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60화 (161/310)

160화. 현경의 고수, 유장위 (3)

“야, 이거 정말… 오랜만이다.”

“그러게. 석 달 만인가? 이따 한잔 어때?”

와글와글. 시끌시끌.

4학년 4반은 간만에 학관생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학년 특성상, 그들의 실전 평가는 곧 장기 파견 임무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평소라면 서로 몇 달간 얼굴도 보기 힘든 사이.

그런 4학년이 한데 모인 것은, 1학기 시험으로 주어진 실전 평가. 그에 대한 교두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드르륵. 딱딱.

“모두 모였군요.”

학기의 총괄 평가가 내려지는 시간. 오늘 4반의 수업은 학관 서열 4위라는 교무부장 이중구가 들어와 있었다.

“오늘은 교무부장인가… 거물 납셨네.”

“딱히? 지난번에는 행정실장이 왔었잖아.”

누군가가 한 말에 또 누군가가 대답했다.

4학년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학관과 바깥세상과의 교두보다. 졸업까지 무사히 마치면, 즉각 대형 클랜이나 거대세력에 줄을 댈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귀한 몸. 이런 4학년을 관리하는 것은 당연히 교두 중에서도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난번 경우에는 행정실장이 직접 왔었고, 그 전에는 교무처장, 오늘은 교무부장이다.

차라락. 파바박.

교무부장 이중구는 한 뭉치의 서류철을 들고 요란하게 넘겼다.

파견 임무 평가서, 난이도 계산, 의뢰자의 만족도, 그리고 학관에서 내린 종합 평가 등.

임무 하나에 대해 보고서만 수십 장이다. 복잡하고 번거롭지만, 이렇게 다면평가를 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제 곧 천무학관의 4학년들은, 공식적으로 학관이 세상에 대해 내놓는 얼굴이 되니까.

아니, 이제 곧이 아니라 이미 그렇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최고 득점자는 남궁호 학관생입니다. 사유는 금전표국의 의뢰에 대해 성공적으로 마친 것. 의뢰주, 평가 의원, 전원이 만점을 매겼습니다. 특기 사항으로 강호의 초절정 고수 왕호를 사로잡은 것이 가산되었군요.”

“오오오!”

“역시 남궁호!”

4반 학관생들의 박수와 갈채가 쏟아졌다.

표국의 수행 의뢰는 모두가 꺼리는 종류다. 노숙은 기본이고, 지루한 시간 동안 표국과 표물의 호위에 신경 써야 한다.

고생도 고생이거니와, 수행하기도 까다롭다. 위험도는 말할 것도 없다.

“운이 좋았습니다.”

폭발적인 찬사에 남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그리고 학관생들을 보며 또다시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이중구가 한마디 더했다.

“과공비례라, 남궁호 군. 겸손이 과하면 그 또한 예의가 아니라 했습니다. 이번에 군이 해결한 사안은 일반적인 4학년 학관생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뒤이어 그가 상세하게 남궁호의 성과를 읊었다.

-금전표국과 중요 물품을 호송하며, 천무학관과의 관계개선.

-녹림 세력이 표국의 표물을 탈취하고자 시도한 3차례의 습격에 대해 성공적인 대처.

-퇴각하는 녹림도들을 궤멸. 은신하는 산채의 두령 세 명을 격살.

-특히 정사지간의 기협 왕호. 천무학관에서도 충분히 위협적인 초절정 고수를 쓰러뜨리고 생포하기까지.

남궁호의 활약이 하나하나 밝혀지자, 학관생들은 혀를 내둘렀다.

“우와아… 초절정 고수를 생포?”

“장난 아닌데. 너, 저거 되겠어?”

“…자신 없다. 그 정도 무위가 안 돼. 걍 처죽이고 말지.”

최고 득점자. 그 이름에 살짝 불만스러워하던 학생들도 남궁호의 위업을 듣고는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초절정이란, 화경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수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본인의 경지보다 더 뛰어난 경지에 있는 이를 남궁호는 죽인 것도 아니고 생포한 것이니, 이 역량만큼은 바보가 아닌 이상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남궁호가 한껏 더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파라락. 파라락.

이중구는 서류철을 들고 다시 몇 명의 이름을 불렀다.

남궁호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고득점자들이었다. 각각 던전 토벌, 마수 토벌, 혹은 그에 준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은 이들의 성과를 훑고 치하했다.

중위 평가로 들어서기 전, 이중구는 긁적, 머리를 몇 번 긁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얼굴로.

“그리고 흑객, 오가상단의 일을 훌륭하게 해냈군요……. 의뢰주로부터 최대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응?”

“뭐야, 이거?”

학관생들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사천 제일이라 불리는 오가상단이 최대의 극찬을 보냈다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시일보다 빨리 도착. 오가 상단주의 직계 혈육인 오 소저를 구출. 생존자를 구해 오가장의 장원까지 무사 호송……. 부디 다음에도 인연을 이어 주길 바란다는 첨언이 있군요.”

하지만 교무부장의 후술이 이어지고, 그제야 학생들은 납득했다.

“아아.”

“시기가 적절했네. 운이 좋았구만.”

“하긴… 하나뿐인 딸자식을 살려 냈으니…….”

원래 별것 아닌 임무에, 특이 사항이 달라붙은 경우다.

거기에 샐러 드레이크라는 특이 몬스터 토벌, 이 자체로 제법 추가 점수를 얻을 만한 것이다.

“예상 이상으로 잘 수행해 주었습니다, 흑객.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임무는 상급 이상을 받기 어렵습니다. 임무 자체가 워낙 특이하여…….”

이중구가 떨떠름한 표정이 된 건, 결국 제반 사항을 고려해 볼 때 중위 평가 이상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천무학관이 중립적으로 움직이려 해도, 학관이라는 한계가 있다. 특이 사항으로 고득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해도, 다른 상위 임무에 먼저 배점을 주는 것이다.

“후한 평가에 감사합니다.”

하나, 정작 흑객 본인은 거기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이런 점수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학관생들은 평가 점수에 목을 매겠지만 흑객은 천마신교의 후예이고, 지금 조사라고 할 수 있는 천마가 함께하는 중이다.

다른 클랜이나 천무학관의 조교 자리를 노리는 것이 아니니 점수에 대해 욕심이 없는 것이다.

‘뭐, 그리핀 건에 대해서는 서로 입을 닫기로 했고.’

오가상단은 아직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소화하는 중이다.

실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학관에서 내려지는 점수보다 그들이 나중에 따로 챙겨 주겠다는 보상 쪽이 더 클 것은 당연한 일.

벌컥!

그러던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학생들의 눈이 주우욱 모여들었다.

“누가… 헉, 다, 당신은!”

벌컥 화를 내려던 이중구가 크게 헛숨을 몰아쉬었다.

수업 중에 누가 찾아오면, 성질부터 내던 그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나 그도 그럴 것이.

“수업 중에 죄송하오. 이중구 교두.”

현경의 고수, 유장위.

수많은 신화와 얘깃거리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 포권을 해 보이며 나타난 것이다.

* * *

“이번 시간은 필드 던전에 관해서다.”

그 시각, 천마가 속한 2학년 3반은, 갑자기 수업 편성에 변동이 있었다.

본래는 몬스터학 수업을 듣게 될 거였는데, 갑자기 몬스터가 아닌, 던전에 관한 걸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던전은 항시 밀폐된 국소 지형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흔히 필드 던전이라 부르는, 지역적인 마경 또한 존재한다.”

탁. 탁. 타다닥.

갑자기 수업을 맡게 된, 던전학과 교관 임무정(林無情)은 학관 밖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몬스터학과 던전학을 복수전공 하여 두 분야 모두 능통한 데다, 별도로 책까지 펴낸 인물이었다.

덕분에 그는 몬스터학의 기본 진도를 쭉 빼 둔 다음, 추가로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유려하게 풀어냈다.

“…이처럼, 던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몬스터다. 몬스터의 특징, 속성은 분명 중요하다. 하나 마경에서는 몬스터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지.”

탁. 타닥. 삐지직!

일부러 칠판에 요란하게 묵필을 그어 댄 다음, 그는 인상이 찌푸려진 학관생들에게 물었다.

“패스파인더에 대해 아는 사람?”

웅성웅성.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아직 교관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학생들이 눈치를 보자, 임무정이 피식 웃었다.

“괜찮다. 오답이라고 벌점을 주지는 않을 테니.”

“엇! 저요!”

그러자 아이들 중 하나가 손을 들고 말했다.

“길(Path)을 찾는(Find) 사람, 혹은 길을 안내하는 직급을 말합니다.”

“맞다. 하지만 너무 사전적이군.”

임무정은 고개를 끄덕하고, 다시 고개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

척!

그 말에 이번엔 또 다른 학관생이 손을 들었다.

“보통은 야지에서의 이동 경로를 찾는 길잡이를 말하지만, 던전이라는 지형에서는 위험하거나 알 수 없는 함정들을 찾아내는 직군입니다.”

“음. 그렇다.”

임무정은 밝은 얼굴로 끄덕이고, 학관생의 이름을 적었다.

술렁술렁.

예상외로 추가 점수에 후한 교관이다 싶자, 학생들의 눈에 열의가 떠올랐다.

“던전 탐색대에서 파티의 패스파인더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첫째는 바로 기록이다.”

딱. 따닥. 딱딱.

임무정은 백묵을 들고 칠판에 글을 적어 냈다.

-설령 파티 전원이 전멸하더라도.

-상시적인 기록, 판단, 현 파티원들의 정보.

-토벌은 언제나 실패할 수 있으며, 토벌대나 탐사대는 자신들의 죽음, 그 이후를 보아야 한다.

“…….”

“…음.”

술렁술렁.

생각도 못 하게 진지한 내용에 학생들은 수군거렸다. 그런 학관생들을 보며 임무정은 입을 열었다.

“얼마 전 그랜드 소드 마스터, 유장위의 클랜이 던전 토벌에 실패하는 일이 발생했다. 자그마치 현경의 고수가 던전 안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이다.”

“……!”

“허억…….”

술렁술렁. 웅성웅성!

이야기를 처음 들은 학관생들은 놀라서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하며 돌아보았다. 임무정은 학생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악. 딱.

그러기를 한참. 그는 다시 백묵으로 칠판을 두드려,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뭐, 이번 일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안이 엮여 있지만, 어쨌든 여러분들이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이거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는 분명 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던전에서 살아 나오는 것은, 무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

“…….”

교실은 조용했다. 시기적절한 교관의 말에, 학관생들은 다들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천외천.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다. 본인이 아무리 강한 무예를 익혀도, 여러분은 항상 더 강한 사람을 만난다. 극히 소수의 무공 천재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여러분들은, 최고가 될 수 없지.”

임무정의 말이 교실에 널리 울렸다.

대부분의 학관생들, 특히 소진처럼 전투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학관생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고의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바로 생존 지식이다. 어떤 길을 가면 유리한지, 어떤 적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어떤 위험에 대해 대비책이 있는지.”

탁. 타닥. 탁탁.

임무정은 말을 이으며 다시 칠판에 글을 써 갈겼다.

“바로 이것이 패스파인더의 역할이다. 어찌 보면 가장 별것 아닌 직종.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직종. 일개 파티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게도 한다는 말이지.”

‘맞는 말이다.’

천마는 교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도 던전이란 곳이 위험해 봐야 얼마나 위험할까 싶었다. 그는 한때 신화적으로 강한 고수였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천마의 생각과는 달리, 예상하지 못한 위험들이 있었다.

영육분리라는 권능을 가진 청명 진인.

마탄의 사수라는 특수 공격을 가진 카르삭.

거기에 폭식이라는 권능을 가진 쿠아토까지.

특히, 마지막에 상대한 쿠아토. 놈의 권능은 위협적이었다.

마침 상대할 때 야지에서 만나 다행이지, 놈 같은 상대를 던전 안에서 상대했다면 아무리 천마라 할지라도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내가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위험은 줄어들고 승산은 커졌을 것이다. 천마는 그 점을 충분히 인식했고, 이제 더는 패스파인더라는 존재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필드 위에서의 패스파인더.

임무정이 칠판에 뭔가를 썼다.

“질문이다. 상세 불명의 몬스터가 출몰하는 필드 던전. 어느 정도의 위험도인지, 어떤 환경이 펼쳐져 있는지, 여러분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

“왜냐하면 던전은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학관에서, 혹은 선행자의 정보로 어느 정도는 예측되지만, 마경은 끊임없이 변하는 곳이다. 자,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교실은 조용했다. 아무도 손을 들거나 말을 하지 않았다.

임무정은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자.

척.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서문영이었다.

“주변을 탐지합니다.”

“어떻게.”

“땅을 보고, 내공을 돋워 기운을 봅니다. 후각, 시각, 청각, 모든 감각을 동원하고, 특이 사항을 기록합니다.”

“원론적이군.”

탁탁.

임무정이 서문영의 말을 칠판에 적어 넣었다.

“더 있나?”

“네, 던전이 지능 없는 마수들의 마경인 경우는 차라리 괜찮습니다. 하지만 지능이 있는 이종족이 출현하는 경우, 주변의 사물, 특히 인공적인 사물을 관찰해야 합니다. 벽, 기둥, 제단, 길 등을.”

“이유는?”

“대개의 지능을 가진 종족은 지식을 전하거나, 자신들을 표현하려 합니다. 때문에 주변 사물을 관찰한다면 그런 그들의 의도를 확인하고, 해당 던전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흠, 좋군.”

임무정은 서문영의 논리적인 말에 흡족한 얼굴이었다.

“더 해 보게.”

“네, 필드 위에선 흔히 징표가 남습니다. 흔히 마법을 쓰거나 무력을 썼을 때, 그 여운이 남기 때문입니다. 땅의 색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자갈 등의 흔적들은 침식되어 그대로 표시되기 때문이지요.”

“…어디서 참고한 건가?”

“최근에 ‘패스파인더의 주의 사항’이라는, 교관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호오.”

임무정은 이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학관생들은 놀라워하며 감탄했고, 그중에는 운소령도 있었다.

또한 그중에는 천마도 있었다.

이제까지 무공만 강한 줄 알았던 서문영의 또 다른 모습에, 그의 눈이 빛났다.

‘이놈, 물건인데?

타고난 주의력, 집중력, 그리고 좋은 눈.

얼마 전에도 그런 능력을 보긴 했었다. 하지만 몬스터에 대해 아는 것을 넘어, 그 현상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

이는 파티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다.

“좋아, 시간이 남았군. 패스파인더에 대한 설명을 더 이어 가겠다.”

타닥. 탁탁.

임무정은 계속 설명을 이어 갔고 천마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한번 시험해 봐야겠군. 저 녀석을 데리고.’

이론은 백날 외워도, 실전에서 써먹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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