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유장위의 관록 (4)
“왔다. 드디어…….”
“어후… 정말.”
천마 일행은 본대 합류가 늦었다.
그들이 배당받은 습지 지역은 애초에 집결지와 거리가 좀 있는 곳이었다. 그런 데다 검은 기사 롤란드, 그에 대한 뒤처리로 이것저것 시간이 많이 걸린 탓에 더 지연되었다.
그래서 거의 마지막에 가깝게 본대에 합류했는데… 잔소리를 각오하고 찾아왔더니 뭔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늦게 온 천마 일행에게 왜 이렇게 늦었냐고 따지는 사람도 없을 정도로.
“분위기 왜 이래?”
“그. 글쎄……?”
천마가 물었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알 리가 없었다. 어차피 이제 막 도착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어? 운소령? 와! 무사했구나!”
“아…? 응. 저기…….”
“얼른 이쪽으로 와. 아우. 정신 없다. 그치?”
다행히, 얼굴 알려지기로는 2학년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운소령이 있었기에 혼란의 와중에서도 방향은 잡을 수 있었다.
“지통실(지휘통제실)? 저기 저쪽에 붉은 기가 세워진 곳이야. 보고 사항 많아?”
“뭐… 이것저것.”
보고할 것이 많기는 했다. 대체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운소령이 눈살을 찌푸리자 남학생이 아차, 하고 이마를 쳤다.
“그래, 내가 방해했네. 얼른 가 봐. 분위기 보통 아니니까 조심하고.”
“아, 고, 고마…….”
“하핫! 고마우면 나중에 시간 좀 내주고. 우리 반 어딘지 알지?”
그러고는 살짝 얼굴을 붉히고, 쾌활하게 몸을 돌리며 사라졌다. 바쁜 사람에게 질척대는 것이 실례임을 잘 아는 모양이었다.
“…….”
덕분에 운소령은 굉장히 미안해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어느 반인지 모르는데…….’
멋있게 퇴장한 그 학생이, 몇 반의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운소령?”
“아, 그래.”
방윤의 재촉에 운소령은 끄덕였다. 하기야, 이런 건 아무래도 좋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급조한 막사에서 지휘통제실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가장 크고 가장 바쁜 곳이 그곳이었으니까.
척.
들어서자 마자 파티 리더인 서문이 경례를 했다.
“보고합니다. 2학년 4반 서문영 외 8인. 습지대 위력정찰 마치고 집결지로 복귀했습니다.”
“음.”
서문영의 경례와 보고서를 받아 들며, 교관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곧 얼굴이 굳었다.
“2학년만 왔어? 뭐냐, 너희들? 인솔 상급자는 어디 갔어?”
“그… 저희는 엘리트 파티입니다. 던전학 교수 월산 교두님께 확인을 받아 독립 작전권을…….”
“아……. 그게 너희들이구나? 맞다, 서문영. 그런 이름이었지. 어후…….”
풀썩.
뭔가 엄청 긴장하고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던 교관은, 곧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앉았다.
“잘 돌아왔다. 별일 없었나? 부상자는?”
“다행히 없었습니다.”
“그래… 마침 쉬운 지역이었나 보군. 3학년 파티 몇이 실종되어서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던 참이다.”
“…….”
서문영은 입을 다물었다. 직접 겪어본 바대로는 교관의 말처럼 쉬운 지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종? 자그마치 3학년 파티가 실종? 그 말에 바짝 경각심이 솟은 것이다.
팔락. 팔락.
그런 서문영을 앞에 두고, 교관은 혼자서 보고서를 펴 보며 눈을 빛냈다.
“…전과가 굉장하구나. 언데드 대략 1천? 과장하는 건 아니겠지? 음… 뭐, 허접한 것들이라면 가능은 하… 호오? 그래? 사자후신공에 그런 효능이?”
천마 일행이 이번에 가져온 정보는 결코 적지 않았다.
우선, 배당받은 지역의 정보. 습지에서 출몰하는 언데드들과 주변 지형의 탐색이다. 이거야 기본으로 친다고 쳐도.
탈 2학년 수준인 마법사, 하백운이 이번에 사용한 ‘지맥 영기 펌프’는 마법사가 낼 수 있는 최대 위력을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 준 것이다.
“예, 파티원 운소령이 낸 제안대로, 타초경사의 계를 써 보았습니다.”
“과연, 소림의 무예는 적지않게 신성력을 품고 있지. 상극의 기운으로 적을 끌어낸 건가. 흐음… 재미있어.”
파락파락!
보고서를 훑어 보던 교관이 살짝 교개를 갸웃했다.
“…마법사의 광역 동결로 언데드를 둔화? 동결된 언데드를 투사 무기로 처치… 정령술로 비황석을 보급? 허어, 필리아라고 했나?”
힐끗. 척!
시선이 돌아가자 필리아가 차렷 자세를 했다.
“네! 2학년 4반 필리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교관은 대견함과 흥미를 동시에 가진 눈빛이었다.
보통의 마법사나 정령술사는, 현장에서 계륵 취급을 받기도 한다.
특히 마법사는, 순간 화력은 최강인 대신 주문 발현 시까지 오랜 준비를 요구한다.
그리고 주문 발현 후에는 마력 고갈로 아무것도 못하는 짐 덩이가 되기 일수.
반면 무인, 그러니까 전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인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진다.
따라서 전사와 마법사의 합동 연계, 그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학관에 없다. 그럼에도.
“희귀하고 강력한 정령술 공격을 쓰지 않고, 그냥 보조 무기의 생성에만 힘을 썼다니. 혹 기분 상하지는 않던가?”
마법사는 자존심이 세다. 그들은 전력의 단기 투사가 가능한, 일종의 포병 병력에 가까웠다.
그 한 방의 위력이 최강이기에, 파티에서 마법사의 존재는 필수불가결. 하지만 그 때문에 서로 간의 입장의 차이가 생긴다.
-거만하기 짝이 없는 것들! 고작 5분! 반각도 채 싸우지도 못하는 것들이 뭐? 파티 최고의 전력이라고?
-웃기지 마. 지켜 주지 않으면 마법도 뭣도 쓰지도 못하는 것들이! 느려터진 주먹 한 방에도 죽어 나가는 것들이 뭐가 어째?
마법사가 대포라면, 그 대포를 끌고 다녀야 하는 것은 무인이다.
최전선에서 몬스터와 혈투를 벌이고, 자기 몸도 온전히 가누기 힘든 무인들이, 이동, 보호, 방어, 및 처우를 책임져야 하고, 이는 상당한 부담이다.
더러는 마법사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거나, 영영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기도 하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 그런 무인들에게 마법사들 역시 불평이 많았다.
-결과를 보자고, 결과를. 결국 제대로 된 피해도 주지 못했잖아? 뭐? 태도? 웃기고 있네. 그 태도가 지극정성이라 깔짝깔짝 칼질이나 해 대면서 껍데기만 벗겼고?
-우리더러 태평하게 논다고? 멍청한 것들. 마나 모으는 데 집중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 모은 마나 다 쓰고 손가락 하나 꿈틀할 힘도 없는 탈진을 지들이 알아?
전사가 전투 내내 아무리 전력을 다해 피해를 입혀도, 마법사들의 준비된 일격은, 전사가 주는 피해량을 몇 배로 웃돈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다. 준비만 충분하면 최고의 위력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준비라는 게 어디 쉽던가.
가공할 위력을 내는 마법은, 마법사에게도 극심한 부담이다. 전사들이 적과의 사투로 목숨이 위태롭다면, 마법사는 본인이 마법을 쓰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약해 빠진 것들.
-약해 빠진 것들!
그러니 이런 충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이다. 누구나 자신이 힘든 것에 우선 눈이 돌아가는 법이니까.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경험이 쌓여야 하고, 자신의 직군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직군의 준비와 노력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이런 것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팀워크다. 그리고 파티 활동을 몇 번 해 보지 못한 2학년들에게 이 팀워크를, 머리로 아는 것을 몸으로 보이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흐음, 흐음… 이것 참.”
팔락팔락. 차르륵.
보고서를 읽어 본 교관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천마 일행의 파티를 훑어 보았다.
서문영, 운소령, 방윤.
‘세 명의 우수한 전사가 전위에 서서 적을 막고.’
하백운, 이경, 필리아.
‘세 명의 마법사 및 정령사가 후위에서 집중 타격한다.’
여기까지는 예상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전부인가?
보고서가 과장되었을 가능성은? 예비 전력이라고는 이한, 소진. 기부금 입학생 둘이 전부다. 이들이 무슨 쓸모를 보였을까?
교관이 나름 추측을 해 보는 가운데.
“당무련, 아니, 당소저는 우수한 무인입니다.”
필리아가 입을 열었다.
“음?”
“당소저가 비황석을 날려 수십 수백 마리를 해치웠습니다. 그녀의 공격은 어지간한 마법보다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스윽.
시선이 돌아갔다. 그제야 교관은 서문영 파티에서 잊고 있었던 무인 하나를 떠올렸다.
상대가 언데드라는 것이 맹점이었다. 언데드는 급소라는 것이 딱히 없었기에, 당무련이라는 무인이 힘을 쓸 수 없다는 선입견이 너무 깊이 박힌 것이다.
‘이런 걸 잊어버리다니, 나도 참.’
당무련, 사천당문의 여식.
그리고 사천당문의 만천화우는, 한때 강호의 일절이라 불리웠던 절기 중의 절기였다는 것을.
“그래? 아쉬움은 없던가? 다른 학우들에 비해 본인이 더 활약할 기회이지 않았나?”
“음…….”
“같은 파티원입니다. 애초에 하백운이 언데드를 광범위로 동결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교관의 유도 질문을 서문영이 차단했다.
“필리아가 정령술을 썼다면, 두 배, 혹은 세 배의 피해를 입혔을 수 있지만, 일시적인 공격에 그쳤을 겁니다. 반면 암기가 보급되는 한, 당소저는 정령사만큼의 전력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죠.”
“호오.”
교관이 다소 즐거운 얼굴로 눈웃음을 지었다.
지속 가능한 전력 투사.
2학년이 이 개념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엘리트 파티라는 요란한 이름을 단 만큼, 서문영의 파티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교관은 은근슬쩍 파티 리더를 띄워 보았다.
“그래? 훌륭하네. 서문영, 이 모든 게 자네의 지시가 확고하고 발랐기 때문이군.”
“…별말씀을. 좋은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잘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절레절레.
서문영이 질색하듯 고개를 저으며, 살짝 질린 얼굴로 소진, 그리고 이한. 두 기부금 입학생을 보았다.
‘호오.’
덕분에 교관의 흡족함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상대의 장점을 질투하지 않는다. 조금 전에 살짝 자극했더니 즉각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리더인 서문영은 혼자 고평가받는 것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 팀워크면 당장 전력이 될 만한 수준인데.’
“알겠다. 보고서는 잘 보았고, 전과도 확인했다.”
자르륵. 잘각잘각.
언데드들에게서 노획한 병기, 혹은 사체 일부도 한가득이었다.
체구 좋은 소림승, 방윤이 아니었다면 그저 진술의 신빙성을 믿는 수밖에 없었을 터.
“평가할 동안 쉬고 있도록. 해산.”
“감사합니다.”
척!
서문영이 대표로 다시 경례를 해 보이고, 파티는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교관은 턱을 긁적였다.
‘싹수가 좋은데… 월반을 시켜 볼까?’
정말로 언데드 천 마리와 조우해서 이를 제압했다니, 한동안 교무실이 떠들썩할 일이다.
잠시 즉흥적인 생각을 떠올렸던 교관은, 곧 진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조금은 더 지켜보자.’
심, 기, 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아무리 무위가 뛰어나도, 저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쓰면 엉망진창이다.
결국, 정신머리가 올바르게 박혀 있어야 제대로 된 전력이 된다.
하지만 이곳은 천무학관. 영재 중의 영재들이 모이는 곳.
아무리 마음가짐이 바르다 해도, 재능의 차이를 끝끝내 극복 못 하는 아이들도 널리고 널렸다.
당장 눈앞의 서문영이야 2학년의 1, 2위를 다투는 실력자지만 이제껏 교관이 보아 온 바로는, 이 정도의 재능도 그렇게까지 보기 드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부디 다른 생각 가지지 말고 이대로 잘 커 가도록.’
교관으로서는 그것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