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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97화 (198/310)

197화. 눈먼 돈 먹기에 눈먼 놈 (4)

쉽게 얻은 것은 대저 쉽게 잃게 되는 법이다.

유장위는 빠르게 천무학관의 교관들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었다. 그건 분명 그 자신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빨리 가까워진 관계는 빨리 나빠질 수도 있는 법.

이제껏 예의 바르고 겸손한 모습으로 얻은 인심은, 오만하고 폭급한 속내를 비친 순간 삽시간에 금이 갔다.

“…실수했군.”

자리로 돌아간 유장위는 한 시진 가까이 잠을 잔 후,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다.

자존심 강한 교관들에게 감정을 담뿍 담은 살기를 뿜어내다니.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어리석은 일이다. 어쩌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질렀을까?

생각해 보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돈 문제, 성질 누르고 예의 차리는 것. 조금만 생각하면 어느 게 이익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을 도통 체면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는 교관들의 벽창호 같은 행태.

그래도 꾹꾹 누르며 한심함을 참아 왔었건만, 새벽녘에 찾아든 누군지도 모를 자의 서신이 불편함이라는 화약에 불을 붙여 버렸다.

솔직히, 겁을 먹었었다. 이제는 그걸 인정할 수 있었다.

애초에 상상이나 했었겠는가. 천무학관 공격대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제운비도 고작해야 화경이다. 그리고 화경과 현경의 차이는 아득하게 크다.

그래서 방심했다. 자신의 무위에 대해서만큼은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그랬는데 누군가가 잠든 그의 반 장 거리까지 다가와, 서탁에 모래시계와 쪽지를 두고 갔다.

쿨쿨 자다가 모가지가 잘렸어도 할 말이 없었던 경우다.

그건 대체 누구일까? 곱씹어 보던 유장위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누구냐… 는 중요한 게 아니겠지. 문제는 앞으로야.”

평판. 이제껏 쌓아 왔던 평판을 한순간에 날려먹는 실수를 했다.

이제껏 입안의 혀처럼 살갑게 굴던 교관들은, 더는 자신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했다.

그건 자연스럽게 유장위의 행동에 제약이 걸린다는 뜻. 예상했던 수익금이 대폭 줄어든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해 보니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감시자인가?”

아마도 리그웨더, 그녀의 숨겨진 칼.

그런 존재가 공격대 안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렇게 가정해 보면 모든 것이 다 들어맞았다.

비록 피곤에 지쳐 있었다 해도, 현경에 달하는 자신의 경계를 뚫고 들어온 침입자. 그건 분명히 자신과 같은 현경의 고수이리라. 현경이 아니라면 현경을 도모할 수 없으니.

“하긴… 생각해 보면 이만한 무력 집단을 아무 제어도 없이 덜렁 맡겼을 리가 없을 테지.”

따져 볼수록 정황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의혹의 안개가 가시자 더더욱 생각이 물꼬를 틀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그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은 중원 최고의 학관이다. 학과장 리그웨더가 비밀리에 양성하고 있는 현경급 인물이 있다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왜?

이제껏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비밀 병기가, 왜 갑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한 것일까?

유장위는 얼마 후 결론에 도달했다.

“…경고로군.”

그는 골똘히 이제껏 자신이 해 온 일들을 복기했다.

고룡 쉐이크의 토벌, 거기에 손을 보태는 것이 원래 자신의 역할이었다.

그랬던 것이 어둠나무 지대의 비밀, 심상치 않은 위험요소의 발견으로 공격대가 돈좌되어 버렸다.

유장위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그 후다.

원정 나온 공격대가 정지되어 있는 게 한심해서, 가볍게 몇 마디를 조언했다. 값비싼 무인들이 노는 것이 한심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저 숨겨진 칼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새삼 지금?

거기서 생각난 것은 어제의 회의였다.

왜 교관이라는 고급 전력으로 돈벌이나 하고 있느냐고. 학관생들의 교육이 지체되는 것은 어쩔 것이냐고. 그리고 실종된 학관생의 종적을 왜 파악하지 않느냐고.

분명, 그런 말이 나왔었다.

“하… 정말 고고함에 취한 작자들 같으니…….”

유장위는 새삼 실감했다. 자신과 학관과는 맞지 않는 결이 있다는 걸.

그가 보기로, 천무학관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일류다. 당장 그들이 받는 한 달 월급이 얼마던가?

그런데 그런 이들을 놀려? 돈 되는 몬스터들이 주변에 천지인데, 그걸 쓸어 담지 않고 전력감도 안 되는 학관생들을 가르치는 데 써?

손해다. 명백한 낭비다. 유장위는 도저히 그걸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그는 소규모 파티를 일개 클랜으로 손수 키워 낸 몸. 아무리 남의 학관의 일로 치부하고 넘기려 해도, 도무지 울화통이 터져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종된 학관생들의 종적 파악이라…….”

특히나 그 말에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작전 지대에서 실종? 행방 불명? 사망이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모를, 남아 있기나 한지 모를 시신을 찾느라 귀한 시간과 인력을 소모해야 한다고? 이 또한 낭비다. 그리고 손해다! 그래서 이제껏 미적미적 미뤄 왔던 것인데…….

“후우… 일단 엉덩이를 걷어채였으니 하라는 일은 해야겠지만.”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유장위는 우선순위를 하나하나 걸러 냈다.

학관생 교육, 해야 한다. 실종자 파악, 귀찮고 낭비처럼 느껴지지만 역시 해야 한다.

하지만 돈은, 포기할 수 없었다.

유장위는 하루빨리 자신의 클랜을 재건하고 싶었고, 거기에 금전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다행히 청화상단은 이제껏 난공불락이었던 어둠나무 지대의 몬스터 부산물에 거액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니 몬스터를 잡는 족족 돈이 들어온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감시자의 경고를 받았고, 학관의 교관들도 이제 불만을 입에 담기 시작한다. 이제까지처럼 은근슬쩍 이익을 보장하면서 꼬드기는 건 어려울 터.

그렇다고 하면… 성과가 필요했다.

예로부터, 군령을 어겼다 하더라도 충분한 공을 세우면 그 일은 불문에 붙이는 법 아니었던가.

감시자도, 아니, 리그웨더라도 자신의 일탈을 알고도 넘어가 줄, 그런 결과를 낼 수 있다면?

“…흐음. 그러고 보니 이게 있군?”

팔락. 후드득.

유장위가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제운비를 비롯한 특수 정찰대가 가져온 보고서였다.

그 첫 줄은 눈에 확 띄는 굵은 글자로 적혀 있었다.

-어둠 나무를 수호하는 몬스터들.

-웬딩고: 냉기를 뿜어내는 거대 설인. 화염에 약함.

-…….

* * *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밤새 고민을 했었나 보다. 까칠해진 얼굴로 다들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을 보니.

“일단은 우리 말을 들어주실 교관님이…….”

“아냐. 우리가 알게 된 걸 교관님이 모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이건 뭔가 다른 사정이 있어서인데…….”

“다른 사정? 뭐?”

“현경의 고수잖아. 심증으로는 안 돼. 어지간한 증좌가 나오지 않는 한은 이빨도 안 박혀. 아마 본인도 그걸 알아서 막 나가는 걸 테고.”

“하, 돈이 무섭네. 아니지. 현경의 고수가 돈에 미치니 무서운 건가?”

하나둘, 갑론을박하며 난상토론을 벌이는 일행들.

애들이 정겹게 노는(?) 것을 보며, 천마는 느긋하게 모닥불에 꼬치처럼 끼운 페미컨을 굽고 있었다.

치이익!

“오, 좋은 냄새.”

열에 익은 기름기가 장작에 떨어지고, 나무 타는 향이 페미컨에 스며든다.

불 조절에 조심조심하며 천마는 구운 페미건을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꾸드득. 와작와작.

“캬, 별미인데?”

즉석으로 스며든 훈제의 씁쓸한 맛이 고기의 누린내를 잡았다. 바작거리며 지방에 엉킨 곡물 가루가 감칠맛을 더한다. 살짝 탄 부분은 뱉어 내고, 천마는 연이어 계속 페미컨을 구웠다.

“…이한.”

“어, 그래.”

보다 못한 방윤이 거의 죽은 눈으로 부르자, 천마는 대뜸 끄덕이고 구수한 향을 풍기는 구운 페미컨을 방윤의 손에 쥐여 주었다.

“먹어. 딱 잘 익었어.”

“어, 고맙… 다가 아니고! 누가 이걸 달라고 했냐!”

얼결에 한 입 베어 물려다 말고 방윤이 기겁을 했다.

“…아니야?”

“아니야! 애초에 중은 비린 것을 먹지 않는다고!”

“허, 삼불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이야기했는데…….”

“어쨌든 나는 안 먹어! 아니… 아니! 이게 아니라!”

말렸다. 너무 자연스레 휘말려 버린 방윤은, 민대머리가 시뻘게지도록 흥분한 끝에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딴전 피우지 말고, 너도 의견 좀 내 봐.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뭐 없어?”

“당연히 없지.”

“그래, 당연… 없다고?”

아연해진 방윤. 그런 그에게 툭, 구운 페미컨 꼬치를 돌려 받으며 천마가 으적으적 씹어 삼켰다.

“그래 인마, 주제 파악을 해. 너희는 그냥 학관생 2학년이야. 야전에선 햇병아리. 교관 교두 죄다 모여서 머리 싸매는 게, 아무려면 너희만 못할 거 같냐?”

펫. 펫.

타서 검게 붙은 조각을 뱉어내는 천마.

마치 저는 2학년이 아니라는 투였다. 그런데 거기에 아무도 말을 얹지 못했다.

“다들 알아서 할 거야. 사람이 그래. 초반에는 어리바리 타다가 목소리 큰 놈 말을 따라가거든? 그런데 가다 보면 점점 다른 생각이 난단 말야. 머리가 굵어지는 거지.”

툭툭.

천마가 제 머리를 두들겨 보였다.

이건 흑제갈, 그때 그 녀석과 다퉈 본 경험이었다.

한때 천마신교의 4분지 3을 잠식했던 배반의 책사.

녀석의 수는 교묘하고, 연줄은 청해성 전역을 덮고 있었다. 인맥은 무수하게 많았고,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놈은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거 왜 이런가. 왜 저놈 말만 들어야 되나, 하고 반문하면서 앞에서 꽥꽥대는 놈을 흘겨보게 돼. 지금 좀 시끄럽게 해 놨으니, 더욱 빨라질 거고.”

천마신교, 세칭 마교. 그곳의 관념은 기본적으로 승자존중이다. 천마는 단신으로 그 세력을 뒤집어엎었다.

그러자 견고해 보이던 반란의 세력은 모래알처럼 무너졌다. 흑제갈은 이해를 하지 못해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마교의 본질.

힘이 곧 진리다.

“강자 앞에서 쩔쩔매는 우두머리를 끝까지 지지하는 건, 그냥 머저리들뿐이야.”

사시사철 척박한 청해성과 신강 인근의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독기에 찬 이들이었다. 그것이 피를 타고 오랜 전통이 되어 만들어진 관념.

강자존.

그리고 그런 관념은, 딱히 마교에서만 통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족이라고, 오랑캐라고 배척받는 청해와 신강의 사람들보다 훨씬 손익 계산이 빠른 이들이 중원인이었다.

구대문파가 왜 수백 년을 이었었는가.

오대세가가 왜 수시로 구성이 바뀌었었는가.

“음… 이한? 그 말대로면 계속 이대로 유장위에게 끌려가는 거 아냐? 제일 강한 자라면…….”

“적이지.”

“…아하.”

하백운이 탄성을 지르며 이마를 쳤다.

“그렇네. 유장위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고룡 쉐이크와 맞짱을 뜰 정도는 아니지.”

현경의 고수가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돈벌이를 시키고 있다. 손해를 내기 싫어하고, 이익을 탐하는 수장.

딱히 학관이라는 특수성이 아니라 해도, 이런 수장이 있으면 조직은 잡음이 나게 마련이다.

“교관까지 올라간 늙다리들이 바보도 아니고, 너희가 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애들도 아니고, 신경 꺼. 설마하니 나이를 뒷구멍으로 처먹은 노땅들이겠냐?”

“노… 노땅…….”

발칙하기 짝이 없는 천마의 말에, 파티원 전부가 신음했다. 단 한 명만 빼고.

“그러면 이한, 우리는 계속 이대로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자리에 묶여 있는 다른 2학년들처럼?”

운소령이었다.

“설마.”

천마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저 멀리.

그들이 탐색을 끝내고 돌아온 습지 언저리를 가리켰다.

“다들 꼼짝도 못 하고 있을 때가 오히려 기회지. 원래 우리가 배당받은 지역에 순찰을 핑계로 들어가는 거야.”

정확히는 그보다 좀 더.

먼 곳. 깊은 곳을.

“알고 보니 실종된 3학년들, 우리 지역 바로 옆이더라?”

아마도, 공적을 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교관 회의를 발칵 뒤집어 버릴 일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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