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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91화 (192/310)

191화. 유장위의 관록 (6)

달각달각. 쿠르르륵.

마차가 진저리를 치며 짐을 옮긴다.

녹슬고 부서진 병기. 깨어지고 기괴하게 비틀어진 갑주 등. 패전한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손상된 장비다.

하지만 사실 저것들은 엄연한 ‘전리품’이었다. 승전의 결과물인 것이다.

타각타각. 덜컹덜컹.

전리품을 가득 채운 마차가 몇 대나 지나간다. 그 광경에 천무학관의 교두 하나가 감탄하며 말했다.

“상당하군요. 예상도 못 했던 분량입니다.”

“그러게요. 긁어모으니 나오긴 나오는군요.”

어둠나무 지대. 있는 거라곤 시체뿐인 땅.

나오는 게 죄 언데드라서, 천무학관의 경영 팀은 이번 원정에서 딱히 소득을 기대하지 않고 왔던 참이다. 다 썩어 버린 인간이나 몬스터의 주검에서 뭘 얻겠는가?

그건 이곳을 탐사했던 선행자들. 헌터나 탐색자, 혹은 클랜의 사냥 팀의 보고에서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시독으로 오염된 것들이라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유장위의 생각은 달랐다.

-독은 독 나름의 쓰임새가 있소이다.

시독이나 사기로 오염된 언데드들의 장비는 본래라면 쓸 수 없는 물건이다. 그 주인이 그랬듯이 뭔지 모를 저주를 받아서 물성이 뒤틀렸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물성이 뒤틀리고 사기와 시독에 오염된 무구를 모두가 꺼려하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마법사들이 난리가 나겠군요. 연금술사도요.”

“고고학자들도 있지요. 허허허… 재정에 도움이 제법 되겠습니다.”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죽은 자들. 그것도 원한이나 사념을 품고 죽은 자들이다. 그리고 원한을 품고 죽은 자들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전장이다. 혹은 학살의 현장이다.

바삭바삭 부스러질 정도로 약하게 변한 무구나 사체에 남겨진 흔적들은 대개가 오래된 것들. 역사적인 학술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경우고, 몬스터가 언데드가 된 것들은 약간의 이능이나 권능을 품고 있었던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연구 자료가 된다.

애초에 사념은 고등한 정신체의 흔적. 그저 본능에만 의거해 움직이는 몬스터는 언데드가 되지도 못한다. 되었다 한들 오래가지 못하니, 곧 흙으로 돌아간다.

물론, 모든 언데드들의 사체나 무구가 다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었다면 어둠나무 지대는 진작에 인기 있는 사냥터가 되었으리라.

대개의 사체는 그냥 썩고 악취 나는 쓰레기일 뿐. 쓸 만한 물품을 가진 몬스터는 백에 한둘이었다.

하지만… 어둠나무 인근의 몬스터는 수만을 헤아렸다. 확률이 백에 한둘이라 한들, 개체수가 수백을 넘어 버리면 결국 떨어지는 아이템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각다각. 끄드드득.

“정말 많기도 하군요… 대체 얼마나 많은 어둠의 존재들이 여기 있었는지…….”

“이러다 언데드란 언데드는 죄다 씨를 말리겠어요. 허허.”

“음, 그러고 보니 그 부분이 조금 의아하외다.”

마냥 흐뭇해하는 교관들에게 교두 하나가 의문을 표했다.

“뭐가 말씀이오?”

“대체 어디서 이토록 많은 시신이 나왔을까요?”

“흠…….”

“으음…….”

교두가 제시한 의문에 교관들은 고민에 빠졌다.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시신이 변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게 살아서 좀비나 구울에게 물렸건, 아니면 죽어서 사령의 존재에게 회유 당했건, 일단 시신이 근본이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서 알아보았소만… 역사상 이 인근에서 대규모 회전이 벌어진 적은 없소이다.”

회전.

군대와 군대가 정면으로 맞붙는 경우다. 대량의 학살이 일어나고,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하는, 멀쩡한 땅도 사기가 가득한 땅으로 만드는 재액.

하지만 이 땅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음… 다소 오차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이전의 기록이라면 대격변의 날 때 워낙 많이 소실된 데다, 옛사람이 기입한 기록은 지금보다 정확도도 떨어지고 하오만.”

“그렇다 해도 이건 과합니다.”

반문을 받은 교두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근심이 서려 있었다.

“토벌대가 전원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이제껏 우리 학관에서 토벌한 언데드는 이미 수만을 넘어섰어요. 자칫 십만에 가깝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이로군.”

“아니오. 알 수 있는 일이외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교두가 손가락 셋을 펴 보였다.

“하나, 이 땅에는 이제껏 대규모 전쟁이 벌어진 적이 없다. 둘, 시체 없이는 언데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셋… 전리품으로 수거한 장비들은, 고대의, 그것도 주로 서역식의 양식이라는 것이오.”

“그 말씀은…….”

“고대의 서역이라면…….”

교관들의 얼굴도 슬몃 찌푸려졌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니, 이쯤 되면 교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것이다.

대격변의 날, 무수히 많은 생명이 중원 곳곳에서 도살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중원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치한 수만에 달하는 언데드들. 그들이 장비하고 있는 것들은 서역의 무구였다.

까마득히 오래전의, 수백 년은 된 듯한 투박한 양식에서부터 어떤 것은 고작 십 년도 되지 않을 세련된 양식까지.

심지어 의복도 있었다. 대개는 삭아서 그냥 입었다는 흔적만 겨우 남아 있었지만, 어떤 언데드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지, 너덜거리긴 해도 분명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양식 또한 제각각. 이쯤 되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대격변이 아무리 대단한 사건이었다 해도, 그때 중원을 침공해 온 언데드들은 이미 백사십 년을 묵었다. 옷이고 장비고 다 사그러져서, 썩다 만 시신만 부정한 흑마법으로 움직이는 상태다.

그런데 죽은 지 백 년이 안 된, 그런 신선한(?) 언데드가 이번 토벌에서 발견되었다면? 중원의 어느 왕조도 서역인과 대규모 전투를 벌인 적이 없다면?

교관 하나가 낯빛을 바꾸며 물었다.

“교두의 말씀은 어둠나무가 저 언데드들을 ‘소환’했다는 뜻이오이까?”

* * *

한편.

“흐음…….”

천마는 큰 나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정대의 주둔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덜컹덜컹. 쿠르릉.

-야! 야! 조심해서 몰아! 엎으면 죄다 박살 난다!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움직이는 마차들. 활기차게 움직이는 무인과 마법사들.

-이걸 오가상단으로 보내면…….

-후후. 엄청나구만. 정말.

그리고 그들 뒤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일을 보고 있는 잡인들까지.

“이거 정말 분위기 이상한데.”

“뭐가?”

“저기 저 사람들.”

천마가 턱짓하는 쪽을 보고 방윤이 갸웃했다.

“괜찮아 보이는데?”

표정들은 어둡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밝아 보였다.

원정대라는 건, 기본적으로 노숙 생활이다. 아무리 보급이 잘된다 하더라도, 식사와 잠자리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은 건량, 주로 페미컨을 위주로 한 거친 음식이고, 잠자리는 대충 천막으로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다들 얼굴이 밝았다. 오히려 즐거운 여행이라도 나온 양, 다들 웃거나 떠들거나 자기 자랑을 하거나 하고 있었다.

사기는 높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렇게 판단하는 방윤에게 천마가 맥없이 한숨 쉬었다.

“내가 땡중 놈한테 뭘 바랬던고. 으휴.”

“…꼭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 하나? 듣기에 심히 모욕적인데.”

방윤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리 그가 소림의 진전을 이은 이라 해도, 사문에 불편한 표현이 붙는다 해도, 천마를 상대로 대거리를 할 자신은 없었다.

그날, 검은 기사와 일대일로 겨루어 이긴 천마의 무위. 그건 말 그대로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최소 초절정, 어쩌면… 화경일지도.’

그는 조심스레 천마의 무위를 짐작했다.

분명 방윤이 우직하고 단순한 면은 있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멍청했다면 천무학관에 올 수도 없었을 테니까.

어쨌든 천마, 눈앞의 이한은 최소로 잡아도 4학년 학관생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지난 반년간 무슨 기연을 겪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마교, 그들의 비전의 절기겠지. 그렇다면 저 정도로 무위를 급상승시키는 신공이 있을지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이한-천마의 몸에서는 가까이 있기만 해도 거북한 그런 기운이 폴폴 피어나고 있었다. 심할 때는 그냥 보기만 해도 뭔가 짜증이 나고 기분이 나빠질 정도.

그게 소림의 무예와 상극인, 마교의 무공 때문임은 이제 알고 있었다. 마기와 정심한 무예와의 상충.

몰랐을 때는 모르되, 알게 된 이상 방윤은 그런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수 있었다. 무위의 고하와는 상관없이, 소림의 박대정심한 내공은 정신 수양에 있어서 제일.

본능적으로 적대적인 충동이 나오려고 하는 것만 주의 깊게 살피면 어렵지는 않았다.

“다시 봐봐. 그래도 모르겠으면 말하고.”

천마가 풀썩, 가지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음…….”

방윤은 나무 둥치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아래를 살폈다.

미끌!

“이크크!”

자칫 떨어질 뻔했다.

높은 나무 위라는 건, 원래 발 댈 자리가 마땅치 않다. 백 년은 묵음직한 고목은, 굵은 가지 위에 이끼가 끼어 미끄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위태위태한 자리에서 조망이 가능한 건, 신법이 특출난 운소령 외에는 내공이 심후한 방윤 정도였다. 그는 마침 천마가 ‘같이 갈 사람?’ 이라고 하는 말에 대뜸 평소의 불편함을 던져 버리고 따라붙었다.

-이한, 저 아이는 우리들의 기연이야.

운소령이 한 말을 그는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무슨 영문인지 천마에게 호의적으로 돌변한 이후, 서문영의 눈빛이 심후하게 깊어지는 것도 바로 옆에서 보았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서문영은 지난번 천마가 검은 거인과의 싸움에 임한 모습에서, 상승으로 가는 실마리를 얻은 듯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불편한 상대라 해도, 옆에 있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 무인이 강해지고 싶은 건 너무도 당연한 바람이다.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는 한참을 끙끙댔다.

천마가 이상하다고 하면 분명히 이상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서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발판도 불편하고, 옆에서 폴폴 마기를 풍기는 천마 때문인지, 집중력에 방해를 받은 것도 있었다.

방윤은 한참을 멍하게 보다 말고 결국 손을 들었다.

“솔직히 모르겠다. 이한, 우둔하다 하지 말고 가르침을 부탁해.”

“흐흣. 뭐~~ 하긴. 고기도 안 먹고 세속에 상관 안 하는 고고한 스님이니까 모를 만도 하지.”

“……?”

갑자기 천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말투도 부드러워지고, 기분이 굉장히 유쾌해진 기색이었다.

“음, 맞아. 아무리 학관 생활을 해도 출신은 어찌하기가 힘드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림승은 눈앞의 강자의 분위기에 맞췄다. 당장 그놈의 땡중 소리를 접어 넣고 스님이라고 칭해 주는 것이 어딘가.

“다시 한번 봐 봐. 지금 주둔지 분위기, 어떤 거 같아?”

“음… 밝고 쾌활하다?”

“그래. 그게 좀, 아니, 많이 이상한 거라고. 우리가 누구냐? 애초에 뭐 하러 온 거냐?”

“…….”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이다. 방윤은 조심스레 말을 골라 대답했다.

“천무학관이고… 사악한 몬스터를 토벌하러 온 거지.”

“뒤에서 딴 데로 샜네? 사악이고 뭐고, 우리는 일단 천무학관. 그러니까 학관생이라는 말이지. 교. 육. 기. 관. 에서 배움을 받는.”

“응? 어. 음.”

천마가 딱딱 끊어서 하는 말에 방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바보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나빴지만, 그런 건 다음 말에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보여?”

“……?”

“우리 2학년은,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배우는 입장으로 왔단 말이지. 손이 필요하니까 잡일 하러 온 게 아니라. 애초에 이건 우리 기말고사이기도 해. 그런데.”

“……!”

“지금 교관이고 교두고, 다 일만 하고 있잖아? 거기에 대해서 아무 불평도 안 해. 다들 즐거워하지. 몬스터를 잡은 전과에 기뻐하면서. 이게 정상이겠어?”

천마는 그제야 알아차린, 소림사의 오래된 돌머리에게 혀를 차며 일러 주었다.

한마디로.

“지금 이건, 천무학관이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야. 그냥 사냥 나온 클랜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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