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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80화 (181/310)

180화. 어둠의 나무, 외곽 지역 (12)

구---르르릉!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검은 벼락. 천마의 검에서 뿌려진 뇌전의 기운이었다.

치---지지직!

뇌(雷)는 천지간에 가장 강한 기운.

열양공을 강화해서 화염으로 일궈 낸 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단번에 내력이 죽죽 빠져나갔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콰르르륵! 퍽! 퍼석!

단 일격. 그 일격에 듀라한 다섯이 머리가 터지거나, 몸 여기저기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버렸다.

-크… 르르르륵!

-비겁한… 크으으윽!

철 때문이다. 듀라한은 애초에 기사. 원래는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있었던 자들.

그런 이들의 사체가 일어난 것이니 완전히 성하지는 않더라도 검도 방패도 철, 투구와 갑옷도 철이었다. 뇌전은 쇠붙이를 좋아하는 법.

그리고 습기도 있었다.

천마의 파티가 탐색한 자리는 습지형의 지형인 터라, 곳곳에 물웅덩이나 늪이 태반이었다.

철벅. 철벅.

천마가 앞서 발동시킨 염화공으로 일대를 바싹 말려 버렸지만 그 지역 밖은 전부 물기, 습기 천지였다.

잘 말랐던 땅은 듀라한 몇과 드잡이하는 사이 어느새 파도에 갯벌이 적셔지듯 축축하게 적셔져 있었다.

여기에 검은 번개가 떨어지자, 원래 예상도 하지 않았던 광역 피해까지 주었다.

치리릭! 치리리릭! 치리릭!

번개가 사라졌어야 할 범위 밖으로까지 뻗어 나갔다. 일격에 다섯이 날아간 다음, 그 뒤에 주루룩 서 있던 듀라한들이 감전되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푸화아아악-!

썩은 살이 타들어 가는 악취와 함께 대량의 김이 펄펄 풍겨 올렸다.

-크으으으… 체인 라이트닝?

-으윽, 검은색이라니… 이건…….

주춤주춤.

불규칙적으로 경련하며 몸을 뒤로 물리는 사체들. 그 뒤에서 묵직한, 쇠를 긁는 듯 거칠고 음울한 목소리가 천마를 질타했다.

-일대일 승부 중에 대기자를 치는가. 이제 보니 기사의 예도 모르는 자로다!

“웃기시네. 누가 하라고 했어?”

천마는 크저 코웃음만 쳤다.

안 그래도 웃기던 참이었다. 죽다 만 시체 놈들이 우루루 몰려오더니, 갑자기 그를 보고는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나서는 게 아닌가.

한 놈이 썰려도. 그다음 놈이 썰려도, 마치 이건 숭고한 의식 중이니 끼어들지 않겠다는 투로. 그건 꽤 가상하기는 했다. 한데.

천마 생전에, 그리고 이제껏 예의 예의 하는 인간들 중에서 말만 떠드는 게 아니라 제대로 실천하는 자를 몇이나 봤던가?

“네가 원하는 기사의 예가 뭔데?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내 검술, 공격 방식, 차분히 구경하면서 예습하고 다음다음 덤벼 오기? 그거 나한테 밑천 다 까라는 거 아냐?”

-……!!!

“됐고. 꼬우면 덤벼라. 다 와도 좋고. 대가리인 너만 마지막에 와도 좋고.”

-…내 기사도를 모욕하지 마라.

그그그극!

천마의 말에 발끈한 것일까. 조금 전의 묵직한 목소리, 쇠를 긁는 듯한 거친 저음의 주인이 앞으로 나섰다.

철그럭. 철그럭.

검은색. 전신을 검게 칠한 두터운 갑주.

“와.”

컸다. 천마의 감상은 그랬다. 대체 살아생전에 뭘 먹었는지, 어마어마하게 컸다.

9척(2미터70)을 넘어가는 장신의 거구.

덩치 자체는 지난번 마주친 쿠아토보다 좀 작아 보이는데… 이놈은 모습을 보아하니 인간이다.

인간이 대체 이렇게까지 큰 경우가 있었던가?

처억! 스각!

얼추 보아도 양손 검급 거검을 한 손으로 크게 휘두르며 검은 기사가 입을 열었다.

-묻겠다. 그대는 기사인가 아니면 마법사인가.

“멋진데.”

-…응?

“그 칼, 너 깨면 내가 가질 수 있는 거냐?”

천마의 눈이 번득였다. 검은 기사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검. 검은 기사의 갑주에 맞추기라도 한 듯한 흑검. 칠흑처럼 요사롭게 빛을 다 빨아먹는 검은 대검은, 모양으로 보아 반절이 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부러진 채로도 천마의 검에 버금가는 길이.

그게 마음에 들었다. 색도, 품고 있는 기운도.

안 그래도 요즘 들어 뻑 하면 부서지는 일이 많아서, 슬슬 쓸 만한 검을 새로 장만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던 천마에게, 딱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타난 것이다.

-…크, 크하하하핫! 와핫핫핫핫!

검은 기사가 크게 웃었다. 분명 죽은 시체인데도, 그 생동감이 각별한 존재였다.

언데드는 고위급일수록 지능이 높다. 즉, 물리적인 힘은 둘째 치고, 똑똑하고 사람 같을수록 위험한 존재.

그렇게 보면 이놈은 어떨까. 대가리를 잘라 들고 다니는 수급 장수를 여럿 거느리고, 본인은 기사도의 예 어쩌고 하며 생전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웃기까지? 이쯤 되면 확실했다. 이건 거물이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천마는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와하하하! 크하하하!”

-…….

하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길게 퍼져 나갔다. 흉포할 정도의 가가대소에 검은 기사는 웃음을 멈추었고, 천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야, 사람 뻘쭘하게. 기껏 같이 웃어 줬더니.”

-큭, 정말 특이한 자로군.

쩔그럭!

검은 기사의 투구가 들썩였다.

투구에 가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웃는 얼굴일 것이다. 어쩌면 제법 호방한 인상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래 봐야 뭐… 이미 골백번 썩은 면상이겠지만.

“그런 소리 많이 듣기는 하지.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 칼, 줄 거냐고. 보아하니…….”

말과 함께 천마가 두 손을 포권처럼 말아 쥐었다.

척. 파앙!

왼손은 곧게 펴서 천지를, 오른 주먹은 세상을 때려 부순다는 파천의 의지.

바로 천마신장의 기수식이다.

“한판 붙어 보고 싶은 거 아냐? 기사라는 양반.”

-호오…….

대개의 무예의 기수식은 정중하고, 시작하는 의미를 동작에 담는다.

평소의 천마답지 않게 예의를 차린 까닭은, 상대가 어떤 놈인지 왠지 촉이 왔기 때문이었다.

“강한 놈하고 붙어 보고 싶었지? 죽기 전까지도 그런 소망을 품고 죽었고. 아마 숫자에 당했겠지?”

-……!

“좋다 이거야. 박살 내 주지. 쓰러뜨려 준다고. 네가 보지 못한 무(武)의 극한을 보여주지. 그러니 내가 이기면… 네 칼 안 줄래?”

-크… 크!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다!

크크크크. 카카카카!

귀를 찌르는 듯한 사나운 웃음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호쾌함을 느끼고 천마는 피식 웃었다.

이 녀석, 나 같은 투귀다.

싸움. 죽고 죽이는 생사의 갈림길. 하나 그 안에 담긴 격렬한 충동과 아름다움. 거기에 빠진 녀석은 헤어나지 못한다. 일종의 마와 같았다.

제 몸을 불살라서 더더욱 커다랗고 밝게 타오르는, 죽음 직전의 가장 화려한 불꽃놀이.

‘물론 나는 그 마를 넘어섰지만.’

-묘하도다. 그 여자의 미혹에 빠져 영락한 내게, 다시 이런 기회가 오게 되는가? 그래, 좋겠지. 그것 또한.

처억.

검은 기사가 반절 남은 검을 수직으로 들어 이마, 투구에 댔다.

천마는 피식 웃었다. 서역 검술은 모르지만, 저건 척 보아도 상대에게 예의를 표하는 기수식일 터.

아니나 다를까, 검은 기사가 자신을 밝혔다.

-그대의 검에 경의를. 나는 부러진 듀랜달(Broken Durandal)의 주인… 롤란드라 한다. 그대는?

“천마신교의 주인, 천마다. 네 검의 다음 주인이기도 하고.”

-클클! 기대하지. 그 주인의.

싸악!

검은 기사가 말과 함께 검을 내려 베었다. 그러자.

“……!”

-솜씨가 부디 마음에 들기를!

패액!

공간이 찢어졌다. 그 속도는 일순, 천마가 놓칠 뻔할 정도. 분명히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명치를 내려 베고 있는 흑검.

‘미친!’

파앗! 후드득!

천마의 신형이 사라졌다. 흑검은 그의 옷깃 한 조각과 머리카락 몇 줄기를 베어 냈다.

-그걸 피했나. 대단하군.

“와… 나, 이 자식.”

찬탄하는 검은 기사. 그런 그에게 천마는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이럴 줄 알았다 싶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하여간에, 예의 예의 하는 녀석들 중에 진짜 예의 지키는 놈 참 잘 없더라고.

“먹어라! 암흑벽력도!”

파지지직!

천마의 검이, 검은 기사의 흑검에 버금가는 시커먼 광채를 피워 올렸다.

* * *

“…저건!”

검은 번개의 궤적을 보고 서문영의 눈이 부릅떠졌다.

콰르르릉! 콰르르릉!

철판을 후려치는 소리와 비슷했다. 얇은 강철판.

서문세가의 비전, 뇌천벽력도는 입문과 함께 철판을 후려갈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서문영의 기억 속에 남은 가문의 비검은, 먼저 고막을 찢을 듯한 격한 폭음이었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소리에 가장 가까운 소리, 그건 얇은 강철판을 후려갈길 때 일어난다.

-콰르르릉!

서문세가는 명문 무가였다. 다르게 말해, 아이들을 그냥 잘 먹고 잘 키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빠르면 일곱 살, 늦으면 열 살까지.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은 세가 지하의 연공실, 벽력당을 거쳐야 한다.

남녀는 상관없다. 오로지 자질만이 중요할 뿐.

그리고 뇌천벽력도는 입문과 동시에 탈락이 정해진다.

-콰르르릉! 콰르르릉! 콰르르릉!

벽력당에 배치된, 삼 장에 달하는 거대한 철판을 두드리면, 뇌음 정도가 아니라 충격파에 가까운 폭음이 일어난다.

소리 때문에 골이 울리고, 눈알까지 진동할 정도니, 어지간한 아이들은 울거나 기절한다. 대가 세고 강단 있는 아이들은 귀를 막고 이 악물고 버틴다.

그렇게 일각가량 미친 듯한 폭음에 노출되다 보니, 재능이 있는 아이건 없는 아이건, 며칠 동안 귀울림에 고생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서문영은 보통이 아니었다.

-콰르르릉! 콰르르릉! 콰르르릉!

그는 벼락 치는 소리를 듣고 얼어붙기는커녕, 눈살만 조금 찡그렸다. 그조차 찰나였다.

대가 센 아이도 촌각을 버티기 힘든 굉음을, 서문영은 일각이 넘게 버텼다.

아니, 즐겼다.

처음에는 그 역시 놀랐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조금 소리가 크다, 정도로 바뀌었다. 그리고 큰 소리는 조금 후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 익숙한 소리로 바뀌었다.

-파르륵. 파르르륵.

그건 바로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파아아아악!

뇌성벽력이 치는 소리가 아니라, 검이라는 얇은 철이 바람과 어울려 자아내는 노랫소리였다. 벽력당을 나온 서문영이 그리 말하자, 가문의 어르신들은 온 얼굴에 웃음을 담으며 드디어 계승자가 나타났다며 축하연을 열었다.

-드디어 나타났다고? 계승자가?

대체 무슨 뜻일까. 서문세가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140년 전의 대격변이 일어나기도 한 세기는 더 전부터 중원 무림에 무림세가로 존재했었다.

-그런데 계승자가 나타났다? 그럼 이제까지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검(劍).

그리고 도(刀).

서문세가의 절기는 뇌천벽력도.

엄연히 도를 사용하는 도법이었다. 천지간에 가장 강렬한 기운인 뇌전의 기운을 뿌려 내는 도법.

그러나 기이하게도 서문세가에서 쓰는 무기는 검이었다.

검과 도는 엄연히 다르다. 크기도 무게도 쓰임새도 완전히 다르다.

분명히 검이 만병지왕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나 서문세가의 절기는 도법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그 차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가 철이 들어 어느 순간 가문의 어르신께 물어보았을 때.

-그게 네가 찾아야 하는 것이란다. 영아.

서문영은 한없이 무거운 무게에 짓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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