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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98화 (199/310)

198화. 그가 기연이다 (1)

척.

지통실에 들어서자마자 당무련은 경례부터 올려붙였다.

“2학년 4반 당무련! 같은 반 서문영, 같은 반 운소령과 함께 지통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흡사 군대에서나 보일 모습.

천무학관은 군대는 아니지만, 레이드 같은 준전시 상황에서는 군대식 보고 체계를 준수했다. 그것이 언제고, 전 인류를 동원한 전쟁을 대비하는 방침이었다.

“어? 음, 쉬어.”

펄럭. 턱.

가까이 있던 교관이 보고하는 그들을 보고, 들고 있던 서류를 덮는다. 그러고는 허허 하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다가왔다.

“운소령… 서문영… 분명 2학년 수석과 차석이었지? 그래. 어떠냐? 첫 번째 필드 레이드는?”

“…….”

“응? 왜 아무 말들이 없어?”

그런데 운소령과 서문영. 두 사람은 똑바로 선 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거기에 당무련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음, 교관님?”

“아? 이런, 미안. 실례했다.”

교관이 아차하고 혀를 찼다.

지금 상황에서 보고자는 당무련이고, 서문영과 운소령은 동행 인원일 뿐이다. 그런데 보고자를 무시하고 다른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으니… 이건 교관의 실수였다.

“그, 그래. 무슨 일이니?”

“네, 2학년 엘리트 파티. 현재 기존 하달된 명령을 다시 수행하고자 보고차 들렀습니다.”

“기존 명령……? 수행……? 어, 너희가 그 2학년 파티구나. 그런데…….”

당무련의 재빠른 대답에 교관은 버벅거렸다. 그러고는 아리송한 얼굴로 되물었다.

“2학년은 새로 내려진 명령이 없는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받은 명령을 재수행하고자 합니다.”

“기존 명령……? 재수행? 어… 너희들 지역 정찰 다 끝내지 않았나?”

교관이 얼핏, 지난번에 제목만 본 보고서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당무련이 즉각 말을 받았다.

“예, 그렇습니다만, 저희 파티의 평가는 끝났습니까?”

“아니… 아니, 그건, 음. 좀 바빠서…….”

“그렇다면 저희 보고를 조금 더 보강하고자 합니다. 대기발령 중에, 지난번 보고서에 기록할 것 몇 가지가 누락된 것이 떠올라서요.”

“어, 음…….”

교관은 다시금 버벅댔다.

임무를 수행했는데 평가서가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이건 사무직들의 역량 부족이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존 지휘통제실의 업무를 맡을 교관들은 유장위가 죄다 현장으로 틀어 버렸다 보니, 자료를 분석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저희 보고가 아직 평가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번에 재확인해서 미비한 점을 보완하고자 합니다. 그게 나중에 일을 두 번 세 번 다시 하는 걸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그건 또 그렇구나…….”

같은 일을 두 번 세 번 다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눈코 뜰 새 없이 일이 많아져서, 점점 통합 감사를 준비해야 하는 교관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는 잠시 기억을 뒤적거려, 소문 자자한 2학년 엘리트 파티의 사항을 기억해 냈다.

“2학년 엘리트 파티… 분명… 너희가 배당받은 지역이 습지대였지?”

“예, 그렇습니다. 지난번 탐사 때는 일일이 다 뒤져서 확인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습지대 특성상 물에 잠긴 곳이 많았으니까요.”

“으음…….”

“위험도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형은 지난번 탐사 때 충분히 숙지했고, 부상자도 없습니다. 애초에 월산 교두님께서 저희 전력을 고려해서 충분히 안전한 지대를 배당하셨다고 사료됩니다.”

당무련의 말에 교관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기존 방침은 2학년들은 그냥 내부에서 자가 수련 및 자가 정비만 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천무학관의 2학년, 그것도 엘리트 파티. 최소 3학년급 전력을 가진 이들을 다른 2학년들과 똑같이 대해야 하는 것인가?

교관이 보기에는 다소 전력 낭비에 가까웠다. 안 그래도 유장위의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외부 원정이 늘어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그래서 2학년생들을 놀려 두기만 해야 하는 게 그로서도 골칫거리였다. 그렇다면.

“뭐… 의욕 하나는 좋구나. 알겠다. 사전에 월산 교두님께서 판단하신 게 아마도… 으음… 맞겠지?”

이리저리 재어 보던 교관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2학년 엘리트 파티에 대한 판단은,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월산 교두의 판단이 맞을 것이다. 그 양반이라면 충분히 두 번 세 번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성격이니까.

스윽 스윽. 탕탕.

그는 빠르게 신규 명령서를 작성해서 직인을 찍고, 당부하듯이 말했다.

“일단 보내는 주마. 하지만 너희들이 2학년이라는 걸 잊지 말고. 혹여 위험한 일이 생기면… 알지?”

“신호탄을 이미 확보해 두었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행동하겠습니다. 2학년이지만 저희는 학년 수석, 차석이 함께 행동하고 있고, 고속 영창이 가능한 마법사 둘을 대동하고 있습니다.”

“어… 그래그래. 좋아, 준비는 충분하겠군.”

신호탄? 거기에 고속 영창의 마법사? 이 정도면 안전 대비는 문제없다. 오히려 과할 지경이다. 자신보다 알아서 자기 일들을 잘 챙기는 모습에 교관은 흡족해했다.

그는 해산을 명했고, 당무련과 나머지 두 사람은 재빨리 빠져나갔다.

“…당 소저, 괜찮아?”

“뭐가?”

“아니, 음… 아무것도 아니야.”

뭐라고 물으려던 운소령은, 곧 고개를 저었다. 괜히 그녀의 자존심을 자극해서 기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당무련은 전혀 기분이 상해 있지 않았다. 애초에 당무련은 자신보다 더 유명한 학관생을 데려온 것으로, 일부러 틈을 만들어 냈다.

‘흐흥, 역시나 데려오길 잘했는데……?’

그녀는 학관생, 그리고 운소령은 학년 수석, 서문영은 차석이다. 이렇게 세 사람이 나란히 서면, 교관 입장에서는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먼저 보이는 법이다.

‘뭐, 연구직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거기에 입은 복색으로 보아 교관은 평소에 실무를 잘 뛰지 않는, 연구 업무를 보는 사람 같았다.

덕분에 시작부터 잘 먹혀 들어갔다. 당연한 실수. 거기에 사전에 미리 준비한 말까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방금의 교관이 버벅대다 그녀의 의견에 따른 건, 전적으로 당무련 본인이 설계한 상황인 탓이다.

예전의 그녀라면 절대 생각도 못 할 약삭빠른 수지만, 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싸우면서 배운달까. 하루가 멀다 하고 천마에게 이리저리 갈굼당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틈을 찾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심독… 독심이라…….’

-독은 애초에 약자가 쓰는 거야.

천마가 했던 말에 당무련이 발끈 하는 것은 당연했다.

-뭐가 어쩌고 어째?!

누군들 자신의 가문이 약자라고, 약한 세력이라고 하는 말에 납득을 할까. 하물며 사천당문은 한때 사천을 지배하는 패자 중의 패자였다.

그런데 독을 쓰는 자니까 약하다?

받아들일래야 받아들일 수가 없는 말이다. 기분상으로나 상식상으로나.

하지만 거기서 천마는 당문의 ‘독심’을 입에 담았다.

-너, 애초에 당문이 어떤 식으로 사천을 지배했는지 모르고 있지?

까마득한 예전, 당문이 처음 태동하였을 때.

그들은 규모도 작고 무력도 보잘것없는 중소 문파였다. 그럭저럭 괜찮은 금나수나 암기술 정도는 있었지만, 그것으로 이름을 날리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사천에는 청성과 아미라는, 구대문파의 두 기둥이 있었으니까.

당문도 그럭저럭 빼어난 인물이 없지는 않았으나, 오랜 역사를 통해 절기를 갖춘, 두 거대 문파와 비견하기에는 너무도 모자랐다.

-애초에 독은 방심을 치고 들어가는 거야. 강자가 가지는 오만, 마음의 틈. 화경이나 현경의 고수에게 너네 가문이 가진 독이 정면에서 통하기나 할 것 같아?

-……!

그래서 당문은 자신들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들은 손에 창검을 쥐는 대신, 만들기 어려운 무공 구결을 개발하는 대신, 기관 장치와 독을 연구했다.

덕분에 한때 사파로 몰려 백안시당했으나, 그들은 정파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선을 지켰다.

분명히 수단은 사파의 그것이었으되, 처신은 정파 못지않게 깨끗이 했다. 아니, 어지간한 정파보다 더욱 결벽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웅크렸다.

<독은 곧 약과 통한다.>

당문은 사천의 남쪽, 묘강과 운남의 여러 기독들을 연구하고, 해약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온갖 질병이나 독으로 입은 부상에 대한 처방을, 차곡차곡 축척해 나갔다.

그렇게 수십, 수백 년을 은인자중하던 끝에, 당문은 드디어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사천 남쪽의 묘강에서 발원한 오독문의 등장이었다.

신경독, 혈액독. 독을 무기로 쓰는 문파가 사천의 사파들과 손을 잡고 강호를 어지럽혔다. 그들은 당문에도 손을 뻗었으나, 거기서 당문은 즉각 응대에 나섰다.

<독으로 세상의 독을 몰아내리라.>.

이독제독.

이미 독물에 한해 수십 대를 이어 연구한 그들은, 10일 동안 십여 개의 중소 사파를 쓸어버렸다. 수많은 사파 무인들이 독살당하고, 땅은 독기 가득한 독지가 되었다.

그때까지 사천에서 양민들의 고혈을 빨던 사파는, 그 후로 어느 순간부터 독살의 위협에 시달렸다.

반면, 당문은 오독문에 피해를 당한 정파의 세력에게 해독약과 피독의 비법을 전수했다. 장강 인근에 수해로 전염병이 돌면, 독을 약화시킨 약으로 병을 다스렸다.

그렇게 공덕을 사방으로 퍼뜨리길 몇 세대, 어느 순간 당문은 더 이상 사파로 간주되지 않았다.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힘을 가지게 되고, 이름을 얻어 무림맹의 시선을 끌게 되면서도, 그들은 결코 거만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약하다는 걸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독사처럼.

꾸준하고 차분히 기다리며, 그들의 힘이라 할 수 있는 독을 아끼고 숨겼다. 가문의 독과 암기는 폐쇄적으로, 철저히 극비리에 다뤘다.

독은 어린아이도 무사를 격살할 수 있는 위험한 도구. 칼보다 더 위험한 무기다. 언제든 강호 공적으로 몰릴 위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백 년.

세간에서 당문을 사파로 보는 이들은 더 이상 없어졌다. 당문이 트집 잡을 악행을 하지도 않았지만, 근거 없는 낭설을 퍼뜨리는 자는 반드시 찾아가 처단한 것이다.

공포와 명분. 두 가지를 다 갖춘 다음에야 비로소 사천의 한 문파는, 오대세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당문의 힘은 독에 있는 것이 아니야. 진짜 지독한 것은, 독물이 아니라 심계다. 인내심이지.

-…….

천마는 그렇게 단언했다. 그에 당무련은 숨을 삼켰다.

분명 자신도 알고 있는 사문의 역사였지만, 그것을 잔잔하게 서술해 주는 천마는.

‘꼭 옆에서 본 것처럼 말했단 말야… 악?!’

쿠웅!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콧잔등을 들이받고, 당무련은 끙끙거렸다.

“아… 당 소저? 미안.”

갑자기 멍청하게, 멀거니 서 있던 서문영이 사과한다.

“너어……! 음… 하, 조심 좀 해.”

막 발칵하려던 당무련은, 서문영의 고요한 눈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말을 돌렸다.

그의 검은 동공은.

얼핏얼핏 흐릿하게 뇌광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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