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레이드 공격대 (3)
“한 시진을 준다. 너희가 가장 손발이 맞는 동료를 찾아 파티를 꾸려라.”
청천 날벼락.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던전학과 월산 교두가 말했다.
술렁.
2학년 학관생들은 놀라는 것 외에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반응은 물론이고 생각 자체가 되질 않는 거였다.
1분가량.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이 이어진 후, 월산 교두가 한마디를 더 했다.
“파티를 짜지 않아도 좋다. 그 경우, 너희들은 잔여 인원이다. 학관에서 안배한 대로, 3학년생들이 인원을 선별하고 조직을 짤 것이다. 불만은 없겠지.”
술렁술렁!
뒤이은 말에 학관생들은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파티를 짜라는 말도 황당하지만, 3학년생들에게 권한이 주어진다는 말은 더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교, 교수님! 뭐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희들이 왜…….”
“어둠의 나무 토벌에 대해 지난 시간에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학관생 하나가 손을 들자, 월산 교두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끊었다.
“추정 위험 등급 17급. 천무학관의 전력을 기울여도 장담할 수 없는 필드 던전. 그게 이번 사태다. 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총력전. 말 그대로 전쟁이다.”
“……!”
술렁술렁! 웅성웅성!
그리고 그제야 학관생들은 사태를 알아차렸다.
전시 상황.
천무학관은 학관 전체가 전투 체제로 돌입한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일상일 때에 지켜지던 상식이, 전부 무시되는 초비상 사태가 된 것이다.
“너희는 천무학관의 학관생들이다. 당장 어느 순간 어떻게 싸움터에 끌려갈지 모르는 위치라는 거다.”
월산 교두는 평시답지 않은 기백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냉엄한 눈길을 받은 학관생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나? 그럼 학관의 준비를 따라라. 약관도 되지 않은 너희 생각보다, 백여 년간 이런 사태를 대비해 온 학관의 준비가 더 안전할 테니까.”
“…….”
“이견이 있다면 지금 움직여라. 대안도 없이 무조건 불평부터 하는 녀석들은 막지 않는다. 딱히 불이익은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
월산 교두의 얼굴은 냉막했다.
어떤 반론도 받지 않는다는 전장의 장수 같은 얼굴로, 그는 말했다.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학관생에게는, 지금까지의 성적을 모두 뒤집는 그런 상점과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선택은 너희들의 것. 움직여라. 그 움직임이 너희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
지금까지의 성적을 모두 뒤집는 상점.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우등생은 우등생대로 긴장하는 얼굴이, 그리고 성적이 낮았던 열등생들은 갑작스러운 패자부활전에 의욕이 급속도로 치솟았다.
우글우글. 와글와글.
교실 안은 뜨거운 물처럼 끓어올랐다. 희망은 주어졌으되,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있었다. 갑작스러운 혼돈과 혼란으로 교실은 터져 나갈 듯했다.
“어, 어! 야! 파티 짜래! 누구 나랑 할 사람?”
“야! 서문영! 운소령! 같이하자! 나 좀 넣어 줘!”
“…흐음.”
물론 모두가 당황하는 가운데에서도, 침착을 유지하고 담담한 태도를 견지하는 학관생들도 있었다.
단 세 명.
서문영, 운소령, 그리고 천마였다.
“서문영! 어? 나 좀 부탁해!”
“…미안한데, 조금 시간을 주겠어? 나도 생각을 좀 해야겠는데.”
“운소령!”
“미안,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이하아안!”
“아, 시끄러. 얼굴 들이밀지 마. 때린다?”
“히익…….”
이 세 사람은 들끓는 혼란과는 별개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바로 생각.
지금 상황이 어떤 것이며,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모색하는 것.
‘…초비상사태다. 냉정하게 다른 애들을 신경 쓸 수 있는 경황이 없다. 나 하나만 책임지기도 벅차. 그렇다면…….’
서문영은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다.
‘먼저 움직여야 해. 가장 강하고 가능성 있는 상대와 손을 잡는 것. 많은 수를 움직일 수는 없어. 그렇다면…….’
운소령 역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한.’
‘이한이다.’
2학년 3반의 1등, 2등이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겨우 얼마 전까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천마.
기부금 입학생 이한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상황 참 재밌게 만들어 놨네.’
천마는 피실피실 웃고 있었다. 그는 월선 교두의 말이 떨어질 때부터 이리 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파라락.
손 안에서 펼쳐지는 인명록. 2학년 3반의 신상 명세와 그들의 특이 사항을 기록한 명부다. 이 명부를 제공한 녀석은 이미.
“저… 이한? 약속대로 나 받아 주는 거지?”
천마의 바로 옆에 착 달라붙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바로 소진. 소가상단의 후계자는, 본신의 힘이 약한 만큼 강한 자에게 줄을 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뭐, 원한다면. 근데 굳이 그럴 필요 있냐?”
“어… 왜?”
“너 정도면 딱히 3학년하고 움직여도 나쁘지 않을 거 아냐. 규모가 규모인데.”
천무학관의 전력을 기울이는 필드 던전 토벌.
흔히 공격대라 불리는, 말 그대로 전쟁 규모의 레이드다. 학관의 고수는 고수대로, 고수가 아닌 이들은 아닌 대로, 가진바 모든 전력을 다 투입하는 결전.
그리고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의 화력이 아니다. 바로 보급이었다.
“보급대로 편성되면 편할 텐데? 이번만큼은 너더러 기부금 입학생이라고 뭐라 하는 놈들 없을걸?”
“…그건 그렇지만.”
소진은 살짝 망설였다.
확실히 천마의 말대로, 대규모 전투일수록 비전투 인원인 소진 같은 인물의 비중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는 삼음절맥, 집중해서 기억한 것은 결코 잊어버리는 일 없는 걸어 다니는 사전이다. 또한 살아 있는 장부다.
공격대가 소모하는 물자, 보급 상황, 적 전황, 아군 전력 등, 같은 2학년의 어느 누구도 소진만큼 행정에 대해서 잘 아는 학관생은 없다. 소진은 원래 상인이었으니까.
“권력이잖아. 네 멋대로 할 수 있다고. 평소에 밉보이던 녀석들은 이참에 개고생시킬 수 있고, 잘해 주던 녀석들한테는 그만큼 보답할 수 있는 위치가 될 건데?”
“…….”
상인인 소진이 절대 무인들에게 무로 당해 낼 수 없듯이, 무인인 다른 학관생들도 상재만큼은 절대 소진에게 당해 낼 수 없다.
따라서 소진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서, 공격대는 거의 무조건 수긍할 것이다.
천마의 말은 지금 이런 판세를 읽고 있기에 내릴 수 있는 질문이었다.
권력에 손을 댈 기회.
앞으로의 학관 생활을 어떻게 편하게 풀어 나가게 될지 모를, 그런 기회를 마다하겠냐마는.
소진은 잠시 골똘하게 숙고한 끝에 입을 열었다.
“…나는 상인이야. 이한.”
“그래. 그러니까,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해라.”
“그게 네 옆인 거 같아. 내 생각에는.”
소진은 드물게도 진정이 가득한, 열기 넘치는 눈으로 천마를 보았다.
그 눈빛에, 천마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회해도 모른다?”
“그건 이제까지 충분히 해 왔어.”
꾸욱.
소진은 말끝에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어차피 내 힘은, 내가 쓸 수 있어야 내 힘이니까…….”
권력, 재력, 금력.
이제껏 소가상단의 후계로 있던 소진이 가진 힘이었다. 하지만 그 힘은 바깥세상에선 몰라도, 천무학관에서는 무의미했다.
학관은 아이들의 정글이었다.
소진은 소가상단의 후계자였지만, 다른 아이들도 제각기 자기 가문이 있었다. 아이지만 아이가 아닌 입장으로 움직여 왔다.
여차하면 다른 아이를 쥐어짜고, 빼앗고, 억누른다. 이제까지는 그걸 몰랐다. 왜 그러는지를.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소진은 알 수 있었다.
“힘을 기르고 싶어. 그러니까 기회를 줘. 최선을 다해 볼게.”
“좋아.”
열기 어린 눈에, 천마가 피식 웃었다.
‘소총관 느낌이라니.’
옛날, 천마의 옆에 눈에 띄게 허약한 체질의 총관 하나가 있었다.
소진을 보니 왠지 모르게 그가 생각이 난 것이다.
“이한, 네가 좋다면 우리 파티에 넣어 줄게.”
“호오……?”
조금 예상외로, 천마에게 제일 먼저 접근한 것은 서문영도, 운소령도 아니었다.
바로 당무련.
사천당문 출신으로, 독과 암기의 전문가인 그녀가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다.
“조금 의외네. 너, 나 싫어하지 않았어?”
“…….”
제안을 듣자마자 돌직구를 꽂아 버리는 천마.
당무련은 직설적인 그의 말에 이를 악물더니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예전에는 그랬지. 솔직히 지금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호호오…….”
“지금까지 기부금 입학생에, 무예든 마법이든 재능이 전혀 없다고 판정받은 열등생이 너였어. 좋아할 수가 없지. 하지만 너는 그 모든 걸 뒤집었어.”
당무련의 시선은 살짝 아래를 향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천마가 아니라 당무련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실력은 실력. 이제껏 인정하기 싫지만 너는 너 자신을 증명했어. 급상승한 무예. 급상승한 실력.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겠지. 그러니까 나는 너를 인정한 거야.”
“그런 거군.”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내심 놀라워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함. 본가에서 어릴 적 그리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 못해서 인정욕구 강함. 성취지향적.
-서문영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음. 운소령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음.
-호불호가 확실함. 자존심이 강해 과하게 잘난 척하지만, 그건 본인의 한계를 깨닫고 있기에 보이는 겉모습임.
‘소진, 이 녀석. 대단한데?’
학관에서 늘 이리저리 치이는 기부금 입학생. 소진.
그는 본인이 홀대받는 것과는 별도로, 반 아이들의 성향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예전에 당무련을 볼 때는 왜 저리 날을 세우고 드세게 구나 싶었는데, 소진의 분석과 천마 자신의 짬을 더해 보니, 당무련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잘 알겠어. 그만 가 봐.”
“…응?”
“네 말은 알겠다고. 같이해 보자. 이거 아냐? 그런데 나도 생각을 해 봐야지. 설마하니, 네 제안을 받고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하는 거야?”
“…….”
“당무련, 나는 네 아랫사람이 아니라 동등한 학관생이야. 정확히는 지금은 너보다 내가 더 우위지. 왜냐하면 서문영이 너하고 겹치잖아. 아니야?”
“……!”
당무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과 암기의 고수. 기관진식이나 함정 파악에 능함. 시야 좋음. 던전 파티에서의 포지션은 트랩퍼.
-패스 파인더인 서문영의 하위 호환. 폐쇄적인 던전에서는 동급. 개방형인 필드 던전에서는 열세.
이 또한 소진의 분석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당무련은 은근히 서문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호감은, 마침 당무련 본인과 같은 수업을 듣는 일이 많아서 피어난 것이리라.
다만 그녀에게는 안타깝게도, 좋아하는 서문영이 던전 파티에서는 서로 상충되고 마는 것이다.
패스 파인더는, 한 파티에 두 명이 있을 이유는 없다.
분명히 던전 공략 파티에서 중요한 직종이지만, 그래서 굳이 묻어 가자면 못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성취욕구가 높고 자존심이 강하다.
카르삭 던전에서도 본인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자, 크게 상심하는 모습을 보였을 정도.
“나도 생각 좀 해보고, 그다음에 결정할게. 괜찮지?”
“…알겠어.”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일까.
당무련은 어깨가 축 처져서 자리로 돌아갔다.
수군수군. 중얼중얼.
그 모습을 본 학관생들이 서로서로 귓속말을 해 댄다.
천마는 그런 것에 신경도 안 썼지만, 정작 옆에 있는 소진은, 주먹을 꼭 쥐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한, 정말 네 인기가…….”
“뭘 이 정도로. 이제 슬슬 다음 손님이네.”
쭈우욱.
천마는 거만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턱을 들었다.
그런 그에게 긴 머리의 미녀, 2학년 전체 수석이 와서 말을 걸었다.
“이한, 괜찮으면 이번에 같이 움직였으면 하는데. 어때?”
“흠.”
필리아를 대동한 운소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