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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74화 (175/310)

174화. 어둠의 나무, 외곽 지역 (6)

4학년들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마법사들이 각각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중얼중얼, 내용도 알아먹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교관 매소봉이 손목에 대고 말했다.

“상태 양호. 마법사 3명. 지금부터 진지 작성에 들어가겠습니다.”

후우우웅.

동시에, 주변에 희미한 마법의 영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세간에 흔히 도는 말로,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며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드드득. 구르릉. 구르릉.

남자 둘, 여자 하나. 고위급 마법사들이 영창을 시작함에 따라, 그들 주위에 강력한 물리적 영적 방어막이 생겨났다. 영기가 흐릿하게 반투명한 구조물, 건물 등의 형태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좋군. 이제부터 마법을 쓰겠습니다. 집중이 깨지지 않도록 보호 부탁합니다.”

“네.”

마법사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한참이나 영창을 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마법을 쓰기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남궁호는 이제까지 뭐 한 거냐, 라는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가 경험해 본 바로 대개의 고위급 마법은 사전에 마법사 자신을 보호하거나, 마법의 밑 준비를 먼저 하고 시작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캐스팅하는 중에는 마법사가 취약해진다. 이는 무사가 아니라도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 때문에 길고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대단위 마법일수록, 자기 보호는 기본이다.

후우우웅!

그래서 마력의 방패, 시간 고정, 지능 강화 등 마법사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자신의 힘이 최우선으로 작용하는 ‘영역’을 확보한다.

이를 흔히 ‘진지 작성’이라 부르며, 이는 ‘메모라이즈’와 더불어 안 그래도 강한 마법사를 더 강하게 만드는 강화 조치의 쌍벽이었다.

후우웅. 후우웅.

지링. 지링…….

‘굉장하군.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강력한 마나라니… 이게 마법사들의 진짜 전투 태세인가.’

남궁호는 희미한 바람 소리와 종을 울리는 듯한 기음 속에서 그리 생각했다.

마법사들의 마법 행사는 더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앞서 눈에 보이도록 뚜렷해진 마나의 구조물은, 이제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점점 단단해져 가고 있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힘으로 저걸 깨뜨릴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 수르트의 검. 아티팩트라 불러도 무방한 강력한 화염의 기운을 품은 마법 검.

그걸 들고 남궁세가의 검을 휘두를 때, 남궁호는 이제껏 적이라 부를 만한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다.

굳이 말한다면 흑객.

하지만 그와의 싸움도 자신이 우위를 드러내며 승리했다.

그야말로 패배가 없는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의 마법사들의 마법을 보면, 그 자랑스러운 일격이 이빨이나 들어갈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남궁호는 조금 더 긴장하며, 주의를 집중했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강해진다는 것은, 그들이 더욱 취약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사주경계를 계속했고, 그랬기에 조금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않았다.

크르륵. 크륵.

“적 반응. 언데드 3체 접근 중… 아니… 해결됨. 이상 무.”

막 언데드 출현을 모두에게 전파하던 남궁호는 살짝 말이 꼬였다.

그가 알아채기 무섭게, 허망할 만큼 간단히 놈들의 목이 떨어져 나간 것을 본 것이다.

툭. 툭. 콰직.

유독 색이 검은 언데드 오크, 언데드 리저드맨의 목을 베어 내고, 바닥을 구르는 머리를 밟아 부수는 발이 있었다. 온몸에 검은 피풍의를 두른 흑객.

이제껏 알아본 바로는 천마신교의 후예였다. 남궁호는 속으로 경탄을 금치 못하다가 그에게 보이도록 살짝 손짓을 했다.

까닥…….

“…….”

휙. 휘익.

흑객이 다가왔다. 그가 손에 쥔 청강검을 보고 남궁호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 휘두른 건 이 검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오. 조장.”

“아…….”

남궁호는 흑객의 왼손, 조금 전에 은빛의 무기로 보였던 손을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본인이 잘못 봤거나, 아니면 상대가 숨기고 있는 아이템 혹은 능력이리라. 조금은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방금 전은 훌륭했소. 그런데 정확히 어떻게 한 것인지?”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흑객의 얼굴이 무뚝뚝했다.

어찌 보면 네 전력의 근원을 다 밝히라는 요구니 불편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남궁호는 살짝 달래듯이 말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닌데… 알다시피 다들 목숨을 건 작전이오.”

조원들의 전력 정도는 알아 두어야, 돌발 변수를 줄일 수 있다. 적을 얼마나, 어느 정도로 감당할 수 있는지, 파티원이 어느 것에 능한지, 조장으로서는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작전 계획 입안이 가능하고, 무리 없이 전략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흑객은 묵묵히 입을 다물고 끄덕였다.

“우리 조는 매소봉 교관님을 기본으로 짜인 구성이오. 혹 형장이 화경, 혹은 그 급에 달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화경이오.”

“…그렇다면 안심하고 작전 목표만 달성하면 될… 방금 뭐라고 했소?”

말하다 말고 남궁호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지금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극마경. 마를 극복해 가는 경지. 정종 무림에서는 화경이라고 불리지. 대충 그 정도요.”

“…….”

“안 믿기는 모양이군. 뭐, 여튼 나는 말했소.”

“어… 아니, 나는… 음…….”

남궁호는 계속 말이 꼬이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생각 자체가 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화경이라고? 이자가? 벌써? 아니, 어떻게?!’

그는 초절정의 경지였다. 앞으로 화경까지는 고작 몇 걸음을 앞둔 정도.

그가 알기로 4학년 중에서 자신보다 무위가 높은 자는 없었다. 단연코 없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제껏 선의의 경쟁 상대. 정확히는 자신보다 살짝 낮은 무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흑객. 그가 소리 소문도 없이 자신을 아득히 추월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어떻게? 지난번만 해도… 아니, 증명하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호적수로서의 불쾌감과, 탑 파괴단 조장으로서의 필요성. 동시에 남궁세가 소가주로서의 입장이 엉켰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 흑객의 모습이 훅! 하고 사라졌다.

“……?!”

툭, 툭, 툭.

다시금 눈에 들어온 흑객은, 판금 갑옷을 입은 언데드 세 채의 목을 날리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목을 날린 것이 아니라, 잡아 당겨서 끊어 버렸다. 남궁호는 이번에야 말로 흑객의 왼손이, 기형적으로 길게 뻗은 금 속성의 낫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후드득.

흑객이 무표정하게 낫에 묻은 피를 털어 낼때쯤, 남궁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기척도 없이…  암살자의 재능이 있는 건가.”

“…….”

권능. 혹은 이능.

남궁호는 방금의 움직임을 그렇게 판단했다.

흑객은 경신술로 이동해서 적을 처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 나타나 버렸다.

이형환위?

경공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그걸 떠올려 보았지만, 남궁호가 아는 것과는 달랐다.

없어짐과 동시에 나타났다. 이건 경신술이나 보법 어쩌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공간… 그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거다.’

“조장, 표적의 움직임이 달라졌소. 아무래도 숫자로 밀어내려는 생각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

티잉, 티잉, 삐익.

물으려는 남궁호의 귓가로, 사전에 약속된 신호가 들어왔다. 적 출현. 급습. 가까움. 퇴각하겠음.

남궁호가 입을 벌리고 바라보자, 흑객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일이 설명하기는 시간이 좋지 않소. 그저… 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할까.”

“…기연을 얻으셨구려. 감축드리오.”

“감축할 일인지는 모르겠소… 마지막이 워낙에 험하게 될 형편이라.”

흑객이 씁쓸하게 웃었다. 남궁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눈앞에 있었던 흑객의 신형을 또 한 차례 놓친 것이다.

사아아악. 휘이이익.

습하고 기분 나쁜 바람이 불어왔다. 남궁호는 수신호로 다른 조원들에게 지시했다.

기도비닉 유지. 절대적 침묵.

…크르르륵.

어둠나무 주변에는 지형지물이 많았다. 조원들은 저마다 몸을 숨기고 기습에 대비했다.

어차피 소리 내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언데드들이 자신들의 기척을 못 느끼지는 않을 터였다. 저들은 생자의 기운 그 자체를 추적하니까.

반면 이쪽은 눈이 안 보이는 채로, 눈이 잘 보이는 적을 상대하는 격이었다.

퍼억! 빠각!

그럼에도 지형지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방금 같은 상황 때문이었다. 몸집만 한 바위 뒤에 숨어 있었던 조원이 바위를 부수고 나온 언데드의 주먹을 피해 냈다.

은폐가 아니라 엄폐.

언데드는 인간과의 사이에 장해물이 있건 없건 직선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시야는 확보되어 있지만, 지능이 없는 놈이 하는 공격.

은폐물을 부수는 사이 1초, 혹은 그 절반 정도의 제지를 받는다. 그 틈에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퍽! 투욱. 바각!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언데드 오크의 목과 팔을 잘랐다. 계획대로의 움직임. 순조롭다. 남궁호의 코에 훅 하고 썩은 냄새가 끼쳐 온 것은 그때였다.

“전원 대비……!”

툭. 툭. 툭. 쉬잇.

막 경호성을 외치려던 남궁호의 앞에, 다시금 흑객이 나타났다. 소리 지르지 마라는 뜻으로 입술 앞에 손가락을 하나 세운 채로

“여덟 잡았소. 일단 성한 머리는 가져 왔고.”

“…부상 당했소?”

나타난 흑객의 모습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온몸에 붉고 찐득한 피가 잔뜩 덮여 있었다. 상처가 저 모양이면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한 남궁호가 묻자, 흑객은 고개를 저었다.

“내 피가 아니오. 위장이지.”

“위장…….”

남궁호는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언데드는 생자의 기척을 알아차린다. 소리에도 반응하지만 기척에도 반응한다.

하지만 그들을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냄새였다. 죽은 자의 시취. 시체가 썩은 특유의 독한 냄새는 멀리서도 난다. 그걸 흑객은 스스로 온몸에 발라 버린 것이다.

적들의 감각을 교란하기 위해.

‘어디서 저런 걸 배운 거지?’

썩은 시체의 진물을 온몸에 바르고, 같은 시체인 척하며 천천히 접근하다가, 언데드가 무언가를 느끼기 전에 도약해서 일격으로 무력화시킨다.

그저 작전의 효율만 생각하고 놓고 보자면, 좋은 판단이다. 하지만… 뭐랄까, 남궁호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저렇게 할 자신은 없었다.

‘용병으로 오래 움직였다고 했지. 그래서 가능한 것일까.’

“후방으로 여덟. 마법사들의 후방을 노리는 것 같소. 교관께 보고를.”

“…형장이 감당 못 할 정도요?”

“상성이 안 좋아서.”

“제길.”

남궁호는 복잡한 기분으로 손목의 찬 팔찌에 대고 보고했다.

적이 강하다는 건 분명 나쁜 기분이어야 할 텐데, 흑객이 감당 못 한다는 말에 왜 마음이 풀어지는 걸까?

-언데드 여덟이 마법사를 노림. 교관의 지원 바람. 반복한다. 교관의 지원 바람.

스으으윽.

다시금 어둠나무의 그늘 주변에서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침묵이 공간을 지배했다.

툭. 툭. 크아아악! 캬르륵!

하지만 그렇게 알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숲 여기저기서 뭔가를 부수는 소리, 그리고 덜 부서져서 내지르는 언데드의 비명이 일고는 했다. 마음을 좀 내려놓으려고 하는 순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흑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열둘, 아니, 열아홉이군.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번에는 포위를 하려는 것 같소.”

“…정말 보통이 아니군. 그걸 다 어떻게… 지금 무슨 소리 안 났소?”

남궁호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물었다.

끼이이이이---.

아주 미약하게, 귀를 찌르는 이상한 음파가 들린 듯 만 듯 했기 때문이다. 흑객은 그에 입을 다물고 남궁호를 보았고, 얼마 후 이상한 음파는 잦아들었다.

긴장한 탓인가. 남궁호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미약하고 가는 소리였던 탓이다.

“다 죽은 나무가 사람을 열매처럼 툭툭 뱉는군. 여튼, 있는 부하를 다 토해 내서 정작 나무 주변이 비었소. 지금 쳐 버리는 게 좋지 않나?”

“안 되오.”

흑객의 말에 남궁호는 큰일 날 소리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탑 파괴조. 그들이 달리 조를 따로 짜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던전 보스의 사방을 둘러싼 어둠 나무는, 그 자체가 버프 탑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다른 조와 시간을 맞춰, 동시에 없애야 하오. 하나하나 숫자를 줄여 나가는 식이 되면, 던전 보스에게 경각심만 심어 줄 뿐이니.”

즉, 시간을 맞추는 것이 작전의 생명. 그래서 더욱 위험한 임무다. 그래서 4학년들이 나서는 것이다.

달각.

남궁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흑객에게 보였다.

그건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가 흘러내리는, 모래시계였다.

“반 시진. 그동안을 버텨야 하오. 그리고 반 시진 후 반 각 안에 즉각 나무를 베든지 불태우든지 해야 하고.”

“…긴 시간이 되겠군.”

흑객의 말에 남궁호는 끄덕였다. 어느새 점점 깊어지고 있는 어둠, 그리고 습기를 느낀 것이다.

…흐르르르.

열아홉이 마흔으로, 그리고 이제는 칠십으로 늘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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