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63화 (164/310)

163화. 레이드 공격대 (1)

다음 날.

“기말고사가 멀지 않았지? 다들 공부들 열심히 하고 있나?”

우우우…….

교관의 말에 학관생들 사이에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온다.

다들 알고 있다. 열심히 하면 강해진다는 걸.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천무학관은 분명히 몸을 담기만 해도 강해질 수 있는 학관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어거지로라도 열심히 해야만 하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그게 무예 수련이건, 마법이건, 혹은 지식적인 공부건 간에.

“계속해서 교실에서 따분하게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게 슬슬 질릴 때지? 너희들이 그럴 거라 예상해서, 이번에 학관에서 새로운 수업 개요를 작성했다.”

술렁술렁.

교관의 짓궂은 미소에, 학관생들이 동요했다.

확실히 젊거나 어린 학생들에게 자리에 앉아서 책만 읽는 수업은 지루하다.

다만 이제껏, 천무학관의 교관들이 ‘지루하지? 그럼 이걸 해 볼래?’라는 말이 나왔다 하면 어마어마한 개고생을 하곤 했던 것이다.

차라리 지루하게 책 읽는 수업이 그리워질 정도로.

“아니, 저 말은…….”

“역시나… 싸… 한데?”

기재 중의 기재만 모인 천무학관에서도, 산처럼 쌓이는 과제나 새로운 수업은 꺼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척!

“새로운 수업 요강은 무엇입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괴짜도 있었다.

힘든 과제를 오히려 즐거워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골치 아픈 돌연변이가.

“아놔, 서문영…….”

“쟤 월반 좀 시켜 줘. 제발, 아니면 조기졸업이나…….”

아이들이 하나둘 신음하며 책상에 머리를 파묻는 가운데, 천마는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월반? 조기졸업?’

천마는 듣지 못한 얘기였다.

옆에 있던 소진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아, 학년을 건너뛰는 거야. 더는 이 학년에서 배울 것 없다고 판단이 될 때에 그런 자격이 주어져.”

“…그래? 그럼 이거 위험한데.”

“뭐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바라보는 소진.

하지만 천마는 다른 의미로 조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제껏 그는 학관생에게 실력을 제대로 보여 준 적이 없다.

만에 하나 자신이 능력을 일부라도 보여 준다면, 졸지에 월반을 넘어 졸업을 하게 생겨 버린다.

수업에 흥미를 느끼던 그로선, 갑작스러운 졸업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조금 더 주의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였다.

* * *

“학관 전체가 레이드에 나선다고 합니다.”

거처로 돌아온 천마와 흑객.

모두 함께 식사한 뒤 노달과 천마 앞에서 흑객이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 레이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이가 움직이는지 짧게 설명했다.

그렇게 한참 설명을 듣고선, 노달이 입을 열었다.

“이번 레이드에서 제자님은 활약하지 마십시오.”

“…음.”

노달의 말에 천마는 눈을 돌렸다.

시선을 받은 노달이 꾸벅, 천마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자님이 열심히 해 봐야 천무학관의 이름만 높여 줄 뿐입니다. 물론, 이번 레이드가 성공하게 되면 나름 학관의 포상 점수를 받으실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우리들의 앞으로.

노달이 하는 말에 천마는 납득했다.

확실히, 학관 생활에서 좋은 학점과 좋은 평가는 중요하다.

일반적인 학관생이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애초부터 일반적인 학관생이 아니었다.

그가 학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첫째로, 그게 본인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입신양명이나 출세가 아니라 앞으로 몇 년 뒤에 상대할 리치왕, 놈과 골드 드래곤이 바꿔 버린 판, 세상의 변화를 인지하기 위해서였다.

현실적으로, 바뀐 세상에 적응하는 데 학관만큼 빠른 학습의 장은 없었으니까.

거기다 오늘 들었던 월반이라는 거.

눈에 띄는 활약을 하면 단번에 졸업까지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조금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어떤?”

“나도 나중을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일단 학관은 졸업해야 해. 그 녀석에게 그런 약속을 했어.”

지금의 이 몸, 이한이 살아생전 가졌던 마지막 소원.

천무학관을 자퇴하지 않고 끝까지 졸업하는 것. 그게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약속을 하셨다면… 사정이 바뀌었다고 말하고 다르게 교섭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럴 수가 없어. 그 녀석, 죽었다.”

“아니… 그럼 더더욱 문제가 될 게 없지요. 이미 죽은 사람과의 약속에 얽매일 필요가…….”

“노달.”

천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가 언제까지고 극마에만 머물러 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그 생각, 바꿀 필요가 있다. 약속이란 그저 상대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야.”

“엇… 죄,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 꾸짖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니까. 이참에 알아 두라는 거다. 약속을 하는 주체는, 남이 아니고 나다. 남과 약속을 했건 어쨌건, 그 약속을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말이다.”

“……?”

천마의 말에 노달은 멈칫했다.

무언가, 천마의 방금 한 말에 서려 있는 현기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알 듯 말 듯했다.

천마는 생각에 잠긴 노달을 보고 한마디를 더했다.

“세간에 자신을 넣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마라. 안 그러면 마를 극복하는 것이 고작일 뿐, 마를 벗어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테니까.”

“……!”

노달의 눈이 흐릿해졌다.

마를 극복하는 극마(克魔).

마를 벗어나는 탈마(脫魔).

그 말에 그는 뭔가 깨달음이라도 온 듯, 혼자서 중얼중얼하며 무언가를 반추하고 있었다.

꿀꺽.

그 모습에 흑객은 저도 모르게 목이 말라왔다.

“교… 제자님? 방금 무슨 말씀이신지…….”

“욕심내지 마라. 어린것아. 네게 아니다.”

“…….”

“지금 들어 봐야 남지도 않고, 나중에 더 꼬인다. 너는 당장 할 수 있는 거나 해.”

“…네.”

천마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흑객은 아쉬웠지만 바로 수긍했다.

그사이 스승인 노달은 아직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교주가 내려준 무언가의 깨달음일 터.

흑객도 얻고 싶었지만, 저런 깨달음은 당사자에게나 유용할 뿐, 지금 들어 봐야 나중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깔끔하게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공대 구성은 어떻게 된다고?”

“음… 네.”

천마의 말에 흑객은 학관에서 받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2학년인 천마와 달리 그는 4학년이다.

당연히 이번 공격대에서 할 일이 많았다.

더욱이 자세한 내용을 2학년에게 알려줄 리 만무했기에 천마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다.

“일단 이번 공격대 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군단, 2군단, 3군단, 그리고 예비대까지. 교… 아니, 제자님은 아마도 3군단 내지 예비대로 속하시게 될 겁니다.”

“…흐응.”

천마는 턱을 긁었다.

일단 그는 명목상으로는 천무학관의 2학년 학관생이다. 실제 힘과는 상관없이, 현장에서는 자칫하면 끽! 죽는 말단 중의 말단 취급이다.

그래서 레이드나 공격대가 진행될 때,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중요 임무가 뭔지 거의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알려 줘 봐야 도움도 되지 않거니와, 자칫 어린 천재들 특유의, ‘나는 다르다. 나는 달라!’ 하는 근거 없는 자부심에 혼자 요지에 돌격했다가 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군단은 이름부터가 이번 공격대의 최우수 전력입니다. 그들이 보스 레이드를 진행할 겁니다.”

흑객은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위해 황지 한 장을 꺼내 작은 붓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격대 편제.

1군단 – 현경, 혹은 다수의 화경 고수. 고위 마법사. 고위 힐러. 탱커 군단.

보스 전담. 지구력 집중. 방어력.

적 보스 성격에 따라 구성 다르게 함.

2군단 - 버프 탑 파괴단 * 4

화경 고수나 고위 마법사 소수. 중위 마법사 다수. 탱커 소수. 여차하면 사망자 발생.

신속하게 탑 파괴에 목적. 순발력과 순간 화력 우선.

탑 성격에 맞춘 속성별 소형 공격대.

3군단 - 주변 순찰. 경계 및 유격대.

“1군단은 던전의 보스와 맞붙는 이들입니다. 이름부터 1군단. 최고의 전력만 뽑은 이들이지요.”

“음.”

“화경급 이상의 고수, 혹은 고위 마법사의 공격력으로 보스를 잡는 정예입니다. 사실 이 보스라는 놈들은 방어력이 어마어마해서, 어중간한 극마급 전력으로는 칼날도 들어가지 않는다더군요.”

“그럴 법하네. 그런데 방어력이 다는 아닐 텐데?”

천마가 묻자 흑객이 끄덕였다.

“당연히 다가 아니지요. 놈의 공격력 또한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탱커, 방어에 특화된 전신 갑주를 두른 방패수들이 힐러-치료사들의 보조를 받으며 적 보스의 공격을 막아 냅니다.”

“흐음.”

“그 집단 방어술은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수십 명이 내력과 기술을 합쳐서, 대단위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 내는 방어술… 저도 듣기만 했지 이제껏 본 적은 없습니다.”

“근사한걸?”

문득 지난번 딥 블랙 길드에서 만난 여기사, 레이라가 생각났다.

그녀는 전신에 갑옷을 입고 그게 무겁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아마 평소에도 방어, 그 쪽에만 신경 쓰는 직종이 아닐까.

‘하긴, 그랬으니 겁도 없이 덤벼들었겠지.’

생각해 보니 그럴 만했다. 탱커. 최전선에서 가장 강인한 공격을 몸으로 맞받는 이들. 그런 이들이라면 어지간한 공포나 위압 따위는 통하지도 않는 게 보통일 테니까.

그래서 주제도 모르고 자신에게 띠껍게 굴었고… 그래서 사뿐히 밟아 주긴 했지만.

“다음으로 2군단. 속칭으로는 탑 파괴단이 있습니다. 임무의 중요도로는 1군단 못지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있기에 1군단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 말하는 흑객의 눈이 빛났다.

-화경의 고수, 중위 마법사 다수, 탱커 소수.

여차하면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으니 신속하게 탑의 파괴에 목적을 두고, 성격은 순발력과 순간 화력 우선이다.

탑 성격에 맞춘 속성별 소형 공격대라고 생각하는 편이 이해가 빨랐다.

“탑 파괴단?”

천마가 갸웃하자 흑객이 끄덕였다.

“예, 대개의 던전 보스는 그냥 저 혼자 강한 놈이 보스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랬다면 딱히 보스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건 뭐건, 혼자 있는 놈은 어떻게든 진즉에 처리할 수 있다.

수단이 마법이든 무예이든, 아니면 강력한 화약의 폭발력이든 간에.

“지난번의 쿠아토처럼, 일정 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은 기이한 권능을 지닙니다. 그리고 그 권능은 주위의 지형이나 기물과 연관되는데 대개의 경우 던전 보스를 보호하고, 더 강하게 한다더군요.”

“아하, 네크로맨서의 지구라트처럼?”

비슷한 내용을 수업 때 들었던 천마가 끄덕였다.

지구라트(Ziggurat). 그 뜻은 성스러운 탑이나, 실제로는 흑마력으로 오염된 네크로맨서들이 더 자주 쓰는 기물.

사령(邪靈), 원혼(冤魂), 사기(邪氣)를 뿜어내는 음한한 속성의 저주로 가득한 탑.

이 탑의 수호 범위에 있는 네크로맨서는 성직자의 턴 언데드에 맞아도 소멸되지 않는다. 따라서, 적을 잡기 전에 반드시 부숴야 하는 기물이다.

“맞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잘 맞춰야 하죠. 탑 파괴가 너무 빠르면, 보스가 나름 저만의 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늦으면…….”

“안 그래도 강한 놈을, 더 강한 때에 상대하게 되는 거군. 대충 알겠어.”

흑객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3군단은… 기본적으로 주변 정찰. 이상 현상 보고, 그리고… 잡일입니다.”

“…….”

흑객이 조심스레 말하긴 했지만, 결국 천마는 인상을 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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