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현경의 고수, 유장위 (2)
돌아온 천마는 그날도 수업을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량은 방대해졌다. 예전에는 없던 ‘숙제’라는 것까지 나오며, 학관생들은 괴로워했다.
하지만 천마는 오히려 즐거웠다.
더 많은 내용과 이 세계에 대한 배움. 사실 천마는 배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애초에 그것이 그의 성격이었다.
탐구심과 호기심, 더 강해지고 싶다는 향상심 없이는 애초에 신마경을 노려 볼 수가 없는 것이다.
2학년 기말고사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가운데, 노달이 회회리 지부의 보고를 들고 왔다.
“…하여, 용광로의 본격적인 개조에 들어가려 합니다. 지부 전체의 인력이 몰려들어 작업을 하고 있으니, 늦어도 반년 안에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회회리 지부의 성장은 순조로웠다.
어느새 붕대를 풀고 깔금하게 나아 버린 노달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경과를 보고했다.
“흐응~”
천마는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래도 일단 큰 맥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 시진 가까이 이어진 보고를 들은 그는, 노달의 말을 요약해서 되물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부족하다?”
“네…….”
노달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야장, 목장, 농장, 광산 등… 일거리는 넘칩니다. 하지만… 시일이 걸리는 문제니 어쩔 수 없을 듯합니다.”
사람만 있으면 회회리 지부는 급속히 성장하게 된다.
이미 잠재력만 보면 감숙에 있는 본단의 규모를 넘어설 정도였다.
거기까지 들은 천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사람 모아. 부르면 그만 아냐?”
“제자님, 그랬다간 간자가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노달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이 모자라면 사람을 모으면 된다. 이 간단한 걸 노달이 모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새 터전을 지을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불온 분자다.
주민 간에 불화를 일으킬 만한 사람을, 미리 경계해서 배제해야 한다.
특히나 다른 세력의 첩자는 정보를 정탐하거나 중요 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공작을 일으킬 수 있다.
자칫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민심은 흉흉해지고, 치안이 불안정해진다.
그러니 어떻게든 사전에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냥 해. 간자든 뭐든 활동 못 하게 하면 그만이잖아?”
천마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요는, 약점을 찔리지 않으면 그만이다.
“교단에 무인들 있지? 애들 풀어서 여기저기 감시랑 감찰을 하도록 해. 그러면 되는 문제지.”
“아니… 무인의 수가 턱없이 적습니다만…….”
“그럼 늘리면 되지. 역혈신공의 금제를 푼다. 본 교의 교인들 모두가 삼류 이상의 무인이 되면, 외부인의 감시는 걱정 없을 거 아냐?”
흠칫!
천마의 말에 노달도 흑객도 안색이 굳었다.
“하, 하나… 그 신공은… 순혈의 마인에게만 이어지는 것이 법리입니다…….”
역혈신공.
본시 마교의 마공은 정종 무공의 3배에서 4배의 속도로 축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역혈신공은, 최대 8배까지 효율이 높다고 알려진 명실상부한 신공. 그렇기에 아무에게나 전수가 되지 않는다.
여러 대 전부터 마교에 투신해서 활동하는, 최소 3대이상이 천마신교에 몸을 담았던 독실함이 검증된 교인들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성 무공이었다.
“야, 한때 쫄딱 망해 놓고… 언제까지 격식 차릴 셈이냐?”
그 당연한 말에, 천마는 역정을 냈다.
“일단, 사람부터 늘리자. 정예화도 좋지만, 지금 당장은 기름기든 근육이든 살 자체를 늘려야 해.”
“그렇게 한다고 하면…….”
노달은 잠시 생각을 해 본 후, 착잡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 천마의 말은 파격적이었다.
이제까지 폐쇄적이던 역혈신공의 전수를, 교단 전체에 뿌리겠다는 발언이었으니까.
이는, 이제껏 독실하게 믿음을 지켜 온 마교의 교인들에게는 서운할 수도 있는 조치였다. 당장 노달이나 흑객 또한 따지고 보면 그런 축에 속했다.
“당장은 숫자가 늘 것입니다. 하지만 기껏 신공을 전수하여도, 자질이 부족하여 익히지 못하는 이가 있을 테니 그랬다간 신공의 이름이…….”
“상관없어. 그런 걸로 믿음이 약해지는 쭉정이는 자연스럽게 걸러지는 거야.”
천마는 단호했다.
소진의 삼음절맥처럼, 역혈신공을 익혀도 별로 효능을 내지 못하는 무예에 재능 없는 이들도 있다.
이럴 경우 ‘신공’이라는 이름값에 손색이 가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천마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이번에 딥 블랙과 블랙 마켓을 보고 배운 게 많았기에.
“반절. 무예에 재능이 있는 절반은 딥 블랙의 무인들처럼 무사로 성장시킨다. 우리도 클랜이나, 장래에는 학관 같은 체제를 갖추게 할 생각이니까.”
“나머지 반절은요?”
“상계다. 블랙 마켓처럼.”
무예에 재능이 없는 이들은 상인이나, 여타 다른 일을 하게 한다. 그것이 천마가 생각하는 큰 그림이었다.
“본 교는 인원이 너무 적어. 그리고 의식주를 해결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밭 갈기, 소 치기가 아니야. 장사지. 그러니 다들 수리를 익히고, 산술에 익숙해지도록 하게 해. 본 교의 모든 인원이 거대한 상단을 만들 수 있도록.”
산술과 수리.
상업이야말로 가장 많은 이문을 만들 수 있는 업종이다. 천하의 명검을 만들어 봐야, 촌구석에서 팔아서는 철값만 겨우 받아 낼 수 있을 뿐.
대도시와 유통하고, 더 좋은 값을 부를 수 있는 부유한 이들과 가까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수리에 대한 감각은 필수라 할 수 있었다.
그에 노달이 다시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수리 공부는 머리가 명민한 기재들이 아니면…….”
터억.
노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마가 책 한 권을 내려놓았다.
“팔만뇌호정경공이다. 이걸 필사해서 본 교의 모든 이들에게 돌려. 너희들부터 시작해라.”
그러자 노달과 흑객이 눈을 빛냈다.
“팔만뇌호정경공?”
“어떤 공능이 있는 신공인지요?”
“똑똑해질 거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기막혀하는 두 사람에게 천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말은 무슨 말. 말 그대로 똑똑해진다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기민해진다.
무공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양민이 글공부, 수리 공부를 하는 데도 꽤 도움이 된다.
당연한 일이다. 뇌정경을 익혀 뇌를 자극하게 되면, 머리가 좋아지니까.
“오오…….”
“그, 그런!”
“다만, 이 심공을 배우면 부작용이 하나 있는데…….”
천마의 얼굴이 심각해지고, 노달과 흑객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이 되었다.
마공은 정종 무공에 비해 습득이 빠르고 위력적이다. 그런 대신 부작용이 있다.
애초에 역혈신공이니 하는 마교의 내공은, 인간의 야성과 마성을 건드리는 성질이 있다.
아마도 머리가 좋아진다는, 그런 좋은 심공이 있음에도 딱히 전승이 내려오지 않았던 이유는 그 부작용 때문이리라.
특히 뇌정경은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잘못 건드리다가는, 사람이 미쳐 버리거나 폐인이 되는 것이다.
“어떤… 부작용입니까?”
꿀꺽!
노달이 잔뜩 긴장을 하고 물어 왔다.
“배가, 고파진다.”
“…….”
“…….”
노달과 흑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주. 그리고 엄청 많이 먹게 돼. 여기가 말이지.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이 쓰이게 되거든.”
툭툭.
천마가 말끝에 자기 머리를 두들겼다.
뇌정경을 익혀 뇌의 활동량이 많아지게 되면, 당연히 식사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남이 볼 때는 그야말로 돼지처럼 처먹게 된다는 말.
“.……”
“…….”
노달과 흑객은 계속해서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천마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뭐? 왜?”
“아, 아닙니다…….”
커흠. 커흠.
흑객은 고개를 돌리고, 노달은 헛기침을 한 후 천마의 책자를 받아 들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좋은 일이었다. 본 교의 모든 이들이 문무를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가 된다는 것이니까.
‘식비가 좀 들고, 모양새가 좀 그렇긴 하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난세에 능력이 더 나아지면 그게 제일 아니겠는가.
* * *
한편, 천무학관의 이른 아침.
리그웨더는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인물을 만났다.
“여길 어떻게…….”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셔서 들렀습니다.”
학과장실에 들른 자는 유장위였다.
본래라면 지난번에 큰 부상을 입어 아직 요양 중일 터인데, 어찌된 일이지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자리에 앉은 리그웨더가 차분히 말을 걸었다.
“예, 학과장님께서 많이 살펴봐 주셔서… 사실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습니다.”
“그랬나요…….”
섬서에 있었던 유장위는 던전, ‘악몽의 성지’에 진입했었다. 그리고 실패하여 큰 부상을 당했다.
본래라면 무난하게 토벌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갑작스레 15등급 이상의 네임드 몬스터가 몰려들었다.
덕분에 유장위의 클랜은 반파. 그리고 클랜장인 유장위 본인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머리는 괜찮을까.’
원래라면 죽었을 상처. 리그웨더가 극고의 앱솔루트 힐을 시전하여, 저승문에 반쯤 발을 담갔는데도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아무리 앱솔루트 힐이라 해도 뇌에 간 손상까지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부상에서 회복한 유장위는, 가끔 전에 없이 신경질적으로 굴거나, 성격도 격렬하게 변해 있었다.
하나 그것이 뇌에 손상이 와서인지, 아니면 현경의 고수가 예상 못 한 패퇴로 인해 예민해진 것인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임무를 받으러 왔습니다.”
“지금은 조금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수련이란 건, 결국 사선을 넘는 경험뿐이지요.”
“음…….”
리그웨더는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유장위 님, 전국에 던전은 수없이 많고, 그 기운은 더욱 커져 가고 있지요. 그리고 위력에 따라 수호장에 필적하는 강력한 아종들이 생겨나고 있지요. 그럼에도 저들의 눈은 오직 한곳에 머물러 있어요.”
리그웨더는 유장위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바로 현경의 고수들이지요. 저들에겐 최고의 경계 대상이지만, 우리에겐 한 명 한 명이 보물이랍니다.”
“그래서 더 움직여야 합니다. 강해져야 합니다. 오직 실전만이 저희를 단련시킵니다.”
유장위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러니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저를 위하신다면 전선에 보내 주십시오. 제게는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가 필요합니다.”
“정말이지… 강호의 무인들은 다 그런 건가요?”
“그럴 겁니다.”
리그웨더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그런 호승심. 불굴의 투지. 무에 대한 열망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지도 몰랐다.
자신이 살던 그라나다 제국의 기사들이 이들과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번 어둠의 나무(Tree Of Darkness) 던전토벌에 참여하세요.”
“거긴!”
순간 유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위험 등급 17급. 어둠의 고룡이라는 본 드래곤, 쉐이크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던전이다.
“한때 가디언 수장인 링가드와 함께 움직이던 존재예요. 어떠신가요? 지난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난이도. 진정 설욕전을 하시고 싶다면 좋은 기회이겠죠.”
“…….”
꾸욱!
유장위의 손에 식은땀이 났다.
모든 생명체 중 최강이라는 용족.
비록 뼈만 남아 제대로 된 이성도 지성도 없지만, 힘만큼은 그 어느 드래곤보다 강한 존재. 그런 놈이 키퍼로 있는 난공불락의 던전이 나온 것이다.
“한데 토벌이라 하면… 천무학관도 움직이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듯 천장을 힐끔 바라본 뒤 말했다.
“어둠의 나무는 제4구역으로 나눠져 있지요. 2학년은 4구역, 3학년은 3구역. 4학년은 2구역을 갈 겁니다. 그리고 제1구역은, 저와 당신, 그리고 천무학관 교두들이 대거 참전할 겁니다.”
“…….”
그 말을 듣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학관의 전력 투입. 그 정도라면, 난공불락이라 여기는 그 던전도 토벌이 가능할 것이다.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그때까지 좀 더 휴식을 취하세요. 곧 연락을 드릴 테니.”
“알겠습니다.”
나름 만족스러운 듯 유장위는 기쁘게 일어섰다.
그렇게 몇 발짝 걸어 나가던 그는.
“그런데 한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뒤돌아 물었다.
리그웨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려 주었다.
“블랙 마켓에 있는 목이란 자가, 천무학관에서 변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아, 딥 블랙. 당신도 그쪽에 연이 좀 있지요?”
그가 왜 그런 언급을 했는지 이해한 리그웨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요?”
“그를 죽인 자 말입니다. 천무학관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그렇게 잠시 뜸을 들였고.
“지금 4학년에 있는…….”
“지금 2학년에 있는…….”
잠깐, 대화가 멈췄다.
그리고 유장위가 다시 물었다.
“4학년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