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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87화 (188/310)

187화. 유장위의 관록 (2)

“손자 가로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 하였소.”

공격대 안에서 유장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말이 나올 때마다 자신은 객인이니, 외인이니 하며 본인의 위치를 언급하며 자중하는 모습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다른 이들에게 겸손함으로 비쳤다. 하늘 같은 현경의 고수가 저렇게 자신을 낮추다니?

“유장위 님!”

“유 대협!”

호감을 가지고 찾는 사람이 하나둘 생겨났다.

애초에 현경의 고수라는 게, 폐관 수련 하고 무예만 익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전과 경험. 칼날 위에 목숨 하나를 걸고, 사선을 수없이 건너야 한다.

게다가 그는 클랜의 마스터로서 이것저것 경험이 많은 인물.

자연히 천무학관의 교두들이 여러 가지를 논의하러 왔다. 그렇게 몇 번 말을 꺼내고 나자, 어느 순간부터 거침이 없어졌다.

“공격대의 편제를 다시 짜는 것이 좋지 않겠소?”

“편제라시면…….”

“탑 파괴조는 현 상황에서 운용이 불가능하오. 상승의 무예를 익힌 무인들이 이대로 바람만 마시고 있어서야 낭비 아니겠소?”

“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둠나무가 일으키는 괴현상 때문에 초절정의 무인과 동급의 마법사들은 2선으로 빠졌다.

정신 오염의 위험성이 완전히 파악될 때까지는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물론 하염없이 그렇게 둘 생각은 아니었다.

파사부와 성수 등으로 무장한 제운비, 뇌천벽 등 화경의 고수들과 고위급 마법사가 조를 짜서 어둠나무에 대한 위력 정찰에 나서고 있었다.

다만, 전황을 알기 전에는 이런 고급 전력이 이도 저도 못 하고 막연히 대기 상태에 놓이는 감이 있었다.

“편제를 새로 짜 왔습니다.”

“어디 봅시다. 음… 이분 대협들이 초절정이라? 이상하군. 이상해.”

명단과 조직 구성을 본 유장위가 인상을 썼다.

당연히 교두는 당황했다.

“어, 어떤 것이 이상합니까?”

“이 유모가 보기에는 조직 간에 다소 전력의 불균형이 있어 보여서 말이오. 팽 대협, 막 대협, 차 대협의 구명 절기가 무엇이오? 내공은 몇 갑자 정도 되고? 그리고 이 마법사 두 분의 경지는?”

“아니, 그건…….”

교두들은 주춤했다. 아무리 같은 학관이라고 해도, 본인의 자세한 무공 경지는 함부로 남에게 말해 주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유장위는 같은 천무학관 소속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오히려 되물었다.

“말했듯이, 우리는 아직 적을 모르오. 그러니 우리 자신부터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소. 한데, 당장 같은 조의 누가 어떤 절기를 쓰는지도 모르다니? 아군에 기병이 얼마나 있는지, 궁수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소이다. 손발이 맞지 않는 군대가 어찌 이기겠소?”

“그건 맞습니다. 하나…….”

“이상하군. 내가 잘못 알았나? 학관은 뛰어난 절기를 공유하면서 함께 강해지는 곳 아니었소? 허허, 같은 천무학관 사람들끼리도 그리 감추어야 하는 게요?”

“…….”

교두들은 헷갈렸다.

‘같은 천무학관’을 말하면서 툭툭 어깨를 두드리며 친근하게 웃는 유장위 때문에.

분명히 그는 객인일진대, 마치 본인이 천무학관 소속이라도 된 듯이 굴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교두들 중에 마법사들은 머리를 굴렸다.

‘이게 뭐지? 혹시 이야기가 되어 있나?’

그러고 보니 기억났다.

이번 공격대의 구성 전에, 리그웨더가 유장위를 따로 불러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

그때 무슨 말이 오갔었을까? 아니, 생각해 보면 학과장이 직접 섬서까지 가서 위기에 처한 유장위를 구해 온 것도 심상치 않았다.

이건 리그웨더가 유장위를 그만큼 중하게 보고 있다는 것 아닐까? 이제까지는 목숨을 구함받은 것 때문에 레이드에 참여해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설마… 설마? 현경의 고수가 우리 학관에 영입되는 건가?’

생각이 과한 마법사 몇이, ‘너만 알고 있어’라며 수군거렸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반드시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법이다.

-학관 내의 권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현재의 천무학관 비공식 2인자는 제운비.

하나 그는 홍매학관으로 가네 마네 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설령 제운비가 다른 학관으로 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화경의 고수다.

현경인 유장위가 천무학관에 영입된다면, 어차피 무위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밀리게 된다.

그런데.

“아하, 미안하외다. 내 생각이 짧았소. 교두들께서도 삼 푼의 힘은 숨길 필요가 있으시겠지. 나 같은 객인에게 그런 세밀한 것까지 말하기는 곤란할 테고.”

유장위의 불편한 표정에 교두들은 식겁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칫 학관에 영입될지도 모르는 현경의 고수가, 이런 소소한(?) 정보 몇 가지 때문에 심기가 상해서야 큰일 아닌가?

-이건 천무학관을 위해서다.

유장위가 영입 후보라면 당연히 도와야 할 것이고, 아니어도 이번 레이드를 끝으로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한 교두들은, 그 뒤로 묻는 것에 너 나 할 것 없이 아는 대로 줄줄 불었다. 덕분에 유장위는 두 시진 만에 앉은 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공격대만이 아닌 천무학관 전체의 전력을.

* * *

쉬이이익.

주변 공기가 습했다. 기후가 차가웠다. 분명 풀이 무성한 지역인데 이런 냉기라니.

파삭. 파삭.

손바닥만 한 낙엽들이 발아래로 밟혀 바스러졌다. 천무학관 교두들은 그에 인상을 썼다.

떨어진 낙엽이 어이없는 것이 아니다. 괴이하게도, 낙엽은 나무에서 돋아나는 것들이었다.

부석부석.

투두둑.

검게 뒤틀린 나무에서,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돋는다. 줄기가 찢어지며 우르르 쏟아지는 낙엽. 기괴하기도 하고 섬뜩해 보이기도 했다.

팟.

선두에서 몸을 낮추고 있던 제운비가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전방에 적. 침묵 유지.

사삭. 사사삭.

약속된 수신호대로, 다들 몸을 낮추고 기감을 돋웠다.

기척을 지우고 한참을 대기하자, 앞쪽에서 기괴하게 비틀어진 이형의 괴수들이 지나갔다.

‘저건 무슨……?’

‘쉬잇.’

화경만 해도 엔간한 수라장을 거쳐 온 몸이다. 그런 그들도 좀 질리는 형색이었다.

그에에에…….

츄르르르…….

어깨 위에 머리를 넷이나 달고, 그러고도 모자라 사지에다 머리를 하나씩 더 달고 있는 도마뱀.

녀석은 온몸에서 질척한 점액을 흘리며, 등 뒤에서는 한 자 가까운 길이의 촉수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런 놈이 모두 다섯 놈.

슈르르르르…….

철벅철벅.

일각 정도 숨도 쉬지 않고 대기하자, 녀석들이 사라졌다. 긴장으로 참았던 숨을 내쉬는 뇌천벽.

“다들 괜찮으신가.”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저 괴수들의 모습을 목도하면서부터 기분 나쁜 두통이 몰려온 것이다.

“괜찮습니다.”

“으윽… 지독한 사기로군요.”

“속이 메슥거립니다.”

다들 기가 막혀 했다. 화경에 달한 이들이 그럴진대, 그들보다 한 끗 아래의 초절정들은 훨씬 심각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솔직히 처음 보고를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이제 보니 매소봉 교관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는지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정신에 타격을 주는 이물.

보는 순간 느꼈다. 저건 이제껏 상대해 온 몬스터와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그래서 더 아찔했다. 지금 마주친 것은 매소봉이 경고한 어둠나무의 과실도 아니었다. 그 과실이 쪼개어져 흩어진, 말하자면 열화된 졸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천운이었군.”

“그러게.”

고작 졸자 따위에게 화경의 고수가 부담을 느낄 정도다. 이걸 모르고 그냥 탑 파괴조가 사전 작전대로 진격했다면… 전원 몰살당했을 수도 있을 터.

사사삭. 사사사삭.

정찰조는 다시금 어둠나무 방향으로 향했다. 가뜩이나 질척한 검은 땅은, 조금 전 괴물들이 지나가며 흘린 점액으로 더욱 기분 나빠졌다.

가급적 어둠나무를 직시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주변을 살피던 중, 뇌천벽은 인상을 썼다.

“자네, 뭐 하나?”

“아, 예.”

로브 차림의 사내가 작은 삽을 들고 질척한 흙을 떴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흙을 유리병에다 담은 그가 표지를 붙이며 말했다.

“처음 보는 이물의 점액입니다. 시료 채취를 해야죠.”

“쯧… 마법사들이란.”

정찰조는 당연히 무인들로만 편성된 것이 아니었다. 화경, 다른 말로 마스터급의 마법사도 함께 왔다.

차후에 무인만으로 어둠나무를 부술 게 아닌 이상, 당연한 인선이었다.

“뇌 교두 님, 저놈 나중에 한번 잡아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법사가 입이 툭 튀어나와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우리 일은 정찰일세. 적에게 경각심을 주라는 말인가?”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적의 사체도 구하지 못하는데. 보기엔 더러워 보여도 이런 시료 하나하나가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연구직 무시하지 마십쇼?”

“아니… 이 사람이…….”

“쉿.”

팍. 파밧!

두 사람이 의도치 않게 촌극을 벌이는 사이, 제운비가 다시 무언가를 발견했다. 정찰조는 즉각 반응했다.

그르르르. 츄르르르.

뤠에에에에…….

기음을 흘리며 지나가는 괴물들.

두근. 두근.

정찰조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전부 머리에 피가 솟는 느낌을 받았다. 가벼운 두통과 현기증도.

어둠나무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그런 거부 반응은 더욱 심해졌다. 덕분에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장난이 아니군. 마스터 전원으로 정찰조를 짠다길래,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불행히도 농담이 아니다.”

“아, 하여간. 재미없는 자식…….”

“쿡쿡.”

위기 상황일수록 여유를 잃지 않는다. 누군가가 일부러 흘린 말에 가볍게 웃음이 흘렀다.

하기야, 이런 사태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나가 버립니다, 라는 매소봉의 보고는 황당했다. 반쯤은 떨떠름한, 절차니까 따른다는 마음으로 나선 임무였다. 마스터 클래스를 달고도 이런 잡일이나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닥쳐 보니, 생각과 달랐다.

이건 그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임무였다.

지릿지릿.

귓속이 간질간질했다. 다들 내력이나 마나를 끌어올려 신체를 방어해야 했다. 이 정체불명의 이형의 기운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기에.

파삭.

“다 왔다. 저길 넘으면 어둠나무다. 대상을 순차적으로 관찰하고 잠시 용태를 본다.”

“적과 조우하면 가급적 충돌 없이 후퇴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임무는 정찰이다. 이 사기에서 몸을 보호하는 수단을 확인하는 것이다.”

“성수, 파사부. 준비된 아이템은 가급적 후퇴할 때 사용한다. 상극의 기운이므로 사용 즉시 적이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제운비가 그답지 않게 말이 길어졌다. 그만큼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도, 돌입 직전에 다시 한번 언급하여 집중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숙지.”

“숙지.”

“숙지.”

타닥, 탁.

가볍게, 소리 없이 정찰조가 작은 언덕 위로 올랐다.

목표까지 거리는 삼십 장.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일 위치다. 처음에는 가급적 직시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조심조심 접근하면 할수록,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섬뜩. 섬뜩.

마치 태양처럼. 정면으로 보지 않아도.

그 온기로, 느낌으로, 태양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둠나무 또한 그랬다.

“크으…….”

그저 근처에 있을 뿐인데도 불길하고 불쾌한 느낌이 짜릿하게 밀려왔다. 어느새부턴가 식은땀을 달고 있던 제운비가 슥 하고 가리켰다.

“뇌천벽.”

“알아.”

정찰조의 조장이 제운비인 이상, 이 중에서 가장 정신수양이 높은 것은 자신이었다.

썩을, 하고 속으로 욕하며 뇌천벽이 제일 먼저 고개를 들었다. 불길하고 기분 나쁜 어둠을 향해.

확.

찌이이잉!

“큭!”

검은 나무가 보였다. 그 주위를 둘러싼 어둠이 보였다.

동시에 눈, 코, 입에 진한 소금물을 부어 넣은 듯한 통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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