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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81화 (182/310)

181화. 어둠의 나무, 기사 대장 (1)

콰지지직! 파지직! 쿠와아앙!

검은 벼락이 뻗어 나갔다. 칼날에 맺힌 예기가 잔뿌리처럼 사방으로 번졌다.

-좋은 수법.

검은 기사는 그 벼락에 정통으로 검을 들이대었다.

팍! 파지직!

벼락을 그대로 맞았다. 철갑을 입은 몸에서 무럭무럭 연기가 피어오르고, 뭔가 익는 역한 냄새가 났지만 그는 놀랍게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흠!

패액!

심지어 반격까지 해 왔다.

사각!

무시무시한 풍압. 천마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공격을 피해 내고 혀를 내둘렀다.

“너, 이 새끼. 사람 맞냐?”

-보다시피. 아니다만?

쩔그럭.

기사의 투구가 다시 흔들렸다. 웃는 것이다.

분명히 환사기사, 혹은 데스나이트이니 인간은 아니었다.

천마는 아무래도 웃는 걸 꽤 좋아하는 놈이구나 싶었다.

“아니, 새끼야. 살아생전에 말이다. 너, 무슨… 금강불괴야?”

고위급 기사가 생전에 가진 원한, 망집 등으로 인해 타락하며 언데드가 된 존재. 공식적인 위험 등급은 11등급 이상.

하지만 무인이 다들 천차만별이듯, 데스나이트 역시 살아생전에 얼마나 강한 존재였느냐에 따라 급수가 달라진다.

당장 일전에 천마가 만난 청명진인, 그가 부리던 데스나이트들도 11급은 그냥 넘었을 터.

-금강불괴?

“아, 이 자식이 모른 척하네.”

그런데 이놈 역시, 살아생전에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천마는 다시금 검은 벼락을 쏘아 냈다.

콰르르릉! 파지지직!

그러자 역시 검을 들어 번개를 받아 버리는 검은 기사.

치지지직!

벼락은 검은 기사의 검을 통해, 기사의 철갑을 통해, 습기 많은 땅에 그대로 뿌려졌다.

솨아아아…….

그리고 기사의 갑옷 틈에서 새어 나오는, 역한 냄새. 썩은 살이 구워지는 지독한 냄새.

먹힌다. 분명히 먹히고 있다. 애초에 뇌전의 기운이란 건 안 먹힐 수가 없는 것이지만, 어쨌든.

“흘려 내는 것도. 막아 내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몸으로 받는구만. 이 사기꾼아.”

-저런. 언사가 좀 심하군.

“심해? 너만 할까. 너, 무슨 불사신이나 그런 소리 들었어, 안 들었어?”

-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듣긴 했었지.

패액! 파지직! 콰강!

여유롭게 농담이나 주고받으면서도, 공방은 계속 이어졌다.

패액! 푸화악! 카각!

검은 기사의 칼날이 허공을 찢고, 천마의 검은 벼락이 잠시 잠깐 땅을 새카맣게 물들이곤 했다.

“크…….”

그리고 연이어진 검은 기사의 공격. 일괄적으로 하나하나 피해 내던 끝에, 천마는 기어코 파악해 냈다.

검은 기사의 공격. 검기도 검강도 아닌, 하지만 분명히 위협적인, 천마도 방심했다간 피를 볼 만한 공격.

진공의 칼날. 바로 그 공격의 근원을.

“이제 보니 그 검 때문이구만?”

패액! 파앙!

천마의 검이 드디어 공격을 흩어 냈다.

진공의 칼날. 그건 무시무시한 속도로 검을 휘둘러 대는 검은 기사의 끔찍한 완력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 기예가 무기의 능력으로 나왔다? 좀 서운한 평가인데.

“아니, 이 사기꾼아. 그 검 반칙이잖아, 아주. 그 압력을 버티는 무기라니?”

패애액!

말도 안 되는, 불가해할 정도로 단단한 검. 그 덕분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격이었다.

검은 기사가 든 검, 부러진 듀랜달이라는 반절 남은 검은 딱히 신검도 명검도 아니었다. 검의 예기만 놓고 보면 저 뒤의 운소령, 혹은 서문영의 검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하나.

“어디 보자, 한번.”

스콰아아악!

천마가 뿜어낸 검은 기운이 날아오자, 검은 기사는 잠시 긴장하더니 곧 그 공격을 쳐 냈다.

콰아아앙! 푸하악!

주변의 물웅덩이가 폭발하듯 수증기와 안개를 뿜어냈다.

까닥까닥.

공격을 쳐 낸 검은 기사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두 손을 돌리며 풀었다.

-놀라운 기술… 감탄을 금할 수 없군.

“검강이란 거다, 이 자식아.”

천마는 눈으로 욕을 하며, 동시에 탐욕을 눈에 담으며 이죽거렸다.

강기, 인간이 낼 수 있는 최대 최악의 파괴의 권능.

지난번 상대했던 폭식의 쿠아토조차도 함부로 상대하지 못한, 절대적인 파괴의 힘.

심지어 탈마에 이른 천마가 쏘아 낸 강기다. 그런 것을 검은 기사는 잘도 쳐 냈다. 심지어 그러고도 그의 검은 멀쩡했다.

“보니까 그 검, 뭐, 절대 부러지지 않는. 그런 거겠지?”

-…….

듀랜달.

그 뜻은 버텨 내고, 이겨 내는 검.

대단한 이능은 없다. 그저 부러지지 않을 뿐.

생전에 롤란드가 적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바위에 내려쳤을 때, 부러지기는커녕 바위를 두 쪽 내어 버린 신비한 검.

“그 검 덕분에 쓸 수 있는 거잖아. 그 무지막지한 힘 말야.”

그리고 롤란드는 태생이 전무후무한 괴력의 소유자였다.

맨손으로 거목을 세로로 쪼개어 버리는가 하면, 대검으로 말에 탄 기사를 통째로 베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근력을 가졌다.

때문에 어지간한 검은 그 압력을 버틸 수 없었다. 너무 빠르고 강하게 휘두르는 순간 검이 부러지고 마니까.

따라서 롤란드가 쏘아 대는 진공의 칼날은 절대 부러지지 않는, 이 검이 있기에 성립하는 공격이다.

-크크. 크크크크!

검은 기사, 롤란드가 통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천마의 간파에 경의를 표하려 한 것인가, 그는 이제 자신의 이마에 검을 갖다 대어 탁. 하고 두드렸다.

-실로 놀랍군. 이제껏 이걸 알아본 사람은 그대가 처음이다. 그대가 정말로.

우드드득. 빠직!

그 말과 함께 검은 기사의 온몸에 걸친 철갑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빠직! 빠직! 쨍그랑! 챙! 챙!

그러고는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쏟아졌다. 철갑이 벗겨지고 드러나게 된 것은… 무시무시한 근육.

-말처럼 무의 끝을 보여 줄 수 있을지도.

“와. 미친.”

당무련이 뒤에서 보다 말고 기겁을 했다.

울끈불끈. 부르르!

검은 기사의 갑옷이 깨어지자, 다 썩은 옷 아래로 검게 물든 인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 크기와 부피는, 이게 인간의 몸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

“저거, 사람 맞아?”

“…아닌 거 같은데.”

키만 대략 일 장. 온몸의 근육은 통나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굵고 억셌다.

살아생전 얼마나 많은 싸움을 겪었는지, 전신에 흉터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빼곡했다.

그 몸을 보고 소진 또한 어이없어 하며 중얼거렸다.

“천장(天將)… 이야. 관우, 장비나, 인중룡 여포가 그렇게 키가 컸다고는 하지만…….”

삼국지나 수호지 등, 설화로나 전해지는 장수들. 태생부터가 싸움에 적합한 거구.

과거의 기록이라, 과장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런 몸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질릴 수밖에 없었다.

저 신체는 반칙이다. 같은 사람으로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경우다.

심지어.

콰르르릉! 퍽! 파스스슥!

“…재생? 터져 나간 살이 다시 아물어?”

천마의 검은 벼락에 맞아 찢어지고 뜯긴 몸이, 다시금 울끈 불끈 팽창하며 원래대로 되돌아가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저건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 아마도 이종족의 피가 섞인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압도적인 몸이었다. 그가 하는 공격을 보면 더욱 그랬다.

패액! 패액! 파바바바박!

허공이 언뜻언뜻 비틀려 보였다. 처음에는 사술인가, 혹은 저 언데드가 가진 어떤 권능인가 싶었는데, 보면 볼수록 어떤 것인지 다들 알게 되었다.

딱히 천마가 아니라도 말이다.

“무슨 힘이…….”

부웅! 콰드드득!

발을 디디면, 대지가 찢겨 나간다.

천마를 노린 공격이 빗나가면, 물웅덩이가 폭발한다.

씨이이잇!

그리고 그런 와중에 살풋, 달아오르는 검은 검.

“…어마어마한 힘이야. 그 힘으로 그저 휘두르기만 할 뿐인데…….”

저런 공격이 된다.

운소령의 말에 천마의 파티원들은 신음했다.

그저 근력, 혹은 완력.

하지만 차원이 다른 힘으로 휘둘러지는 검은, 힘이 곧 속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속도가 극한에 이르면 그저 단순히 휘두를 뿐인데도 가공할 충격파가 발생하고, 그게 곧 적을 베어 내는 기술이 된다.

퍼엉! 퍼엉! 퍼엉!

허공이 찢겨 나가고, 귀를 찢는 폭음이 일었다.

사사사사삭!

그리고 검은 기사를 상대하던, 천마의 몸이 수십 개로 불어났다. 그 광경을 본 파티원들 모두는 입을 따악 벌렸고, 그중에서 단 두 사람.

“저거 분명……?”

“처, 천마군림보?!!”

운소령과 소진은 그 무예를 알아보았다. 고서를 좀 본 사람이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잔상 수십을 만들어 내는 극한의 보법은, 중원 무림 역사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 마교, 아니, 천마신교의 맥을 이은 자가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서, 서문영, 너도 저거…….”

“쉿.”

소진이 돌아보다가 필리아의 제지에 막혔다. 그녀는 몽롱한,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듯한 서문영, 그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중요한 순간이야. 방해하지 마.”

“…….”

“…….”

당무련과 방윤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껏 이야기로만 듣던 깨달음.

절정의 무인이 보이는 무예를 보고, 뇌리가 번득여 한 차원 높은 경지로 오르는 기연.

그게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인정하지. 너, 제법이다.”

파바바바박!

수십 명의 천마가 동시에 입을 열며 말했다. 그에 검은 기사는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퍼엉! 퍼엉! 퍼엉!

집중된 충격파. 호신강기로 비벼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공격이다. 심지어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파박! 파득! 파각!

빠르고. 강하다. 하지만 그저 그뿐.

기세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절정의 검사들이 보이는 정련된 기예도 없다. 그저 무식하게 강한 힘, 그리고 그 힘으로 끌어내는 빠름.

하지만 그 힘과 빠름만으로, 수십으로 늘어난 천마의 잔상이 하나하나 뜯겨 나갔다. 이쯤 되면 아무리 무식하게 힘만 센 놈이라 하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저 정도의 신력(神力)을 갖춘 자가 이제껏 몇이나 있었던가. 그저 부모 잘 만나 타고난 신체의 용력을 저렇게까지 초월적으로, 극한으로 갈고닦은 자가 얼마나 있었던가.

‘없었지. 분명.’

퍼엉! 퍼엉! 콰드득!

전생에서도 그런 이는 못 보았었다. 온갖 고수들과 싸움터를 찾아 돌아다녔던 천마. 그조차도 이런 자에게는 감명을 받을 정도였다.

‘어리석은 늙은이가 산을 옮긴다더니.’

우공이산. 한 사람의 작은 힘으로도, 평생을 거쳐 쏟아내면 산 하나를 옮길 수 있다. 그걸 모르는 천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걸 목도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봐라. 이 무식한 놈아!”

파바바바밧!

검강을 쓰지 않았다. 상승의 기예도 쓰지 않았다.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무예는 저 우둔한 무인이 보아도 알 수 없을 터. 그 미련한 외고집통에게 천마는 답했다.

똑같이 힘으로 상대해 주는 것은 아무리 그라 해도 무리, 그러므로.

힘이 이해할 수 있는 속도로 맞서 준다.

솨아아아악!

일순 천마의 신형이 수십을 넘어, 수백에 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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