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유장위의 관록 (1)
“흐음…….”
회의가 난장판이 되자 뇌천벽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칫하면 피해가 막심할 수 있…….”
“그러니까 겁쟁이처럼 피해를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소!”
“겁쟁이? 방금 뭐라고 한 거요! 공격대가 장난이오!”
와글와글. 시끌시끌.
물러서야 한다. 아니, 지금 쳐야 한다. 이 두 가지로 한참을 떠드는 천무학관 교두들.
개판이었다. 이렇게 통솔이 안 되어서야 뭘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뇌천벽이 보기에는 양쪽 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예상외의 사태가 발생했으니 신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
하지만 이럴수록 더더욱 중심을 꽉 잡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법인데, 학관이라는 특유의 의사 진행 기구는 이런 때 폐해를 드러냈다.
‘여러 의견을 모으는 것도 좋지만, 이래서야 어디.’
천무학관에서 중요한 안건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학과장의 몫.
리그웨더는 천무학관 공히 최고의 고수. 가장 강하고 가장 지혜로운 것이 그녀였다. 그래서 그녀가 결정하면 누구도 이론을 내지 않았다.
리그웨더를 좋아하지 않는 뇌천벽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녀의 간결한 한마디가 그리울 정도였다.
하지만 뇌천벽은 곧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니다. 이는 반드시 거치고 지나가야 하는 성장통이다.’
골드 드래곤 리그웨더는 기본적으로 다른 모든 교두들을 존중했다. 딱히 2인자라 할 것을 두지 않았기에 학과장 아래의 모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신분이었다.
제운비가 있긴 했지만, 그는 홍매학관으로 이적을 한다는 소문이 도는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자기 의견을 낼 기회를 맞자 서로서로 들끓어 오르는 것이다.
이참에 자기 의견을 강하게 표현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고. 그게 이해는 되었지만 동시에 한심하기도 했다.
쯧쯧쯧쯧!
‘음?’
거기서 문득, 귀를 찌르는 기음에 뇌천벽이 시선을 돌렸다.
주르륵. 주우우욱.
그만이 아니라 장내의 모든 교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바로, 현경의 고수 유장위였다.
‘…저자가?’
뇌천벽의 눈썹이 역팔자로 치솟았다.
크게 하품을 하는 얼굴. 한심하다는 눈빛. 저건 어떻게 보아도 멸시였다.
“음. 흠! 크흠!”
뇌천벽은 요란하게 헛기침을 하며 장내의 시선을 모았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는 객원 고수인 유장위 님도 계셨지요. 혹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음? 아, 이런.”
불러서 지목하자, 유장위는 실수했다는 얼굴로 척, 두 손을 모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례했소.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노부가 실수를 범했소이다. 부디 용서를.”
“흥!”
뇌천벽은 냉소했다.
실수 같은 소리. 그가 조금 전에 들었던 혀 차는 소리는 귀를 찌르는 듯 강렬했다. 무슨 실수를 내공을 돋워서 하나?
화가 난 뇌천벽이 손을 들고 지적하려는데.
“그러고 보니 유 대협이 계셨구료. 현경의 고수께서는 저희에게 깨우쳐 줄 무슨 묘안이 있으신지요?”
제운비가 먼저 불러 버렸다. 뇌천벽은 짜증이 솟았다.
‘아니, 이 녀석이 정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공식 석상에서 무례를 범한 자에게 오히려 발언권을 주다니?
아무리 유장위가 현경의 고수라 해도 이번 원정에서 그는 어디까지나 객인이었다. 이번 어둠의 나무 레이드는, 어디까지나 천무학관 주도인 것이다.
“끄응… 크흠! 크흠!”
“흐으으음…….”
뇌천벽이 불편하게 헛기침을 하자, 다른 교두들도 안색이 나빠졌다. 그러던 차, 뜻밖에도 유장위가 넙죽, 크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아니?”
“저, 저런…….”
“제 대협께서는 무례를 범한 이 유모를 꾸짖어 주시길. 신분도 잊고 큰 실수를 하였소이다-.”
낭랑한 목소리. 깊게 숙인 허리.
유장위가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
현경의 고수가 하는 사과에, 어느새 천무학관의 교두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허허… 과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더니…….”
“자자, 다들 일단 들어 봅시다. 천금 같은 기회이니.”
특히 마법사가 아닌 무인들, 그들의 낯빛은 대번에 풀려 버렸다. 화경만 해도 어지간한 무인에게는 평생을 걸어야 겨우 도달하는 목표. 그런 만큼 현경의 경지는 절대적이었다.
‘하아… 이거야 원.’
때문에 뇌천벽은 탄식했다.
아무리 경지 높은 무인이라 해도, 소속이 다른 사람의 말에 이렇게까지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주려고 하는가?
유장위는 장내의 주의를 모두 자신에게 모아 버렸다. 허리 한 번 숙여 보인 것으로.
아마도 저것이 경험. 본인이 한 클랜을 이끌었던 자의 경륜이리라. 뇌천벽은 속내야 어쨌든, 이 또한 배워 둘 거리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많고 많은 산 중의 하나일 뿐. 유 대협께서는 주저 말고 말씀을 들려 주십시오.”
제운비가 몸을 낮추며 정중하게 다시 권했다.
“허허, 참으로… 이 사람은 어디까지나 객인 신분인데 괜찮으시겠소이까?”
“객인이라니요. 다 같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에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경우가 아닙니다. 세이공청 하겠으니 부디 탁견을 들려 주십시오.”
“아니,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속이 뻔히 보이는 겸양의 말이 두 번 세 번 오갔다.
‘하여간에 저놈의 인사치레는!’
그냥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뭐 저렇게 길게 하는지!
속으로는 투덜거리면서 뇌천벽의 귀 역시 자신도 모르게 기울여지고 있었다. 그 역시 이도 저도 결론 내리지 못하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답답했던 것이다.
“그럼 말하리다. 이 사람의 좁은 소견으로는, 레이드란 군기와 같소이다.”
유장위가 세 번 네 번 고사한 후, 무거운 입을 떼었다.
“한 번 일으키면 반드시 소정의 성과를 내어야 하는 법. 천무학관은 이번 원정을 준비하면서 적지 않은 물자를 소모하였으니, 이대로 물러섰다간 칼을 뽑고도 아무것도 베지 않는 형국이 될 것이외다.”
끄덕끄덕.
그의 말에 적지 않은 교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과감하게 행동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던 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냥 쳐들어가자는 건가?’
뇌천벽이 주시하는 가운데, 유장위가 다시금 읍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나, 마지막에 파악된 중요 정보 또한 무시할 수 없으니. 고룡과 어둠나무 간의 상관관계는 군사로 치면 적의 매복과 같소. 간언을 무시하였다가 화계를 대비하지 못하고 적벽대전에서 대패하여 천하를 잡을 기회를 놓친 위무제(조조)의 우를 범하여서는 아니 되오이다.”
“…….”
“흐음.”
“호오…….”
삼국시대의 고사까지 들먹이는 유장위의 말에, 교두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운데 뇌천벽만은 마음에 들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딱히 뭐가 달라?’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냥 공격했다간 피해가 크다.
둘 다, 이제까지 교두들이 저마다 외치던 이야기다. 유장위는 그 말을 조금 더 길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다들 옳다 옳다 하는 것이 기가 막혔다. 천무학관 교두들의 순박함에 그가 혀를 찰 때.
척.
유장위가 두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니, 이 사람은 두 가지를 함께해야 한다고 보오이다. 먼저, 이제까지의 정보를 취합하고 학관에 전달해서 학과장께 작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
“…….”
“또 하나는, 전과를 극대화하는 것이외다.”
술렁술렁.
교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제운비가 탁탁, 손을 부딪혀 주의를 모았다.
“전과를 극대화한다 말하심은, 정확히 어떤 의미오이까?”
“제 대협께서 물으시니 말하리다. 무릇, 군기는 달아 오른 쇠와 같으니, 두들겨야 할 때를 놓치면, 식어서 다시 손대기 쉽지 않은 법. 예상에 없던 위험 요소 때문에 진격을 할 수 없다면, 예상에 없던 소득을 올리면 될 것 아닙니까?”
“……!”
‘…허허.’
제운비가 입을 벌렸다. 유장위의 말에 뇌천벽은 이마를 두들겼다.
술렁술렁. 술렁술렁!
교두는 물론이고, 발언권이 없이 참가만 하고 있던 교관과 조교들까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노렸구먼. 저 작자.’
뇌천벽은 한탄했다. 이건 알고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말재간이었다.
조금전 유장위가 ‘학과장께 알려야 한다’라는 말을 했을 때, 다른 교두들은 물론이고, 뇌천벽 자신마저 움찔했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화경이라는 드높은 경지에 오르고서도, 위급 상황에서는 학과장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불편했다. 학관의 교두라는 책임 소재와 무게감, 동시에 무인이자 한 무리를 이끄는 지휘관으로서의 자존심이 동시에 충돌한 것이다.
“지금 천무학관에서 조직된 공격대는 어지간한 마경을 쓸어버리고도 남을 만한 전력.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소가 있고, 그로 인해 사전 작전대로 진행했다가는 피해가 얼마나 발생할지 예상하기도 힘든 실정이오.”
유장위의 말은 계속되었다. 어느새 장내는 완전히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리 리그웨더 학과장께서 지혜로운 분이라 하나, 새로운 정황을 파악하고 결론짓는 데는 다소의 시간이 걸릴 것이외다.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되, 그 시간 동안 병력을 놀게 놔두는 것은 낭비. 이 사람은 다소의 부수입? 그런 것을 올리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오.”
“부수입이라시면…….”
“그것은 천무학관의 여러분께서 논의하여 보심이 좋을 듯싶소. 객인인 이 사람이 거기까지 말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아 보이오이다.”
처억.
유장위는 다시 한번 길게 읍을 해 보이고 자리에 앉았다.
술렁술렁. 웅성웅성.
교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졌지만, 이번에는 제운비도 딱히 말리지 않았다.
시간을 끌면서 그에 합당한 소득도 번다. 간단한 발상이었지만 이제껏 누구도 하지 못했던 생각이었다.
이는 여기 모인 이들이 교두라는 특성, 즉 학생을 가르치는 학관 소속의 교관들이기 때문에 시야가 좁았기 때문이다.
교두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그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특히 천무학관은, 지금까지 리그웨더가 인명 손실을 가장 피하려 했기에 다소 보수적인 특징이 있었다.
반면 유장위는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클랜의 장이었다. 그는 사람의 손실이 아니라, 클랜의 이득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움직인다. 그랬기에 당연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공부가 되는군. 이걸 생각 못 했었다니.’
움직인 이상, 그에 맞는 소득을 반드시 얻어야 한다.
손해가 날 것 같으면 다른 소득을 올린다.
뇌천벽이 따져 보는 동안, 주변에서 교두들이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단… 이렇게 되면 장기전이 되겠군요?”
“그러게 말이오. 위험한 내부로 바로 진격하는 것이 아닌 이상, 외부를 도는 것이니.”
“위험 요소는 분명히 경계하되, 위험하지 않은 필드 외부의 잔당을 소탕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건 좋은 생각이오. 하나, 내부도 어느 정도 정찰을 할 필요는 있지 않겠소?”
일단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다들 여기저기서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소수의 특공대를 조직해서, 어둠나무에 대해 더 조사를 하도록 합시다. 정보가 있어야 뭐든 해결이 가능할테니.”
“그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소? 자칫 인명 피해가…….”
“피해가 나지 않을 인원으로 선별하면 되지 않겠소.”
매소봉은 최절정의 고수였다. 그런 그가 정신 오염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필요한 수준은 최소 화경 이상.
정찰치고는 화려한 인선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운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탐색자들의 정신 오염을 사전에 방비하는 일이었다.
“이 인근의 사찰에서 성물을 빌려 옵시다. 이를테면 고승대덕의 사리라든가?”
“사리?! 그게 되겠소? 뒤집어지고 말 터인데. 말도 안 되오!”
“아니, 안 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오. 그것만 빌려 올 수 있으면 정찰과 공습에서 큰 이점을 얻을 터이니.”
“사악한 몬스터를 쳐 내는 일이오. 적당히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면 이야기가 잘 될지도 모르오.”
“흐음…….”
의견이 모이고 논의가 열을 띠기 시작했다. 뇌천벽은 살짝 이를 물며 단상의 한 곳을 보았다.
피식. 푸흐흐흐.
유장위, 말 몇 마디로 어느새 천무학관의 조직에 큰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 인물을.
‘무위만 강한 게 아니었군.’
늙은 고추가 매운 법. 확실히 현경의 인물이란, 경험과 경륜을 함께 갖추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