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어둠의 나무, 외곽 지역 (2)
찰칵. 찰칵.
타닥. 탁!
방윤과 서문영, 그리고 천마가 전면에 나섰다. 운소령은 세심하게 세 사람을 살피며 다시금 작전을 설명했다.
“이번 작전은 ‘몰이 사냥’이야. 가장 중요한 건 시기. 타이밍이지.”
빠르고 튼튼한 방윤이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끈다.
서문영과 천마가 이를 보조하며, 언데드 몬스터 떼거지를 가능한 한 많이 끌어모아, 네 명의 원거리 딜러들의 사정거리 안으로 유인한다.
소진의 벽력탄, 당무련의 만천화우, 필리아의 정령술, 그리고 천마가 이제껏 배달(?)해 온 성수와 부적까지 쓰면, 이론상으로는 십자포화로 섬멸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있는 대로 다 끌어오겠어!”
의욕이 가득한 방윤을 보고 당무련이 어이없어 일침을 가했다.
“…그러다가 죽어. 적당히 해. 혹여라도 붙잡히면 끝장이니까. 서문영, 이한, 저 철두공 익힌 스님 잘 챙겨.”
“어, 챙길게. 걱정하지 마.”
이한이 건성으로 말하자, 하백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반드시 버리고 오겠다는 걸로 들린다만.”
그도 어느새 3반의 분위기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후욱. 후욱. 툭툭.
달릴 준비를 하며 몸을 푸는 세 사람 앞에서, 이경이 중얼중얼 제법 오래 집중한 후 캐스팅을 했다.
“윈드 워크(Wind walk), 헤이스트(Haste).”
우우우웅!
영창과 함께, 희미한 광채가 몸 선을 따라 맺힌다.
몸에 말 그대로 ‘마법이 걸린’ 천마는 펄쩍펄쩍 뛰며 가벼워진 몸을 만끽했다.
“크아, 이거지… 싸~~~ 해!”
하백운은 누커(Nuker)로 전형적인 공격형 마법사다.
반면 이경은 버퍼(Buffer)로, 파괴력보다 다양한 버프 효과를 아군에게 걸어 주는 보조 계열 마법사였다.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직접 공격 마법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보조 계열 마법이다. 원래도 강력한 전사를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만들어 주니까.
“이동 중에 공격하거나 공격받지 않도록 조심해.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풀려 버리니까.”
그가 빠르고 강력한 전사 세 명에게 걸어 준 마법은 바람 걸음, 그리고 순간 가속.
바람 걸음은 달릴 때 주변 공기의 결을 읽는다. 덕분에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기척이 희미해지기에 은신과 기습에 좋다.
순간 가속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다.
용도는 공방 모두에 활용된다. 주변 사물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공격이나 포위를 빠르게 회피, 역으로 반격까지 할 수 있다. 역량이 뛰어난 전사라면, 헤이스트 하나로 몬스터 열 마리를 때려잡을 수 있는 것이다.
“거, 매번 할 때마다 그 말 하는 거야? 잔소리하고는.”
“할 때마다 해야지. 앞으로 수십 번은 더 들을 거다.”
마법사는 원래 깐깐하지만, 보조 마법사는 더욱 깐깐한 편이다. 이경 또한 그랬다.
안전이 제일이다. 잔소리 듣는 귀찮음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면 싸게 치는 거다.
이는 보조 계열 마법사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성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사들은 강한 만큼 단순해서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허세를 자신감으로 착각하니까.
버프 몇 번 받고, ‘뽕이 차올라’ 제약 조건을 깜빡했다가 적진에서 순식간에 죽어 나간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면, 마법사는 강박적으로 안전 수칙을 되뇌일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죽으니까. 동료가, 혹은 자신까지 위험해지기에.
“지속 시간은 반 각이야. 그 안에 돌아오도록 해.”
“아… 알고 있어. 그 말도 벌써 세 번째야.”
파바바밧!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매번 들으면 질리는 법.
평소에 꼬장꼬장하던 방윤마저 넌더리를 내며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 뒤를 서문영이, 그리고 천마가 뒤따랐다.
쐐애애액!
귓가로 스치는 바람이 칼날 같았다. 기분이 상쾌하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질주하며, 방윤은 숨을 가슴 가득히 들이마셨다.
“흐읍……!”
대개의 버프는 대상자의 능력에 비례하여 효과를 상승시킨다. 빠른 사람은 더 빨라지고, 튼튼한 사람은 더 튼튼해진다.
그리고 방윤은 마침, 빠른 데다 튼튼하기까지 한 전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소림의 후예.
어려서부터 팔목 발목에, 납판이니 쇠고리니 하는 것들을 매달고 산을, 계곡을 뛰어다니며 수련했던 몸이다.
무식할 정도로 성실하게 수련해 온 소림승이기에 신체 조건만 보자면 파티의 그 어느 누구보다 ‘힘’이 좋았다.
무엇보다.
“흐으으읍……!”
그의 어마어마한 폐활량은 천마조차도 한 수 접어줄 만한 것이었다.
쐐애액! 싸아아악!
단거리를 달리는 기법으로, 그는 무호흡 그대로 발을 박찼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람이 귓가에서 비명을 질렀다.
크르륵. 크르르륵.
철벅철벅!
저 멀리, 한두 마리. 반쯤 썩은 사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개 머리의 인간, 놀이다. 살아서도 마물이었던 존재는, 죽어서조차 안식을 얻지 못하고 떠돌고 있었다.
쏴아아악!
방윤은 놈들을 향해 정면으로 돌격했다.
손가락 만하게 보이던 것이 주먹만 하게, 팔뚝만 하게 커졌다. 지척까지 다가간 것이다.
‘이것이 헤이스트. 과연.’
크륵. 크르륵.
가뜩이나 느려 터진 시체가 뒤늦게 반응한다. 놈들이 비척대며 들어 올리는 도끼. 그를 보고 방윤은.
척.
‘부디…….’
한 손을 들어 예를 표했다.
‘극락왕생하여 내생에는 좋게 태어나기를!’
반장(半掌). 중원 어느 사찰에서도 하지 않는.
오직 소림에서만 갖추는 예.
스스로 제 팔 하나를 잘라 외팔이가 되며 깨달음을 얻은, 소림사 2대 주지 혜능선사를 기리는 예법이다.
부글부글. 불쑥!
크르르륵! 크르르륵!
사체들이 늘어났다. 물속에서 솟아났다. 죽은 자들끼리 신호라도 보낸 것일까? 갑자기 십여 마리로 늘어난 적. 방윤은 그사이로 마치 바람처럼 뛰어든 다음.
크와아아!
피싯! 첨벙!
지나쳤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지만, 그는 공격하지 않았다.
크르르르……? 커르륵?
물보라를 일으킨 것은 헛쳐 버린 언데드의 도끼였다.
녀석들은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간 인간, 생명체를 보고 어리둥절해하다가.
크와아아!
괴성을 지르며 곧장 쫓아 달렸다. 사자(Undead) 특유의 생자에 대한 분노다. 멀리서 그를 보고 있던 서문영은 내공으로 목청을 돋워 소리쳤다.
“방윤! 꺾어!”
“흡!”
파바바밧!
거세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소림승의 강건한 몸이 급격한 방향 전환을 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방윤의 얼굴은, 터질 듯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호흡을 하지 않은 것이다.
‘으으으읍……!’
그래도 여기까진가? 할 수 없다, 이제 한계다. 그렇게 생각한 방윤은 전신의 기를 끌어올려 숨을 토해 내며.
“와아아아아아---!”
격한 포효를 터뜨렸다.
우르릉! 우르르릉!
사자후신공. 소림 칠십이 절예 중 하나로, 사마(邪魔)를 퇴치하고, 흔들린 심신을 바로잡는 효능을 가진, 불문의 파사현정의 음공.
크아아… 캬아아아…….
그리고 그 파사현정은, 사마 그 자체인 언데드에게 치명적이었다.
방윤의 호통 한 번에 쫓아오던 언데드 놀과 코볼트들이 낯빛이 허옇게 질리며 풀썩풀썩 쓰러졌다.
그 모습은 마치 그라나다 대륙의 프리스트들이 쓰는 턴 언데드와 같았다.
“저거… 아무리 봐도 사기라니까.”
저게 어떤 의미인지 알 턱이 없는 천마는 그저 투덜거릴 뿐이었다.
첨벙. 첨벙.
쓰러진 언데드들이 물웅덩이에 잠겼다. 방윤의 사자후가 멀리멀리 퍼져서 메아리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정적에 가까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부글부글. 부글부글!
주변 물웅덩이에서 격렬하게 물거품이 끓어올랐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성(聖)과 마(魔).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불이 물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지만 달아오른 화로에 물 한 잔을 부어서는, 오히려 뜨거운 김과 열기만 사방으로 뻗치게 될 뿐이다.
방윤의 사자후신공은 분명 신성한 힘에 가까웠지만, 습지 전체에 서린 어둠의 총량에 대항하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오히려 어설프게 정화하다 말아서, 원래라면 이미 흙으로 돌아갔었을 오래된 언데드까지 자극을 받아 깨어났다.
-부---르르르르.
불쑥불쑥! 불쑥불쑥!
철벅철벅. 달그락. 달각.
언데드 코볼트, 놀, 오크, 심지어 다 삭아 버린 의복을 걸친 인간의 해골까지 죄다 일어났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체들이 몰려들자, 습지 전체가 파도치는 듯했다.
“우와… 대박.”
“미, 미친……! 저게 다 얼마야!”
그 수, 대략 일천.
서문영은 거의 식겁하고, 천마조차 놀라서 입을 벌릴 정도였다.
뼈다귀만 앙상한 언데드들은, 죽은 지 너무 오래되어 수준은 낮아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단 셋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보였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돌아와!
찌리릿!
서문영의 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찔러 들어왔다. 후방에 있는 하백운의 메시지 마법이다.
타닷!
“너무 많은데! 괜찮을까!”
서문영이 몸을 돌려 뛰었다.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작전대로 해야지.
“변수가 생겼다고! 너무 큰 변수가!”
상황이 안 보이는 건가? 서문영은 답답해서 크게 소리 질렀다.
몰이 사냥 작전은 원래, 유인해서 때려잡겠다는 것이다. 그 말은, 유인조가 얼마를 끌어오든 일단 끌고 오기만 하면 후방의 원거리 딜러들이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강력한 화력이 확보된 것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숫자는, 서문영이 볼 때 한 번에 처리가 불가능했다.
“이대로 가면 다 휩쓸려! 차라리 흩어지자! 우리가 놈들을 끌고 밖으로 빠지겠어!”
여차하면 내가 죽는다. 너희들만이라도 무사해라! 그런 각오로 한 말이다. 하지만.
“아이고… 아주 영웅 납셨네, 진짜.”
타닷.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가며 천마가 한숨을 쉬었다. 뒤이어.
“으아아아아! 부처님!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파바바바박!
무시무시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방윤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다음으로 날아오는 하백운의 메시지는, 뭔가 한심하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서문영, 너는 몰라도 두 사람은 그럴 생각 없어 보이는데.
“어…….”
-일단 복귀해. 이쪽도 준비할 테니까. 어차피 둘이나 셋이나 거기서 거기. 손이나 보태라고.
뚜욱.
메시지는 거기서 끊겼다. 아마 통신할 마나도 아껴서 싸울 준비를 다지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필요해.”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이를 악물고 결단을 내렸다.
서문영은 잠시, 파티의 안전을 위해 혼자서 잠깐이라도 몬스터들을 지연시켜 보자는 생각을 했다.
휘릭, 처억!
그렇게 자세를 잡고 돌아선 순간.
우르르르. 와글와글.
크워어어어! 쿠워어어어!
천마와 방윤에게 잔뜩 어그로가 끌린 몬스터들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에 얼어 있던 서문영은.
“어… 어…….”
주춤, 주춤. 타닥!
전력을 다해 다시 뛰었다. 하백운의 말을 떠올리며.
“그래! 손이라도 보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