하고는… 레이라? 야, 우리 아가씨 좀 괜찮냐?”

탕탕.

그는 안색이 창백해져, 이제까지 빳빳하게 굳어 있는 여기사의 등을 두들겼다.

“…콜록! 커헉! 으으으윽…….”

온몸을 철갑으로 두른 레이라가, 격하게 기침하며 한 모금의 피를 토했다. 그 어떤 외상도, 마법도 당한 적이 없었는데도.

지부장 페이튼은 한숨을 쉬었다.

“내상 입었네. 뭐에 당한 거야?”

“호흡이…….”

바들바들.

그녀는 헉헉대며 한참이나 몸을 떨다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탁자를, 조금 전에 천마가 두드린 그 자리를 두려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호흡……?”

“네… 막 마나를 끌어올리려는데, 딱 하는 소리가 귀를 찔렀어요. 그 순간… 갑자기 내부가 뒤틀리더니…….”

“흥. 음공(音功)인가? 그것도 상대의 호흡을 노려서 끊어?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로 할 수 있는 놈이 있었군.”

페이튼이 끄덕이며 신음했다.

여전히 상황을 파악 못 한 클랜원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음공… 이요?”

“…하기야. 그냥 말해서는 모르겠지. 야. 눈 병신들 다들 모여 봐. 이게 뭔지 아는 사람?”

쩔그렁.

페이튼이 자신의 보석 목걸이를 탁자 위로 내던졌다.

마법사 사이러스가 한참 목걸이를 살피더니, 헉 하고 신음했다.

“이거… 그거 아닙니까? 겁쟁이의 목걸이?”

“맞다. 안 팔리고 안 팔리던 악성 재고.”

페이튼이 끄덕였다.

겁쟁이의 목걸이.

이름에서부터 짐작이 가지만 그 효능은 착용자보다 강한 상대가 나타날 때, 도망칠 수 있도록 즉각 경고를 주는 것이다.

나보다 강자인 경우 미리 도주할 수 있다! 이는 활용하기에 따라 지극히 유용한 아티팩트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블랙 마켓에서 몇 년이고 팔리지 않았던 계륵 같은 아티팩트였는데, 이제 보니 지부장이 그걸 구입했던 모양이다.

“하도 안 팔려 준 덕에 내가 클랜장한테 사바사바 해서, 조용히 염가에 사들였었거든? 근데 이거 봐라, 이거. 시발, 조금만 늦었으면 나, 그 자리에서 뒈졌다.”

페이튼이 훤하게 드러난 목을 내 보였다.

목 전체를 감고 있는 시뻘건 핏빛 멍. 좀 더 자세히 보니, 쇠사슬에 피부가 잡아 뜯긴 상처가 나 있었다.

레이라가 그 상처를 보고 탄식했다.

“세상에… 왜 그동안 안 팔렸는지 알 것 같네요.”

기사인 그녀는 알아본 것이다. 단 몇 초간에 저 정도 상처를 낼 정도라면, 최소 성인 장정 세 사람이 올가미를 걸고 잡아당기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착용자보다 상대가 강하면, 겁쟁이는 쫄아서 사슬을 수축시킨다. 그게 이 아티팩트의 유용한 점이다.

거기까진 좋은데, 갑자기 너무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도망이고 도주고 할 틈도 없이, 급격하게 수축한 사슬에 주인이 목이 졸려 죽어 버린다!

이쯤 되면 그냥 저주받은 아이템 아닌가.

“됐어. 덕분에 살았으니까. 잘 쓴 거지. 어쨌든.”

톡톡.

페이튼이 겁쟁이의 목걸이의 중앙, 큰 보석과 그 주위를 둘러싼 작은 보석 다섯 개를 가리켰다.

“내가 8서클 마도사, 몬스터 위험 등급으로 치면 11급? 12급? 그 정도거든. 근데 이거 봐라. 불 들어온 게 몇 개야?”

“다섯 개… 맙소사, 이 정도면 몬스터로 치면 17급이잖아요? 아니, 근데 왜 깜박깜박해요?”

마법사 사이러스가 물었다.

온전히 불이 들어와 있지 않고, 계속해서 빛이 깜박거리는 목걸이를 보고.

지부장 페이튼이 인상을 썼다.

“내가 아냐. 이 새끼야. 뭐, 본인 무공을 감춘다든가, 그런 스킬이 또 있나 보지.”

“아…….”

“어쨌든, 나보다 강하니까 13급 이상은 당연하고, 내 목을 쥐어뜯은 걸로 봐서 최소가 15급이다.

“미친… 진짜 우리 오늘 죽다 살았네요.”

검사 케세인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험 등급 17급?

인간 중에서 그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존재는 최소 현경. 그랜드 소드 마스터다.

대외적으로 유명한 이로는 현경의 고수 유장위가 그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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