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유장위의 관록 (8)
“보고합니다. 1외단입니다. 작일 자정경, 노란 바위 부족 오크를 토벌 완료. 전리품으로는 가공 가능한 오크 사체 70여 구. 그리고 저급 철제 무기 30여 정과…….”
“2외단입니다. 유랑 오크들을 발견. 추살했고, 대장은 오크 샤먼이었습니다. 사체 30여 구에 주술사의 목걸이와 지팡이를 획득했고, 청화상단에서 가치 판단 하기로는…….”
“흐음.”
보고가 이어졌다. 유장위는 반쯤 눈을 감은 채 듣고 있었다.
그는 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전쟁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무엇인가? 답은 돈, 돈, 그리고 더 많은 돈이라고 했다.
그가 보기에는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군대는 무력 집단이며, 돈을 아귀처럼 처먹어대는 소비 계층이었다. 하나 동시에, 충분한 무력은 부은 돈의 몇 배를 쏟아 낼 수 있는 과실나무이기도 했다.
“…이상,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소. 교관 여러분, 이 정도면 이번 출정에 소요된 경비. 그 반 정도는 충당이 가능할게요.”
5개 외단.
유장위는 천무학관의 공격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5개의 조직으로 개편했다. 그리고 그들을 외부 원정으로 돌려 인근의 몬스터들을 토벌하게 했다.
그리고 그 성과가 눈앞에 드러났다. 유장위는 일어서서 깊이 읍을 하며 교관들을 치하했다.
“물론… 천무학관의 여러 영웅들께서 돈푼이나 벌자고 움직인 게 아니시라는 것. 사악한 몬스터를 토벌하고, 중원에 예전 같은 태평성대가 오기를 바라며 불철주야 움직이신 것을 이 유모도 알고 있소.”
“음. 음.”
“흐음. 허허…….”
영웅이라니. 자그마치 현경의 고수가 하는 극찬이다.
천무학관의 교두 및 교관들은 흐뭇해지는 얼굴을 관리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이제껏 애들(학관생)에게나 받던 칭찬, 혹은 같은 급인 다른 학관의 교두들에게 받던 질시와 달리, 하늘 같은 현경의 고수가 허리 숙이며 하는 칭찬은 각별한 맛이 있었다.
“여튼, 이토록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여러 대협들께 응당 고생한 보람이 있으셔야 할 터, 내 청화상단의 상단주를 쥐어짜서 술값이나마 뜯어내 드리리다.”
“허, 괜찮으시겠습니까?”
“청화상단과는 아무 인연이 없지 않으십니까?”
교관들이 살짝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공돈 생긴다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걸리는 게 있다면 약간의 체면. 하지만 유장위는 교관들의 미미한 거리낌까지 남김없이 몰아냈다.
“인연이야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 다른 곳도 아니고 천무학관의 교관들 아니오? 이제껏 클랜들이나 상대하던 영세 상단이 뜻밖의 거래를 텄으니, 영광으로 알아야지요.”
뭐가 대수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유장위.
그는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악동 같은 표정을 만들고, 살짝 소리를 낮춰 비밀 이야기를 하듯 조곤조곤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돈 많은 상인 놈들을 이런 때 벗겨 먹지 않으면 언제 벗겨 먹겠소? 이 유모는 속이 좁아서, 우리가 목숨 걸고 잡은 몬스터로 상인 놈들이 돈을 벌 때 배가 아프더이다.”
와하하하! 우하하하!
교관들의 폭소가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가벼워지자 부러 뒤늦게 체면을 차리는 듯, 유장위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제 놈도 이 유모에게 땍땍대기야 하겠소만… 걱정들 마시오. 내 얼마 안 되는 평판을 팔아서라도 확실히 처리하겠소이다.”
후후후. 허허허허.
폭소는 잦아들고, 잔잔한 웃음들이 교관들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분위기는 좋았지만 모든 교관들이 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웃지 않고,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제운비, 뇌천벽, 그리고 그 외 몇 명.
‘흠, 비싸게들 구는군. 이래서 학관의 교두 놈들이란…….’
유장위는 지나치듯, 그들의 면면을 기억해 두었다.
그는 어찌 보면, 남의 것을 멋대로 쓰고 있는 형편이었다. 일종의 권력 구도. 호가호위였다.
이제껏 이리저리 묘한 분위기를 유도해서 친근함은 끌어냈지만, 자기 소속도 아닌 천무학관을 멋대로 부리고 있는 것이다.
유장위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기회를 잘 잡은 그는 사람들의 경계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애를 썼다.
나름 중급 규모의 클랜을 운영한 그의 경륜은, 투전판에서 노름하며 딴 게 아니다.
‘클랜이든 학관이든,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지.’
천무학관의 공격대 또한 기본적으로는 5개조였다. 보스 처리조와 탑 파괴를 맡은 4개조. 이들은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편성된 조직이었다.
그것을 유장위는 5개 외단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혹여 자신의 수작을 눈치채지 않게, 숫자까지 신경 쓴 세심한 손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무엇보다 교관 및 교두들 간의 인간관계에 신경을 썼다. 친한 사람, 성향이 비슷한 사람, 하다못해 고향이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아 같은 단에 넣었다.
‘저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이 사람이지.’
그랬더니 다들 편하게 여겼다. 신경을 많이 썼던 만큼, 이제껏 아무 불평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유장위의 조직 개편에, 천무학관의 교관들은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유장위는 그런 자기 자신이 흐뭇했다. 그러던 차, 누군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아, 월 대협, 말할 것이 있으시오?”
교두 월산. 던전학과를 맡은 인물이었다. 유장위가 묻자 그는 침중한 표정으로 일어나서 입을 열었다.
“유 대협, 이제껏 본 천무학관의 사람들을 이끌어 주시느라 노고가 많으시오. 이 월모는 유 대협의 탁월한 지도력에 항상 개안하고 있소이다.”
“과찬이시오, 월 대협. 감당할 수 없소이다.”
유장위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게지?’
저런 인물은 본디, 중요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해야 할 때일수록 예의를 지키는 법. 유장위는 월산이 정중하게 말 한 만큼 더욱 경계심을 돋웠다.
“이 유모가 보기에, 월 대협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구려. 혹 우려하시는 일이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리오.”
그러면서 그에 맞춰 조심스러운 어법을 구사했다. 굳어 있던 월산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음, 노파심이라 할 수 있는 일인데… 이 월모는 작금의 상황에 조금 우려가 있소. 어둠나무의 새 위협을 발견한 지, 벌써 나흘이 지났소이다.”
“음.”
“본관에 소식을 보낸 지가 한참 되었건만, 아직 아무 소식이 없소이다. 채근하지 않아도 괜찮을지요?”
“…그렇구료. 그건 확실히 이상하오.”
유장위는 살짝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럴 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태연하게, 본인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사실… 이 유모도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차요. 전갈을 받으셨을 분은 다른 사람도 아닌 리그웨더 학과장이시니.”
골드 드래곤 리그웨더.
현재 중원에서 가장 강하고 지혜롭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만물박사이자 전지에 가까운 인물. 천무학관만이 아니라 중원의 모든 학관 운용은 그녀의 지식으로부터 출발했다.
애초에 다른 차원과 수많은 세월을 거쳐 온 드래곤. 그런 그녀에게 어둠나무 지대의 이상 현상을 알렸는데, 이제까지 아무런 답이 오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랬다. 원래라면 응당 답이 왔었을 것이다.
유장위가 서신을 보냈었다면… 말이다.
“흐음… 감히 객인의 처지로 답을 채근할 수가 없었소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천무학관의 학과장께서는 가히 천신에 가까운 분이 아니시오?”
나도 생각은 했지만, 그런 사정이라 이제까지 처리를 못 했다. 그런 느낌이 들게 말을 하자, 월산 교두가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허어……? 유 대협께서 학과장님을 그렇게까지 어려워하실 줄은 몰랐소이다.”
“여러 교관들께서야 가까이서 자주 뵈니 익숙하겠지만, 나 같은 객인으로서는 천상의 금룡을 뵙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지 않소? 유모는 그분께 목숨을 빚졌소이다.”
짐짓 난처하다는 얼굴을 해 보이며, 유장위는 다시금 말에 뼈를 슬그머니 꽂아 넣었다.
“그러니 월 대협께서는 하루 이틀만 더 시간을 주시구려. 아무리 그래도 출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후우, 어려운 일 닥치면 어미부터 찾는 애새끼 꼬락서니라니…….”
“…….”
우뚝, 하고.
소리가 난 듯했다. 천무학관의 교두들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유장위는 그런 모습을 보고 내심 웃음 지었다.
‘그래, 어미만 찾는 애새끼는 되기 싫겠지?’
그는 일부러 자극적인 말을 골라서 썼다. 대저, 역량이 뛰어난 이는 그만큼 자존심도 드센 법.
유장위는 자신이 그런 처지라 난감하다는 투로 말했지만, 그 말은 천무학관의 교두들에게 더욱 강하게 박혀 들어갔을 터였다.
“으음… 듣고 보니 유 대협의 처지도 이해가 가오. 이 월모가 다소 성급한 구석이 있었소이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행합시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오.”
과연, 월산 역시 조금 불편한 얼굴이 되어 본인 말을 철회하게 되었다. 유장위가 내심 흡족한, 하지만 겉으로는 한숨 놨다는 얼굴을 지었다.
척.
그런데 월산이 앉자마자 또 하나의 손이 올라왔다.
“유 대협께 하나 묻고 싶습니다. 지금 2학년의 처우는 어찌하시려는지?”
몬스터학과 하청청이었다. 그는 월산처럼 예의를 차리지 않고 바로 물어왔다.
‘망할.’
이런 놈은 상대하기 귀찮은데, 하고 유장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익숙하게 겸손한 척, 구겨지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2학년의 처우라니, 정확히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요?”
“본 레이드 공격대는 실전을 겸한 천무학관의 교육의 일환이외다. 이번 원정에서 평가를 받기로 되어 있는, 특히 2학년 학생들이 마냥 시간을 쓰며 기다리고 있소.”
“아, 그 부분은…….”
“그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 갈 동량들이오. 지금 외부 원정이라는 이름하에, 교관이란 교관은 죄다 동원되고 있으니 학관으로서의 업무가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제 할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을 마치고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당장 이 자리에서 답변하라는 의미였다.
유장위는 조심스레 말을 골랐다.
“하… 그 부분은 좀 애매하오이다. 몇몇 탐색을 나간 3학년 학관생들이 비공식적으로 실종… 복귀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은 2학년을 출진시키기엔 위험…….”
“당연히 위험하오! 그러니 실종자들의 거취를 확인해야 하지 않소이까? 유 대협, 지금 외부 원정이니 뭐니 하면서 기존 위험 지대의 파악도 완전히 되지 않고 있소. 천금 같은 학관생들을 맡긴 부모들에게 면이라도 세우기 위해서는 학관 본연의 임무를 늦춰서는 아니 되오이다!”
“…….”
외교적인 수사를 중간에 끊어 먹는 교관이었다. 심지어 그의 말이 파장을 일으켰는지 적지 않은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탄식하고 있었다.
으음, 음. 끄덕끄덕.
‘빌어먹을. 이 판국에 초를 치다니.’
이제껏 외부 원정의 성과로 눈을 돌리게 했던 유장위의 심계가 비틀어지는 상황이었다. 월산의 말에 대응하여 시간을 벌었다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날아올 줄이야?
꾸욱.
유장위는 입안의 살을 깨물어 짐짓 아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확실히 그 부분은 이 유모의 불찰이오. 당장 내일이라도 인원을 돌려, 실종자들의 탐색과 2학년들의 처우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소이다.”
안이했다. 천무학관의 교관들이 죄다 맹탕이기에 손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과와 실적을 보이면, 금방 자신의 색으로 물들일 수 있다고.
하나 십여 년 이상 클랜의 운영에만 신경 써 왔었기에, 유장위는 잊고 있었다.
학관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곳. 학관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는 말은 정론이다. 아무리 전리품이 많이 들어오고, 본인들의 이름이 높아진다 해도, 교관들은 기본적으로 학관생들의 스승인 것이다.
“음?”
그렇게 반성하고 있던 차에, 유장위는 문득 어깨를 움츠렸다.
마치 어디선가, 자신의 속을 다 들여다보는듯한 시선이 느껴진 것이다.
* * *
“하, 저놈이었군.”
멀리서 회의를 보고 있던 천마가 자신과 눈이 마주친 유장위를 보고 씨익 웃으며 끄덕였다.
“넌 딱 걸렸다, 인마. 무슨 생각인지 알겠어.”
딱 흑제갈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