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어둠의 나무, 외곽 지역 (10)
좌라라락!
검은 기운을 풍기는 뼛조각들이 쏟아졌다. 3학년 학관생 마연은 한 움큼이나 되는 검은 뼈를 보고 미소 지었다.
“소득이 제법이군.”
언데드. 죽어서도 움직이는 몬스터.
녀석들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뼈의 일부다.
그중에서 이처럼 검게 물든 뼈는 본래라면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언데드 백 마리를 두들겨 잡아서 한 조각 나올까 말까 하던 것인데, 이 지역 근처에서는 얼추 서너 마리당 하나씩 마구 쏟아지는 것이다.
“약재상들이 좋아하겠군.”
“대체 이딴 걸 어디다 쓰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말야…….”
분명히 생명이 없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중원에서는 대격변의 날 이전에도, 강시니 뭐니 하며 죽어서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것들이 품은 힘, 혹은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면, 어쩌면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자그락. 자그락.
“야야, 잘 챙겨. 그것들이 돈이 얼마인데?”
“켁, 하나 흘렀다. 야, 거기 좀 주워 봐.”
그래서 항상 수요가 많았다.
딱히 진시황제가 아니라도, 불로장생은 돈 좀 있거나 권력 좀 쥔 이들이라면 모두 바라는 바.
전문적으로는 모산파나 옛 전진교의 비술에서부터, 잡스럽기로는 시전의 정체 모를 만병통치약까지.
돈 몇 푼으로 ‘우연히’ 불사의 기회가 찾아들기를 꿈꾸는 이들은 항상 있었고, 그로 인해 사기를 치든, 가짜를 내놓든, 불사의 약이니 하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불사약을 만드는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바로 언데드의 신체 일부였다.
“하여간에… 다음에 본가 들를 때는 부친께 단단히 일러 둬야겠어. 절대 이런 수상한 약 사 드시지 말라고.”
“크크크크.”
악훈, 같은 3학년 학관생의 말에 마연은 웃었다.
세상없는 효자인 그는 이따금 시전에서 파는 만병통치약이니 불로장생수니 하는 것들을 사다 집에다 보내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보낸 약들의 정체가, 사실 어디서 굴러먹던 시체 뼈다귀였는지 모른다는 게 끔찍했던 모양이다.
“그냥 말씀드려서 되겠냐? 어디 영단이나 내단이라도 하나 사 드리고 말해야지.”
“터무니없이 비싸. 거기다가 비싸다고 다 진짜도 아니더라고.”
악훈이 고개 저으며 넌더리를 냈다.
실제로 그랬다. 예로부터 중원에는 모작, 가작을 만드는 솜씨 있는 이들이 넘쳐났다.
특히 몸에 좋다 해서 돈을 아끼지 않는 약재나 비방에서는 온갖 기상천외하고 창조적인 약들이 넘쳐났다.
당장 마연이나 악훈 역시, 그 창조적인 약의 재료로 언데드의 뼈를 긁어모으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어차피 속는 놈이 바보지. 세상사 다 속고 속이는데. 뭐.”
“흠.”
마연의 냉소적인 말에 악훈은 얼굴을 찌푸렸다.
저런 생각을 하고 살면, 당장 손해는 안 보겠지만, 대신에 세상살이가 우울할 것 같았다.
당장 악훈 본인도, 왠지 이번 일로 돈은 좀 벌겠지만 앞으로 시장 바닥 나가기가 두려워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이는 모든 것이 가짜인지 아닌지 의심이 들 테니까.
타닥. 타닥.
“저어… 선배님.”
“어?”
습해진 산자락, 모닥불 앞에서 뼈를 헤아리고 있는 3학년들에게 헐떡대며 진땀을 뺀 2학년 하나가 달려왔다.
“보… 본대에서 철퇴 명령이라는데요?”
“뭐? 시발, 그게 무슨 소리야?!”
벌떡.
마연이 얼굴을 왁 일그러뜨리며 일어섰다.
“명령서!”
“여, 여기…….”
팍!
2학년이 내민 누런 황지를 빼앗듯이 받아 들고, 마연이 부드득! 이를 갈았다.
“제기랄! 뭐 되는 게 없어!”
필드 던전 토벌은 대단위 작전이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앞으로 이틀에 걸쳐 대단위적인 청소에 들어갈 터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생하는 사냥과 부수입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장 오늘 하루 손에 들어온 검은 뼈만 해도 은자가 아니라 금자 단위로 셀 정도.
그런데 이 금싸라기 땅을 두고 당장 철수하라니?
“으음… 이거… 잠깐만.”
마연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그는 짧은 사이 학관생의 본분과 벌어들이는 수입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다.
“야, 야, 2학년. 너, 본대에 다시 다녀와. 이거 명령서가 좀 이상한데?”
“예……?”
“봐, 여기 직인, 날인. 중간에 하나 빠져 있잖아. 절차가 안 맞네. 이대로는 수령 못 해.”
그래서 머리를 굴린 것이, 절차대로 간다는 것. 상부의 명령이 확실하지 않다고 꼼수를 부리는 것이었다.
본대에서 지금의 초소까지, 왕복하면 2시진(4시간)은 걸릴 터. 그동안에 작게는 한 번, 많게는 두 번까지 검은 뼈 사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확실히 금자 두 냥 이상은 될 터.
깨지는 거야 감수하면 그만이다. 안 그래도 바쁜 공격대의 명령 중에, 혼선이 있었다고 우기면 그만.
“아니… 저… 하지만…….”
“하지만? 하지 마비 걸리고 싶냐? 당장 안 뛰어가?”
덕분에 2학년은 울상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게, 위에서 당장 긴급 사항이라면서 호통과 함께 급파한 전령이고 명령서였던 탓이다.
뛰어서 한 시진 거리를 다시 돌아가는 것도 힘들지만, 기껏 가서 할 말이 ‘도장이 빠졌으니 다시 받아 오라더라’라고 하면, 쌍욕과 함께 깨질 것은 뻔한데.
“튀어 가! 새꺄! 아~ 진짜 요즘 애들 빠진 것 봐라.”
철썩! 끄악!
등짝을 후려치자 메뚜기처럼 토도독 달려가는 2학년생. 그 모습을 보고 악훈이 혀를 찼다.
“괜찮겠냐? 이래도?”
“안 괜찮으면? 우리 하나쯤, 뭐 별일 생기겠어?”
마연이 코웃음을 쳤다.
긴급 철퇴? 철수와 동시에 퇴각? 이건 원칙이 그렇다 뿐이지, 실제로 행해지는 확률은 극히 적었다.
애초에 천무학관은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상대할 때 만전을 기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경계를 과할 정도로 한다. 그래서 대비한 것에 비해 별 큰일은 나지 않는 것이 평시의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일 없을 것이 당연하다고, 마연은 철석같이 믿었다.
“주변에 탑 파괴조도 있고, 저편 백 장 너머에 화경에다 현경의 고수까지 있어. 뭔 일이 날래야 날 수가 없다고.”
철컥.
묵직한 철봉을 들어 보이며 그가 턱짓했다.
위치상 그들의 조는 절묘한 곳에 있었다.
좌측에 탑 파괴조 2조가 위치했고, 우측 백 장 너머에 고룡 쉐이크를 맡을, 던전 보스 처리조가 있었다.
좌우에 든든한 무력 배치를 받아 놓고도, 겁을 먹으면 그게 우스운 일이었다.
“자자, 얘들아? 일단 2학년은 보냈으니 빨리빨리 움직이자. 용돈벌이 할 시간이 부족하다.”
“어어이.”
철컥, 차르르.
장창, 연검, 대검 등을 든 3학년들이 흉맹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각기 언데드의 검은 뼛조각을 나눠 챙긴 그들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스스스슥.
“안개라… 어째 좀 기분이 별로인데…….”
악훈이 아까와 달리 시야 자욱한 안개를 보고 툴툴거리며 그들을 따랐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 종적이 사라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 *
“…안개? 기분이 좀 이상한데?”
최초에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서문영이었다.
분명히 차곡차곡 언데드들을 끌어 잡는 중인데,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자꾸만 좁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문영, 왜 그래?”
“음…….”
운소령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서문영은 몸을 땅에 낮추고 눈을 감았다.
잠시 집중하겠다는 손짓을 한 후.
탁, 스륵.
그는 아예 바닥에 귀를 대고, 땅에 엎드려 버렸다. 그 모습에 일행 모두가 사방을 경계했다.
차락, 차락.
당무련과 소진은 자잘한 비황석들을 챙겼고.
스르륵, 툭.
하백운과 이경, 마법사 둘은 언제든 캐스팅을 할 수 있게 준비했으며, 운소령과 방윤은 그들 앞을 막아서며 언제든 손을 쓸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자르르륵.
그리고 언제든 정령술을 쓸 수 있도록 대비하는 필리아까지.
학관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처음에는 다소 서툴렀지만, 싸움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잘 만들어진 시계처럼 서로 손발이 맞아 들어간다.
그걸 지켜보는 천마는 꽤 흥미로웠다.
‘이런 게 파티 사냥이란 건가.’
처음에는 약한 애들이 모여서 합격진을 짜는, 그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파티라는 소규모 조직을 짜고, 사냥을 계속하는 동안 그의 생각은 바뀌었다.
조직력.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누군가의 약점을 누군가의 강점이 덮어 준다. 부족함이 생길 수밖에 없는 무인을, 마법사를, 서로서로가 보충하여 허점이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것도 쓸데가 있을지도. 조금 더 지켜볼까?’
약한 자들이 모여서 강해지는 형태라니. 언제나 혼자서 독존하던 천마로서는 꽤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부스슥.
서문영이 몸을 일으키며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천마는 한 발 물러섰다.
과연.
패스 파인더라고 하는 녀석은 제 몫을 할 것인가.
“저쪽으로, 거리는 백 장 미만.”
“음.”
“뭐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문영은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천마 역시 자욱한 안개 너머로 무언가를 감지하고 있었던 참이었으니까.
‘팔십 장 정도지만. 뭐, 수준을 생각하면 비슷한가.’
나름 합격,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서문영이 뒷말을 잇는다.
“숫자는 열둘. 그런데… 느낌이 안 좋아. 굉장히 불길하다.”
“불길?”
“강하다는 뜻이야?”
“아니… 땅울림만으로 강하고 어쩌고는 알 수 없어. 그런데… 굉장히 규칙적이야.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서문영의 얼굴은 복잡했다.
그는 청력과 시력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경지에 이르는 무인이 갈고닦은 실력은, 단순히 정보에 그치지 않고 미미한 예감 같은 것을 내려 주는 법.
특히 패스 파인더라는, 파티의 눈이자 귀의 역할을 하는 직종상, 그들의 육감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정확히는.
그 육감을 무시할 수 없도록 갈고닦는 것이 패스파인더라는 직종인 것이다.
“안 좋아, 많이 안좋아. 일단 물러서자.”
“지도 파악이 거의 다 됐는데…….”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어. 여기서는 서문영의 말대로 가자… 이한?”
투덜대는 당무령, 그리고 패스 파인더인 서문영의 판단을 신뢰하는 운소령. 그러는 그들 앞에.
“다들 뒤로 좀 빠져.”
철퍽.
천마가 소매를 걷으며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염화공.”
쿠르르륵.
어느새부터인가, 그의 온몸에는 희미한 불길이 일고 있었다.
그걸 눈에 드러나도록 펼치자, 주변의 질퍽한 습지가 말라 단단한 땅으로 변하고 있었다.
“후우… 흡!”
뒤이어 강맹한 열기가 내포된 일 장을 앞으로 뻗자.
화아아악!
짙은 안개가 반경 3장가량으로 뚫리며 막혀 있던 시야를 깨끗하게 치워 버렸다.
그 끝에 절걱거리며 다가오는 검은 시체들.
“…듀라한? 저건… 데, 데스 나이트?”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소진이 기겁했다.
수급장수 듀라한, 환사기사 데스나이트.
각각 위험 등급 최소 10급, 11급 이상.
“이한… 너, 알고 있었어?”
“아니, 뭐.”
불신이 가득한 서문영의 눈길을 받으며 천마는 목과 어깨를 뚜둑뚜둑거리며 풀었다.
“이제 슬슬 좀 나설 때도 된 거 같아서.”
히죽.
그는 웃으며 온몸의 기를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