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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76화 (177/310)

176화. 어둠의 나무, 외곽 지역 (8)

투둑. 우두둑.

전신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내공과는 다른 힘. 외공에 가깝지만, 사법이라 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힘이 솟구쳤다.

캬아아아!

이지를 잃은 매소봉. 그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분명 옆에 칼을 차고 있음에도 빈 손으로 달려들었다.

그걸 어리석다 할 수 없는 것이, 분명 빈손으로 하는 공격이나 그 공격은 칼에 모자랄 바가 아니었다.

피잇! 촤악!

허공을 격하게 휘두른 할큄.

하지만 그 끝에서 미세한 진공이 일어났다. 손끝에 닿지도 않았는데도 흑객의 어깨 어림이 찢겨 피가 튀었다.

크르르륵…….

눈이 뒤집힌 매소봉이 흡족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두웅, 둥.

허공에 뿌려진 흑객의 피는, 그저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물기 있는 것이 튀었으니 당연히 땅에 쏟아져야 할 것이 가만히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크륵.

눈 뒤집힌 매소봉의 이지가 아니라 본능이었다.

피잇!

철퍽! 팟!

허공에 떠 있던 핏방울이 날아들었다. 매소봉의 손이 그 피를 막아 내고 가볍게 떨쳐 냈다.

슈슈슈슉!

하지만 자잘하게 흩어져 날렸어야 할 붉은, 그런 핏방울이 일순 은색으로 변하며 바늘이 되어 되돌아왔다.

파바바박! 퍼걱!

이쑤시개만 한 비침. 그런 것 수십 개가 막아선 손을 작살내 버렸다. 순간 매소봉의 머리가 움찔, 한 대 가격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밀렸다.

“한 가지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어서 다행인 게.”

그건 다름 아닌 흑객, 그가 지척까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빛으로 변한 손이 조금 전 매소봉의 머리가 있었을 위치를 헛치고, 흑객이 작게 웃었다.

“살아 있는, 그리고 피를 지닌 존재한테는 질 것 같지 않아졌다는 거지.”

꽈악.

말과 함께 흑객이 손을 움켜쥐었다.

드드드득!

그 순간, 매소봉의 팔이 기이하게 꺾였다.

부러진 곳은 상박. 닿지도 부딪히지도 않았는데도 뼈가 꺾이고, 살이 터져 피가 튀었다.

크으으으!

지근거리. 한 팔이 꺾였음에도 매소봉의 몸이 흑객을 향해 들이닥쳤다. 기묘하게 구부러진 손이 흑객의 얼굴을 할퀴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지이이이잉.

어느새 그의 팔을 휘감고 있는 은빛의 창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낭창낭창하게 휘어진 창은 금속성의 색채가 분명함에도 버드나무처럼 유연했다.

우드득! 끄륵!

그렇게 유연함에도 분명 강철처럼 단단했다. 매소봉의 남은 팔이 거세게 긁히고, 그의 입에서 지저분한 침이 흘러내렸다.

두드득. 꽈득! 꽈득!

창은 이제 채찍인지 무언지 모를 은색의 뱀처럼 영활하게 움직였다. 뻗은 한 손으로 매소봉의 몸을 완전히 묶어 버린 흑객은, 다른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겹치고.

“조금 미안.”

따악!

강렬한 딱밤을 매소봉의 이마에 날렸다.

크륵…….

이미 이지를 상실했던 매소봉의 몸이 휘청거리며 무너진다. 흑객은 재빠르게 그의 몸 몇 곳의 혈을 짚은 후, 인상을 찌푸리며 품에서 포승을 꺼내 다시 묶었다.

꿈틀! 꿈틀!

역시나, 혈을 짚은 정도로는 완전히 무력화시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가슴이, 어깨가 기괴하게 치솟는 것을 보고 그는 혀를 찼다.

“실혼인이 된 교관과의 싸움이라… 한번 해보고 싶기는 한데 상황이 상황이니.”

크워우!

뒤에서 요란한 괴음과 기세가 일었다. 검지 않은데 어둡게 보이는 시체들이 비척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수가 일곱.

흑객은 그들 모두를 눈에 담은 후, 다시금 눈살을 찌푸렸다.

“접촉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군.”

퍼억!

말과 함께 그의 오른손이 짓무른 땅에 쑤셔 박혔다. 그와 함께.

드드드득. 드드드득.

땅이 울리고, 다가오는 시체들의 발치에서 흙더미가 불쑥불쑥 솟아났다. 막 놈들이 멈칫하려 한 순간.

-Țepeș(체페슈)

추아아악! 추아아악! 추아아악!

땅을 솟구치는 날카로운 창. 꼬챙이라기엔 너무도 흉악하고 굵은 무언가가 놈들의 몸을 꿰뚫고 치솟아 올랐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몸째로 허공에 들어 올려진 놈들은 발광했다. 기괴하게 꺾이는 몸. 그와 함께 까닭 모를 시커먼 기운이 악취처럼 펼쳐지는 것을 보고 흑객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역시나.”

왠지 모르게 닿으면 안 좋을 것 같다 싶었더니, 이런 예감은 틀리지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저주, 혹은 그 어떤 안 좋은 기운일 터. 그는 내심 블라드에게 감사하며 창으로 뻗은 손에 힘을 가했다.

콰득! 콰득! 콰득! 콰득!

파바바바밧!

사체를 궤뚫은 창이, 갑자기 여러 개의 가지를 만들어 냈다. 그러고는 맹렬하게 회전했다.

저주받은 시체들은 삽시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놈들의 몸에 깃들었던 검은 기운은 안개처럼 뭉클뭉클 퍼져 나갔다.

“으음…….”

흑객이 휘청했다. 기운에 닿아서가 아니었다. 분명 거리는 충분했지만 정작 사체들을 갈아 버린 것이 그의 창, 아니, 그의 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이이익!

검은 기운. 빛을 흡수하듯이 한없이 검게 일렁이는 기운이 흑객의 창, 은빛으로 빛나던 금속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흉험한 기운은 제법, 어울렸다.

-…….

“웃기지도 않는!”

그 흉험한 기운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속삭이는 것에 흑객은 이를 악물었다.

슈우욱! 채챙!

창이 길게 늘어졌다. 끄트머리가 일곱으로 갈라진 창이 갑자기 십 장 길이로 늘어나자, 마치 긴 갈대처럼 보였다.

까득!

뒤이어 그 창이 부러졌다. 흑객이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라 낸 것이었다. 부러진 창은 순식간에 줄어들어, 은색의 광휘를 잃고 사람의 혈육으로 만들어진 팔이 되었다.

뚝. 뚝.

선혈을 흘리며 절단된 흑객의 팔. 손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에도.

“흡!”

타다다닥! 팟! 파앗!

흑객은 몸을 날려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잠깐의 경공술과 공간 도약으로. 이대로 싸우는 건 손해가 많다. 그 판단을 내리기 무섭게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츄르르륵…….

곧이어 검게 물든 창이 모습을 바꾸었다. 길었던 몸이 줄어들고, 하박의 중간에서 잘려 나간 사람의 팔로 모습을 바꾸었다. 시커멓게 물든 그 팔은.

부르르르… 팍! 파직!

성질이라도 난 듯 멋대로 뒤틀리다가 산산히 부서진 후 다시금 기분 나쁜 어둠이 되어, 허공으로 증발해 버렸다.

“쿨럭쿨럭! 크흑……!”

매소봉은 기침을 내뱉었다. 지독한 두통,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어지러움 때문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정신이 드시오?”

“…나는… 윽! 오, 오지 말게!”

사람 목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멀리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그의 목을 물어뜯을 것 같아서였다.

자제도 절제도 되지 않는 미친 충동.

주화입마,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간 마 그 자체.

매소봉이 자신의 증세를 느끼고 내린 판단이었다. 다행히도 상대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가오지 않았다.

허억, 허억…….

한참 숨을 고르고 있자 상대가 다시 말을 걸었다.

“신호탄을 보고 왔소. 매소봉 교관, 뭔가 발견한 게 있소?”

“신호탄……? 발견……? 윽!”

매소봉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금 지독한 두통에 휩싸였다.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사력을 다해 말했다.

“어둠나무… 그륵, 그걸 없애야… 해…….”

“어차피 없애러 온 거였소만.”

“아니… 그런 게 아냐… 어둠나무는…….”

애초에 탑 파괴조는 그걸 위해 조직된 인원이다. 하지만 매소봉은 그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목격했다.

고룡 쉐이크.

놈을 지키기 위해서 어둠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놈이 있는 것이라는 걸.

“그걸… 보면 아오?”

“…보면… 안 돼… 바로 오염된다… 뭔가 다른 조치를 취해야… 그르륵!”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상대의 목소리가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떻게든, 알려야 했다.

뜨득. 우지직!

뒤통수 어림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봤어… 그건 보면 안 되는… 인간이 알아차리면 바로 미쳐 버리는… 그런 존재와 닿아 있어. 아마도 그게 어둠나무의 목적. 그 나무가 만들어 내는 과실은 위험해. 쉐이크는, 그걸 이 땅에 퍼뜨리는 어둠나무를 지키는 가디언이고… 허억, 허억…….”

“흠, 곤란한데.”

“곤란하지. 그래도 방법이 있을 거야. 그냥은 보면 안 되지만, 강력한 신성의 가호. 불가나 도가의 법기로 무장해야 중화하거나, 빗겨 낼 수 있어. 일반인은 보면 안 돼. 최소 교관급 이상의 인물이… 으…….”

어질어질.

현기증이 다시금 심해졌다. 매소봉은 이제 한계다 싶었다.

그나마 상대가 중간에 뭘 어떻게 했는지, 갑자기 말하기 편해져서 요점은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매소봉이라는 이름이 가문에 먹칠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임무는 완수하고 죽은 자로 기록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 편하게 해 주게. 나는 여기까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당신은 아직 할 일이 많소.”

“하하… 마음이 좋은 녀석이군.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내 수하이니까.”

…이게 무슨 소리? 매소봉은 상황조차 잊고 인상을 썼다. 그러자.

피이이잉.

“어?”

흐릿하게, 눈앞이 비쳐 보였다. 뭔가 평소와는 다른, 검은색 일색에 희미한 녹색의 선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다시 눈이 보였다. 그 눈에 보이는 것은 선명한 녹색의 빛, 아니.

생명이 일그러져 보이는, 힘이 가득 찬 눈동자였다. 매소봉은 절로 무릎 꿇고 싶은 충동이 무럭무럭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겨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잠들어라. 지금 일들을 잊고.

“…….”

누구십니까, 라고 물으려다 매소봉은 그 명령에 따랐다. 그는 조용히 몸을 눕히고, 기운을 모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을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얼굴로.

“…후우.”

털썩.

매소봉이 의식을 잃자, 흑객은 그의 머리에서 손을 빼냈다.

꾸드득. 투둑.

살점과 핏방울이 흘러내리는 손. 하지만 피로 물든 붉은 손은 곧 하얗게 창백해졌고, 매소봉의 머리에 난 상처도 곧 아물었다.

비죽.

살짝 그의 입가로 예리하게 난 송곳니가 비쳐 보였지만, 그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작게 사그러들었다.

그 모습에 그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뇌수술 같은 건 알지도 못하는데… 다행이군.”

흡혈귀의 권능. 피의 지배.

다른 건 몰라도, 이번만큼은 온전히 블라드의 이능 덕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매소봉의 머리에 맺혀 있던 정체 모를 검은 기운은, 당장이라도 혈압을 상승시켜 뇌를 곤죽으로 만들 기세였다.

흑객은 그에 과감하게 머리를 열어, 압력을 낮추고 혈액의 폭주를 멈췄다. 피를 지배하는 권능이 아니었다면, 의원이 왔다 해도 고치기 힘든 상세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상처를 수복하고, 다시 원래로 돌리기란… 당장은 불가능 한 일.

그래서 흑객은 교관을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어 버렸다.

딱히 피가 모자라서는 아니었다. 손 하나를 내주면서 잃은 피야 천천히 회복되겠지만, 매소봉 정도의 무인은 거둘 수 있다면 거두는 게 이익일 테니까.

이글이글.

“…….”

그나저나 이건 뭘까. 흑객은 매소봉의 머리에서 뽑아낸, 살아 움직이는 듯한 어둠을 보고 갸웃했다.

“겁을… 먹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둠. 그것도 상극의 어둠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녀석의 덩치가 작아서인지 내공-마공-을 조금만 끌어올려도 겁먹은 듯 꼼짝하지 못한다는 것?

“일단은 돌아가 봐야 하나…….”

피익! 타앙!

그는 임무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머리 쓰는 복잡한 일들은 그의 전문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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